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발표한 세월호의 AIS 항적은 조작됐고, 실제로 세월호는 병풍도에 바짝 붙어서 운항했다. 그리고, 누군가 미리 의도적으로 내려놨던 좌현 앵커가 해저 지형에 걸리면서 세월호는 급격히 기울어 침몰했다.

지난 4월 개봉해 54만 관객을 동원한 영화 <그날, 바다>가 내놨던 가설이다. 만약 이 주장이 사실이라면 세월호 침몰 원인 조사는 원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그러나 현재까지 세월호 선체조사위원회의 조사 과정에서는 이 가설에 대한 진지한 검토가 진행되었던 정황은 없다. 하지만 영화를 본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는 영화가 제시한 가설이 신빙성이 있다고 믿을 수 있다.

뉴스타파는 세월호 침몰 원인에 대한 객관적 접근에 기여하기 위해 영화 <그날, 바다>의 주장과 가설들을 면밀히 검증해 봤다.

세월호 AIS 항적 조작은 과연 가능한가… 해외 업체와 주변 선박 데이터 교차검증

영화의 핵심 주장은 정부가 발표한 참사 당일 세월호의 AIS(선박자동식별장치) 항적이 조작되었다는 것이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먼저 선박의 AIS 데이터가 생성되고 수집되는 원리를 살펴보자. 선박은 GPS를 통해 위치와 속력, 코스 정보를 받고 자이로컴퍼스를 통해 뱃머리방향 정보를 받는다. 그리고 이 정보들은 AIS 장비로 모아져 메시지 형태의 전파로 송출된다.

한 선박이 전송한 AIS 메시지는 전파권 내에 있는 다양한 수신처에서 함께 수신하게 된다. 정부가 관할하는 VTS(해상교통관제센터)의 기지국들은 물론이고 주변의 수많은 선박들, 그리고 항적정보를 수집해 판매하는 국내외 민간 업체들이 설치해둔 육상 수신기와 위성을 통해서도 같은 메시지가 동시에 수신된다.

따라서 세월호 AIS 항적의 조작 여부를 확인하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AIS 항적 정보를 다양한 민간 수신처에 저장돼 있는 정보들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만에 하나 정부가, 자신이 관할하는 VTS에 수신된 AIS 데이터에는 손을 댈 수 있었다고 해도 같은 정보를 수신한 세월호 주변 수백 척의 민간 선박들, 그리고 육상과 위성 등 상업용 수신기에 저장된 데이터까지 모두 똑같은 내용으로 바꿔놓는다는 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뉴스타파는 참사 당일 세월호의 AIS 항적 정보를 수신처 유형별로 확보해 교차검증을 실시했다. 우선 인천과 대산, 군산, 목포, 진도, 여수, 제주 등 정부가 관할하는 VTS 7곳에서 수집된 세월호의 AIS 항적 정보, 다음으로 선박들의 항적 정보를 수집해 판매하는네덜란드 Made Smart사가 인천항과 목포항의 육상 수신기 및 위성으로 수신한 세월호의 AIS 항적 정보, 그리고 당시 세월호 주변을 지나던 민간 상선 두우패밀리호의 항해기록장치에 저장돼 있던 세월호의 AIS 항적 정보를 입수해 비교해 보는 것이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AIS 정보들의 형식은 모두 디코딩되기 이전의 로우데이터, 즉 원문 로그파일이다. 원문 데이터를 디코딩하면 수천 개의 AIS 메시지들이 추출되는데, 각각의 메시지마다 위치와 속력, 코스, 뱃머리방향을 포함해 40여 개의 정보들이 담겨 있다. AIS의 원리 상 여러 수신처에서 동일한 메시지를 받기 때문에, 추출된 데이터들 속에는 중복메시지가 다수 들어있게 된다. 이런 경우 각 메시지에 기록된 AIS-Payload 정보를 통해 중복 메시지를 걸러낼 수 있다. 즉, AIS-Payload 정보가 같으면 중복된 메시지이고, 서로 다르면 고유한 메시지로 분류되는 것이다.

