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2018년의 화두는 ‘갑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기업 오너들의 여러 엽기적인 갑질 행태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만 욕설이나 폭행 등 눈에 보이는 갑질은 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일상적이고 구조적으로 이뤄지는 보이지 않는 갑질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뉴스타파는 상시적인 대기업 갑질 속에 매일 같이 피눈물을 흘리는 하청업체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소득금액 상위 10% 기업들이 전체 소득의 92%를 가져갑니다. 나머지 90%의 기업이 8%의 이익을 나눠가집니다. (자료: 심상정 정의당 의원, 국세청)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합니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88%입니다. 대기업 갑질은 중소기업,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연쇄적이고 점증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뉴스타파는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대기업 갑질 사례를 ‘갑질타파’라는 시리즈로 보도해나갈 예정입니다. 공정위 등 감독 당국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짚어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jebo@newstapa.org

현대중공업①번개탄과 농약 그리고 '성과급 잔치'
현대중공업②'삼단콤보' 중복갑질
현대중공업③“나를 구속하라” 하청사장의 셀프고발

지난 7월 16일 울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인 대한기업 김도협 대표가 사라졌다. 지인에게 유서로 보이는 카톡을 남긴 뒤 연락이 되지 않았다. 대한기업 직원이 경찰에 가서 위치 추적을 의뢰했다. 경찰은 20여 분 만에 길에서 서성이고 있는 김 대표를 찾아냈다. 그의 차에서는 번개탄과 소주, 그리고 농약이 발견됐다.

김도협 대표는 2015년 7월 현대중공업에서 사내하청업체를 운영하기 시작했다. 선박을 만드는 인력을 원청인 현대중공업에 파견하는 단순한 인력공급업체였다. 인력 수급만 제대로 하면 밑질 게 없는 사업이었다. 하루에 100명 넘는 인력을 현대중공업에 공급했다. 그런데 꼭 3년 만에 20억 원의 빚을 졌다. 12억 원은 노동자들의 4대 보험료, 나머지 8억 원은 체불 임금이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3년 만에 20억 원의 부채를 가졌다는 건 말이 안 되죠. 인력회사인데. 누가 봐도 말이 안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뭐 나쁜 짓을 하고 대표로서 다른 짓을 하고 내 부를 뒤로 축적을 했다고 하면 제가 이런 자리를 부끄러워서 설 수가 있겠습니까. 제 집뿐만이 아니고 동생 집도 다 (담보) 잡혀있고요. 제 차가 15년이 넘었습니다. 시동이 꺼질 정도입니다.

김도협 대한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

하청노동자 산재사망 그리고 총무의 자살

김 대표가 대한기업을 시작한 지 2개월 가량 지난 2015년 9월, 대한기업 소속 하청노동자 이 모 씨가 추락 사고를 당해 숨졌다. 유족들과의 협상은 현대중공업이 했다. 사고 노동자의 소속은 대한기업이었지만 현장 관리와 작업 지시는 현대중공업에서 하기 때문에 당연한 일일 수도 있었다. 대한기업은 유족과 현대중공업이 맺은 합의에도 관여할 수 없었다.

하지만 형사 책임은 대한기업에게 돌아왔다. 김도협 대표는 이 사건으로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원청 현대중공업은 법인과 사업부문 대표가 각각 벌금 500만 원을 내는 데 그쳤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산재사망 사건 처리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한 대한기업 총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총무는 김도협 대표의 절친한 친구였다.

총무가 제 친구입니다. 제가 견디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친구도 나를 믿고 따라와 줬지만 저 또한 친구를 많이 의지한 편이었습니다. 그 때부터 공황장애가 와서 너무 너무 힘들었습니다.

김도협 대한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

지난 9월 뉴스타파 취재진과 처음 만난 김도협 대표는 인터뷰 시작 전에도 공황장애 약을 먹어야 했다.

▲ 지난 9월 울산에서 뉴스타파 취재진과 만난 김도협 대한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 김 대표는 인터뷰 전에 공황장애 약을 먹었다.

일을 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는 이유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들에 따르면 업체들은 공사금액을 정확하게 알지 못한 상태에서 일단 작업에 들어간다. 김 대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 담당 부서에서 주간공정스케줄이 나오면 일단 인원을 투입해 일을 먼저 시작한다. 그리고 매달 20일 경 사내하청업체가 견적서를 올리면 개별 계약서를 체결하는 식이다. 그런데 사내하청업체가 올리는 견적서 상 공사금액은 하청업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김 대표에 따르면 하청업체는 원청이 제시하는대로 시스템 상에 숫자를 넣고 엔터를 누르는 게 전부다. 인력이 투입된 만큼 견적을 내는 것이 아니라 원청이 시키는대로 견적을 내는 셈이다.

▲올해  6월 발생한 대한기업의 총 인건비는 5억 6천 만 원.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6월 기성금으로 3억 3천만 원을 지급했다.

현대중공업의 주장은 다르다. 하청업체에 사전에 지급할 공사대금을 알려준다는 거다.

현대중공업은 사전 계약체결과정에서 사내협력업체에 설계도면 내지 공사스케줄 등 공사 관련 정보를 충분히 고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개별공사에 대한 시공의뢰 시 공사물량과 저희 회사의 공사대금 예산에 관한 정보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사내 협력업체는 개별공사계약 체결절차를 통해 시공의뢰받은 공사물량을 확인한 후 견적서를 제출하는 과정을 거치게 되므로 공사물량과 계약금액을 사전에 인지할 수 있고 사전에 공사대금을 알 수 없다는 주장은 사실과 다릅니다.

