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10일, 왼쪽으로 쓰러진 채 목포신항에 거치돼 있던 세월호 선체가 똑바로 세워졌다. 참사 발생 1,486일 만이다. 그러나 참사 4년이 지나도록 세월호 침몰 원인은 공식 규명되지 않은 상태다.

그런데 최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가 조타장치의 일부인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사실을 발견하면서 침몰 원인 조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 두 달간 선조위 조사 내용 취재와 함께 세월호 도면 및 자료를 입수해 분석하고, 전문가 자문 등을 거친 끝에,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세월호 침몰의 핵심 원인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밀려들어간 채 고착되어 버린 2번 조타펌프의 솔레노이드 밸브 철심

조타장치 솔레노이드 철심 고착 발견… “이 상태라면 조타불능, 우현 극전타”

지난 1월 30일,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는 목포신항에 거치돼 있는 세월호 선체 내부의 타기실에 진입해 방향타를 움직이는 조타장치를 분리해 냈다. 이 장치들을 제조사인 일본 가와사키중공업의 한국 대리점인 경남 창원의 플루테크로 옮겨 2월 5일과 6일에 걸쳐 분해 조사를 실시했다. 선조위 조사관들과 세월호 유가족들도 입회했다.

그 결과 조타장치의 일부인 유압 솔레노이드 밸브 내부에서 중대한 이상이 발견됐다. 두 개의 조타펌프 중 한쪽에 붙어 있는 솔레노이드 코일 중앙의 철심이 정상이라면 양쪽의 돌출부 길이가 모두 9mm로 같아야 했지만 실측 결과 각각 6mm와 12mm로 나타났다. 즉, 철심이 한쪽으로 밀린 채 굳어 있었던 것이다.

현장에서 이 사실을 확인한 가와사키중공업 관계자는 “유압회로 상으로는, 만약 사고 당시 철심 위치가 이 상태였다면 조타 불능이 됐든지 방향타가 우현 극전타가 되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했다. 이게 무슨 의미일까.

뉴스타파, 유압·전기회로 상세 도면 입수… 솔레노이드 밸브 작동 원리 파악

뉴스타파는 세월호 조타장치의 유압회로도와 전기회로도 등 솔레노이드 밸브 관련 세부 도면들을 모두 입수해 선조위의 조사 내용을 검증했다. 이 과정에서 이상태 한국해양대학교 교수, 김성수 유압밸브 전문 제조업체 대표, 그리고 세월호 법정에서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가능성을 처음으로 증언했던 선박 기관사 출신의 정대진 씨 등 전문가 3명에게 자문을 구했다.

먼저 솔레노이드 밸브가 선박의 방향타를 움직이는 원리부터 파악해 봤다. 솔레노이드 밸브는 크게 두 부분, 파일럿 밸브와 메인 밸브로 구성된다. 만약 조타핸들을 우현 5도로 돌린다면 파일럿 밸브의 우측 솔레노이드 코일에 전류가 흘러 자석 작용을 일으키고 이 힘으로 중앙의 철심을 밀어준다. 다시 이 철심이 중립상태에 있는 스풀이라는 부품을 밀어주면 펌프의 압력을 받고 있던 기름의 통로가 열리고, 이 유압이 다시 메인밸브의 스풀을 밀어준다. 이에 따라 또 다른 유압 통로가 열려 실린더에 압력이 가해지면서 방향타가 돌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방향타가 우현 5도까지 모두 돌아가면 솔레노이드 코일에는 자동으로  전류가 끊기면서 철심이 원래 위치로 돌아오고, 이에 따라 파일럿 밸브의 스풀도 스프링의 힘으로 중립 상태로 복귀한다. 메인밸브의 스풀도 중립으로 복귀하면 유압 통로가 막히면서 방향타는 우현 5도를 계속 유지하게 된다.

방향타를 우현 5도에서 다시 가운데, 즉 0도로 되돌리려면 조타핸들을 왼쪽으로 돌려줘야 한다. 그러면 반대편 솔레노이드 코일에 전류가 흐르게 되고, 위와 똑같은 메커니즘에 따라 방향타가 반대쪽으로 움직인 뒤 0도에서 고정되게 된다.

