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1주기를 불과 보름 앞두고 유가족들이 다시 거리로 나섰다. 지난 3월 27일 정부가 입법예고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안의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다시 노숙농성에 돌입한 것이다. 정부의 시행령안은 특별조사위원회의 기능과 업무를 대폭 축소시켜 사실상 정부 산하 기구로 전락시킴으로써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

이석태 위원장을 비롯한 대다수 특조위 위원들의 생각도 같다. 세월호특별법의 취지에 걸맞은 조직 구성안이 담긴 시행령이 나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결과는 ‘진상규명 반대 시행령’에 다름없다며 전면 철회를 주장하고 있다. 입법예고 기간이 끝나는 4월 6일 이후 정부가 시행령 공포를 강행할 경우 원천무효 소송 제기 가능성까지 밝히는 등 초강경 입장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을 위한 마지막 보루였던 특별조사위마저 출범도 하기 전에 침몰할 위기에 놓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인 것이다.

정부 파견 공무원이 주도권 갖는 특별법 시행령안

이번 정부 시행령안의 가장 큰 문제점은 특조위 주요 업무의 주도권을 파견 공무원이 쥐도록 했다는 것이다. 조사를 지휘하고 종합보고서 작성 업무를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에 해수부 파견 공무원을 임명하도록 했고, 세월호 진상 규명과 특별검사 임명 등 조사업무의 핵심을 담당하는 조사1과장도 일반직 공무원의 몫이다. 전체적인 특조위 인적 구성도 파견 공무원과 민간인 채용 비율이 정무직인 상임위원 5명을 제외하고 ‘42대 43’으로 적시됐다.

나아가 진상규명국을 비롯한 모든 업무의 직접 지휘를 상임위원 5명 가운데 새누리당이 추천한 조대환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맡도록 되어 있다. 반면 이석태 위원장을 포함한 나머지 4명의 상임위원은 직원에 대한 직접적인 지휘 감독 권한이 없도록 짜여져 있다.

▲ 특조위 직제 비교표 (특조위안 vs 정부안)
▲ 특조위 직제 비교표 (특조위안 vs 정부안)

정부조사 결과 범위 안에서만 조사해라?

정부안은 특조위의 핵심인 ‘진상 규명’ 업무가 정부조사 결과의 범위를 뛰어넘지 못하도록 대폭 제한하고 있다.

조사1과장의 업무를 ‘세월호 참사의 원인 규명에 관한 정부조사 결과의 분석 및 조사’로, 조사2과장의 업무도 ‘세월호 참사의 구조구난 작업에 대한 정부 조사자료 분석과 조사’로 한정했다. 이에 대해 권영빈 특조위 진상규명 소위원장은 “정부안은 진상 규명 업무 내용을 정부조사 결과 검토에 한정해 문제점이 발견되더라도 특조위가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상 아무 것도 없게 만들어 놓은 것”이라며 반발했다.

정부 시행령안은 특조위 폐기안과 판박이

특조위는 정부의 시행령안이 입법예고되기까지의 투명하지 못한 절차에 대해서도 의혹을 제기했다. 정부안은 사실상 여당측 위원 5인이 별도로 제출한 소수안에 가까운 내용으로 작성됐을 뿐만 아니라 특조위와 정부의 협의 과정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다수 벌어졌다는 것이다.

특조위는 지난 2월 12일 위원 17명 전원이 참석한 4차 간담회에서 정부에 제출할 시행령안과 예산안을 표결로 확정했다. 정원 120명과 예산 192억 원을 골자로 하는 내용이었다. 이날 조대환 부위원장을 비롯한 여당측 추천 위원 5인은 정원을 60명에서 시작해 단계적으로 늘이고 예산을 130억 원으로 하는 별도의 안을 제시하며 토론을 벌였으나 표결을 통해 폐기됐다. 이 과정에서 5명 전원이 표결 처리 방식에 불만을 표시하며 잇달아 퇴장하는 상황이 빚어졌다. 고영주 위원은 위원직 사퇴도 고려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기까지 했다.

▲ 특조위 4차 전체 간담회 도중 잇달아 퇴장하는 여당 추천 위원들

닷새 뒤인 2월 17일 특조위는 내부적으로 공식 확정된 시행령안과 예산안을 정부에 정식으로 통보하며 하루 빨리 입법예고에 나서줄 것을 요청했다. 그런데 이보다 사흘 앞선 2월 14일, 여당측 위원 5명은 ‘세월호 특조위 소요 예산 및 사무처 조직 관련 요구사항 송부’라는 제목의 공문을 별도로 작성해 해수부와 행자부, 기재부에 보냈다. 내용은 특조위가 공식 확정한 안은 조직이 비대하고 예산이 과다하니 축소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사실상 특조위 전원 간담회에서 표결 끝에 폐기됐던 자신들의 안을 정부안으로 받아달라는 요청이었다.

▲ 특조위가 정부에 보낸 최종 확정안(2.17)

▲ 여당측 5인이 정부에 별도 제출한 의견서(2.14)

김남규 서기관-조대환 부위원장-김재원 정무특보?