세월호 AIS 데이터 교차검증 데이터(XLS)

뉴스타파는 이런 방식으로 세월호가 출항한 2014년 4월 15일 저녁 9시 이후의 모든 AIS 데이터들을 디코딩한 뒤 해도 위에 표시해 봤다.

먼저 정부 VTS에서 수신된 세월호의 AIS 정보를 보면 인천과 대산, 군산, 목포, 진도, 여수, 제주 등 7개 VTS의 22개 기지국에서 모두 4만4천128개의 세월호 AIS 메시지가 수신됐고 중복 메시지를 거르고 나니 모두 6천831개의 위치정보가 해도 위에 표시됐다. 이게 바로 바로 정부가 내놓은 세월호의 AIS 항적인 셈이다.

이어 네덜란드 Made Smart사 데이터의 경우, 인천항 수신기에 수신된 메시지 천52개, 목포항 수신기 천918개, 그리고 위성에서 수신된 6개 등 모두 2천976개의 메시지를 추출해 해도 위로 옮겼다. 이를 정부 AIS 항적과 비교해본 결과 1개를 제외한 모든 위치가 정부 항적과 포개져 나타났고 각 위치에서의 속력, 코스, 뱃머리방향 등 항해 정보들까지 모두 정확히 일치했다. 정부 항적과 겹치지 않는 1개 위치도 전체 항적의 경향을 벗어나지 않았다.

두우패밀리호가 4월 16일 오전 7시 반 이후부터 수신한 885개의 메시지도 해도 위로 옮겨봤다. 10개를 제외한 875개의 위치들이 정부 항적 위로 포개졌고, 이들 각각에 담긴 항해정보들 역시 모두 일치했다. 겹치지 않는 10개 데이터들도 전체 항적 경향 속에 자연스럽게 포함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세월호 AIS 교차검증 인터랙티브 맵

정리하면 정부 관할 VTS가 수신한 세월호 AIS 항적 정보는 네덜란드 Made Smart사와 두우패밀리호에 수신된 것과 비교할 때 거의 모든 위치와 항해 정보가 완전하게 일치했고, 정부 항적과 겹치지 않는 일부 메시지도 전체 항적의 경향을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만약 세월호 AIS 데이터를 조작하려고 하면면, 모종의 의도를 가진 곳에서 정부 VTS는 물론 해외 업체와 민간 상선에 수집된 수천 개의 세월호 AIS 데이터에까지 함께 손을 대 동일한 내용으로 바꾸어 놓아야 한다. 이는 상식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따라서 <그날, 바다>가 세월호 AIS 항적 조작의 근거로 든 다양한 사례들도 모두 기각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사고 직후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급회전 구간의 AIS 항적에서 3분 36초 구간이 누락되어 있다가 5일 뒤 이 구간을 복구했던 사실을 문제삼은 부분이 대표적이다. 영화는, 이 당시 세월호 AIS가 꺼져 있었다는 두라에이스 문예식 선장의 진술을 결부시키면서 정부가 이 구간의 항적을 조작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두라에이스호는 VDR(항해기록장치)을 갖추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당시 세월호 AIS를 실시간으로는 볼 수 있었지만 이 데이터들을 저장해 놓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문예식 선장의 진술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반면 세월호 주변에 있던 또 다른 선박인 두우패밀리호에는 VDR이 설치돼 있었고 여기에 저장된 세월호 AIS 기록에는 영화가 문제 삼은 3분 36초 구간의 항적이 그대로 남겨져 있다. 네덜란드 Made Smart사의 목포항 수신기 역시 이 구간의 세월호 항적을 수신해 저장해 뒀다. 그리고 이 항적 정보들은 정부가 추가 발표한 3분 36초 구간의 항적 정보와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복구했다고 밝힌 추가 항적은 세월호가 전송한 데이터였고 조작되지도 않았다고 봐야 한다.

