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아내 김건희, 주가조작 연루 의혹" 경찰 내사 확인
2020년 02월 17일 08시 00분
지난 9일 MBC <스트레이트>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장모가 연루된 이른바 ‘정대택 사건’에서, 나경원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가 별다른 이유 없이 재판을 1년 이상 미뤘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나경원 의원은 “판사가 일부러 재판을 지연시킨 것이 아니라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연기해준 것”이라며 “(MBC가) 또 다시 왜곡보도를 자행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 결과 나경원 의원의 주장과는 달리, 피고인 정대택 씨는 재판을 연기해달라고 요청한 적이 없었으며, 재판을 빨리 열어달라는 진정서까지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남편인 김재호 판사가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재판을) 연기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나 의원의 해명과 달리 피고인 정대택 씨는 한 차례 공판 기일이 연기된 후 계속 공판 기일이 잡히지 않자 공판을 조속히 열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대법원 홈페이지에서 이 사건을 검색해보면 2012년 8월 3일 피고인 정대택 씨가 탄원서를 제출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뉴스타파가 정 씨로부터 3페이지짜리 탄원서를 입수해 살펴본 결과 이 탄원서의 취지는 “윤석열 총장의 장모 최 씨가 재판부에 제출한 진정서의 내용은 모두 허위이며, 법원을 기망한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정 씨는 탄원서 마지막 부분에 “조속히 공판을 속행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주시기 바란다”고 썼다. 따라서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재판을) 연기해준 것”이라는 나 의원의 해명은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정대택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빨리 재판이 진행돼서 무죄를 받고 내 권리를 찾고 싶어했던 상황이었는데 내가 왜 재판 연기를 요구했겠느냐”며, “판사를 했다는 나경원 의원이 왜 그렇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는 소리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 13일 뉴스타파가 보도한 바와 같이 이른바 ‘정대택 사건’의 발단은 200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로 동업자 관계였던 사업가 정대택 씨와 윤석열 총장의 장모 최 씨가 건물에 잡혀있는 근저당부 채권에 투자한 뒤 53억여 원의 차익이 발생하자 그 차익을 둘러싸고 법적 분쟁을 벌였는데, 이 사건에서 윤 총장의 장모 최 씨가 형사와 민사 소송에서 모두 승소했다. 정 씨는 이 과정에서 뇌물을 받은 백 씨의 거짓 진술과 최 씨가 위조한 약정서가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해왔다.
이후 이어진 다른 사건의 재판에서 법무사 백 씨는 자신이 윤 총장의 장모 최 씨로부터 현금 2억 원과 최 씨의 딸 김건희 씨 소유의 아파트를 받고 위증을 했다며 양심고백했지만 결국 변호사법 위반으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살았고, 정대택 씨 역시 사기 및 강요 등 혐의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형기를 마치고 출소한 법무사 백 씨는 2008년 8월 12일 자신을 모해 위증 혐의로 처벌해달라며 송파경찰서에 자수를 했고, 정대택 씨도 이에 근거해 윤 총장의 장모 최 씨와 윤 총장의 아내 김건희 씨를 고소했다. 그러나 검찰은 이를 모두 불기소 처분했다.
검찰이 모든 사건을 불기소 처분하자 정대택 씨는 혐의 내용을 바꿔 재차 고소를 감행한다. 2010년 4월, 윤 총장의 장모 최 씨와 측근 김 모 씨 등을 무고와 소송 사기 혐의로 고소한 것. 그러나 이 사건을 수사하던 서울 동부지검은 이번에도 오히려 정대택 씨가 허위로 고소를 했다며 정 씨를 무고 혐의로 기소했고 구속영장까지 신청했다. (지난 기사에서 밝힌 바와 같이 고소 내용 일부가 허위라 해도 검찰이 무고 혐의를 인지해 기소까지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정대택 씨는 2004년에도 같은 일을 겪었다.) 검찰이 정 씨를 기소하자 윤 총장의 장모 최 씨는 정대택 씨를 명예 훼손 혐의로 추가 고소했는데, 이 명예 훼손 사건도 여기에 병합되었다. 검찰은 정대택 씨에 대해 1심에서 징역 5년을 구형했지만, 1심 판사는 벌금 천만 원을 선고했다. 검찰과 정대택 씨는 모두 항소했다.
나경원 의원의 남편 김재호 판사가 맡은 사건은 바로 이 사건, 즉 검찰이 인지해 정대택 씨를 기소한 무고 사건의 항소심이다. (서울동부지법 2012노161)
김재호 판사가 담당했던 이 사건의 첫 공판은 2012년 5월 29일에 열렸다. 정 씨에 따르면 첫 재판에서 김재호 판사는 “본 사건 외에 피고인이 재심 청구한 사건이 별도로 있는데 두 사건 중 어떤 것을 먼저 해야할지 고민이다”라고 말했다.
김재호 판사가 언급한 재심 사건은, 당시 정대택 씨가 제기한 또 하나의 소송이다. 자신에게 실형이 선고됐던 2004년의 형사 사건, 즉 최초의 사기 미수 및 강요 혐의 사건에 대해 2011년 2월 18일, 재심을 청구한 것이다. (서울동부지법 2011재노2) 법무사 백 씨가 위증을 고백했으므로 자신이 억울하게 당했다고 생각한 정 씨가 재심을 청구한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두 사건 중 어떤 것을 먼저 다룰지 고민’이라는 김재호 판사의 발언에 대해 피고 정 씨는 “병합을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안을 했고, 김재호 판사가 “그렇다면 병합신청서를 작성해 제출하라”고 말했다. 이에 정대택 씨는 약 일주일 뒤인 6월 6일 병합신청서를 냈다. 병합신청과는 무관하게 다음 공판 기일은 한 달 뒤인 6월 28일로 잡혔다. 그런데 다음 기일을 약 일주일 앞둔 6월 22일, 김재호 판사는 돌연 공판 기일을 연기했다.
