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와 정보공개 전쟁...결국 자료를 받다
2018년 09월 14일 14시 52분
뉴스타파가 시민단체 3곳과 함께 행정소송을 통해 최초로 입수한 국회 특정업무경비 예산 사용 내역을 분석한 결과, 영수증을 첨부해야 하는 예산집행 금액의 99%가 영수증 없이 사용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 정부구매카드 사용이 원칙이지만 전체 집행액의 45% 정도를 현금 지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영수증 처리 없이, 현금으로 지급했기 때문에 국회가 특경비를 제대로 사용했는지 확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제2의 특수활동비’와 다름이 없었다.
뉴스타파는 세금도둑잡아라, 투명사회를위한정보공개센터, 좋은예산센터 등 시민단체 3곳과 1년 6개월의 행정소송 끝에, 국회 특정업무경비 사용 내역을 처음으로 입수했다. 20대 국회가 시작된 2016년 6월부터 2017년 5월까지 1년 동안의 사용내역을 받아낸 것이다.
국회는 그동안 국회 본연의 의정활동이 위축되고 국회운영에 차질을 초래할 우려 가 있다는 이유로 특수업무경비 예산 사용 내역을 비공개해왔다.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던 국회 특경비 내역을 최초로 공개한다.
특정업무경비는 수사나 감사, 조사 등 특정업무를 수행할 때 사용하는 예산이다. 그러나 특수활동비와 달리 영수증 등 지출증빙서류를 구체적으로 남겨야 한다.
국회에 1년 간 배정된 국회 특정업무경비는 180억 원 규모다. 우선 이 예산 가운데 입법활동과 정기국회 출석 명목으로 국회의원 한 사람에게 매월 평균 400만 원씩, 연 4800만 원 가량을 지급한다. 의원 300명 기준 140억 원 규모다. 특수업무경비의 80% 가량이 국회의원들의 세비로 지급되고 있는 것이다.
뉴스타파는 이 금액을 제외한 나머지 특수업무경비 에산내역을 입수해 분석했다. 국회 입법 정책개발과 지원, 상임위원회 지원 명목으로 27억 8,236만 원의 특정업무경비 예산이 쓰여진 것으로 확인됐다.
먼저 국회 상임위원회 지원 예산을 보면, 윤리특위를 포함한 18개 상임위별 간사 의원 3명, 즉 50여 명에게 ‘간사활동비’ 명목으로 매달 50만을 원을 지급했다. 총 2억 8,324만원이다. 또 18개 상임위 수석전문위원과 전문위원, 심의관, 입법조사관 등에게도 1인당 24만 원에서 10만 원이 월급처럼 매월 지급했다.
이밖에 각 상임위 행정실 운영 경비로 매달 평균 40만 원, ‘예비 검토비’라는 명목 등으로 한달에 50만 원 가량이 지출됐다. 또 각 상임위별로 ‘소위원회 활동비’ 명목으로 분기별 600만 원에서 1000만 원 가량이 지급됐다. 이를 종합하면 18개 상임위에 지급되는 한해 특수업무경비는 14억 2,000만원에 달했다.
특정업무경비에서 국회의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하는 돈도 추가로 발견됐다. 300명의 국회의원들은 ‘입법정책개발비 균등 인센티브 명목’으로 1인 당 매월 15만 원, 한 해 180만 원의 특경비를 받아갔다. 300명 기준, 한 해 5억 4,287만원 규모다. 명목은 인센티브였지만, 실제로는 정책개발을 잘하든 못하든 모든 의원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특경비 지급방식은 계좌이체와 현금지급 등 두 가지였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27억 8,236만 원의 특경비 가운데, 계좌이체로 15억4149만 원, 현금 집행으로는 12억 4,087만원이었다. 약 45%가 현금으로 지급된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특정업무경비는 “정부구매카드 사용이 원칙이며 불가피한 경우 외에는 현금으로 지급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상당수 특정업무 경비 예산을 현금으로 집행한 것이다.
특히 국회 특정업무경비 지출 증빙 처리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엉망이었다. 뉴스타파 분석 결과, 특정업무경비 지출의 99% 가량이 영수증 처리 없이 사용됐다.
