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뉴스타파] 호반과 골프장, 그리고 탈세 의혹

Oct. 19, 2023, 08:00 PM.

공정위는 지난 6월 호반건설그룹 계열사간 부당 내부거래를 적발, 호반건설 등 9곳에 시정명령과 함께 608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공정위는 "국민의 주거 안정 등을 목적으로 설계된 공공택지 공급 제도를 악용, 총수 일가의 편법적 부의 이전에 활용한 행위를 적발 및 제재했다"고 설명했다.    
뉴스타파는 호반건설그룹 계열 회사의 법인 등기부등본과 회계 감사보고서를 분석, 김상열 회장 부부의 재산 증식과 김 회장 부부가 자녀들에게 부를 대물림해주는 과정에서 공정위가 확인하지 못한 부정 행위가 더 있는지 검증했다. 

호반 김상열 회장이 미성년 자녀들에게 회사를 만들어 준 이유는?

지난 2003년 12월 4일. 
김상열 호반 회장은 각각 5천만 원의 자본금으로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주)이라는 회사 2곳을 설립했다.  
설립 직후 비오토건설의 지분 100%는 김 회장의 장남 김대헌 씨에게 넘어갔고, 베르디움은 장녀 김윤혜 씨와 차남 김민성 씨가 각각 6대 4의 비율로 나눠 가졌다. 1988년생인 김대헌 씨는 2003년 당시 15살이었고, 김윤혜 씨는 12살, 김민성 씨는 9살이었다. 
▲ 김상열 호반그룹 회장은 지난 2003년 12월 4일,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주)를 설립, 이들 회사의 지분 100%를 미성년 자녀들에게 넘겨줬다. 당시 김 회장의 장남 김대헌 씨의 나이는 15살이었고, 장녀 김윤혜 씨의 나이는 12살, 차남 김민성 씨는 9살이었다.   
김상열 회장이 왜 미성년 자녀들에게 회사를 만들어 소유권을 완전히 넘겨준 걸까? 
뉴스타파는 호반건설그룹 계열사인 태성관광개발(현 (주)호반)의 2003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에서 그 단서를 찾았다. 2003년 12월 31일 현재,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이 태성관광개발의 지분을 각각 18.3%씩 총 36.6%를 소유한 공동 2대 주주로 등재돼 있었다. 태성관광개발은 경기도 여주의 총 면적 198만 제곱미터, 36홀 규모의 골프장을 보유한 비상장법인이었다. 이 골프장은 2021년 ‘엔지니어링공제조합’에 매각됐는데, 매각대금은 총 2,580억 원이었다. 
태성관광개발의 2002 회계연도 감사보고서와 비교해 보니, 김상열 회장과 김 회장의 아내 우현희 씨의 지분이 1년 새 각각 21.2%와 19.5%에서 2.2%와 1.8%로 줄어든 대신,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이 김 회장 부부의 지분을 고스란히 넘겨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 김상열 우현희 회장 부부로부터 주식을 무상 증여받은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은 회사 설립 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골프장을 소유한 비상장법인 태성관광개발의 공동 2대 주주로 등극했다.
또 비오토건설 및 베르디움의 2008년도 회계 감사보고서를 통해 이 두 회사의 태성관광개발의 주식 취득 원가가 0원이라는 점을 확인했다.  
김상열 회장 부부가 골프장의 지분을 무상으로 자녀들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증여한 것이다. 주식을 자녀들에게 직접 증여하지 않고,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을 내세운 것은 과세당국의 추적을 피하기 위한 꼼수로 보인다. 
그런데 김상열 회장의 꼼수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상감자로 김상열 회장 일가족이 골프장 지분을 독차지