현대중공업 답변

공사대금 기준 되는 품셈, 한번도 공개하지 않아

현대중공업은 사내하청업체들이 사전에 공사금액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도 공사 예산 산출의 근거가 되는 품셈은 공개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인정했다. 품셈은 쉽게 말해 인건비를 계산하는 기준이다.

사내하청업체들은 품셈을 공개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고 있지만 현대중공업은 그동안 한번도 품셈을 공개하지 않았다. “조선업 운영 노하우와 원가 전략 등이 녹아 있는 고유의 데이터를 사용해 만든 내부기준”이므로 영업비밀로 보호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대중공업의 입장이다.

사전에 공사대금도 모른 상태에서 인력을 투입하다 결국 인건비에도 못 미치는 기성금(공사대금)을 받는 것을 업체 대표들은 ‘기성폭탄’이라고 부른다.

인건비는 5억 원 씩 발생시켜놓고 기성을 3억 원을 줍니다. 그러면 2억 원이 모자라잖아요. 저희는 그런 걸 ‘기성폭탄’이라고 표현하는데, 그게 3개월 계속되면 업체 도산입니다. 제3자들은 ‘그럼 일을 안하면 되지’라고 얘기를 할텐데 일을 안 할 수가 없습니다. 공정 스케줄상 일은 자꾸 밀려옵니다. 일이 배당됐는데 일을 안 한다? 그러면 도급계약서상 계약 해지의 명분이 됩니다.

김도협 대한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

대한기업은 올해 6월에도 기성폭탄을 당했다. 부서장의 요구에 따라 인원을 하루 최대 168명까지 투입해서 한달 인건비만 5억 6천만 원이 나왔는데 기성금은 고작 3억 3천만 지급됐다고 김도협 대표는 주장했다.

▲ 김도협 대한기업 대표가 지난 10월 10일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대한기업 제공)

“정부정책 악용해 또 기성금 깎았다”

현대중공업이 지급하는 기성금으로는 인건비도 맞춰줄 수 없는 지경이었던 김 대표는 2016년 7월 현대중공업 담당 부서장을 찾아갔다. 기성금만으로는 인건비도 맞출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그러자 담당 부서장은 이런 팁을 알려줬다고 한다.

세금을 둘째치고라도 임금을 못 맞춰줄 수준이 돼버리니까 현대중공업 부서장을 찾아갔죠. 임금이라도 좀 해결해달라. 이거 세금도 못 내고 어떻게 하냐. 그렇게 얘기하니까 세금은 4대보험 유예정책이 있으니까 그걸로 한번 해라 이러더라고요. 그 때 내가 알았습니다. 유예정책이라는 게 뭔지…

김도협 대한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

조선업이 불황이다보니 정부에서 4대 보험료 납부를 일시적으로 유예해주는 정책이었다. 현대중공업 담당 부서장의 말은 공사대금이 적다면 정부에서 보험료를 유예해 주니까 그걸로 일단 버티라는 뜻이었다. 하지만 하청업체 입장에서는 언젠가는 납부해야할 빚이었다. 당장 급한대로 4대 보험료 납부를 유예했는데 그게 쌓이고 쌓여 12억 원의 빚이 됐다.

현대중공업이 있는 울산 동구를 지역구로 두고 있는 김종훈 민중당 의원실이 건강보험공단 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울산 동구 지역의 조선업체 251곳이 체납한 4대 보험료는 311억 원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전체 조선업체에서 정부의 체납처분 유예정책으로 체납된 4대 보험료는 총 3,139곳, 1,272억 원이나 된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아니 이미 터지고 있는 시한폭탄이다.

“내가 죽으면 작은 이슈라도 되겠지”

김 대표는 결국 기업 실명을 밝히고 현대중공업의 갑질 횡포를 막아달라며 청와대에 국민 청원을 했다. 하지만 1만 명 정도의 청원 동의를 얻는 데 그쳤다. 더이상 버틸 힘이 없었던 김 대표는 현대중공업 부서 담당자들과 사내하청업체 대표들에게 유서를 보내고 극단적인 선택을 결심하게 된다.

국민청원을 하고 나는 그래도 10만 명 이상은 되지 않을까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그게 전혀 아니더라고요. 만 명도 채우기 힘들 정도였고 스스로 포기하는 상황까지 가더라고요. 나는 여기서 끝났구나 끝내야겠다. 그러면 조금 더 이슈가 되고, 조금 더 이슈가 되면 뭔가 내가 죽음으로써 소리가 조금 더 나오지 않을까라고 짧은 생각을 했죠.

김도협 대한기업 대표

하지만 대한기업의 직원 A씨는 유서를 받은 다른 하청업체 대표에게 “빨리 김 대표를 찾으라”는 연락을 받았고, A씨가 경찰에 위치추적을 요청해 다행히 김 대표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 전에 사고를 막을 수 있었다.

2015년 12월 현대중공업의 또 다른 사내하청업체 대표 서 모 씨는 기성금 삭감으로 인한 압박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기성 떼이니 임금 지급일자가 지겹다. 벌어놓은 돈은 없고 3년 넘게 적자를 보게되니 이제는 사는 게 미련없고 가족에게 미안하다.

2015년 스스로 목숨을 끊은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의 유서 내용 중

성과급 잔치의 이면

조선업 불황이 시작된 2015년 이후 폐업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는 100여 개 이상으로 알려졌다. 이 과정에서 구조조정된 사내하청노동자는 3만여 명. 2015년 서 모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목숨을 끊은 이듬해 현대중공업은 1조6천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고 이듬해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2017년 기준 현대중공업의 사내유보금은 16조 원이다.

취재 조현미
촬영 김기철 오준식 김남범 정형민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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