▲ 솔레노드 철심 표면 상태 비교 : 신제품(왼쪽), 1번 펌프 솔레노이드 밸브 철심(가운데), 고착된 2번 펌프 솔레노이드 밸브 철심(오른쪽)

바로 이같은 방식으로 작동하는 세월호 한쪽 조타펌프의 솔레노이드 코일 철심이 파일럿 밸브의 스풀을 밀어놓은 위치에서 고착된 채로 발견된 것인데, 이는 철심 표면에 이물질이 끼면 발생할 수 있는 현상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이렇게 된 상태에서는 파일럿 밸브의 스풀이 유압 통로를 계속 열어놓게 되어 실린더에 유압이 지속적으로 작용한다. 그래서 불과 10여 초 정도면 방향타가 우현 극전타, 즉 오른쪽 37도까지 돌아가 버리고 만다.

출항 이후 양쪽 조타펌프 함께 사용한 세월호… 이 상태에서 고착 발생한다면?

그런데 세월호를 비롯한 대부분의 선박들은 유압 솔레노이드 밸브로 제어되는 조타펌프 시스템을 두 개씩 갖추고 있다. 앞선 설명처럼 한쪽 펌프만 사용할 수도 있고 양쪽 펌프를 동시에 쓸 수도 있다.

만약 양쪽을 함께 쓰면 실린더에 더 강한 유압을 작용시켜 방향타를 더 빨리 돌려 줄 수 있다. 그래서 주로 입항과 출항 시, 즉 방향을 자주 바꿔야 하는 상황에서 두 펌프를 함께 사용하고, 그 외엔 한쪽 펌프만 쓰는 게 보통이다.

그러나 세월호는 사고 전날 인천항을 출발할 때부터 두 개의 펌프를 계속 함께 쓰면서 운항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세월호 선조위 조사관들이 수감 중인 이준석 선장과 강원식 1항사, 김영호 2항사, 박한결 3항사를 모두 만나 조사한 결과, 사고 전날 인천항에서 출항할 때 조타펌프를 2개 모두 켠 이후 운항 중 누구도 한쪽 펌프를 끈 적이 없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양쪽 펌프를 함께 사용하다가 이번에 확인된 것처럼 한쪽 펌프의 솔레노이드 밸브만 고착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까.

만약 조타핸들을 우측으로 5도 꺾었을 경우라면, 양쪽 펌프의 오른쪽 솔레노이드 철심이 스풀을 모두 왼쪽으로 밀어주면서 각각의 유압통로를 형성하는데, 회로 상 양쪽의 유압이 실린더 왼쪽으로 함께 작용해 방향타를 오른쪽으로 5도까지 돌려주게 된다.

그런데 이 상태에서 오른쪽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되면 방향타 각도가 5도에 이르더라도 왼쪽 스풀만 중립으로 복귀하고 오른쪽 스풀은 계속 열린 상태로 유지된다. 이에 따라 오른쪽 유압이 실린더로 계속 작용해 방향타는 우현 극전타인 37도까지 돌아가 버리게 된다.

또 이런 상태가 되면 조타핸들을 반대로 돌려도 방향타 각도를 바꿀 수 없게 된다. 정상적인 왼쪽 밸브의 스풀은 왼쪽으로 돌린 핸들의 명령대로 움직여 실린더의 오른쪽으로 유압을 보내지만, 이미 고착된 오른쪽 밸브의 스풀은 실린더의 왼쪽으로 유압을 보내는 상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유압은 회로 내에서 계속 헛돌기만 할뿐 실린더로는 전혀 힘을 전달하지 못해 방향타를 움직일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세월호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은 급변침 사고 직전 발생 가능성 높아

이 같은 솔레노이드 밸브의 작동 원리를 볼 때, 세월호가 사고 당시 양쪽 조타펌프를 모두 사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된다. 실제로 확인된 한쪽 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착이 발생한 시점이 세월호 방향타가 통제력을 상실한 시점, 즉 사고 지점인 병풍도 인근에서 급변침된 시점 직전이라고 특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세월호는 인천항에서 사고 지점까지 오는 동안 여러차례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에, 만약 한쪽 펌프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이미 발생했었다면 이 방향 전환 과정에서도 조타 불능 상태가 되어 급변침 사고가 발생했을 것이다. 또 솔레노이드 밸브의 철심은 전류가 없으면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바닷속으로 침몰한 후에 한쪽으로 밀렸을 가능성도 없다. 결국 솔레노이드 밸브의 고착 시점은 세월호의 급변침 직전이었을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다.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에 따른 조타불능과 급변침… 사고 당시 조타 상황과 일치