또한 세월호 AIS가 꺼져 있었다는 문예식 선장의 진술도 사실이 아니다. 세월호에 탑재된 AIS는 처음 전원을 켜면 주변의 전파환경을 탐색하는 등 작동 준비 시간으로 최소 1분의 시간이 소요되는 ‘Class A’ 장비였다. 즉, 만약 세월호 AIS 전원을 껐다가 켰다면 수신된 메시지의 시간 간격이 적어도 1분 이상 벌어진 구간이 있어야 하는데, 문제의 3분 36초 구간은 물론 출항 이후 침몰까지의 데이터들 가운데 1분 이상의 시간 간격을 두고 수신된 메시지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문예식 선장이 당시 세월호 AIS가 꺼져 있었다고 느낀 것은, 다른 수신처들은 세월호 AIS 데이터를 정상 수신하고 있었으나 두라에이스호에는 제대로 수신되지 않고 있던 상태였을 가능성이 높다.

이 밖에도 <그날, 바다>는 분당 메시지 전송횟수를 기준으로 한 세월호의 속력 추정, 그리고 1번 메시지와 3번 메시지의 개념 등에 관한 해석에서 많은 오류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AIS가 전혀 오류가 없이 작동하는 완전무결한 시스템이라는 전제를 깔고 데이터를 해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임남균 목포해양대학교 항해학부 교수는 “AIS 데이터도 디지털 신호이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튀는 현상이나 장비 에러의 가능성이 상존한다고 봐야 하며, 전체적인 항적의 흐름을 통해 선박의 거동을 분석하는 기초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그날, 바다>가 세월호의 AIS 항적을 잘못 해석한 것으로 보이는 부분들을 검증해 별도의 텍스트 기사로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여기에는 세월호 AIS 항적 검증에 사용한 모든 로우데이터들도 함께 공개되어 있다. 이제부턴 누구든 이 자료들을 활용해 <그날, 바다>의 주장은 물론 뉴스타파의 이번 보도까지 직접 검증해 볼 수 있다.

‘지그재그 운항의 증거?’...세월호의 해군 레이더 항적 교차검증

<그날, 바다>에 등장하는 세월호의 해군 레이더 항적은, 지난 2014년 한 세월호 유가족이 한겨레 기자에게 의뢰해 진성준 당시 국회의원실을 통해 해군으로부터 받은 자료다. AIS 항적과 비교할 때 서남쪽으로 최대 500m까지 떨어져 있고, 실제 선박의 움직임이라고는 보기 힘들 정도로 급격히 꺾인 부분들이 다수 나타나 있다.

영화에서 이 레이더 항적은 두 가지 주장의 근거가 된다. 첫 번째는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항적들이 거짓이라는 근거이고, 두 번째는 세월호가 8시 49분 급변침 코스 이전부터 어떤 이유 때문이든 여러 차례에 걸쳐 급격한 지그재그 운항을 했다는 근거이다.

뉴스타파는 이 주장에 대한 검증도 실시했다. 먼저 이 구간의 세월호 항적을 포착한 해군 레이더의 위치부터 파악해 봤다. 한 국회의원실을 통해 확인한 결과, 사고 지점으로부터 동남쪽으로 40km 이상 떨어진 추자도 레이더에서 포착한 항적이었다.

뉴스타파는 만약 <그날, 바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추자도 레이더에서 포착한 다른 선박들의 레이더 항적은 AIS 항적과도 일치하고 비정상적인 꺾임 현상도 없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서남해안을 운항하는 여객선 두 척을 대상으로 AIS 항적과 레이더 항적을 모두 확보해 교차검증을 실시했다.

대상 선박은 목포와 제주도를 왕복 운항하는 여객선 산타루치노호와 완도에서 추자도를 거쳐 제주도, 진도를 오가는 여객선 한일레드펄호이다. 뉴스타파는 두 여객선의 지난달 28일 전체 AIS 항적 자료를 제주VTS로부터 입수했다. 또 같은 날 두 여객선을 포착한 추자도 레이더 항적 일부를 해군으로부터 입수해 각각 비교해 봤다.

