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2018년 7월 24일 방송된 KBS1 라디오 ‘김기자의 눈’ 가운데, 심인보 기자가 출연한 <삼성전자-반올림 중재 합의>의 방송 원고입니다.

[김경래] 우리사회 이슈를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시간이죠.

심인보의 심층취재,

뉴스타파 심인보 기잡니다. 안녕하세요.

[김경래] 오늘은 반올림 얘기를 해볼까 합니다. ‘반올림’은 삼성전자와 백혈병 피해자 모임인‘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의 줄임말입니다. 그런데, 왜 심인보 기자와 이 얘기를 하냐면....인연이 있죠? 반올림과?

[심인보] 네 제가 기자니까요, 다른 인연은 아니고요. 예전에 이 삼성 백혈병 문제를 취재해서 보도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 반올림으로부터 취재에 많은 도움을 받았죠. 그때가 제 기억에 2010년의 일인데요, 지금이야 삼성 백혈병 문제가 잘 알려져 있지만 그때만 해도 지금처럼 잘 알려져 있지는 않았고요, 신문이나 잡지, 지역 언론에서는 기사를 좀 썼지만 서울의 지상파 방송에서 이 문제를 심층적으로 다룬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뉴스 한 두 꼭지 이렇게 다룬 적은 있지만요. 당시에는 제가 KBS에서 기자생활하고 있을 때니까.. KBS에 취재파일 4321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없어졌지만요, 그 당시 그 프로그램에서 한 12-3분 가량 이 삼성 백혈병 문제를 다뤘었죠. 서울의 지상파 프로그램에서는 처음이었죠. 당시 제가 이 문제를 다룰 때만해도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자가 23명이었는데요, 그 뒤로 이 문제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반올림에 피해 제보 접수가 늘어나서요, 지금은 삼성전자 반도체만 196명이고, 삼성 전 계열사를 따지면 320명 정도 됩니다.

[김경래] 어떤 계기로,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의 이야기를 취재하게 된 겁니까?

[심인보] 말씀드린 것처럼 제가 당시에 KBS 취재파일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었는데요, 그 당시에 한 분이 돌아가셨어요. 박지연씨라고. 나이가 23살이었는데 삼성반도체에서 일하다가 백혈병에 걸렸고, 투병을 하다 세상을 떠났죠. 그래서 장례식장에 갔죠. 가서 빈소 촬영도 하고, 유족분도 만나 뵙고 했는데요. 그런데 다음 날 아침 신문을 보니까 글쎄 기사가 하나도 없는 겁니다. 한겨레 신문 딱 한 군데만 그 기사가 나왔어요, 제 기억에. 너무 황당했죠.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래서 제가 이걸 반드시 방송을 해야겠다 마음을 먹었죠. 저희 기자들이 원래 남들이 안하는 거, 이런 건 기를 쓰고 하는 습성이 있잖아요.

그래서 반올림을 찾아가서 이야기를 들었죠. 지난번에 김기자의 눈에도 나오셨던 이종란 노무사님을 만나서 얘기를 들었는데, 이종란 노무사님이 그러시더라고요. 심 기자님이 이 얘기를 듣고 취재를 하는 건 좋다, 그런데 아마 방송은 안 나갈 거다, 그래서 왜 그러냐 했더니, 지금까지 MBC 피디수첩도 왔다가고 그것이 알고 싶다도 왔다 갔는데 방송이 안 나오더라,는 겁니다. 아 남들이 못하는 거니까 나는 반드시 해야겠다,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더 열심히 했죠. 그래서 이 취재를 시작하게 됐고요.

취재를 하다보니까 역시 예상대로 당시에 KBS에서도 윗선에 계시던 분이 그 방송을 하지 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보강 취재도 더 열심히 했는데, 그런데 방송을 준비하다 보니까 돌아가신 박지연 씨의 어머니께서 인터뷰를 못하겠다고 하시는거예요. 첫날에는 저랑 얘기도 하고 인터뷰도 약속하고 그랬었는데 말이죠. 나중에 얘기를 들어보니 삼성에서 큰 돈을 제시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결국 인터뷰는 못했고요, 하지만 어찌저찌해서 많은 피해자들을 취재했고, 그걸 근거로 윗분들과 싸워서 우여곡절 끝에 방송을 내게 됐습니다.

[김경래] 취재할 때 안타까운 사연들이 참 많았을 것 같습니다.