이같은 분석을 토대로 세월호의 급변침 당시 조타핸들을 조작했던 조타수 조준기 씨의 검경 조서와 법정 진술들을 다시 한번 검토해 봤다. 당시 조 씨는 박한결 3항사의 지시에 따라 140도에서 145도로 우현 변침을 시도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달리 뱃머리가 지나치게 빨리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진술했다(2015년 4월 7일 피고인 신문 녹취록). 그러니까, 바로 이 시점이나 그 직전에 한쪽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돼 방향타가 우현 37도로 급격히 돌아갔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있던 조준기 씨는 우회두 속도를 늦추기 위해 핸들을 반대편, 즉 왼쪽 15도까지 돌렸다). 그러나 뱃머리는 더 빠른 속도로 오른쪽으로 돌아갔고 선체는 계속 왼쪽으로 기울었다(2014년 4월 22일 해경 피의자신문조서). 그러니까 바로 이 순간부터 조타장치 내의 유압은 헛돌며 조타불능 상태가 됐기 때문에 이미 우현 37도로 돌아가 버린 방향타를 되돌릴 수 없었던 것이다.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에 따른 선박 급선회 사고 사례 다수 확인

뉴스타파 취재 결과, 실제 해외에선 선박의 솔레노이드 밸브 고장에 따른 급변침 사고 사례가 적지 않게 보고되고 있었다.

미국 연방교통안전위원회의 해양사고 보고서 검색 결과, 세월호 참사 넉 달 뒤인 2014년 8월, 미시시피강을 운항하던 벌크선 플래그 갱고스호가 우현 2도에서 15도로 변침을 시도하던 중 회전 속도를 줄이기 위해 조타수가 핸들을 왼쪽으로 꺾었지만 방향타가 움직이지 않아 계속 오른쪽으로 선회해 결국 다른 유조선과 충돌한 사고가 기록돼 있었다. 조사결과,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사고 원인이었다.

일본 해양심판원의 재결서에서도 유사한 사례들을 찾을 수 있었다. 1989년과 99년, 2004년과 2009년 등 모두 4건의 솔레노이드 밸브 고장 급변침 사고가 공식 보고서로  남아 있었다.

시간대별로 달라진 방향타 각도 변화도 설명 가능

이같은 분석에 따라 현재 세월호 선조위의 대다수 조사관들은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세월호 사고의 핵심 원인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그러나 권영빈 상임위원을 포함해 외력 가능성에 더 주목하는 일부 조사관 그룹에서는 이에 대해 몇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만약 사고 당시 실제로 세월호의 방향타가 우현 37도까지 급격히 돌아가 버렸다면, 그 이후 여러 시점에 포착된 37도가 아닌 방향타 각도들은 어떻게 설명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실제로 선조위의 분석 결과, 세월호 급변침 이후 1시간 반 가까이 지난 오전 10시 16분쯤 방향타 각도는 좌현 8도였고, 침몰 8개월 뒤인 2015년 1월 수중 소나영상에서는 좌현 30도, 인양 직후에는 우현 23도였던 것으로 나타났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는 모두 일어날 수 있는 현상들이었다. 먼저 사고 발생 1시간 반쯤 뒤 방향타가 우현 37도에서 좌현 8도까지 돌아간 이유를 확인해봤다.

유압 도면으로만 해석한다면, 급변침 당시 우현 37도로 꺾여버린 방향타는 그 위치에서 움직일 수 없다. 한쪽 밸브는 고착되고 다른쪽 밸브는 반대쪽으로 열려 있어, 실린더 양쪽에 동일한 유압이 흘러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유압을 발생시키는 두 개의 조타펌프는 1994년 세월호의 전신인 나미노우에가 일본에서 처음 건조될 때 부착된 이후 교체된 적이 없다. 그 당시에는 양쪽 펌프의 출력이 정확히 같았겠지만 20년 이상 사용된 사고 당시에는 출력에 차이가 있었을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37도 극전타 이후 회로 내에서 헛돌고 있는 유압도 실린더 좌우에서 약간의 불균형 상태에 놓이게 되는데, 이런 상황에서는 방향타가 외부의 힘을 받아 서서히 움직일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실제로 당시 세월호는 빠른 속도로 우회전하며 나아가고 있었기 때문에 방향타에는 해수의 반발력이 작용하고 있었다. 또 선체가 45도 이상 기울어진 상태였기 때문에 방향타의 자체 중량도 작용하고 있던 상태였다. 이런 힘에 의해서 방향타가 왼쪽으로 조금씩 움직였고, 오전 10시 16분쯤엔 좌현 8도까지 돌아간 것으로 분석된다.

이후 2015년 1월 수중 소나영상에서는 세월호 방향타의 각도가 좌현 30도까지 돌아가 있었는데, 이때는 장기간의 방치로 회로 내부의 유압이 거의 모두 풀린 탓에 조류의 영향과 자체 중량만으로 방향타가 더 쉽게 아래로 처질 수 있었던 환경이었다.