먼저 산타루치노호가 제주에서 목포로 향하는 구간의 AIS 항적과 추자도 레이더 항적 좌표를 함께 해도 위에 표시해 봤다. 추자도 남쪽 항로에서는 레이더 항적이 AIS 항적의 동쪽으로, 추자도 북쪽 항로에서는 레이더 항적이 AIS 항적의 서쪽으로 떨어져 분포했다. 즉, 추자도를 중심으로 볼 때 AIS 항적의 왼쪽으로 치우친 위치에 레이더 항적이 표시되고 있음이 확인된 것이다. 이때 AIS 항적과 레이더 항적이 벌어진 간격은 추자도로부터의 거리가 멀수록 커지는 경향이 뚜렸했고, 추자도에서 50km 정도 떨어진 제주항 인근에서는 두 항적의 간격이 700m까지 벌어지는 것이 확인됐다. 또한 AIS 항적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모습인데 반해 레이더 항적은 곳곳에서 급격히 꺾여 있는 모습도 명확히 나타났다.

한일레드펄호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역시 추자도에서 바라볼 때 레이더 항적은 AIS 항적의 왼쪽으로 떨어져 분포했고, 추자도에서 멀어질수록 두 항적의 거리 간격도 커졌다. AIS 항적과는 달리 레이더 항적에는 급격히 꺾여 있는 구간도 다수 존재했다.

만약 <그날, 바다>의 주장대로라면 이 여객선 두 척의 AIS 항적도 조작된 것이고 두 척 모두 실제로 급격히 방향을 꺾으며 운항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는 누가 봐도 상식에서 벗어난 해석이다. 오히려 레이더 항적인 AIS 항적의 왼쪽으로 치우쳐 분포되는 것, 그리고 레이더 항적이 실제 운항과는 달리 지그재그로 꺾인 듯 보이는 것은 세월호에서만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봐야 한다.

레이더 항적에서 나타나는 이같은 현상에는 그럴만한 이유가 존재한다. 앞서 설명한 것처럼, AIS 항적의 위치 정보는 선박에 장착된 GPS 장비가 제공하기 때문에 GPS에 에러가 없다면 AIS의 위치 정보는 큰 오차가 나타날 가능성이 거의 없는 반면, 레이더의 경우는 작동 원리상 표적의 위치 정보에 상당한 오차가 수반될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더는 전파를 쏴서 범위 내의 어떤 물체에 반사돼 돌아올 때까지의 시간을 측정해 표적까지의 거리와 방위로 위치를 표시하는 장비다. 그런데 레이더가 쏘는 전파는 빔폭, 즉 일정한 각도를 갖고 퍼져가기 때문에 표적과의 거리에 따라 여러 유형의 위치 오차가 나타나게 된다. 특정한 빔폭으로 하나의 표적을 감지할 때 표적의 형상에 따른 전파 반사 정도의 차이에 따라 화면 상에 나타나는 표적의 형상이 왜곡됨으로써 실제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위치로 인식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빔폭 내에 두 개의 표적이 함께 존재할 때는 이를 하나의 표적으로 화면 상에 표시하게 됨으로써 역시 정확한 위치에 왜곡을 발생시키기도 한다. 즉, 레이더는 작동 원리 상 빔폭이 클수록, 또한 표적과의 거리가 멀수록 표적의 위치 정보에 큰 오차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장비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제로 세월호의 해군 레이더 항적은 어느 정도의 위치 오차를 가질 수 있었을까. 뉴스타파 취재 결과, 추자도 해군 레이더의 빔폭은 2.3도인 것으로 확인됐다. 따라서 사고 지점인 병풍도까지의 거리 40km를 적용할 경우 위치 오차는 1.6km까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계산된다. 즉, 세월호의 해군 레이더 항적이 AIS 항적과 비교할 때 500m까지 떨어져 나타난 것은 추자도 레이더 장비가 갖는 오차 범위 이내의 값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결국 <그날, 바다>의 해석 오류는 레이더의 일반 원리, 그리고 세월호를 추적한 해군 레이더의 위치와 성능을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문예식 선장이 해도에 표시한 ‘세월호 급변침 지점’의 진실

<그날, 바다>는 정부의 세월호 AIS 항적이 조작이라고 규정하고 결국엔 세월호의 급회전 사고 지점도 AIS 항적과는 전혀 다른 곳이라고 주장하기에 이른다. 그 근거는 두라에이스 문예식 선장의 CNN 인터뷰 보도에 잠깐 나타났던 해도의 기록들이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세월호 AIS 조작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에 항적을 자의적으로 옮기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다. 더 큰 문제는, <그날, 바다>가 자의적으로 세월호 항적을 옮긴 유일한 근거로 삼은 문 선장의 해도 기록에 관한 내용도 사실과 거리가 있다는 점이다.