나경원 의원은 페이스북에 게시한 해명글에 공판기일 명령서를 첨부했다. 그런데 이 공판기일 명령서를 보더라도, “피고인이 병합신청을 한 재심 신청 사건의 결정 결과에 따라 병합 여부를 결정하기 위하여 공판 기일을 변경함”이라고 되어있다. 즉 피고인 정대택 씨가 신청한 것은 ‘연기’가 아니라 ‘병합 신청’이었던 것이고, 김재호 판사가 이를 결정하기 위해 기일을 연기한 것이다. 더군다나 앞에서 밝힌 바와 같이 피고인 정대택 씨는 공판을 조속히 열어달라는 탄원서까지 제출했다. 따라서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연기해준 것”이라는 나 의원의 주장은 다시 한 번, 사실과 다르다는 게 확인된다.
김재호 판사, 재심 결과 나왔는데도 계속 연기
첫 공판 이후 단 한 차례 공판도 열지 않은 김재호 판사는, 2013년 2월 서울중앙지법으로 발령이 났다. 첫 공판 이후 약 9개월 만이다. (따라서 김재호 판사가 재판을 미룬 것은 약 9개월 정도다. 1년 반 동안 재판을 연기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사실과 다르다. 다만 정대택 씨 입장에서는 다음 공판이 2013년 12월 12일에 열렸으므로 ‘1년 반 동안 재판이 연기되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재판을 연기한 이유를 최대한 김재호 판사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재심 사건의 결과를 기다렸다”라는 해명이 가능하다. 당초 김재호 판사는 재심 사건을 본 사건과 병합해 심리하려 했으나 재심 사건이 다른 재판부로 배당이 됐다. 정대택 씨의 입장에서야 재심 사건이 다른 재판부로 배당되기 전에 병합을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을테지만 그것은 김재호 판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자신이 맡은 사건과 재심 사건의 쟁점이 동일하기 때문에 김재호 판사의 입장에서는 재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이 사건의 공판 기일을 연기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실제로 민사 재판에서 관련된 형사 재판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공판 기일을 연기한다든가, 혹은 관련된 상급심의 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재판을 미루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재심 사건의 결과는 2012년 9월 27일에 나왔다. 결과는 기각이었다. 따라서 재심 사건의 결과가 나온 9월 27일부터 자신이 중앙지법으로 발령받을 때까지 5개월 동안 김재호 판사가 공판 기일을 열지 않은 이유는 역시 석연치 않다. 판사 출신인 신인수 변호사는 “일반적인 형사 사건의 재판은 한 달에 한 번 잡는 게 통상적”이라며 “연관된 재심 사건의 결과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재심의 결과가 나온 뒤에도 5개월 동안 공판 기일을 잡지 않은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2013년 12월 12일, 김재호 판사에서 다른 판사로 재판장이 바뀐 뒤에야 재개된 이 사건 재판은, 2015년 8월 20일에야 선고가 내려졌다. 결론은 항소 기각, 벌금 천만 원이라는 1심 선고가 그대로 유지됐다.
정대택 씨는 이 사건의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3년 3월 윤 총장 장모 최씨의 측근인 김 모씨로부터 또 다시 무고 혐의로 고소를 당했다. 이에 대해 정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재판이 지연됨으로써 윤석열 장모 측에 시간을 벌어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이 고소 사건을 수사해 정대택 씨를 무고 혐의로만 4번째로 기소했고, 1심 법원은 2017년 1월 정 씨에게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징역 1년을 선고받고도 법정 구속을 면한 정대택 씨는 그해 9월 서울 중앙지검장이었던 윤석열 총장에게 억울함을 호소하는 편지를 보냈고, 한달 뒤 열린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이 유지되면서 법정 구속됐다.
정대택 씨는 “김재호 판사가 왜 재판을 미뤘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질문에 이런 가설을 제시했다.
검사가 1심에서 징역 5년을 구형하고 벌금 천만 원이 나오니까 항소를 했잖아요? 김재호 판사는 정대택을 구속시키라는 압력을 받았겠죠. 용기가 없는 판사 김재호는 무죄를 주자니 지금 압력을 넣은 사람한테 원망을 듣고, 그 사람들 말대로 (형량을) 올려치자니 피고인도 너무 억울할 것 아닌가... 그 두 가지 사이에서 방황하다가 놔두고 그냥 떠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결론적으로 보면, 정대택 씨의 무고 및 명예훼손 사건 재판을 담당했던 김재호 판사가 “피고인의 의사에 따라 (재판을) 연기해준 것”이라는 나경원 의원의 주장은 거짓이다. 그러나 김재호 판사가 “1년 반 동안 이유없이 재판을 연기했다”는 일각의 주장도 사실과 일부 다른 점이 있다. 김재호 판사가 재판을 연기한 것은 약 9개월 정도이며, 이 가운데 4개월은 “재심 사건 결과를 기다린다”는 명분이 있었다. (물론 김재호 판사가 당초 계획대로 병합 결정을 했더라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김 판사가 별다른 이유없이 재판을 연기했다고 확실히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재심 사건 결과가 나오고 난 뒤 자신의 인사 발령이 날 때까지, 약 5개월 정도의 기간이다.
취재 | 심인보 |
디자인 | 이도현 |
웹편집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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