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의료사고 7년... 법의 이름으로 퇴원을 명받다

Aug. 25, 2022, 08:00 PM.

오늘 <주간 뉴스타파>는 최근 확정된 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얘기를 해보려 합니다.
50대 가장 장경복 씨는 지난 2015년 목 부위의 통증을 치료하기 위해 서울 아산병원에 입원해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은 잘 끝났지만 수술이 끝난 뒤의 처치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의료사고가 일어난 것이죠. 자기 발로 멀쩡히 걸어들어가 입원했던 장경복 씨는 수술이 끝난 직후 영영 깨어나지 못하는 식물인간이 됐습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났습니다. 의료 사고 직후 장경복 씨를 입원시켜 치료해주고 간병비까지 대줬던 병원 측은 시간이 지날수록 의료사고와 장경복 씨가 식물인간이 된 것 사이의 인과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장경복 씨의 가족은 의료 사고의 책임을 명확히 하기 위해 소송을 걸었죠. 2019년 판결이 나왔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일부 승소였지만 법원은 사실상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환자의 평소 건강 상태 때문에 수술 뒤 처치에 실패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었죠. 장경복 씨 가족이 받을 수 있던 건 위자료 2천만 원 뿐이었습니다.
아산 병원은 그동안의 입원비와 간병비를 도로 내놓으라고 반대 소송을 걸어왔습니다. 간병비는 인정이 안됐지만 입원비 수천만 원을 내야 하는 처지로 몰렸습니다. 병원은 곧이어 식물인간 상태로 병상에 누워있는 환자 장경복 씨를 강제로 퇴원시키기 위한 소송, 즉 환자 퇴원 청구 소송을 걸어 왔습니다. 이번에도 법원은 병원 측의 손을 들어줬습니다. 결국 7년 전 제발로 걸어들어와 입원했던 장경복 씨는 의식도 사고력도 상실한 채로 병원에서 강제로 쫓겨나야 하는 처지가 됐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퇴거 청구 소송에서 법원이 내린 판결의 논리에 주목했습니다. 법원은 이렇게 판시했습니다.
"상급종합병원의 입원 치료는 사회적으로 매우 한정된 의료 자원으로서.... 공공 복리를 위하여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되고 배분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중략) 장경복이 퇴원하지 않음으로서 상급종합병원에서만 치료할 수 있는 중증 급성기 환자들을 입원시켜 치료하는 데 그만큼 지장을 입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고법 2021 나 2021065 판결문 중
뉴스타파가 조사해보니 장기입원 환자에 대한 병원의 퇴거 청구 소송은 지난 20년 동안 19건 있었습니다. 때로는 병원 측이 때로는 환자 측이 승소했죠. 그런데 지금까지의 퇴거 청구 소송에서 법원의 판단 기준은 대개 '환자의 상태가 얼마나 위중한가'였습니다. 즉 현재 입원한 병원에서 퇴원을 하더라도 환자의 상태가 나빠지지 않는가를 기준으로 삼았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번 장경복 씨 사건을 판단한 재판부는 새로운 논리를 세운 겁니다. 즉 한정된 의료 자원인 '상급병원에서의 입원 진료'를 합리적으로 배분한다는 편익을 환자의 상태보다 더 중요하게 본 것이죠. 대법원은 이 사건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판결을 확정했습니다. 
물론 법원이 내세운 것도 중요한 공공의 가치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한 인간의 생명을 이렇게 다루어도 되는 것인가... 저희 제작진은 깊이 고민했습니다. 
장경복 씨와 그 가족이 겪은 일은 보통 사람들이 평생 한 번 겪기도 힘든 아주 희귀한 일일 겁니다. 따라서 독자들이 내 일처럼 느끼기 쉽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들이 힘겹게 벌이고 있는 싸움은 우리 사회에 매우 의미심장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의료 사고에서 병원의 책임을 인정받는 일은 왜 이토록 어려운 것인가, 다수의 공공복리를 위한 소수의 희생은 어디까지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사람의 목숨은 재산과 사회적 지위에 따라 서로 다른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 여러 의문들이 이 사건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장경복 씨의 가족들은 재심을 청구했습니다. 뉴스타파는 이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마무리될지 지켜보고 계속 보도할 예정입니다. 평범한 한 사람의 목숨이나 권리를 존중하지 않는 사회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나와 내 가족 역시 언제든 존중받지 못할 위험을 감수하고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내용은 기사와 영상을 통해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독자 여러분들도 함께 고민해주십시오. 
<보도 그 후...>
장경복의 가족들이 서울고법과 대법원에 제기한 재심 청구는 모두 기각, 각하 판결을 받았다. 그렇게 2023년 3월에 이르러 의료과실과 병실 퇴거, 진료비를 둘러싼 모든 소송은 아산병원의 승소로 끝났다. 병원 측 신청에 따라 장경복 가족의 부동산이 압류되었고 경매 절차가 진행됐다. 가족들은 "더 버티기 힘들었다"고 했다. 가족들은 결국 아산병원과 합의하고 장경복을 요양병원으로 옮겼다. 그 대신 아산병원은 압류 부동산 경매를 취소하고 소송으로 확정된 미납진료비를 받지 않기로 했다. 2023년 5월 12일 밤, 장경복은 숨을 거뒀다. 요양병원에 온 지 28일 만의 일이다.
*이 기사는 2023년 5월 17일 수정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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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홍우람 강현석
연출송원근 박종화
진행심인보
촬영정형민
편집박서영 김은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