뉴스타파는 문 선장이 해도에 표시했다는 세월호의 급회전 위치에 대해서도 상세히 살펴봤다. 우선 CNN 보도 화면에 잡힌 해도에 대한 분석부터 시작했다. 해도에 적혀 있는 유일한 좌표는 ‘침몰 위치’ 하나일뿐, 영화에서 세월호가 실제로 급회전했다고 규정한 X표시 부분에는 구체적인 좌표가 적혀 있지 않다.

이에 대해 영화는 이런 인터뷰 장면을 삽입했다. 

김지영 감독 : 해도에 표시하셨던 세월호 좌표들 있잖습니까? 그건 기억하고 계셨던 것을 해도에 표시하셨던 건가요?
문예식 선장 : 아니죠. 세월호 근처에서 구조활동을 하던 당시에 그 위치를 메모해 뒀던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문 선장이 해도에 적은 좌표와 X표시가 단순히 기억에 의존한 것이 아니라 AIS나 레이더에 포착된 정확한 위치였다는 식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실제 상황은 이와는 달랐다.

먼저 해도에 있는 기록들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조난구조 요청, 09h 06min’으로 표시된 부분은, 세월호 뒤쪽에서 병풍도 방향으로 운항하던 두라에이스호가 진도VTS로부터 세월호 조난구조 요청을 접수한 위치와 시간을 의미한다.

‘본선 조우위치, 9시 10분’이라고 표시된 부분은, 조난구조 요청을 받고 4분 동안 달려온 두라에이스호가 이 위치에 왔을 때 세월호를 ‘조우’, 즉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뜻이다.

문 선장은 바로 이 때 육안으로 파악된 세월호 대략적 위치를 X로 표시하고 그 밑에 ‘최초 위치’라고 기록했다. 처음에는 개인 메모지에 그려 뒀다가 CNN 인터뷰를 진행할 때 그 메모를 꺼내 해도로 옮겨 그렸던 것이다. 결국 이 X 표시는 세월호가 급회전했던 지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실제로 8시 49분에 급회전하며 쓰러졌던 세월호가 20여 분이 지난 9시 10분에 이 정도 위치 근방까지 표류해온 건 당연한 일이기도 한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같은 분석 내용에 대해 문예식 선장과 연락해 직접 확인해 봤다.

뉴스타파 : (9시 6분에) VTS에서 구조 요청이 왔고요.
문 선장 : 예, 예.
뉴스타파 : 그래서 달려가셨더니 9시 10분 정도에 현장에 도착하셔서 세월호가 눈에 보였고.
문 선장 : 네.
뉴스타파 : 그때 눈에 보였던 세월호의 위치를 표시하신 게 그 X자 표시인 거죠?
문 선장 : 네, 그렇죠. 그 당시에 그 옆에 갔을 때는 세월호가 거의 움직임이 없었으니까.
뉴스타파 : 그때는 배가 급하게 회전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 이미 동력을 잃고 표류하고 있을 때죠.
문 선장 : 아, 예. 그렇죠.

그런데 어째서 문 선장을 직접 인터뷰한 김지영 감독은 X표시를 급회전 반경의 중심이라고 확정하게 됐던 것일까.

문 선장 : 그러니까 배가 이렇게 전진을 하다가 회전을 하잖아요. 회전을 하면 속력이 계속 줄어들면서 회전을 했기 때문에 그 위치 차이는 얼마 안 돼요. 100~200미터 차이가 있을 수는 있겠죠.
뉴스타파 : 100~200미터가 아니고, AIS 항적상으로 보면 꽤 온 건데요. 세월호가 실제로 급회전했던 시점보다는요.
문 선장 : 나는 데이터 같은 건 아는 게 없고, 어쨌든 그 자리(X표시)는 세월호가 회전을 했든지 말았든지 결과적으로 그 자리에 멈췄던 자리에요.

