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타파] 현대중공업③ "나를 구속하라" 하청사장의 셀프고발

2018년 12월 07일 07시 59분

<편집자주>
2018년의 화두는 ‘갑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기업 오너들의 여러 엽기적인 갑질 행태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만 욕설이나 폭행 등 눈에 보이는 갑질은 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일상적이고 구조적으로 이뤄지는 보이지 않는 갑질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뉴스타파는 상시적인 대기업 갑질 속에 매일 같이 피눈물을 흘리는 하청업체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소득금액 상위 10% 기업들이 전체 소득의 92%를 가져갑니다. 나머지 90%의 기업이 8%의 이익을 나눠가집니다. (자료: 심상정 정의당 의원, 국세청)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합니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88%입니다. 대기업 갑질은 중소기업,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연쇄적이고 점증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뉴스타파는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대기업 갑질 사례를 ‘갑질타파’라는 시리즈로 보도해나갈 예정입니다. 공정위 등 감독 당국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짚어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jebo@newstapa.org

현대중공업①번개탄과 농약 그리고 '성과급 잔치'
현대중공업②'삼단콤보' 중복갑질
현대중공업③“나를 구속하라” 하청사장의 셀프고발

지난 10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장. 참고인으로 출석한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폭탄 발언을 했다.

이거는 어떻게든 법을 바꾸든지 해서 불법파견이 밝혀져야지 해서 제가 바로 고발을 하게 됐습니다. 셀프 고발입니다.

한익길 경부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

본인을 ‘셀프 고발’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떤 사정이길래 그는 스스로 범법자라고 폭로한 것일까.

▲지난 10월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한익길 경부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현대중공업의 불법파견 실태를 고발하고 있다.

한익길 경부산업 대표는 2012년부터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을 하다 2015년 도산했다. 업체를 운영한 지 3년 만이었다. 한 대표가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6년 9월에도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은 사실상 불법파견업이라고 시인했다.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스스로 불법파견임을 인정한 것은 한 대표가 처음이었다.

현대중공업 사내협력사는 도급을 위장한 용역 파견 업체였습니다. 사내협력사 작업자들의 출퇴근 현황을 (현대중공업이) 매일 체크하고 감시하고 있습니다. 모든 작업은 원청인 현대중공업 생산 관리자가 지시하고 관리하고 있으며 작업자들의 근태를 원청에서 관리합니다.

2016년 고용노동부 국정감사에서 한익길 경부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가 한 발언

국정감사 폭로...하지만 조사에서는 배제

국정감사에서 현대중공업 불법파견 문제가 제기되자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2017년 1월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국감에서 문제를 제기한 당사자인 한익길 대표는 울산지청으로부터 아무런 연락을 받지 못했다.

한 대표는 정권이 바뀐 뒤 울산지청에 조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물었다. 하지만 울산지청은 묵묵부답이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을 제기하자, 그제서야 울산지청에서 답이 왔다. “2017년 1월 실태조사를 벌였지만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을) 불법파견으로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국정감사에 직접 출석해 문제를 제기했던 한 대표는 울산지청이 왜 자신을 조사하지 않았는지 의아했다.

근로감독관하고 싸웠거든요. 왜 나를 조사 안 했느냐 내가 당사자인데… 싸우다 보니까 그때 울산 노동부 노동지청의 근로감독관이 나보고 ‘사장님 왜 이러십니까. 이러면 사장님도 구속되는데 왜 이렇게 하느냐, 불법파견 업주로 구속됩니다’. 오, 좋다 나 구속되겠다. 그럼 어떻게 하면 되느냐. 그럼 셀프 고발을 하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셀프 고발해 놓은 상태입니다.

--한익길 경부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

“현대중공업이 조사 대상 업체 골랐다”

울산지청이 2017년 1월에 진행한 실태조사의 결과 보고서는 올해 10월, 1년 8개월 만에 고용노동부 국정감사를 계기로 공개됐다. 조사는 제대로 이뤄졌을까. 뉴스타파 취재진은 실태조사 결과 보고서를 입수해 살펴보던 중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울산지청이 조사를 벌인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5개 중 1곳이 눈에 익은 기업이었다. 뉴스타파가 지난 3일 보도한 [갑질타파] 1편에 등장했던 대한기업이었다.

