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까만 먹칠’과 6개 언론의 ‘숨은 글씨 찾기’

2023년 09월 21일 14시 00분

뉴스타파를 포함한 6개 지역 독립언론·공영방송(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뉴스하다, 부산MBC, 충청리뷰)이 ‘검찰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을 구성해 지난 9월 14일부터 검찰의 특활비 오남용과 세금 부정 사용 실태를 추적한 결과를 일제히 내놓고 있다. 오늘은 기밀 수사에 쓰라고 돼 있는 특활비를 국회 국정감사를 준비한 검사에게 ‘격려금’으로 지급한 인천지검 부천지청의 예산 오남용을 들춰낸 사례 등 ‘공동취재단’의 취재 결과를 갈무리해 소개한다.   

검찰이 먹칠로 가려놓은 곳에서 ‘숨은 글씨 찾기’ 

뉴스타파를 포함한 ‘검찰예산검증 공동취재단’이 전국 67개 검찰청에서 받아낸 수십만 장의 특활비 자료는 온통 먹칠투성이었습니다. 검찰이 특수활동비 집행 내역을 먹칠로 가리며 ‘조자룡이 헌 칼 쓰듯’ 내세운 구실은 ‘수사 기밀’입니다. 이 네 글자로 영수증 한 장씩만 남긴 채 세금 수백억 원을 사용했고, 누가 받아 어디에 썼는지도 감췄습니다. 
그런데, 먹칠 작업도 사람이 하는 일이라 수십만 장이 넘는 특활비 집행 기록을 가리는 작업을 반복하다 보면, ‘실수 아닌 실수’가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그게 ‘공교롭게도’ 인천지방검찰청 부천지청에서 일어났는데, 독립언론 <뉴스하다>의 취재망에 딱 포착되면서 검찰이 감추려 한 특수활동비의 실체가 선연하게 드러납니다.
<뉴스하다> 취재진이 검증한 인천지검 부천지청의 특활비 기록은 2017년 9월부터 2023년 4월까지입니다. 적게는 수십만 원에서, 많게는 수백만 원까지의 특활비가 영수증 한 장 남기고 지출됐으나 집행 내용과 수령인은 먹칠 뒤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다른 지방검찰청과 마찬가지로 부천지청 역시 특활비 영수증에 ‘특수활동비를 다음과 같이 현금으로 수령함을 확인하고, 수사 및 정보활동 등 경비집행의 목적달성에 현저히 지장을 받을 우려가 있어 그 집행내역 확인서 작성을 생략합니다’라고 써놨습니다. 검찰의 의도대로 집행사유를 가리고 보면, 특활비 목적에 맞게 쓰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일부 영수증은 검찰이 온전히 가리지 못했습니다. 아주 드물지만, 수령인의 이름이 그대로 노출된 경우도 발견됐습니다. 검찰이 ‘포렌식 작업’을 하듯 본격적으로 이미지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수만 장의 특활비 영수증에 가려진 먹칠의 밝기를 조금씩 조정하며 판독했습니다.
▲ 2021년 10월 18일자 인천지검 부천지청의 특활비 집행 영수증 
보이시나요? 위 영수증에서 먹칠 아래 가려져 있던 특수활동비 집행 사유 말입니다. 이런 식으로 <뉴스하다> 취재진은 김형근 지청장 재직 시절, 부천지청이 먹칠한 2021년 10월 특활비 지출 기록 27건 중 18건을 판독해 복원할 수 있었습니다.  
▲ <뉴스하다> 취재진이 복원해 낸 2021년 10월 부천지청의 특활비 지출기록부. <뉴스하다> 취재진이 판독한 결과를 입력한 결과다. 
위 보시는 것처럼 기밀 수사에 써야 할 특활비가 국정감사를 잘 대응했다며 송 모 검사에게 ‘격려금’으로 50만 원, 30만 원을 각각 특활비로 준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먹칠 뒤에 숨긴 ‘국정감사 우수직원 격려’라는 지출 사유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수사 및 정보활동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습니다. 특활비 예산 목적과 무관한 지출입니다. 세금 부정 사용에 해당합니다.
다음 달 10월, 추석 연휴가 지나고 2023년 국회 국정감사가 시작됩니다. 올해도 부천지청을 포함한 검찰청도 피감기관으로써 국감을 받습니다. 올해도 국회 자료 요구 등에 잘 대응한 검찰 직원에게 격려금으로 특활비가 지급되는지 두고 볼 일입니다. 더 자세한 기사는 <뉴스하다>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기사 보기: 기밀수사에 쓰는 특활비, 격려금 지급 사례 처음 드러나)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 법무부와 검찰도 예외는 아니다. 