문 선장은 세월호가 급회전하면서 속력이 크게 떨어졌을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나중에 자신이 본 세월호 표류 위치가 앞서 세월호가 급회전했던 위치와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했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문 선장은 김지영 감독을 포함한 <그날, 바다> 제작진에게도 이와 똑같은 설명을 분명히 전달했다고 뉴스타파에 밝혔다. 문 선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김지영 감독은 문 선장의 진술을 영화에 제대로 반영하지 않은 것이 된다.

뉴스타파는 김 감독을 포함한 <그날, 바다> 제작진에게 AIS와 레이더 항적에 대한 교차검증 결과, 그리고 세월호 급변침 지점과 관련해 문 선장에게 확인한 내용 등을 전달하고 그에 대한 입장을 묻는 질의서를 보냈다. 그러나 김 감독은 문자메시지를 통해 “이미 답을 정해놓고 질문을 한다고 느껴져 답을 하는 것이 의미가 없을 것 같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앵커침몰설’의 현실성은 얼마나 될까

<그날, 바다>는 세월호의 AIS 항적을 조작된 것으로 규정하고 해군 레이더 항적을 더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라고 말한다. 그런데 결국엔 문 선장이 해도에 기록한 X표시를 세월호의 실제 급회전 지점으로 확정하게 된다.

하지만 이런 결론에 다다르는 논리 구조는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AIS 항적이 조작됐다면서도 유독 ‘급회전’의 증거라는 3번 메시지의 존재만은 신뢰하는가 하면, 레이더 항적에 대해서도 병풍도와의 거리는 잘못됐다면서 수 차례 나타난 지그재그 항적 만큼은 신뢰하는 방식이다. 즉, 하나의 데이터 속에 담긴 정보들을 일부는 진실, 일부는 거짓으로 분류하면서도 그 기준이 뭔지는 명확히 내놓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런 논리 전개를 통해 끌어내려진 레이더 항적은 병풍도 인근 해저 지형과 비슷하게 들어맞게 되고, 결국 세월호가 수시로 급격한 좌회전을 하면서 운항했던 것은 좌현 앵커를 내려놓고 운항했기 때문이라는 결론에 다다르게 된다. 뜨거운 논란을 부른 앵커침몰설은 바로 이런 논리 구조 속에서 탄생하게 됐던 것이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AIS 조작과 해군 레이더의 급격한 꺾임, 그리고 문 선장이 해도에 표시한 X표시 등 앵커침몰설의 전제가 되는 주장들은 모두 신빙성이 희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전제가 되는 주장들이 맞지 않기 때문에 <그날, 바다>의 결론인 앵커침몰설은 가설로서의 기본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게 뉴스타파의 취재 결과다.

