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1월 28일 밤, 숨을 거두면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 생존자는 이제 23명이 남게 됐다. 1926년에 경남 양산에서 태어난 김복동 할머니의 이름 복동은 ‘복스러운 아이’로 살라며 아버지가 지어주신 것이다. 만 14살의 나이에 일본 군수공장에 취업해야 한다는 말에 집을 나섰지만 그녀가 끌려간 곳은 전쟁터의 위안소였다. 해방된 후 1947년 부산항을 통해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이후 40년을 부산 다대포에서 횟집을 운영하며 생활했다.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일본군’위안부’ 신고를 한 것을 보고 용기를 얻은 김복동 할머니는 1992년 1월 자신도 같은 일을 겪었다며 신고했다. 이후 전 세계를 돌며 자신이 겪은 피해를 알리는 등 전쟁 당시 일제의 만행을 알려왔다.

지난해 11월 2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위치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쉼터 ‘평화의 우리집’에서는 고 김복동 할머니가 수여하는 장학금 전달식이 열렸다. 대장암 말기 수술을 받고 투병 중인 김 할머니가 자신이 가진 전 재산 5천만 원을 재일 조선인 학생들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기부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내 전 재산을 털어 후원할테니, 우리 조선학교 학생들이 열심히 공부해 이 나라가 통일되고 평화의 길이 열릴 때까지 훌륭한 인재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김복동 할머니는 전 재산을 기부하는 소감을 묻는 질문에 ‘평생을 하잘 것 없다고 생각했던 나를 이렇게 보람되게 해줘서 고맙다’고 말했다. 또 ‘나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에서도 희망을 잡고 살았다’며 ‘많은 사람들이 나의 뜻을 따를 수 있길 바란다’고도 말했다. 유독 재일 조선인 학생들에게 마음을 쏟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할머니는 ‘그 아이들을 생각하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그 아이들이 배움의 희망을 놓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고 말했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2012년, 함께 생활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길원옥 할머니와 함께 ‘나비기금’을 조성해 지금도 전 세계 전쟁 성폭력 피해자들을 돕고 있다. 이후 ‘김복동의 희망’이라는 비영리 재단을 만들어 재일 조선인 학교 학생들을 돕는 사업을 진행 중이다. 국가 권력 앞에 억압받고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인권운동가의 길을 걸어온 것이다.

고 김복동 할머니는 일본 아베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지 못하고 죽을 수 없다며 마지막 순간까지 분노하기도 했다. 그러나 1월 28일 밤 10시 41분, 마지막 숨을 내쉬는 것을 끝으로 영면에 접어들었다. 아베 정부로부터 사과를 받고싶다는 할머니의 마지막 소원은 결국 후세대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됐다.

전쟁 성폭력 피해자임을 온세상에 드러내고, 더 이상 이 세상에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말아야 한다고 눈물로 호소했던 고 김복동 할머니.

‘희망을 잡고 살자, 나는 희망을 잡고 살아. 나를 따라’라는 마지막 뜻을 남긴 채 돌아올 수 없는 곳으로 먼길을 떠났다.

취재 연출 : 송원근
영상 : 미디어몽구, 김기철
편집 : 윤석민
타이틀 : 정동우
영상자료 제공 : 정의기억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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