[현장에서] 그렇다면 법원은 공소기각을 준비해야 한다
2024년 10월 28일 17시 17분
경기도 시흥시에 있는 한 대형 국가시설.
높은 담장과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채 곳곳에서 CCTV가 가동되고 있는 이곳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은 물론 접근까지 철저하게 통제돼 있다.
화교 남매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 유우성 씨의 여동생 유가려 씨는 이곳에서 179일이나 조사를 받았다. 국내로 들어온 탈북자들은 반드시 거쳐가야 하는 이곳은 바로 국정원이 주관하는 중앙합동신문센터다.
이곳에선 그동안 무슨 일들이 벌어져 왔을까.
시흥시청이 관리하는 정왕공설묘지.
한쪽 구석 불과 스무 평 남짓한 묘역에 무연고 변사자 40여 명의 시신이 매장돼 있다. 말 그대로, 변사체로 발견됐지만 가족이나 친지, 친구 등 시신을 수습할 어떤 지인도 찾지 못한 사람들의 묘역이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비석도 세워져 있지 않은 한 봉분은 어느 탈북자의 무덤이다.
2011년 12월 27일 국정원이 발표한 짤막한 보도자료에 등장했던 탈북자 한 모 씨.
그에 관한 정보는, 합동신문센터 독방에서 조사를 받다가 간첩이라고 자백한 뒤 샤워실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는 것이 전부다. 이름 석 자와 나이, 출생지 같은 기본적인 인적 사항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한 씨가 합동신문센터에서 자살한 것으로 알려진 날짜는 2011년 12월 13일. 경기도 시흥경찰서는 당일 자살 현장을 조사하고 병원으로 이송된 한 씨의 시신을 확인한 뒤 곧바로 국과수에 시신 부검을 의뢰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사건 발생 사흘 만인 12월 16일 시흥시청으로 ‘무연고 변사자 처리 요청’ 공문을 보내 한 씨의 시신을 공설묘지에 매장하도록 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공문 속에는 한 씨의 정확한 이름과 생년월일, 그리고 출생지 등의 기본적인 인적 사항이 기재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시흥경찰서와 시흥시청은 해당 공문이 ‘비공개 처리’로 지정돼 있다며 열람 요청을 거부했다.
한 씨는 과연 누구일까. 국정원의 주장대로 정말 탈북자로 위장한 간첩이었을까.
이렇게 쉽게 결론짓기에는 의문스러운 구석이 너무 많다. 무엇보다 국정원은 자살 사건 발표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한 씨가 간첩이라는 근거로 그의 자백이 있었다는 것 외엔 어떤 구체적인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단순 자살 사건이라면서 이름 석 자마저 공개하지 않고 있는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만약 간첩이 확실하다면 북한 측에 관련 사실을 통지하고 항의까지 해야 했던 것은 아닐까.
당시 진행됐던 경찰의 조사 내용에도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이 적지 않다. 경찰은 현장 감식과 시신 확인, 시신 부검을 거쳐 매장까지 적법한 절차대로 조사했다고 밝혔지만, 한 씨가 숨지기 직전 합동신문센터에서 어떤 내용의 신문이 진행됐는지에 대해선 전혀 조사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한 씨의 독방에 설치돼 있던 CCTV를 증거로 제출받지도 않았다. 한 씨가 자살했던 샤워실은 CCTV가 비출 수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그 이유다. 그러나 유가려 씨를 비롯해 합신센터 독방에서 조사를 받았던 다수의 탈북자들은 샤워실까지도 CCTV로 감시되는 구조였다는 증언을 내놓고 있다. 과연 한 씨는 어떤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일까.
뉴스타파는 취재 과정에서, 합동신문센터에 갇혀 있을 때 가혹행위를 견디다 못해 자살을 시도한 적이 있다는 한 탈북자를 만났다.
지난 2008년 입국해 합동신문센터에 들어갔던 박 모 씨.
박 씨는 한 달 동안 독방에 갇힌 채 국정원 조사관들로부터 간첩이라는 사실을 자백하는 진술서를 쓸 것을 매일같이 요구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은 간첩이 아니라고 계속 말하자 폭언과 폭행이 뒤따랐고 결국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합동신문센터에서는 해마다 2천여 명의 국내 입국 탈북자들이 길게는 6개월까지 조사를 받는다. 이곳에 머무는 기간 동안 누구나 길건 짧건 독방 조사를 경험하게 된다. 그러나 이들은 변호인 선임도, 외부인과의 면회나 편지 교환도 일체 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더 이상 북한 주민도 아니고 아직은 대한민국 국민도 아니며 국제법상 난민으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불안한 신분인 탓에 형사소송법 상의 어떤 권리도 부여받을 수 없는 실정이다. 이렇게 고립되고 폐쇄된 조건 자체가 강압적 조사의 기본적 환경으로 작용하는데다 실제 이들과 대면하는 국정원 조사관들 역시 위압적 언행을 하기 일쑤다.