그럼에도 뉴스타파는 선박이 앵커를 내려둔 채로 운항하다가 앵커가 해저지형에 걸리는 상황이 만에 하나라도 실제로 일어날 경우 선체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 것인지까지도 마지막으로 확인해 보고자 했다. 취재진은 지난 4월 세월호와 같은 6천 톤급 선박인 부산해양대학교의 실습선 한바다호에 올라 실제로 선박의 앵커를 내리고 올리는 과정을 직접 관찰해 봤다. 먼저 앵커를 내리기 위해서는 최소 네 단계로 구성된 시건장치를 해제하는 역할에만 한 사람이 필요하고 양묘기 컨트롤러를 직접 조작하는 데에 또 한 사람이 필요하다. 또한 일반적으로는 1등항해사가 앵커의 외부 투하 상태를 살피며 보고하는 역할을 하지만 고의로 아무렇게나 앵커를 내린다면 이 인력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어쨌든 한 사람이 단독으로 조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만약 세월호에서 누군가 의도적으로 앵커를 미리 내렸다면 최소 두 사람 이상이어야 하고 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이 입을 맞추고 아무도 발설하지 않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날, 바다>는 사고 당일 9시 32분쯤 문예식 선장이 촬영한 세월호 사진 가운데 좌현 앵커가 잘 보이지 않는 한 사진을 제시하면서 좌현 앵커가 분명히 사용됐다고 주장한다. 사진에 앵커가 보이지 않는 것은, 이 시점에서 앵커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거나 혹은 좌현 앵커가 제 위치에 있음에도 앞서 해저지형과의 마찰로 검은 페인트가 벗겨지고 깎인 탓에 회색 배경에 뒤섞여 잘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해석한다. 어떤 경우든 좌현 앵커는 사용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우선 이 사진이 앵커를 끌어올리고 있는 장면일 가능성은 없다. 사진이 촬영된 것은 9시 32분경인데 반해 세월호의 주발전기는 9시 21분경 정지한 것으로 차량 블랙박스 화면 분석 결과 확인되어 있다. 그런데 세월호 양묘기 작동에 필요한 출력은 보조발전기만 갖고는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에, 이 시점에서는 앵커를 끌어올릴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앵커는 9시 21분 이전, 그러니까 사고 발생 30여 분 만에 모두 끌어올려졌어야 하는데, 이때는 선체 기울기가 50도 가까이 기울어져 있던 상태다. 이윤석 한국해양대학교 선박운항과 교수는 “40도 이상의 횡경사 상태는 사람이 갑판 위에서 어떤 작업을 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는 수준인데다, 일반적인 6천톤 급 선박의 앵커는 윈치의 용량상 분당 9미터 정도 속도로 앵커 체인을 감아올린다고 볼 때, 세월호가 45도 넘게 경사된 상태에서 그 정도 긴 시간 동안 갑판에서 앵커 감기 작업을 하는 건 거의 어렵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또, “만에 하나 정말로 세월호 앵커를 내려둔 채 17노트 이상의 속력으로 운항했다면 선박의 전진에 따라 앵커 체인이 뒤로 밀리면서 선체 옆면과 강하게 마찰이 발생함으로써 손상 흔적을 남겼어야 하는데, 침몰 당시 180도로 뒤집어진 상태의 세월호 선수 좌측면에는 어떤 마찰 흔적도 관찰되지 않았다”며 앵커 사용 가능성이 없다고 봤다. 이어 “17노트 이상 이상 속력에서 앵커가 해저지형에 걸렸다고 한다면 엄청난 에너지가 앵커 체인에 걸려 끊어지든가, 체인이 끊기지 않았다면 선체로 에너지가 전달되어 체인을 감는 윈치나 선체 일부가 파손되는 등 물리적 파손이 발생했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지영 감독 “공개 토론회 열자”....뉴스타파 “언제든 마주 앉겠다”

뉴스타파는 세월호 참사 원인을 밝히려고 노력한 영화 <그날, 바다>의 집념을 존중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많은 논란을 불러왔던데다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함으로써 세월호와 관련된 일종의 기록으로 역사에 남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영화의 주장을 면밀히 검증하는 것 또한 언론으로서 반드시 필요한 역할이라고 판단했다.

취재 결과에 대해 마땅히 김지영 감독의 입장을 물었지만 예상과 달리 김 김독은 미리 답을 맞춰놓은 질문인 듯하다며 사실상 답변을 거부했다. 그러나 뉴스타파의 검증 취재 결과는, 오히려 <그날, 바다>가 앵커침몰설이라는 답을 정해놓고 논리를 구성했다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김 감독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향후 세월호 침몰 원인을 놓고 공개적인 토론을 벌여봤으면 좋겠다는 제안도 함께 해왔다. 뉴스타파는 세월호 참사 진상 규명을 위해서 언제든 자리를 함께 할 수 있다. 또한 <그날, 바다>측이 공개토론 이전이라도 이번 보도에 대한 입장을 어떤 경로로든 표명해 주기를 기대한다.

취재 : 김성수, 연다혜, 최윤원, 김지윤
영상취재 : 김기철
영상편집 : 박서영, 윤석민
CG : 정동우
시각화 : 임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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