검찰 특활비와 ‘이영렬 돈봉투 만찬 사건’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이열렬 돈봉투 사건’을 계기로 2017년 9월, 법무부와 대검이 특수활동비 제도 개선 방안의 시행을 내놨기 때문입니다.
법무부와 검찰의 주장대로라면 2017년 9월은 특활비 관리의 분기점입니다. 마치 ‘비포 앤 애프터’처럼 확연하게 갈라지죠. 2017년 9월 이전에는 두 달에 한 번씩 무단 폐기되는 등 특활비 관리가 엉망진창이었으나, 9월 이후에는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게 검찰의 한결같은 주장이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공동취재단의 일원인 부산MBC가 검증에 나섰습니다. 검증 방법은 2017년 9월 이후 생산된 검찰 특활비 자료를 살펴보는 것이죠. 부산MBC 취재진이 2017년 12월 집행된 부산지방검찰청의 특활비 자료를 들여다 결과, 지출 증빙자료가 무더기로 없어지거나 지출 장부와 영수증 금액이 맞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예를 들어 2017년 12월 28일, 부산지검은 50만 원씩 두 번 특활비를 지출한 것으로 기록돼 있는데, 이를 증명하는 50만 원짜리 영수증은 한 장밖에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또 이틀 전인 12월 26일, 특활비 60만 원 지출에 대한 영수증도 전혀 없었습니다. 
▲ 2017년 12월 집행된 부산지검의 특활비 지출내역 기록부. 지출내역을 증빙하는 영수증이 부족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MBC 취재팀이 확인한 결과, 2017년 12월 한 달간 부산지검의 특활비 지출 총 48건 가운데, 11건, 금액으론 318만 원에 해당하는 특활비 증빙 자료가 빠진 것으로 파악됐습니다. 증빙 없이 특활비를 사용한 부정 회계 의혹까지 제기되지만, 검찰 관계자는 복사 과정에서 누락 등 실수는 없었고, (특활비) 기록부가 없다는 해명만 내놨다고 합니다. (부산MBC 보도: 서류 ′증발′하고 금액 안 맞고... 관리 허술 ′허다′
2017년 9월 이후에는 특활비 자료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검찰의 주장이 또다시 거짓말로 드러난 것인데요. “모든 정부는 거짓말을 한다”는 오래된 탐사 보도의 경구가 클리셰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공교롭게도’, ‘공교롭게도’, ‘공교롭게도’... 여러 검찰청에서 반복  

특활비 보도를 하게 되면서 유난히 많이 쓰게 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공교롭게도’입니다. 눈썰미 있는 분이라면 이 기사의 앞머리에도 ‘공교롭게도’라는 단어가 쓰인 사실을 눈치 채셨을 겁니다. 이 말 외에 다수 검찰청에서 확인되는 특활비 지출 패턴을 설명할 적절한 단어를 찾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유형의 특활비 지급 패턴이 여러 검찰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보인다면, 이를 우연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월급처럼 매달 정기적으로 일정 금액이 빠져나가는 특수활동비 지출 형태가 광범위하게 확인되고 있습니다. 이미 지난 6월 보도한 대로, 2017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검찰이 지출한 특수활동비 292억여 원 가운데 절반이 넘는 돈이 매달 월급처럼 정기적으로 집행된 것으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이런 고정지급 패턴은 지방검찰청으로 갈수록 확연하게 나타납니다. 
공동취재단의 일원인 경남도민일보의 취재에 따르면, 창원지방검찰청 마산지청은 2017년 9월부터 2018년 9월까지, 1년간 매달 특정일에 76만 원 1건, 20만 원 2건의 특활비가 지출됐습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마산지청은 지청장 1명과 부장검사 2명 등 3명의 검사가 재직 중입니다.  
창원지검 밀양지청도 비슷합니다. 최근 3년 동안 매달 특수활동비 4건을 정기적으로 지출됐는데, 밀양지청 조직도를 보면, 역시 ‘공교롭게도’ 지청장 한 명과 검사 3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우연의 결과일까요? 경남도민일보 취재진은 마산지청, 밀양지청 두 곳 모두 특수활동비가 검사들의 급여처럼 고정 지급된 게 아닌지 의심받을 수 있는 지출 형태라고 지적합니다. 
이와 함께 2017년 9월~2023년 4월, 68개월 동안 창원지검과 밀양지청, 통영지청의 특활비 예산 자료에서 카드 영수증을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모두 ‘현금으로 특수활동비를 집행했다’는 문구만 남기고 특활비를 쓴 것인데요. 어디에 사용했는지 집행 내역은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거창지청의 경우 일부 카드 영수증을 보관 중이었는데, 2017년 10월부터 2023년 4월까지, 66개월 동안 총 297회의 특수활동비 지출 가운데, 영수증을 남긴 지출은 단 3건(1%)이었습니다. 
▲ 2018년 4월 7일 자로 집행된 진주지청의 특활비 영수증, 지출 증빙으로 카드 영수증을 첨부했다.  그러니 이 같은 카드 사용은 극히 드물고 대부분 현금으로 지출됐다. 
기획재정부는 국고금관리법을 기준으로 특활비의 현금 사용의 자제를 권고하고 있고, 2017년 9월 대검이 전국 지방검찰청에 시행한 특활비 제도 개선 방안에도 ‘현금 사용을 자제하라는’ 대책이 담겨 있었습니다. 결국, ‘대책 따로’, ‘현실 따로’였습니다. (경남도민일보 보도 [검찰, 하얀 장부]급여처럼 포상금처럼... 특활비 용도 이게 맞나?)
제작진
공동취재단경남도민일보, 뉴스민, 뉴스하다, 부산MBC, 충청리뷰, 뉴스타파
공동기획 세금도둑잡아라, 정보공개센터, 함께하는시민행동
데이터 최윤원, 연다혜, 김지연, 전기환
웹디자인 이도현
웹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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