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질타파] 현대중공업② '삼단콤보' 중복갑질

2018년 12월 05일 07시 59분

<편집자주>
2018년의 화두는 ‘갑질’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특히 기업 오너들의 여러 엽기적인 갑질 행태가 주목을 받았습니다. 다만 욕설이나 폭행 등 눈에 보이는 갑질은 사회의 주목을 받았지만, 일상적이고 구조적으로 이뤄지는 보이지 않는 갑질은 관심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뉴스타파는 상시적인 대기업 갑질 속에 매일 같이 피눈물을 흘리는 하청업체 사장님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우리나라 소득금액 상위 10% 기업들이 전체 소득의 92%를 가져갑니다. 나머지 90%의 기업이 8%의 이익을 나눠가집니다. (자료: 심상정 정의당 의원, 국세청)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전체 기업의 99%를 차지합니다.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가 88%입니다. 대기업 갑질은 중소기업,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연쇄적이고 점증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뉴스타파는 현대중공업을 시작으로 대기업 갑질 사례를 ‘갑질타파’라는 시리즈로 보도해나갈 예정입니다. 공정위 등 감독 당국들이 제 역할을 하고 있는지도 짚어볼 예정입니다.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jebo@newstapa.org

현대중공업①번개탄과 농약 그리고 '성과급 잔치'
현대중공업②'삼단콤보' 중복갑질
현대중공업③“나를 구속하라” 하청사장의 셀프고발

울산 울주군 반천일반산업단지에 자리잡은 현대중공업 1차 벤더 동영코엘스. 1만 8천 제곱미터 규모에 2층짜리 공장, 기숙사까지 갖추고 있다. 동영코엘스는 2015년 부산에 있는 공장을 울산으로 전격 이전했다. 그러나 울산 이전 이후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3년이 지난 올해 3월 공장이 멈췄다.

▲울산 울주군 반천일반산업단지에 있는 현대중공업 1차 벤더 동영코엘스 공장 전경

동영코엘스는 1995년부터 현대중공업에 해상용 배전반을 납품하는 1차 벤더였다. 배전반은 선박 안에서 전기를 배분해주는 역할을 하는 설비다. 배전반 제조는 노동집약적인 산업이다. 동영코엘스 공장에는 협력업체 직원들까지 포함해 250여 명의 직원이 근무했다. 이원태 대표는 아버지, 삼촌과 함께 가업을 키웠다. 총 여섯 차례 현대중공업으로부터 기술우수 협력업체로 선정되기도 했다. 가동을 멈춘 동영코엘스 공장 입구에는 지금도 ‘2015년도 우수협력회사’라는 간판이 붙어 있다. 우수협력회사로 선정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동영코엘스에서 납품하는 배전반은 불량률이 거의 ‘제로’였기 때문이다.

기술우수 협력업체로 선정되면 결제 조건을 다른 업체들보다 좋게 해 주고, 업무적으로 제일 큰 거는 ‘무검사 업체’라고 해서 현대중공업 검사자들이 저희 제품을 검사하지 않고 저희 자체 검사만 하고 야드에 바로 입고가 됩니다. 그거는 현대 쪽에서 봐도 이 정도 실력 있는 회사면 굳이 자기들 인력과 시간을 써서 공정상 다급한 물건들을 이중 검사를 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한 거죠.

이원태 동영코엘스(현대중공업 1차 벤더업체 대표)
▲동영코엘스 이원태 대표. 이 대표의 뒤편에는 현대중공업으로부터 받은 상패가 가득하다.

2014년 동영코엘스는 매출 382억 원에 27억 원의 영업이익을 남겼다. 그런데 2015년부터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2015년 매출액 246억 원에 59억 원의 손해를 보더니 3년 동안 무려 300억 원의 손실을 보고 말았다. 단순히 조선업 불황때문이었을까. 2015년 공장 이전부터 2018년 계약 해지 때까지 진행된 현대중공업의 갑질 때문이었을까.

삼단콤보 갑질1. 희망고문

동영코엘스 이원태 대표에 따르면 현대중공업은 2015년도 해상용 배전반 납품 업체를 선정하기 위해 2014년 10월 경부터 공장 실사에 들어갔다. 2014년 10월 즈음 현대중공업 심사팀이 당시 부산에 있었던 동영코엘스 공장을 방문했다고 한다.