[심인보] 네 지금은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영화에도 나오고 해서 많이 알려진 얘기인데요, 지금 반올림 대표하시는 황상기 씨라고 계십니다. 영화에서는 배우 박철민씨가 맡았던 역할의 실제 인물이죠. 이 분 따님이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22살에 급성 골수 백혈병에 걸려서 숨졌습니다. 이름이 황유미씨인데요. 이 분이 속초에서 택시기사를 하시던 분인데, 딸이 백혈병에 걸리니까 집에서 요양을 하면서 속초에서 서울까지 병원에 데리고 다니면서 병간호를 했습니다. 자기가 모는 택시로요. 그런데 어느 날 서울 병원에 딸을 데리고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딸이 그만 목숨이 끊어진 겁니다. 자기가 모는 택시 뒷자리에서요.

제가 취재를 갔을 때는 황유미씨가 숨진 지 3년 정도 됐을 때인데요, 아직도 그 택시를 가지고 택시 영업을 하고 계셨어요. 그래서 그 분이 택시 뒷자리를 보여주시면서 여기서 우리 딸 유미가 세상을 떠났어요, 하고 말씀하시는데 정말 제 마음이 많이 아프더라고요. 가끔 택시를 몰다보면 아직도 뒤에 아픈 딸이 앉아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그렇게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그리고 나서 이 분이 딸을 화장해서 설악산 울산바위에 뿌렸거든요, 그런데 속초에서 택시 기사를 하니까 울산 바위 가자고 하는 손님이 얼마나 많겠어요. 거기 갈 때마다 딸 생각이 난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딸 둘을 키우는 아빠 입장에서 그 심정은 정말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황상기 씨도 처음에는 반도체 공장과 백혈병의 관계를 전혀 의심하지 않았어요. 그냥 우리 딸이 운이 안 좋아서 병에 걸렸다고만 생각을 했죠. 그런데 알고 보니까 황유미씨랑 같은 라인에서, 그것도 2인 1조로 일하던 다른 분이 있었는데요, 이숙영씨라고, 이 분도 똑같은 급성 골수 백혈병에 걸려서 숨진 것을 알게 된 거예요. 이 분 나이는 서른 살이었는데요, 백혈병 걸리기 전까지 특별한 병이 없었습니다. 결혼을 해서 애도 낳으신 분이었는데 둘째 낳고 불과 넉달만에, 병에 걸린 지 한 달 만에 숨졌습니다.

이 이숙영 씨의 얘기를 듣고 황상기 씨가 뭔가 이상하다, 이렇게 생각을 하기 시작한 거죠. 왜냐면 제가 취재할 때 자료를 보면, 2,30대가 백혈병에 걸릴 확률이 4만 분의 1이었거든요, 그런데 한 라인에서 2인 1조로 일하던 두 사람이 동시에 백혈병에 걸린다? 이건 경우의 수를 따져도 16억분의 1이라는 계산이 나오잖아요, 우연일 수는 없다는 거죠.

[김경래] 산업재해잖아요. 인과관계를 밝히고, 또 기업 입장에서도 이를 인정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고. 실제로 그랬죠?

[심인보] 그렇죠, 당시에 삼성에서도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우리 설비는 완벽하다. 반도체가 얼마나 첨단 산업인데 대충 하겠냐, 이렇게 주장을 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실제로 삼성 반도체 공장에도 들어가 보고 그랬었는데요.

그런데 사실 반도체 공장이라는 게 우리가 뉴스 화면에서 볼 때는 엄청나게 첨단 산업이고, 다들 방호복 같은 거 입고 마스크 같은 거 끼고 일하고, 뭐 먼지 하나라도 있으면 안된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깨끗한 것 같잖아요? 겉보기에는 그래도 이 반도체 제조 공정에 엄청나게 많은 화학제품이 들어갑니다. 반도체의 재료는 실리콘인데요, 실리콘을 이렇게 길쭉한 원통형으로 만들어서 이걸 엄청나게 얇게 썰거든요. 그러면 월남쌈 먹을 때 싸먹는 라이스 페이퍼 같은 모양이 되는데 이걸 웨이퍼라고 하거든요. 이 웨이퍼 위에 말하자면 회로도 같은 그림을 엄청나게 촘촘하게 그리는 건데, 그림을 그린 다음에 그 그림 부분만 남겨놓기 위해서 웨이퍼를 부식을 시킵니다. 이 작업을 식각이라고 하는데, 이 식각하는 작업에서 엄청나게 많은 화학약품이 쓰인다고 합니다. 지금이야 기계로 다 한다고 하는데 초창기에만 해도 이 식각 작업을 직접 노동자들이 마스크 끼고 장갑 끼고 손으로 담갔다가 빼기도 했다고 합니다. 또 이 식각 공정말고 다른 공정에서도 화학물질이나 가스를 엄청 많이 쓰는데요, 어쨌든 반도체 만드는데 쓰이는 화학 물질이 800가지가 넘는다고 하니까요.

