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조선 간부의 '팀 킬', 최순실 게이트 덮을 뻔

2018년 07월 17일 16시 58분

2016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초기, TV조선 보도국의 한 간부가 미르재단 사무총장인 이성한과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하며 사실상 자사 기자들의 취재를 방해한 사실이 확인됐다. 당시 TV조선은 미르재단의 실체를 최초로 단독보도하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을 열고 있었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이 TV조선 간부는 미르재단에 최순실이 개입했음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인 녹음 파일을 공개하지 않겠다는 이성한의 약속을 안종범에게 전달하기도 했고,  미르재단과 관련된 어떤 정보도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는 이성한의 반성문이 작성되는 과정에 개입하기도 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TV조선의 이 간부는 정석영 보도국 부국장인 것으로 확인됐다. 정 부국장은 2016년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당시에는 경제부장이었다.

자사 보도는 안종범 겨누는데... 간부는 안종범에게 취재원 정보 전달

박근혜·최순실이 대기업들로부터 돈을 거둬들이는 일종의 모금창구였던 미르재단, 이 미르재단의 실체가 처음으로 세상에 알려진 것은 2016년 7월 TV조선의 보도를 통해서였다. 당시는 미르재단과 박근혜·최순실의 관계가 아직 드러나기 전이었으며, TV 조선이 주로 문제삼은 것은 안종범 당시 청와대 정책조정수석과 미르재단의 관계였다.

당시 TV조선의 핵심 취재원 가운데 한 명은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이었다. 이성한 전 총장은  미르재단 설립 당시 사무총장을 맡았지만 최순실, 차은택과 갈등을 빚게 되자 이후 재단의 배후에 이들이 있다는 것을 폭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일조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가 적극적으로 폭로에 나선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TV조선이 미르재단 관련 보도를 처음 시작한 2016년 7월 시점의 이성한은 미르재단 정상화와 사무총장직 유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한채 TV조선의 취재에 소극적으로 응하고 있었다.

2016년 7월 28일, 그는 TV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안종범이 자신에게 미르재단 사무총장직 사퇴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그만큼 안종범이 미르재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다는 주장이었다. 그런데, 이성한의 폭로가 방송된 바로 그날 밤 보도가 나간 지 불과 30분 뒤, 이성한은 한 언론사 간부와 26분  동안 통화를 한다. 이 통화에서 이성한은 이런 얘기를 했다.

언론(TV조선) 보도는 인터뷰를 짜깁기한 것입니다.

안종범 수석님은 개입 사실을 부인하고 단지 도와준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만 유지하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겁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비록 자신이 취재에 응하기는 했지만 재단을 정상화해주고 사무총장 자리만 지켜주면 안종범을 공격할 의사까지는 없다는 뜻, 그런데 사실 이런 얘기는 문맥상 이성한이 안종범에게 직접 얘기했어야 하는 내용이다. 이성한은 왜 이런 얘기를 안종범이 아니라 언론사 간부에게 한 것일까?

자신과 통화한 언론사 간부가 이를 안종범에게 전달해주리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이 언론사 간부는 실제로 이성한과의 통화를 녹음한 뒤 녹음 파일을 그대로 안종범에게 보냈다. 언론사 간부가 이성한과 안종범 사이에서 메신저 역할을 한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런 사실을 검찰의 수사기록을 통해 확인했다. 검찰이 안종범의 휴대전화를 압수해 복원하자, 방금 언급한 이성한과 언론사 간부 사이의 통화 녹음 파일이 나온 것이다.

앞에서 쓴 것처럼, 이 언론사 간부는 현재 TV조선 보도국 부국장인 정석영 씨로 확인됐다. 2016년 7월 에는 경제부장직을 맡고 있었다. TV조선 기자들이 이성한에 대한 취재를 통해 안종범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고 있던 시점에, TV조선 보도국의 현직 간부가 두 사람간의 화해를 주선하며 더 이상의 폭로가 나오지 않도록 조율을 한 것이다.

‘스모킹 건’ 녹음파일 입수도 사실상 방해.. 반성문 작성까지 관여

 

TV조선이 미르재단에 대한 의혹 보도를 이어가고 있던 2016년 8월 16일, 정 부국장은 또다시 이성한과의 통화내용을 녹음해 안종범에게 전달했다. 이 날의 통화는 약 14분 가량 이어졌다. 이 통화에서 이성한은 이런 말을 했다.

녹음파일이 공개되면 최순실, 차은택이 재단  설립 운영에 관여한 사실이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히 밝혀질 것입니다.

안종범 수석이 신뢰를 주면 목에 칼이 들어와도 녹음파일이 유출되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

여기서 이성한이 언급한 ‘녹음파일’은, 미르재단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최순실과의 회의 내용 등을 이성한이 몰래 녹음해둔 것이다. 무려 7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 이 파일은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초기, 미르재단과 최순실의 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이른바 ‘스모킹 건’으로 알려져 있었다.