김상열 회장은 2004년 2월 3일, 태성관광개발의 기존 최대 주주인 태성산업(지분율 48.3%)와 개인주주 고 모 씨(지분율 11.0%)가 보유했던 주식을 무상감자했다. 무상감자는 주주에게 아무런 보상없이 주식을 소각하는 것을 말한다. 발행 주식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1주당 주식 가치를 높이기 위해 감자를 진행하는데, 통상적으로는 주주 전체에게 똑같은 감자 비율을 적용한다.
그러나 김상열 회장 부부와 자녀 소유의 법인 2곳의 지분은 무상감자 대상에서 제외됐다. 태성관광개발의 전체 지분 중 59.3%가 무상감자되면서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의 지분은 종전 각각 18.3%에서 45%로 늘어나 공동 최대 주주가 됐다. 김상열 회장의 지분은 종전 2.2%에서 5.5%로, 우현희 씨의 지분은 1.8%에서 4.5%로 늘었다. 
▲ 태성산업과 개인주주 고 모 씨의 지분 59.3%가 모두 무상감자되면서 김상열 회장 일가족은 골프장을 소유한 태성관광개발의 지분 전체를 갖게 됐다.  
즉, 무상감자를 통해 다른 주주들을 물러나게 하고, 김상열 회장 일가족 5명이 골프장을 독차지한 것이다. 
김관형 세무사는 "무상감자는 과거 편법적으로 증여할 때 많이 쓰던 방법이다"며 "주요 임원들이 조그마한 자회사에 주주로 참여하고 있다가 유상증자를 하거나 무상감자로 주식을 반납하든가 해서 재벌2세나 3세들한테 부를 물려주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김상열 회장의 주식 차명보유 의혹

뉴스타파는 무상감자로 손실을 입은 전 태성관광개발 주주 고 모씨를 찾아갔다. 고 씨는 김상열 회장의 오랜 친구이자 호반건설 협력병원으로 지정된 병원의 원장이었다. 
그런데 고 씨는 태성관광개발의 주식 소유 자체를 부인했다. 고 씨는 '(골프장)의 회원권 하나 산 것 외에는 다른 것이 없다"며 '태성관광개발의 주식을 인수한 적 없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태성관광개발의 회계 감사보고서에는 고 씨가 회사 지분 11%, 6,800주를 갖고 있다가 2004년 2월 주식 전부를 무상감자해 손실을 입은 것으로 분명히 기록돼 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무상감자로 손실을 본 또 다른 주주인 태성산업은 김상열 회장과 특수관계에 있는 회사로 밝혀졌다. 태성산업의 회계 감사보고서에는 4명의 개인 주주가 각각 25%의 지분을 가진 것으로 나온다. 
주주 노 모 씨는 김상열 회장의 처 외삼촌이자 호반건설 계열사인 삼성금거래소 전 대표이사다. 주주 이 모 씨는 호반건설의 동일인 출자회사였던 영진산업개발과 성도건설, 리젠시빌주택의 사내이사와 대표이사 등을 맡았으며, 김상열 회장의 손윗동서 이영웅 리젠시빌주택 회장의 친동생이다. 
또 다른 주주 이 모 씨와 조 모 씨 등 2명도 김상열 회장의 오랜 지인이다.  
게다가 태성산업은 2002년 6월 24일 설립 후 불과 5개월여 만에 골프장의 지분 48.3%를 가진 최대 주주였다가 2004년 2월 주식 전량을 무상감자 한 뒤, 영진산업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2005년 호반 계열사로 편입됐다.
이 때문에 태성산업과 고 씨 명의의 골프장 지분이 실제로는 김상열 회장의 차명 보유 지분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이에 대해 호반건설은 "20년이 넘게 지난 사실에 대한 개인(고 모 씨)의 기억이 불확실할 수밖에 없고, 태성산업의 상호변경 및 지분 이전 등으로 해당 주식을 (김상열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했다고 단정지을 수 없다"고 반박했다. 
그러나 호반건설의 해명과는 달리, 2002년 12월 태성산업 대표이사를 사임한 김은정 씨가 김상열 회장의 친족이고, 후임 대표이사인 정성기 씨도 호반건설 계열사 직원이었다는 점에서 김상열 회장의 '차명 보유 의혹'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세금은 제대로 냈나?

