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법관 기피 신청은 불법 기소 자백이다
2024년 11월 22일 11시 02분
경기도 시흥시의 정왕공설묘지 한 켠에는 무연고 변사자 40여 명이 매장돼 있다. 그리고 그 가운데 유일하게 비석조차 세워져 있지 않은 한 무덤이 있다. 지난 2011년 12월 13일 국정원 합동신문센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위장탈북한 간첩이라고 자백한 뒤 자살했다는 한 모 씨가 이곳에 묻혀 있다. 뉴스타파는 한 씨의 자살 사건에 관한 의혹을 지난 3월 18일 일부 보도한 바 있다.
취재진은 이후로도 관할 경찰서에 한 씨의 자살 사건 수사 기록을, 관할시청에는 공설묘지 매장 관련 기록을 공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번번이 거부 당했다. 경찰서와 시청은 국정원이 한 씨를 위장 탈북한 간첩이라고 공식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 사생활의 비밀 또는 자유를 침해할 우려가 있어 정보를 공개할 수 없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를 제시했다.
그럼에도 취재진은 한 씨의 자살 직후 관할 경찰서가 시청으로 보낸 ‘무연고 변사체 행정처리 의뢰’ 공문을 어렵사리 입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공문 속에서도 한 씨의 이름과 생일은 지워져 있었다.
그러던 중 전혀 뜻밖의 취재원으로부터 한 씨의 정확한 이름은 한종수, 1976년 8월 15일 생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이어서 또 다른 취재원으로부터 한 씨가 2010년 10월 북한을 탈출했고 2011년 9월에 국내로 들어와 합동신문센터에서 조사를 받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한종수 씨는 3개월 가량 합동신문센터 조사를 받았고, 2011년 12월 13일 새벽 5시 45분경 독방에서 스스로 목을 매 숨졌다는 국정원의 짧은 보도자료를 통해 세상에 알려 졌다.
뉴스타파는 한종수 씨의 자살 사건과 관련된 의혹들을 다시 정리하는 차원에서 그가 합동신문센터에서 자살했다고 발표한 국정원의 당시 보도 자료, 그리고 언론의 보도 내용들을 다시 꼼꼼히 살펴봤다.
국정원의 보도자료는 한 씨가 숨진 지 2주 만인 2011년 12월 27일에야 나왔다. 한 씨가 합동신문센터 독방에서 목을 맨 채로 발견돼 응급조치를 한 뒤 인근 병원 응급실로 옮겨 심폐소생술을 실시했지만 끝내 사망했다고 정리되어 있다. 국정원은 당시 연합뉴스 기자에게도 “한 씨를 발견했을 당시 숨이 붙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입수한 경찰의 공문에는 한 씨가 합동신문센터에서 이미 숨진 채 발견됐다고 기록돼 있다. 취재진은 당시 한 씨가 실려갔던 병원 관계자로부터도 한 씨가 12월 13일 오전 ‘심정지 상태’, 즉 이미 숨이 멎은 채로 응급실로 실려왔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국정원의 보도자료와는 달리 경찰과 병원은 한 씨가 이미 숨진 상태로 병원에 옮겨졌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한 씨 사건의 진상을 제대로 밝히지 않았다는 의혹은 이 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일부 언론은 한 씨 시신에 대한 부검도 제대로 마치지 않은 상태에서 사건이 급하게 자살로 종결 처리됐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국정원은 이에 대해 역시 연합뉴스 기자에게 “사건 다음날인 2011년 12월 14일에 국과수 부검을 의뢰해 당일에 결과를 통보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국과수에 직접 확인한 결과, 한 씨 시신에 대한 부검 감정서와 공식적인 사망 원인 통보 문서는 부검 19일 뒤인 2012년 1월 2일에 시흥경찰서로 직접 전달됐다.
국과수 관계자는 한 씨 시신에 대한 부검과 관련한 중간 결과가 국정원으로 미리 통지된 사실도 없다고 증언했다.
이처럼 당시 국정원의 보도자료와 해명은 허점 투성이였지만 경찰은 시신이 이미 치워진 현장만 살펴보고 국정원 측 진술에만 의존해 사건을 처리했다.
당시 일부 언론이 간첩임을 자백한 탈북자를 관리 소홀로 숨지게 했다고 비판하자 국정원은 “한 씨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는데, 새벽 시간대 1~2분 정도를 놓친 것 같다”고 해명했다.
한 씨의 독방에 설치된 CCTV에 그의 모습이 담겨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지만, 당시 경찰은 CCTV를 확보하지 않았다. 또 한 씨가 숨지기 전 어떤 내용의 신문을 받았는지도 조사하지 않았다.
당시 한 씨 자살 사건을 수사했던 경찰관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당시로선 합신센터 내 국정원 직원들이 한 씨가 위장탈북한 사실이 드러나자 압박을 이기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진술한 내용을 신뢰하고 수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변사 사건을 자주 접하는 한 경찰서의 형사팀장은 다분히 불투명한 수사 과정이었다는 의혹을 받을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정원 관할 시설물 내부에서 이뤄진 수사여서 다소 의심스러운 부분이 있더라도 문제를 제기하기는 어려운 분위기였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만약 국정원이 간첩 증거 조작 등으로 여러 의혹을 받는 요즘과 같은 사회적 분위기가 있었다면 그같은 사건을 담당하는 경찰의 태도와 수사 절차도 달라졌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시 36살이었던 한종수 씨는 외부와 철저하게 격리된 합동신문센터에서 3개월 간 조사를 받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지금 공설묘지에 묻혀 있다. 묘지 관리 규정에 따라 앞으로 8년 뒤엔 한 씨의 시신은 화장되고 분골돼 다른 무연고 변사자들과 합장될 것이다.
뉴스타파는 한 씨가 탈북해 국내로 들어온 2010년 10월부터 2011년 9월 사이에 그와 접촉했던 탈북자 동료나 지인, 혹은 가족이나 친인척들이 있을 것으로 보고 취재 과정에서 최대한 확인한 그의 인적 사항을 공개했다. 이를 통해 한종수 씨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는 탈북자들의 제보를 기다린다.
한 씨가 정말로 위장탈북한 간첩이었는지 여부를 떠나,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과정을 제대로 밝히는 것이야 말로 한 인간에 대한 예의이자 기본적인 인권의 문제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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