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준 전 검사 '특활비 유용 의혹', 공수처에 고발장 접수

2023년 10월 19일 13시 56분

이른바 ‘고교동창 스폰서 사건’의 김형준 전 부장검사가 자신이 근무하던 검찰청 청사 인근의 은행에 비정기적으로 수백만 원의 현금을 입금한 뒤 사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기록이 확인됐다. ‘고교동창 스폰서’인 김희석 씨는 김 전 검사가 특활비를 횡령한 것으로 보인다며 공수처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검사들이 마치 월급처럼 특활비를 나눠 쓰는 것 아니냐는 뉴스타파의 검찰 특활비 오남용 의혹 제기에 부합하는 정황이다.

검찰청 옆 은행지점에 비정기적으로 현금 입금

김희석 씨가 고발장에서 제시한 김형준 검사의 계좌 내역에 따르면, 인천지방검찰청에 재직 중이던 김형준 검사는 2012년 12월 17일 신한은행 인천법원 지점에 200만 원을 현금으로 입금했다. 2월 5일에는 같은 지점에  200만 원, 그리고 4월 11일에는 300만 원을 입금했다. 인천지검과 인천지방법원은 인접해 있으므로 근무지인 인천지검에서 받은 현금을 곧바로 가장 가까운 은행 지점에 입금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같은 '근무지 인근 은행 지점에서의 현금 입금'은 2014년 울산지방검찰청 형사 2부장 재직 시절에도 계속 이어졌다. 2014년 5월 29일, 신한은행 울산법원지점에 190만 원을 입금했고, 8월 7일과 19일에는 각각 100만 원을 넣었다. 9월 5일에 다시 100만 원, 10월 20일에는 200만 원을 입금했다. 
김희석 씨는 고발장에서 이렇게 현금으로 입금된 돈이 기밀수사에 써야하는 검찰 특수활동비이며, 김형준 검사가 이를 사적으로 유용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근거는 다음과 같다. 

김형준 전 검사 “사후지급 받은 특정업무경비 개인 사용” 주장

고교동창 스폰서 사건, 즉 뇌물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던 지난 2016년 12월 8일 김형준 전 검사는 법원에 사실 조회 신청서를 제출했다. 서울 남부지검에 자신이 현금으로 지급받은 ‘특정업무경비’의 내역을 조회해달라는 것이었다. 신청한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2015년 서울남부지검 증권범죄합수단장 재직 당시, 월 200만 원 내지 400만 원을 특정업무경비(선카드지출/영수증 받은 후 매월 취합하여 제출하면 현금으로 후지급)로 지급받았는 바, 이렇게 지급받은 현금을 2015년경 내지 2016년 경 사적관계인에게 지급하는 등 개인적인 용처에 사용하였던 것이지, 피고인 김희석으로부터 현금을 교부받아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하고자 합니다. 

김형준 전 검사 측 사실조회신청서 중 (2016.12.8.)
요약하면, 김형준 검사는 자신이 개인적으로 사용한 돈이 김희석에게 받은 돈이 아니라 검찰에서 받은 돈이라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사실 조회를 요청한 것이다. 
그러자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재판에 참여했던 정 모 공판 검사가 “횡령을 자인하는 것이냐”라고 따져 물은 것이다. 그러자 김형준 측은 곧바로 사실조회신청을 철회했다. ‘뇌물을 받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공금을 개인적인 용처에 사용했다’고 주장했다가 뒤늦게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말을 바꾼 셈이다. 

고발인 “특정업무경비가 아니라 특활비일 것”  

김형준 검사가 현금으로 입금한 돈은 자신의 특정업무경비였을까, 아니면 특수활동비였을까. 특정업무경비는 김형준 검사가 사실조회신청서에서 얘기한 것처럼 실비로 사후 정산을 하는 돈이다. 즉 업무에 필요한 돈을 일단 개인 카드로 결제하고 난 뒤 영수증을 제출하면 보전을 해주는 것이다. 
만약 김형준 검사가 입금한 돈이 실제로 사용한 금액을 실비 정산으로 사후 보전해주는 특정업무경비였다면, 그 액수는 매달 다를 수 밖에 없다. 그리고 100만 원이나 200만 원 단위로 끊어지는 것이 아니라 천 원이나 백 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되었을 것이다. 개인 카드로 먼저 사용한 금액을 사후 보전해주면서 계좌 이체 대신 현금으로 지급하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다.
김희석 씨는 이런 근거로 김형준 전 검사가 특정업무경비라고 지칭한 돈은 사실 검찰 특활비일 것이라고 고발장에서 주장했다. “실제 지출한 카드 내역, 영수증을 토대로 합산한 금액이 백만원 단위로 정확히 맞아 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검사가 "횡령을 자인하는 것이냐"라고 물어본 것 역시 근거로 들었다.  만약 특정업무경비였다면 “자신의 돈을 공적 업무에 먼저 지출하고 정산받은 자기 돈이므로 이 돈을 사적으로 쓰든 말든 횡령이란 표현을 쓸 수 없고, 무죄를 입증하겠다며 신청한 증거 방법을 철회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 문제의 돈이 특활비임을 보여주는 또 다른 근거라는 것이다.
물론 그 돈이 특정업무경비든 특활비든, 공적인 목적으로 지급한 돈을 개인적으로 유용했다면 불법인 건 마찬가지다.  

특활비 오남용 의혹 수사 가능할까… 공수처에 달렸다

특활비 유용을 자인한 검사의 사례는 과거에도 있었다. 지난 2004년 윤석열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 씨로부터 2천여만 원을 송금받은 양 모 전 검사는 이 돈을 갚은 방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가 부장검사였기 때문에 매달 현금으로 나오는 특수활동비를 몇 달간 모아서 갚았습니다” 지난 2020년 KBS 취재진을 만났을 때 한 말이다. 전직 검사가 스스로 특활비 유용을 시인한 것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6월부터 시작된 검찰 예산 검증 보도를 통해, 기밀수사에 써야 할 특활비를 검사들이 마치 주머니 쌈짓돈처럼 나눠 쓰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제기하고 있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확보한 2017년 4월부터 2019년 9월 사이의 특활비 자료에 따르면, 전체 지출분의 절반이 넘는 돈이 매달 월급처럼 정기적으로 집행된 것으로 확인됐다. (관련 기사 : 검찰 특수활동비 292억 중 절반은 월급처럼 현금 정기지급 : https://newstapa.org/article/FFhe6 )
김형준 전 검사의 근무지 옆 은행지점에서의 현금 입금은 뉴스타파의 이같은 의혹 제기를 뒷받침하는 또다른 정황이다. 다만 김형준 전 검사가 현금을 입금한 기록이 있는 시기는 2012년에서 2014년 사이로, 뉴스타파가 행정소송을 통해 검찰의 특활비 자료를 확보한 기간과 일치하지는 않는다. 
김희석 씨는 김형준 전 검사의 특활비 유용 혐의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공수처)에 고발했다. 전직 검사의 공금 유용 혐의는 공수처의 설립 취지에 정확히 부합하는 수사 대상이다. '설립 당시의 기대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받아 온 공수처가 실력을 발휘해 명예를 회복할 절호의 기회다.  공수처는 대한민국의 가장 깊은 ‘성역’이었던 검사들의 특활비 오남용 의혹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을까.  
제작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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