(현대중공업) 심사팀이 와서 이것저것 다 뒤지고 공장 다 둘러보고 우리 팀장들 인터뷰하고 저하고도 인터뷰 하고 다 했습니다. 마치 대출심사하듯이. 거기서 우리가 지적 받은 내용이 있습니다. 공장이 너무 좁다는 거였습니다.

이원태 동영코엘스(현대중공업 1차 벤더업체 대표)

동영코엘스는 전체 생산 물량의 99%를 현대중공업에 납품하는 업체였다. 현대중공업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이라도 해야하는 처지였다. 2015년 2월에 열린 입찰설명회 당시 동영코엘스 직원이 설명회 내용을 적어온 메모를 보면 현대중공업이 입찰심사에서 업체별 생산능력을 고려했다는 사실이 적혀있다.

▲2015년 2월 24일 현대중공업 입찰설명회에 참석한 동영코엘스 직원이 설명회를 듣고 작성한 메모. 견적시 제출 서류에 ‘증설시기’, ‘증설 능력’ 관련 자료가 포함돼 있다. 또 생산능력을 정확히 기술하라는 내용과 함께 "2015년 12월까지 공장 증설에 충분한 시간이 있다"는 현대중공업 측 설명 내용도 적혀 있다.

동영코엘스는 2015년 3월 배전반 납품 계약을 확정한 후 울산으로 공장 이전을 준비한다. 부산에 있던 기존 2개의 공장을 팔고 산업은행에서 125억 원을 대출받았다. 부산을 주거지로 두고 있는 직원들도 설득해야 했다. 일부 직원들은 부산-울산 출퇴근을 감내했고, 일부는 아예 울산으로 이사를 왔다.

2015년 10월 울산 공장 개업식 때는 현대중공업 관계자 30~40명이 와서 축하해줬다. 현대중공업의 한 관계자는 “동영코엘스 시스템이 해상용 배전반을 만드는 데 가장 최적화돼 있는 라인”이라며 “현대중공업 1차 벤더 중에 배전반 업체는 전부 여기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칭찬했다고 이 대표는 회상했다.

▲2015년 10월 동영코엘스 울산 공장 개업식 당시 사진. 현대중공업 관계자 30-40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동영코엘스 측에 공장 확장을 요구할 이유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저희 회사와 거래할 수 있는 협력업체가 7개 정도 되는데 특별히 동영코엘스에 생산부지 확충이라는 불확실한 조건을 전제로 입찰에 초대할 이유가 전혀 없으며, 동영코엘스에 공장 확장을 요구할 이유도 없습니다. 당시 전기전자사업본부는 처음부터 연간 발주 물량을 소화할 수 있는 업체를 기준으로 입찰에 초대하기로 하여 동영코엘스를 포함하여 최종 7개 업체를 입찰에 초대하였습니다.

현대중공업 답변

이에 대해 동영코엘스 이원태 대표는 “공장을 옮긴 것은 거기에 대한 반대급부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며 “현대중공업과 계약을 할 수 있는 조건에 미비된 점을 확충하기 위해 공장을 이전한 것이지 그러지 않고는 상식선에서 공장 준공을 들어갈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삼단콤보 갑질2. 점입가경

2015년 현대중공업은 해상용 배전반 발주 방식을 변경했다. 선박을 수주받을 때마다 필요한 아이템별로 발주하던 방식에서 벗어나 1년치 물량을 한꺼번에 발주하는 일괄발주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현대중공업(현재 현대일렉트릭앤에너지시스템)은 올해 4월 공정거래위원회 산하 하도급분쟁조정협의회에 낸 답변서에서 이 같은 일괄발주의 목적은 “규모의 경제에 따른 가격 경쟁력(단가인하)을 이끌어 내기 위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2015년 2월 열린 입찰설명회에서 현대중공업은 연간 발주 물량이 750억 원에서 800억 원 규모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동영코엘스는 813억 원에 입찰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업체 선정일로 예고했던 날이 지나도록 최종 선정 업체를 발표하지 않았다. 동영코엘스는 대신 한 통의 공문을 받았다. 이 공문에는 ‘구매목표금액’으로 594억 원이 제시돼 있었다. 입찰 가격을 594억 원 이하로 낮춰 다시 제출하라는 의미였다. 동영코엘스는 마감 하루 전날인 3월 24일 626억 원으로 입찰했다. 현대중공업의 구매목표금액보다 조금 높은 금액이었다. 그러자 현대중공업에서 “협박에 가까운” 협조요청을 해왔다고 한다.