특조위는 이후 해수부와 네 차례의 비공식 협의를 갖고 특조위 안의 취지와 배경, 세부 내용 등을 서면과 구두로 반복해서 설명했지만 해수부측은 정부안이 어떻게 준비되고 있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적이 한 차례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3월 중순 있었던 두 번째 협의 자리에서 해수부측 테이블에 앉은 김남규 서기관으로부터 “여당측 위원들의 안이 초이스(선택)될 것 같다”는 짤막한 언급을 들었고, 이에 대해 박종운 특조위 상임위원이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이라도 있는 것이냐”고 질문했지만 해수부측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날 여당측 위원들의 소수안 채택 가능성을 언급했던 김남규 해수부 서기관은 앞서도 특조위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 섰던 인물이다. 김 서기관은 지난 1월 16일 김재원 당시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현재 청와대 정무특보)의 이른바 ‘세금도둑’ 발언의 근거가 됐던 특조위 내부 비공식 문서를 직접 작성한 것으로 뉴스타파 취재 결과 확인된 바 있다. 이 문서는 조대환 부위원장의 지시로 작성돼 김재원 의원에게 전달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김 서기관은 이후 조 부위원장의 특조위 파견 공무원 일방 철수 지시에 따라 아무런 업무 인수인계도 하지 않은 채 해수부로 복귀하기도 했다.

※ 관련기사 : 김재원, 여당측 위원 통해 수시로 정보 취합…세월호 조사위 무력화?

이같은 정황으로 미뤄 특조위 내부에서는 김재원 청와대 정무특보가 조대환 특조위 부위원장 등 여당측 특조위원들, 그리고 김남규 서기관 등 해수부 관료들을 통제하며 정부 시행령안을 만드는 과정에 깊이 관여한 것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김재원 의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이와 관련해 지난 1월 21일 특조위 2차 전체 간담회 당시 조대환 부위원장이 회의 도중 복도로 나와 누군가에게 전화로 회의 진행 상황을 보고하고 지시받는 모습이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목격됐던 바 있다. 당시 조 부위원장은 “특조위 설립준비단에 파견된 공무원들과 민간 전문가들을 모두 철수시키고 다시 인적 구성을 하자는 안을 제가 발의했지만 수용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보고한 뒤 2분여 동안 무언가를 지시받는 듯 “네, 네”라고 대답만 한 뒤 통화를 마쳤다. 당시 취재진은 조 부위원장에게 “김재원 의원과 통화한 것이냐”고 물었지만 조 부위원장은 “밝힐 수 없다”고 대답했다. 김재원 의원 역시 “그날 조 부위원장과 통화한 적이 없다”고 취재진에게 밝혔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당시의 회의 장면을 촬영한 영상을 최근 다시 분석한 결과, 회의 시작 직전 김남규 서기관이 누군가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아 조대환 부위원장을 바꿔주며 “김재원”이라고 말하는 장면이 녹화돼 있었다. 김재원 당시 의원과 조대환 부위원장, 김남규 서기관 사이의 석연찮은 관계가 추가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 조대환 부위원장에게 김재원 의원의 전화를 바꿔주는 김남규 해수부 서기관 (1.21)

유가족도 ”정부안 철회하라”...특별법 합의한 국회가 나서야

가장 속이 타는 것은 유가족들이다. 세월호 참사 1주기가 다 되도록 아직 남은 9명의 실종자 수습을 위한 선체 인양 여부조차 결정되지 않은데다 진상규명의 최후 보루로 여겼던 특조위마저 좌초될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유가족들은 정부의 시행령안 전면 철회를 요구하며 다시 청와대 앞과 광화문 광장으로 나서 참사 1주기인 4월 16일까지 416시간 연속 농성에 돌입했다. 마치 지난해 여야의 세월호특별법 협상 당시로 돌아간 듯한 모습이다.

▲ 정부 시행령안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 정부 시행령안 철회를 요구하며 청와대 앞에서 농성중인 세월호 유가족들

정부 시행령안의 입법예고 기간은 오는 4월 6일까지다. 이 기간 이후 정부는 이르면 7일 국무회의에서 안건으로 상정해 시행령안을 통과시킨 뒤 곧바로 공포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특조위는 업무를 전면 중단하고, 시행령 입법무효 소송에 돌입할 가능성도 시사한 상태다.

최악의 상황을 막기 위해서는 시행령안의 모법인 세월호특별법을 직접 협상해 만든 여야 지도부가 직접 나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세월호특별법은 16조에서 진상규명 소위, 안전사회 소위, 지원 소위를 설치해 활동하도록 되어 있고 부위원장이 겸하는 사무처장은 파견 공무원들의 지원을 받아 단순 사무를 처리하도록 규정되어 있다.정부의 시행령안이 이같은 특별법의 취지와 크게 동떨어져 있어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가 만든 모법의 취지를 훼손한 것인 만큼 법 제정 주체인 국회가 다시 나서 시행령안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31일) 416가족협의회 대표단을 만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시행령은 정부 영역"이라 "가족들의 의견을 정부에 건의하겠다"는 입장만을 표명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정부 시행령안을 비판하며 철회를 요구하는 논평을 내긴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는 상황이다. 지난해 세월호특별법 제정 당시에도 우왕좌왕했던 여야 정치권이 이번 시행령 갈등 국면마저 제대로 풀어내지 못할 경우 여론의 거센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 광화문에서 농성중인 유가족들을 방문한 이석태 특조위 위원장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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