특히 당시 피해자들이 많이 나온 곳이 삼성반도체 기흥 공장이었는데요, 기흥 공장은 완전 초창기 때 그러니까 80년대에 만들어진 공장이거든요. 이중에서도 처음에 만들어진 1, 2, 3 라인에서 희생자가 많이 나왔습니다. 이 말은 과거에 만들어진 노후화된 라인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제대로 된 안전 대책 없이 일하다가 병에 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잖아요. 실제로 제가 2010년에 이 사건 취재했을 당시 피해자가 23명이었는데 대부분이 기흥 공장, 그것도 1,2,3라인에서 일하던 분들이었어요. 그런데 이 기흥공장 1,2,3라인이 얼마나 문제가 많았냐면 제가 당시 취재하던 중에 삼성 반도체 공장의 다른 직원들의 증언도 확보할 수 있었는데요, 실제로 가스관이 노후화되어서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꽤 자주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렇게 정황 증거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법적으로 이걸 인정받는 건 쉽지가 않았죠. 왜냐면 인과 관계를 입증을 하려면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그런데 이 자료를 안 내놓는 거예요. 영업 비밀이라고. 이것도 최근까지 쟁점 중의 하나였죠. 그래서 사회적으로도 여러 논란이 있었습니다만. 또 한가지 문제는 당시 문제가 됐던 노후 라인, 기흥공장 3,4라인은 이제는 없어지고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당시 이 분들이 일했던 작업 환경이 남아있지기 않은 겁니다.

자 그러면 비록 당시 노후라인은 아니더라도, 지금 설비라도 검증을 해보자. 그런데 피해자도 아니고 삼성 쪽도 아닌 제3자가 들어가서 작업 환경을 검사를 해보자, 그래서 서울대 연구팀이 들어간 적도 있는데 이때 발암물질이 검출이 됐었죠. 그리고 그 뒤에 노동부나 산업안전보건연구원 같은 곳에서도 여러 차례 들어가서 검사를 하게 되고요, 이 검사를 할 때도 삼성 쪽에서는 자료도 제대로 안 내주고 엄청나게 비협조적이었다는 얘기를 제가 들었습니다만, 어쨌든 그런 노력의 결과, 인과 관계가 딱 이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2011년 6월에 처음으로 황유미와 이숙영 씨, 제가 말씀드린 아까 두 사람이요, 이 두 분의 사례가 산업 재해 즉 업무상 질병으로 인정을 받습니다. 물론 쉽게 된 건 아니고, 처음에 산재 불인정 됐다가 행정 소송을 통해서 인정을 받게 되죠. 이때 행정소송 1심 판결이 났던 때가 2011년 6월이고요. 물론 근로복지공단이 항소를 해서 확정판결은 3년 뒤에 나지만요, 어쨌든 이걸 신호탄으로 해서 그 뒤에 한 10명 가량의 노동자가 더 산업 재해로 인정을 받게 되죠. 지금까지 산재 인정을 받은 노동자는 삼성 반도체만 따지면 21명이고요.

[김경래] 그렇게 한 사람씩 산업 재해로 인정을 받다보니까 삼성이 먼저 대화를 제안한 거였죠.

[심인보] 네 삼성이 2012년 11월에 반올림과 피해자 측에 대화를 제안합니다. 한 사람씩 산재 인정을 받기 시작할 때였죠. 이때 이건희 회장이 아직 쓰러지기 전입니다. 어제 신문 보니까 이재용의 결단이다, 라고들 많이 썼는데 사실 대화를 제안한 건 이건희 회장이다, 이 점 짚고 넘어가고요.

2013년 2월부터 대화가 시작이 되는데요 말 그대로 지루한 협상을 하기 시작하죠, 1년 반 이상 협상을 했으니까요, 서로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협상의 주제가 보상, 재발방지대책마련, 사과 이렇게 3가지인데요, 가장 큰 쟁점은 두 가지입니다. 첫 번째는 보상과 재발방지 대책의 주체가 누구 될 것인가 하는 건데요, 삼성은 삼성전자 사내에 천 억 정도의 기금을 조성한 다음 자기들이 이걸 하겠다고 했어요. 피해자 보상에 대한 기준 마련, 심사, 집행, 전부요. 그런데 이 말은 피해자들이 삼성을 찾아가서 자신이 피해자라는 걸 삼성한테 입증을 해야 한다는 말이잖아요. 그래서 반올림은 이걸 받아들일 수 없다, 제 3의 기관을 만들어서 제3의 기관에 맡겨야 한다, 이렇게 주장을 했고요, 이걸 가지고 이제 몇몇 보수 언론이나 친 삼성 언론들이 반올림이 이권에 개입을 하려한다, 이런 기사들을 쓰기도 했었죠.