기획재정부 예산편성 지침에 따르면, 특정업무경비의 경우 “특정분야 업무수행에 소요되는 경비가 일정액 이상인 것이 명백할 경우 매월 30만원 내에서 개인별로 정액 지급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렇게 월급처럼 월정액으로 지급하는 경우 별도의 영수증 제출이 없어도 된다. 국회의 경우, 약 9억 원 정도다.
결국 국회 특정업무경비 예산 27억8000만원 가운데 월정액으로 지급하고 있는 9억 700만원을 제외하고, 나머지 18억 7,000여 만 원에 대해서는 영수증 등 지출 증빙 서류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뉴스타파 분석결과, 18억 7,452만 원 가운데 영수증을 첨부한 것은 2473만원에 불과했다. 영수증 처리가 1.3%에 그친 것이다. 결국 특정업무경비 집행 예산의 99% 가량이 실제 어디에 사용됐는지 확인이 불가능했다. 정부 예산을 감시하는 국회가 정작 자신들이 쓴 수십억 원의 세금은 어디에 썼는지 증빙자료를 남기지 않은 것이다.
이렇게 국회의원들이 쓴 특정업무경비의 99%가 영수증이 없는 것과 달리, 국회에 파견된 국회경비대 경찰들은 같은 특경비를 지출하고도 모든 지출 증빙 영수증을 빠짐없이 국회에 제출했다. 국회경비는 회식비 등으로 특정업무경비 예산 450만 원 가량을 사용한 뒤, 지출영수증을 모두 냈다.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따르면, 특정업무경비는 “개인에게 정액으로 지급하는 경우 이외에 경비는 사용내역에 대한 증빙을 첨부하여야 한다. . 증빙하기 어려운 지출의 경우에는 지출 내역을 기록하고 감독자가 확인, 관리해야 하며 증빙서류 첨부가 곤란한 사유 등을 구체적으로 기재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국회가 이 지침을 정면으로 어긴 것이다.
이에 대해 국회사무처 운영지원과 관계자는 “특정업무경비 예산은 영수증을 별도로 제출할 의무가 없고, 예산안 지침 위반도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특정업무경비를 이렇게 현금 위주로 쓰고 있다면 사실상 제2의 특수활동비라고 볼 수 있다. 이 예산 자체를 이대로 존속시킬 필요가 있는지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간사활동비 등 특수업무경비를 지급받았지만, 영수증을 제출하지 않은 국회의원 50여 명에게 전화와 문자, 이메일 등을 통해 지출 영수증을 왜 제출하지 않았는지, 어디에 사용했는지 물었다.
대부분의 의원실은 “영수증 등 기록을 남겨야 하는지 몰랐다”, “국회사무처에서 영수증 제출을 요구하지 않았다”, “규정이나 안내가 없었다”, “받은 돈이 특정업무경비 예산인지 몰랐다”다고 밝혔다.
또 대다수 의원실은 “규정에 맞게 적법하게 썼다”고 주장했다. 김진태 의원의 경우 “국회 사무처에서 영수증 제출요구한 적이 없고 이제와서 영수증을 찾기 어렵고 오히려 개인 돈이 몇배 더 들어갔다”고 해명했다.
국회가 한사코 숨기려던 특정업무경비의 오남용 실태가 뉴스타파와 시민단체의 소송을 통해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러나 특수활동비와 달리 특정업무경비는 내년에도 올해와 비슷한 180억 원대의 예산이 배정됐다.
뉴스타파는 국회 특정업무경비 내역 원본을 공개한다. 자세한 특경비 사용 내역 원본은 <20대 국회의원 예산 사용내역 공개> 페이지에서서 확인할 수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해 5월부터 ‘세금도둑잡아라’ 등 시민단체와 3곳과 함께 ‘국회의원 의정활동 예산감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취재 : 문준영, 김새봄, 강현석, 박중석
데이터 : 최윤원
데이터 시각화 : 임송이
촬영 : 최형석, 김남범, 오준식, 신영철, 정형민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자료조사 : 신동욱, 신재용, 전현주
공동기획 : 세금도둑잡아라, 좋은예산센터,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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