호반건설 측은 "당시 골프장의 순자산가치와 순손익가치가 모두 마이너스로 평가돼 세무상의 의무는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골프장을 소유한 법인의 주식 가치가 0원이기 때문에 지분을 무상으로 증여해도, 또 무상감자로 이득이 생겨도 당시에는 세금을 낼 필요가 없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비슷한 시기 호반건설의 주장과는 다른 사법부의 판단이 있었다.
김상열 회장이 자녀들 소유의 회사에 골프장 주식을 무상 증여하기 석 달 전인 2003년 6월.
김준기 전 동부그룹 회장은 골프장을 소유한 동부그룹 계열사 동부월드의 주식 101만 주를 1주당 1원에 인수했다. 동부월드와 김 전 회장은 주식 매매 당시, 회사의 부채가 자산을 초과한 상태여서 주식 가치가 사실상 0원이라고 보고, 최소 교환가치인 1원에 주식을 매매하고 이를 정상거래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검찰은 업무상 배임 혐의로 김 전 회장을 기소했다. 대법원은 "부채가 자산을 초과했더라도 향후 기업가치를 따져 주식 가액을 적절하게 평가해야 한다"며 김 전 회장에 대해 업무상 배임이 인정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을 적용하면, 태성관광개발의 2003년 12월 당시 실제 주식가치가 호반건설 측의 주장대로 '0원'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태성관광개발은 인수 이후 꾸준히 당기순이익을 기록했고, 마이너스였던 순자산 역시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며 2005년에는 플러스로 전환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뉴스타파는 재일동포 출신 사업가 김대영 씨가 쓴 자서전에서 김상열 회장이 골프장 운영권을 넘겨받는 대가로 최소 30억원을 지급했다는 대목을 찾아냈다. 
김대영 씨는 골프장을 매각한지 5년이 지난 2006년 '지금도 내 가슴엔 무궁화꽃이 핀다'는 제목의 자서전에서 골프장 매각 대금과 관련 이렇게 말했다. 
김상용(가명, 김상열 회장을 지칭)은 나와 매매계약을 한 후 현금으로 30억 원을 지급했다. 나머지 30억 원은 한달 후에 받기로 했다. 그런데 잔금을 받기로 한 날, 8시 30분에 만나기로 한 그는 나타나지 않았다......결국 600억 원 넘게 투자한 컨트리클럽을 김상용(가명, 김상열 회장을 지칭)이 30억 원에 채간 꼴이 되고 말았다. 

김상열 회장에게 골프장 운영권을 넘겨준 재일동포 출신 사업가 김대영 씨의  자서전에서 발췌
김대영 씨의 자서전 내용이 사실이라면, 김상열 회장은 태성관광개발의 경영권을 넘겨받는 조건으로 최소 30억 원을 지불했다. 이 돈을 당시 발행된 주식 총수인 6만2,000주로 나누면, 1주당 가치는 4만 8,387원이다. 
▲ 태성관광개발의 주식 가치가 0원이 아니라면 무상증여와 무상감자에 따른 이득에 대해 세금을 내야 한다.   
태성관광개발의 주식 가치가 0원이 아니라면 과세 대상이다. 이 경우 김상열·우현희 회장 부부로부터 주식을 무상 증여받은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은 법인세를 내야한다. 
태성산업과 고 모 씨 지분이 무상감자되면서 주식 지분이 배 이상 늘어난 김상열·우현희 회장 부부는 각각 증여세를,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은 무상감자로 얻은 이익분에 대해 각각 법인세를 또 내야 한다. 

국세청은 김상열 회장 일가족에게 과세할 수 있을까?

세법상 증여세와 법인세 등 국세 부과 제척 기간은 5년이다. 조세범처벌법을 적용해도 과세 시효는 15년을 넘지 않는다.
그러나 시효가 지났어도 국세청 조사를 통해 과세 부과가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안원구 전 대구지방국세청장(현 안원구플랜 대표)은 "이 케이스는 20년이 지났기 때문에 정상적인 국세 부과 제척기간은 지났다고 보는 게 맞지만, 내용에 따라 부과 체적 기간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 조세를 회피하기 위해 숨긴 행위가 드러난다든지, 조세범처벌법으로 적용되는 시점이 언제였는지, 또 국세청이 이걸(조세회피) 알고도 숨겨줬다고 하면 그 때부터 시효가 다시 시작될 수 있다"고 말했다. 
무상증여와 무상감자 등 이른바 '아빠 찬스'를 통해 자녀 소유 회사 2곳에 현 시세로 2천억 원대 골프장 지분을 넘겨준 김상열 회장.
뉴스타파는 김 회장의 자녀들이 소유한 비오토건설과 베르디움의 실체를 추적한 추가 보도를 준비 중이다. 
 
By
촬영김기철, 오준식
편집정지성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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