현대중공업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20년 넘게 거래해온 업체에서 이렇게 하면 어떻게 하냐. 본사에서 의지를 가지고 시스템을 변화시키고 있는 과정인데 동영에서 적극 협조를 해달라. 이 변화가 현실적으로 맞지 않으면 본사에서 조정해주겠다. 그러니 동영에서 적극 협조를 해달라.’

이원태 동영코엘스 대표

결국 동영코엘스는 3월 25일 528억 원에 입찰했다. 첫번째 입찰 가격 813억 원에서 무려 35%나 깎인 금액이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 측은 “입찰 과정에서 특정 회사에 입찰가에 대한 협조를 요청하거나 사후 조정해 주겠다는 제안을 한 바 없습니다. 저희 구매담당자들은 시스템상 입찰금액 제출기간 중에는 업체들이 작성한 입찰금액을 확인할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삼단콤보 갑질3. 감언이설

현대중공업의 갑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현대중공업은 계약대로 1년치 물량을 발주하지도 않았다. 1년 동안 발주한 물량은 300억 원 규모에 그쳤다. 결국 현대중공업은 일괄 발주 방식으로 계약 방식을 바꾸면서 단가 인하라는 이득만 취하고 피해는 하청업체에게 전가한 것이라고 동영코엘스 이 대표는 주장했다.

동영코엘스는 현대중공업에 납품하는 단가보다 비싼 가격으로 2차 벤더로부터 원자재를 구입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결국 계약 1년 만에 100억 원 대의 영업손실을 보고 2016년 8월 부도가 났다. 그런데 현대중공업은 부도난 회사에 계속 납품을 요구했다. 회유도 있었다.

현대중공업이 ‘동영이 이렇게 부도가 난 데에는 우리(현대중공업) 책임도 있으니 우리가 단가를 올려줄테니 납품을 계속해라’고 말했고, 그 때는 정말 고마웠습니다. 눈물 나게. 살 수 있겠구나 좀 더 허리를 졸라매고 더 기술개발해서 살 수 있겠구나 했는데 그 뒤에는 무시무시한 흑막이 있었습니다.

이원태 동영코엘스 대표
▲올해 3월 현대중공업과 동영코엘스의 계약은 해지됐고 이후 공장은 멈췄다. 현재 공장엔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다. 수십억 원 대의 설비들은 그대로 멈춰있다.

현대중공업은 단가를 찔끔찔끔 올려주며 계속 배전반을 납품 받았다. 그렇게 1년 반 넘게 물량 납품을 계속하는 동안 적자는 쌓이고 쌓여 3년 동안 300억 원의 손실을 입었다. 현대중공업의 회유에 납품을 재개했던 것이 결국 회사를 돌이킬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올해 3월 현대중공업과 동영코엘스는 최종 가격 인상에 합의하지 못했고 계약은 해지됐다. 동영코엘스의 직원들은 전원 실직자가 됐다. 동영코엘스 2차 벤더 100여 곳도 부도와 파산위기에 놓였다. 취재진이 찾아간 한 2차 벤더 업체는 동영코엘스가 납품 대금을 지급하지 못했던 올해 1월부터 임원들이 아예 월급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현대중공업은 “3차례 단가를 인상해 주는 등 상생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5년 하반기부터 조선업계 불황으로 선박용 배전반 시장이 악화되고 수주 물량이 상당히 감소하는 어려운 시장환경에도 불구하고 전기전자사업본부는 전체 물량을 동영코엘스에 발주하였고, 동영코엘스의 요청에 따라 3차례 단가를 인상하여 주는 등 상생을 위하여 최선의 노력을 다하였습니다.

현대중공업 답변

버려진 ‘준법경영 실천서약서’

동영코엘스 건물 로비에는 현대중공업의 준법경영 실천서약서가 걸려있다. ‘공정한 거래질서를 준수하고 동반성장을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하지만 동반성장의 꿈은 현대중공업의 ‘삼단콤보’ 중복갑질 속에 처절하게 무너졌다.

취재 조현미
촬영 오준식 김기철
편집 정지성 박서영
CG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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