이후 지난해 선체가 인양됐을 때 방향타 각도는 우현 23도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이는 인양 작업 도중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3년 간 바닷속에 있는 동안 세월호 방향타는 일정한 각도로 고정돼 있었다. 방향타 축에 있는 녹 흔적이 그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선미 들기 공정 도중 방향타에 와이어가 걸리면서 강제로 윗쪽으로 들어올려졌다. 실제로 선조위의 정밀조사 결과,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의 방향타 아랫쪽에는 와이어와의 접촉 흔적이 뚜렷이 남아있었다.

검찰, 급변침 원인으로 ‘조타미숙’ 판단...실제는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드러나

이처럼 세월호 조타장치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실제로 확인되면서 사고 당시의 조타상황은 물론 침몰 이후 방향타 각도의 변화까지 모두 설명이 가능하게 됐다.

종합하면, 참사 당일 세월호는 오전 8시 49분쯤 140도에서 145도로 변침을 시도하던 중 솔레노이드 밸브가 고착돼 방향타가 우현 37도까지 순식간에 돌아갔고 이에 따라 급격한 좌현 횡경사가 발생해 고박이 부실했던 화물들이 왼쪽으로 쏠리면서 단번에 50도까지 넘어가 버렸던 것이다.

그러니까, 당초 검찰이 ‘조타미숙’ 때문이라고 발표했던 세월호의 우현 대각도 변침 원인은 사실은 조타장치의 고장 때문이었던 것이다.

이같은 사실은 잠수함 충돌이나 앵커 투하 같은 외력설 주장에 대한 분명한 반박 근거로도 작용할 수 있다. 각종 외력설이 등장한 이유는, 세월호 내 화물들이 한쪽으로 쏠리게 할 만큼의 급격한 횡경사를 유발한 최초의 힘이 제대로 설명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우현 대각도 변침을 야기했다는 물증이 나온 만큼 침몰 원인에 대한 실체적 접근이 가능하게 됐다.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은 ‘스모킹 건’... 침몰 원인 종합적 설명 위해선 ‘복원성’ 검증해야

이처럼 세월호 침몰을 야기한 최초의 힘이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 설득력을 갖게 됐지만, 그렇다고 사고 원인을 이것 하나로만 규정할 수는 없다. 정상적인 배라면 어느 한 방향으로 극전타를 하더라도 쓰러지지 않고 선회를 할 수 있을 만큼의 복원성을 갖추고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침몰 원인을 종합적으로 설명하려면 세월호의 취약한 복원성 문제를 다시 짚어볼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사고 당시 세월호의 복원성 값이 어느 정도였기에 우현 37도 극전타가 발생했을 때 세월호 차량 블랙박스 영상에 나타났던 것처럼 선체가 단번에 왼쪽으로 50도까지 기울어질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시사점을 주는 것이 바로 지난 2월 선조위가 네덜란드 마린사에 의뢰해 실시했던 모형항주실험이다.

당시 다수 언론들은, 다양한 복원성 수치와 조타각도 등을 조합한 300차례 넘는 실험에도 불구하고 실제 세월호의 AIS 항적과 유사한 결과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이는 선조위 조사업무를 총괄하는 권영빈 상임위원의 말을 인용한 것이었다. 권 상임위원은 최근에도 SBS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 출연해 마린 모형항주실험 결과 “해수부가 침몰 당시의 항적이라고 발표한 AIS 궤적과 근사치가 한 번도 안 나왔다”고 발언하기도 했다.

그러나 뉴스타파가 마린의 세월호 모형항주실험 중간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이같은 발언은 사실과 거리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마린 모형항주실험에 적용된 GM(복원성 수치)과 타각 시나리오

보고서에는 모두 300차례 넘는 항주 테스트의 조건과 과정이 정리돼 있는데, 복원성 수치인 GM은 최대 0.6에서 최소 0.06까지 10가지 경우의 수를, 방향타의 각도 변화 시나리오는 모두 8가지 경우를 적용해 조합했다. 또 선체 내부의 화물이 쓰러지기 시작한 횡경사 각도는 18도로 추정하고 모형선에 추를 달아 이 시점에서 이동시키며 항주 테스트를 진행했다.

▲ 브룩스벨 약식 보고서에 기술된 D데크 화물 이동 시점과 각도

화물 이동 시작 각도는 브룩스벨의 분석과도 거의 일치하는 것이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브룩스벨의 약식 보고서에 따르면, 세월호 트윈데크 위 마티즈 차량의 블랙박스 영상 속에서 차량들이 왼쪽으로 밀려가기 12초 전쯤 포착된 충격음은 D데크의 화물들이 이동하는 소리이며 이때의 횡경사 각도는 약 20도로 분석되어 있다.