법적으로 합동신문센터의 설치 목적은 탈북자 보호와 정착 지원이다. 그러나 이는 명목에 그칠 뿐이고 실제로는 외부와 철저하게 차단된 강제 구금 상태에서 강압적인 조사가 일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이곳을 경험한 탈북자들의 한결 같은 증언이다.
실제로 2012년 경기도여성가족연구원이 탈북자 400명을 조사한 결과를 보면, 합동신문센터 조사 기간 중 국정원 직원의 언행에서 공포감을 느낀 경우가 43%, 직원의 무시와 반말을 경험한 사람이 23%, 폭언을 들은 경우가 17%였고 직접적인 폭행을 당했다는 응답한 사람도 3명이 있었다.
탈북 화교 남매 간첩 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가려 씨도 국정원 직원들로부터 심각한 폭행을 당했다고 증언했던 바 있다.
이처럼 폭행까지 수반된 강압적인 조사가 진행되다 보니 응급 상황도 적잖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합동신문센터에서 7km 떨어진 경기도 안산시의 한 종합병원 직원들은, 며칠에 한 번 꼴로 야간에 응급실로 실려오는 탈북자들을 목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응급 환자 이송 과정에서도 119 구급대나 병원 구급차량이 아닌 국정원 자체 승합차가 동원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는데, 이 역시 탈북자들을 철저히 외부인과 격리시키려는 조치의 일환으로 보인다.
이 모든 증언과 정황들이 합동신문센터 내에서 생각보다 많은 가혹행위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라는 추정을 가능케 한다. 그러나 합동신문센터의 견고한 벽은 마땅히 국가기관을 견제해야 할 국회의 기능도 무력화시키고 있다.
국가기관이 어떤 사업을 어떻게 벌이고 있는지를 국회가 큰 틀에서나마 들여다볼 수 있는 도구가 바로 예산이지만, 국정원과 합동신문센터의 경우는 이마저 사실상 예외가 되고 있다.
합동신문센터는 대한민국에 들어온 탈북자들을 잠재적 간첩으로 간주하고 철저하게 고립된 공간에 장기간 가둬 놓은 채 때론 폭언과 폭행까지 동원해 조사가 아닌 사실상의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조사 방식이 유지될 경우 유우성 씨 남매의 경우처럼 간첩을 조작하는 결과가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지난 2008년 10월 합동신문센터 개소 이후 이곳에서 조사를 받고 간첩 혐의로 기소된 탈북자는 모두 12명이다. 같은 기간 국내에서 적발된 간첩의 전체 기소 건수가 51건이었으니 국내 간첩 4명 중 1명 정도가 합동신문센터 출신이라는 말이 된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합동신문센터 조사 기간에 따른 간첩 기소 비율이다.
신경민 의원실 자료와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를 종합하면, 합동신문센터에서 한 달 이상 두 달 미만 조사받은 탈북자 11명 가운데는 2명이 기소돼 기소율은 18%에 불과했다. 그러나 조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기소되는 비율도 점점 높아져, 5달 이상 조사받은 7명 가운데는 절반 가까운 3명이 기소됐다.
합동신문센터에서 장기간의 강압조사를 경험했던 탈북자들은 이곳이 과연 자신들이 찾아온 자유민주주의 국가였는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합동신문센터의 높다란 울타리 너머에서 어떤 가혹 행위와 인권 유린이 발생하더라도 지금으로선 누구도 그 진상을 파악할 수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이유이다.
뉴스타파가 3월18일 보도한 ‘한국의 관타나모, 합동신문센터’ 등 기사에 대해 국정원 합신센터는 탈북자 보호ㆍ조사 과정에서 인권을 보장하고, 질병치료ㆍ자유로운 종교ㆍ체육ㆍ여가 활동기회를 최대한 부여하고 있다고 알려왔습니다. 방송에서 폭력행위가 있었다고 주장한 박 모 씨의 경우 합동신문 과정에서 허위 진술로 정착금이 삭감된 데 불만을 품고 “폭행당했다”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까지 제기했지만 법원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정 판결이 났다고 강조했습니다. 가혹행위 추정 근거로 보도된 ‘합신센터 인근 종합병원 야간 응급실 출입’은, 탈북자 대부분이 영양상태가 좋지 않고 탈북과정에서 결핵ㆍ간염 등 각종 질환을 앓아 가끔 응급환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며 가혹행위와는 관계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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