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 '전두환 청산' 프로젝트 시작
2019년 08월 14일 17시 32분
5·18 광주항쟁 상황이 생생히 기록된 일본 외무성 문서를 뉴스타파가 입수했다. 1980년 5월부터 6월 사이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국 외무성에 보낸 164건, 500여쪽 분량의 정보보고서다. 일본 외무성은 이 자료를 ‘광주사태’라는 제목으로 편철해 지난 40년 간 일본외교사료관에 보관해 왔다. 뉴스타파는 1년여에 걸쳐 일본 정부를 상대로 기록공개 심사요청을 한 끝에 이 문서더미를 받아낼 수 있었다.
지난해 12·12 군사반란 40년을 맞아 전두환과 그의 일당들에게 다시 역사적 책임을 묻기 위해 ‘전두환 프로젝트’(https://newstapa.org/전두환프로젝트)를 기획했던 뉴스타파는 여러 명의 5·18 전문가들과 공동분석팀을 구성해 이번에 입수한 일본 외무성 문서를 해제하고, 취재했다.
뉴스타파는 이 일본 정부문서를 <[최초공개] 일본외무성 전두환파일>이라는 이름으로 5월 12일부터 연속 보도한다.
광주항쟁 40주년을 맞아 뉴스타파가 일본에서 입수한 총 164건, 분량으로 500쪽에 달하는 일본 외무성문서는 1980년 5월 9일부터 6월 17일 사이 주한 일본대사관이 일본 외무성에 보낸 정보보고서다. 일본 정부를 상대로 1년 넘게 해당 기록 공개 심사 요청을 해 온 전갑생 뉴스타파 전문위원(서울대 연구원)은 정보공개청구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일본은 30년이 지난 외교 문서를 공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본이 공개한 문서 중 1970년대 후반에서 1982년까지 한일관계와 관련된 문서 목록을 매달 체크해 목록화 작업을 했습니다. 그리고 10·26부터 광주항쟁까지와 관련된 문서 중 특별히 심사가 필요하다고 분류된 것들을 중심으로 정보공개 청구를 했습니다. 일본정부가 ‘국가기밀과 관련된 것들이 많다’거나 ‘개인정보가 많다’는 등의 이유로 공개 연장 통보를 하는 바람에 1년 정도 시간이 소요됐습니다.”
- 전갑생 뉴스타파 전문위원(서울대 연구원)
뉴스타파가 입수한 일본 외무성 문서에는 각 건별 문서번호와 함께 주한 일본대사관과 일본 외무성이 보고서를 주고받은 시간이 기록돼 있다. 문서 왼쪽에는 해당 보고서 열람권한이 있는 사람의 이름도 적혀 있는데, 일본 외무대신과 함께 일본 외무성 국장급 이상 고위간부들이 열람했다고 표시돼 있다.
164건의 일본 외무성 문서에는 각각 보안 등급이 매겨져 있다. 비(秘), 혹은 극비(極秘)라는 도장이 찍혀 있고, 또 각 문서의 본문 상단에는 A에서 C까지 별도의 보안등급이 매겨져 있는 식이다.
“아주 중요하고 의미가 있는 정보는 A급, 한국 정부나 제3자, 혹은 신문사 기자나 부장같은 중요 인물에게서 얻은 정보는 B급으로 분류해 놓은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 전갑생 뉴스타파 전문위원(서울대 연구원)
일본 외무성 문서파일에는 광주항쟁 당시 상황이 자세히 기록돼 있다. 5·18 당시 광주 상황이나 한국 군부의 움직임을 단순 전달하는 내용도 있지만, 한국 정치상황을 분석한 보고서들도 많다. 정치 상황 분석 보고서의 경우 대부분 당시 신군부의 실세였던 전두환의 움직임에 초점을 맞춰 작성됐다. 일본 정부가 이 문서더미를 ‘광주사태’라는 제목으로 묶어서 관리했지만, 사실상 ‘전두환 파일’로 불러도 무방한 이유다. 아래와 같은 문서 내용은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뉴스타파는 이번에 입수한 일본 외무성 문서를 여러 5·18 전문가들과 검토했다.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김용철 5.18기념재단 오월지기 등이다.
‘광주항쟁’, 그리고 ‘전두환 쿠데타’와 관련된 외국 정부 문서가 공개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1996년 공개된 미국 국무부 문서, 일명 ‘체로키 파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 문서의 공개는 오랫동안 감춰져 있던 ‘전두환 쿠데타’의 진실 규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뉴스타파를 통해 공개된 일본 외무성 문서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우리나라를 관찰해 왔던 일본 정부 문서의 문서라는 점에서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1996년에 미국 비밀문서가 대량으로 공개된 적이 있습니다. 5.18 진실규명에 큰 도움이 됐죠. 그런데 그 문서는 주로 미국 주한미대사관에서 미 국무성에 보내거나, 미 국무성에서 주한대사관으로 보내는 내용들이었기 때문에 미국 정부의 속내같은 것은 나타나 있지 않다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본 외무성 문서에는 우리나라 상황에 가장 민감했던 미국의 속내가 적나라하게 들어 있습니다. 글라이스틴 당시 주한 미국대사 같은 사람들이 일본 쪽에 정보를 공유하고 설명하는 과정에서 ‘미국이 왜 그런 판단을 하게 됐는지’ 등을 설명한 기록이 발견된 것이죠. 심지어 미국은 일본에 정보를 전달하면서 ‘이건 누구의 설명이고 견해다’라는 부분까지 밝히고 있습니다. 미국과 일본이 당시 한국 상황에 대해 터놓고 속마음을 공유한 내용이 많다는 점이 상당히 흥미로웠습니다.”
- 이재의 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내용들이 굉장히 많이 있습니다. 당시 일본 측은 전두환을 직접 만나기도 했고요. 신현확 국무총리나 최광수 대통령 비서실장, 민관식 국회의장 등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들었습니다. 신문사 기자나 편집장들, 글라이스틴 당시 미국대사도 만나 한국의 정치상황을 청취하고 기록했습니다. 이것이 이 일본 외무성 문서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 김용철 5·18기념재단 오월지기
광주학살이 벌어지던 1980년 5월, 일본은 한국에서 벌어진 일들을 시시각각 본국에 타전했다. 특히 광주에서 집단발포가 발생한 21일과 그 다음날, 전남도청 유혈진압 하루 전과 당일인 5월 26~27일에는 수십 건의 정보 보고가 집중됐다.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주한 일본대사관이 자국 외무성에 보낸 정보 중 상당수는 국내 언론보도보다 훨씬 앞섰다는 사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전두환이 상임위원장을 맡았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설치 사실은 우리 언론에 보도된 80년 5월 31일보다 4일 빠른 5월 27일 일본 외무성에 보고된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가 입수한 일본 외무성 문서에서 가장 의미있는 내용 중 하나는 1980년 5월 당시부터 지난 40년간 전두환 세력 등이 주장해 온, 이른바 ‘5·18 북한군 개입설’과 관련된 것이다. 이 부분은 최근 활동이 시작된 5·18진상규명위원회의 핵심 조사대상 중 하나다.
뉴스타파는 지난 40년간 반복돼 온 소위 ‘5·18 북한군 개입설’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주장인지를 보여주는 일본 외무성 문서를 5월 13일 공개할 예정이다.
취재기자 | 한상진 강민수 |
공동기획 | 전갑생(뉴스타파 전문위원), 이재의(5·18기념재단 비상임연구원), 김용철(5·18기념재단 오월지기) |
촬영기자 | 이상찬 신영철 오준식 |
편집 | 김은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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