 

마린은 이런 조건들을 조합해 실시한 300여 차례의 모형항주실험 궤적들을 세월호의 실제 AIS 항적과 비교해 기재했는데, 이 가운데 상당히 유사한 형태의 곡선이 일부 존재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보고서는 “정성적인 관점에서 볼 때, 몇몇 실험 결과는 세월호의 AIS항적에 가까이 접근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기재했다.

뉴스타파는 권영빈 상임위원에게 마린 보고서 내용을 근거로 ‘모형항주실험 결과 근사치가 없었다’고 발언한 이유를 물었다. 권 상임위원은 이에 대해 “마린 보고서에서 서너 개 정도 실험 궤적이 실제 AIS 항적과 가깝다고 보는 것 같다”면서 “방송에서는, ‘아직 그 보고서 내용에 대한 분석이 덜 됐지만 현재까지 본 바로는 근사치가 없다’고 말했었는데, 제작진 쪽에서 편집하는 과정에서 ‘근사치가 없었다’는 말만 전달됐으며, 이렇게 되어버린 데 대해서는 적절하게 책임을 지도록 하겠다”고 대답했다.

전체 발언 가운데 일부가 편집돼 의미가 잘못 전달된 것이라고는 하지만, 결국은 마린이 유사하다고 평가한 항적들이 자신의 시각에선 유사해 보이지 않았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같은 인식은 모형항주실험의 기본적 원리와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데서 비롯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남균 목포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선박이 실제로 운항할 때는 타를 계속해서 좌우로 조금씩 돌여주면서 전진하게 되는데, 이를 모형항주실험의 타각 시나리오에 완벽하게 일치시킬 수 없으며, 따라서 선박의 실제 AIS 항적을 사후적으로 실시하는 자유모형실험 궤적과 동일하게 맞추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중요한 것은 AIS 항적으로 도출되는 선회 궤적의 크기에 집중해서 유사성을 파악하고 그같은 선회경을 나타낼 수 있는 복원성과 타각의 조합 케이스를 찾아내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지난 2월 진행된 마린의 모형항주실험 결과만 놓고서는 사고 당시 세월호의 움직임이 가능하다거나 불가능하다고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이 실험 결과는, 실제 항적과 가까워지기 위한 복원성 수치와 타각의 조합을 경향적으로 파악하는데에만 활용돼야 한다는 뜻이다.

‘타각 37도 고정’ 이어 GM도 압축… “재실험하면 근사한 항적 도출 가능”

그런데 이 실험 이후 선조위가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사실을 실제로 확인하면서 사정은 조금 달라졌다. 이제부터는 타각 시나리오를 우현 37도 극전타로 고정시킬 수 있어서 경우의 수를 크게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복원성 지표인 GM 값도마찬가지다. 현재 선조위는 마린 모형항주실험 당시와 비교할 때 세월호의 GM 값 추정 범위를 훨씬 압축시켜 놓은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세월호의 무게중심이 지금껏 알려진 것보다 실제로는 더 높았다는 증거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세월호의 무게중심은 일본에서 처음 만들었을 때 11.27 미터였다가 한국에서 증개축 이후 11.78 미터로 측정돼 선급의 승인을 받았다. 그러나 사고 이후 감사원 감사 결과 실제로는 11.89 미터인 것으로 정정됐다. 그런데 한 선조위 관계자에 따르면 “여러 경로로 조사한 결과, 세월호의 실제 무게중심은 감사원 발표보다도 10cm 이상 더 높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뉴스타파에 밝혔다.

선박의 무게중심이 높아지면 GM 값은 낮아진다. 따라서 지금까지 세월호 침몰 관련 여러 보고서의 GoM 값 추정치들을 감안할 때, 선조위가 찾아낸 무게중심 상승을 적용할 경우, 사고 당시 세월호의 GoM은 0.4 전후의 값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임남균 목포해양대 항해학부 교수는 “마린 보고서에 나타난 타각과 GM에 따른 선회반경의 경향성을 고려할 때, 타각을 우현 37도로 고정시키고 GoM은 0.4 전후 값으로 압축해 모형항주실험을 다시 실시한다면 실제 세월호의 AIS 항적과 근사한 결과가 도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결국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세월호 침몰의 스모킹 건으로 나타나면서 이제 세월호의 급변침과 침몰 원인을 온전히 설명해 내는 시기가 그리 멀지 않게 됐다.

영상취재 : 김기철, 김남범
영상편집 : 정지성, 윤석민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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