이게 첫 번째 쟁점이고요, 두 번째 쟁점은 사과를 어떻게 할 것인가인데요, 삼성은 회사가 자체적으로 작성한 사과문을 피해자에게 개별 발송하겠다고 했어요. 문구가 이렇습니다. “이런 아픔을 헤아리는데 소흘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진작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반올림에서는 그게 무슨 사과냐, 그러지 말고 노동 건강 인권 선언을 해라. 산재 보상제도의 문제점도 지적하고 그에 대한 개선을 너희 삼성이 촉구하면 얼마나 멋있겠냐, 이렇게 주장을 한 거였죠. 이 두 가지 외에도 보상의 기준이나 액수를 가지고도 세부적인 쟁점이 많았습니다만...

어쨌든 양쪽의 주장이 계속 평행선을 달리는데요, 협상이 한 1년 반 쯤 되가니까 피해자들이 갈라지기 시작합니다. 오랜 싸움에 지쳐서인지 삼성이 모종의 작업을 해서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피해자 단체가 반올림과 가대위 가족 대책위원회로 갈라지게 되고요. 이게 2014년 8월의 일이고요, 넉달 뒤인 2014년 12월에 삼성과 가대위가 일방적으로 조정위원회를 도입하자, 이렇게 발표를 해버립니다. 즉 조정위원회를 만들어서 여기서 결정하는대로 따르자는 것이지요. 반올림 측에서는 조정위원회에 삼성의 입김이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해서 반대를 하지만 결국 이 방안을 수용을 하게 되는데요, 여기에서 반전이 벌어집니다.

삼성이 제안해서 만든 조정위원회가 조정안을 내놓게 되는데, 이 조정안이 오히려 반올림이 제안한 안과 가까웠던 겁니다. 예를 들어 보상과 예방대책 사업을 삼성전자 사내 기금으로 하지말고 삼성과는 독립된 사회적 기구, 공익법인을 만들어서 총괄하도록 해라, 이렇게 조정안을 내거든요. 사과도 반올림이 제안한대로 노동건강인권선언을 해라, 그리고 피해자들한테만 발송하지 말고 기자회견 해라, 이렇게 조정안이 나온 겁니다.

[김경래] 그래서 삼성이 어떻게 했습니까. 조정안을 따랐나요?

[심인보] 그랬으면 참 좋겠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고요, 조정안에 대해서 조정 보류를 요청합니다. 더 이상 조정은 필요 없다, 이거죠. 그리고 나서 자체적으로 보상을 강행하겠다 이렇게 밝힙니다. 조정이고 뭐고 그냥 자기들이 알아서 피해자들한테 개별적으로 보상을 해주겠다는 거죠. 이게 2015년 7월의 일인데, 반올림으로서는 더 이상 삼성과의 대화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삼성이 준다는 보상을 거부하고 이때부터 농성에 들어간 거죠. 그 농성이 이제 오늘로 1,022일째인 거고요.

[김경래] 그런데, 오늘 합의문에 사인을 하고 저녁에는 농성천막을 걷기로 했습니다. 중재안 합의문 내용은 어떤 것?

[심인보] 합의문 내용은 특별한 게 없습니다. 아까 조정위원회가 내놓은 1차 조정안을 삼성이 거부했다고 했잖아요? 그 조정위원회가 2차 조정안을 만들 예정인데 그 2차 조정안을 양쪽이 무조건 수용하기로 한 게 합의의 내용입니다. 조정위원회가 이번에 우리 얘기 안 들으면 우리도 더 이상 못하겠다, 조정위원회 말고 다른 방법 찾아봐라, 너희끼리 알아서 해라. 이렇게 양쪽에 통보를 했고요, 양쪽 다 그렇다면 받아들이겠다, 이렇게 한 거죠. 내용과 상관없이 받아들이겠다고 한 거니까 일종의 백지 위임이 된 겁니다.

[김경래] 앞으로의 일정은?

[심인보] 조정위원회가 2차 조정안을 빠르면 오는 9월 발표할 예정이고요, 그러면 보상이 시작될 거고 아직 확실한 건 아니지만 삼성이 출연한 기금으로 만들어질 공익 법인도 활동을 하게 되겠죠. 이 공익법인이 산재라든지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에 도움이 되는 활동을 하게 될테니까요. 지금까지 숨진 118명의 노동자의 목숨이 결코 헛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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