▲2017년 2월에 나온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의 <(주)현대중공업 사내하도급 실태조사 결과보고>

취재진은 김도협 대한기업 대표를 다시 만나 실태조사 대상 업체에 선정된 경위를 물었다. 김 대표는 고용노동부가 조사할 업체들을 현대중공업이 지정해줬다고 증언했다.

(고용노동부에서) 임의대로 선정한다고 얘기를 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임의대로 선정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현대중공업에서 지정해 준 대로 그냥 부서별로, 부분별로 한 개 업체씩, 두 개 업체씩 선정을 합니다. 그중에 대한기업이 들어간 거고요.

김도협 대한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

특히 대한기업은 각종 조사 대상에서 빠진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 이유는 당시만 해도 ‘말을 잘 듣는 업체’였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자신을 셀프 고발한 경부산업 대표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업체를 조사하지 않은 울산지청에 항의하는 과정에서 근로감독관에게 ‘조사 대상 업체는 현대중공업에서 지정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현대중공업은 이에 대해 200여 개 사내하청업체 리스트만 울산지청에 제공했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의 요청에 따라 저희 회사는 사내협력사 200여 개 전체 리스트를 제공했습니다. 조사대상 업체는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에서 선정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답변
▲지난 11월 16일 김도협 대한기업 대표가 2017년 당시 울산지청이 진행한 현대중공업 사내하도급 실태조사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유리하게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당시 실태조사를 담당했던 공무원들이 모두 다른 지역으로 인사발령이 나 조사대상 업체를 어떻게 선정한 것인지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했다. 당시 울산지청은 “근로자, 사업주 설문결과 불법파견적 요소를 확인할 수 없다”고 결론냈다. 그렇다면 설문조사는 제대로 이뤄진 걸까.

직접 설문조사를 받은 김도협 대표는 현대중공업에 유리하게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에 찍히면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사결과는) 엉터리라고 봐야죠. 한마디로 말하면 현대중공업에 찍히면 일을 못 하게 됩니다. 현대중공업에 맞는 말, 도급 계약서상 맞는 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현대중공업이 사내하청업체 총무들을 모아 한 번씩 교육을 시킵니다. 이런저런 조사가 나올 때 대비를 하라고… 그건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김도협 대한기업(현대중공업 사내하청업체) 대표

그럼 하도급 실태를 제대로 조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김 대표는 “현업에 있는 업체들이 어떻게 현대중공업을 타깃으로 싸울 수 있겠느냐”며 “저처럼 한 번 해보자고(현대중공업하고 싸워보자고) 하는 사람, 그리고 실제 현장의 작업자들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한익길 대표는 본인을 불법파견 혐의로 울산지청에 셀프 고발했다. 형식은 현대중공업을 고발한 것이지만, 그래야 자신이 조사를 받게 될 거라고 생각했다. 현대중공업의 불법파견 혐의가 인정되면 한 대표도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해당 사건은 1년 째 조사가 진행되고 있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는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등 조선소의 하도급 문제와 관련된 직권조사를 벌이고 있다. 고용노동부도 전체 조선소를 상대로 불법파견 의혹에 대한 실태조사에 들어갈 예정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폐업한 업체들을 조사 대상에서 제외한다면 그동안 그래왔듯 결과는 ‘문제 없음’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한편 현대중공업은 불법파견 의혹에 대해 다음과 같은 입장을 밝혔다.

지방노동위원회와 중앙노동위원회는 2011년과 2016년에 저희 회사가 사내하도급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하거나 결정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또한 저희 회사는 사내 하도급업체가 도급인인 저희 회사의 어떠한 개입 없이도 독자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사내 하도급 형태를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습니다.

현대중공업 답변

취재 조현미
촬영 오준식 김기철
편집 박서영
CG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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