당시 TV조선 기자들도 이 녹음파일의 존재를 알고 있었다고 한다. TV조선에서 최순실 게이트 취재를 이끌었던 이진동 기획취재 부장은 자신의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가 녹음파일을 요청하면, 이성한은 핵심에 대해서는 입을 열지 않고 주변만 맴돌면서 기사 방향이나 스케줄을 요구했다.
<이렇게 시작되었다>152쪽

다음날인 7월 21일부터는 이재중(기자)을 이성한 밀착 마크맨으로 투입했다. 나와의 조율 없이 혼자 찾아간 것처럼 다시 이성한과 접촉해 ‘녹음파일’을 입수해보라고 했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157쪽

이렇게 자사 기자들이 최순실 국정 농단의 결정적 증거인 이성한의 녹음파일을 입수하기 위해 애쓰는 사이 정석영 부국장은 오히려 이성한과 안종범 사이에서 메신저 노릇을 하며 녹음파일이 공개되지 않도록 하는 데 일조한 것이다. 사실상의 취재 방해다.

이 녹음파일의 존재는 그 뒤로 두 달이 지난 10월 17일이 되어서야 JTBC를 통해 세상에 알려지게 됐다. 그러나 녹음파일의 내용은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지금까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물론 그 뒤로 최순실과 미르재단의 관계에 대한 다양한 물증과 증언들이 나왔기 때문에 지금 단계에서 이 녹음파일의 중요성은 크지 않다. 그러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 초기, 미르재단과 최순실의 관계를 입증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이는 한겨레 신문이 처음으로 최순실의 이름을 거론하며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에 불을 붙였던 당시의 기사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당시 한겨레는 K스포츠 재단의 이사장인 정동춘씨가 한때 최순실이 다니던 마사지센터의 운영자였다는 점을 근거로 K스포츠 재단과 최순실의 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했었다. 한겨레 신문이 의혹을 제기한 K 스포츠 재단과 최순실의 관계에 비하면, 이성한이 갖고 있던 녹음파일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확실한 증거였다. 정석영 TV조선 부국장은 한겨레가 최순실의 이름을 거론하기 한달 전인 8월 16일에 이미 이성한과의 통화에서 최순실이 미르재단 설립과 운영에 관여한 사실을 알게됐고, 결정적 증거인 녹음파일의 존재도 인지했다. 그리고 핵심 당사자인 이성한의 녹취까지 확보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이를 보도하거나 자사 기자들에게 전달하지 않고 오히려 의혹의 당사자인 청와대 안종범에게 전달한 것이다.

검찰이 복원한 안종범의 휴대전화에서는 이성한이 작성한 반성문도 나왔는데, 이 반성문을 안종범에게 전달한 것 역시 정석영 부국장이었다. 그리고 재판 과정에서는 더 놀라운 일도 밝혀졌다. 이성한은 2017년 2월에 열린 재판에서, 이 반성문을 작성했을 당시 언론사 간부, 즉 TV조선 정석영 부국장과 함께 있었다고 증언했다. 정 부국장은 단순한 메신저 역할을 넘어 반성문 작성에까지 적극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협찬 때문인가, 친분 때문인가, 윗선의 지시인가

정석영 부국장이 이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엇일까?

TV조선이 미르재단 의혹을 처음 보도했던 2016년 7월 26일, 보도가 나가기 한 시간 전 TV조선의 보도본부장실에서는 이런 일이 있었다고 한다. 역시 이진동 당시 TV조선 기획취재부장의 책에 나오는 얘기다.

본부장이 급히 찾아 본부장실로 갔더니 경제부장이 함께 앉아 있었다. (중략) 경제부장이 아마도 ‘미르재단에서 협찬을 받기로 돼 있는데, 이 기사가 나가면 곤란할 것 같다’는 취지의 얘기를 한 것으로 짐작됐다. (중략) 나는 "그거 큰일납니다. 기업에서 뇌물로 받은 돈을 우리가 협찬받는 상황이 될 겁니다."하고 발끈했다. 경제부장은 "전경련이 합법적으로 돈을 거둬 아무 문제가 없는데 뭐가 뇌물이냐"고 따졌다. 본부장이 잠자코 있는 동안 나와 경제부장 간에 설전이 오갔다.

<이렇게 시작되었다> 171-172쪽

회사에서는 경제부장으로서 협찬이라는 명목을 내세워 보도를 막으려했고, 뒤에서는 이성한과 안종범 사이의 메신저 역할까지 했던 정석영 부국장. 그에게 최순실 관련 보도를 막았던 것이 정말 협찬 때문이었는지, 혹은 안종범과의 친분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TV조선이나 조선일보 내에서 다른 누군가의 지시를 받았기 때문이었는지 질의했으나, 그는 “기자로서 어긋나게 살아온 바가 없다”는 말 외에 아무런 구체적 답변도 하지 않았다. 당사자인 이성한은 연락이 닿지 않았다.

정석영 부국장이 어떤 의도를 가지고 취재대상 사이에서 메신저 노릇을 하며 취재를 방해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한가지 정말 아찔한 건 만약 그의 메신저 역할이 성공했다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의 전모는 상당 기간 은폐됐을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취재 : 심인보
촬영 : 김기철 김남범 신영철
편집 : 박서영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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