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강원도 춘천에서 수십 년 만에 멸종 위기의 천연기념물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됐다는 소식이 대서특필됐다. 2020년, 뉴스타파는 다큐멘터리 '욕망의 곤충, 장수하늘소'를 통해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된 게 아니라, 발견된 것처럼 조작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최근 법원이 뉴스타파 보도 내용을 사실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놨다. 의정부지방법원 고양지원 형사7단독 재판부(판사 김주완)는 장수하늘소 유충 발견은 곤충학자들이 ‘조작’한 사건이었다고 판결했다. 뉴스타파 보도 4년 만에 조작 의혹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지난 2월 15일 고양지원은 장수하늘소 유충이 춘천에서 발견된 것처럼 속인 서울의 한 직업전문학교 손 모 교수와 국립과천과학관 소속 손 모 연구사에게 각각 징역 1년 6개월과 1년의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 구속했다.
이들은 ‘공전자기록등위작’, ‘위작공전자기록등행사’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공전자기록등위작’은'사무 처리를 그르치게 할 목적으로 공무원 또는 공무소의 전자기록 등을 가짜로 조작한 행위'를 말한다. 이들은 실험실에서 불법 사육해 온 장수하늘소 유충을 춘천에서 발견된 것처럼 조작, 신고해 천연기념물 관리 기관인 문화재청의 사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았다.
문화재청 허가 없이 자신의 실험실에서 출처 불명의 장수하늘소 유충을 불법 사육해 온 손 모 교수에게는 문화재보호법 위반죄가 추가로 적용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장수하늘소 유충을 채집한 사실이 없음에도 마치 숲에서 장수하늘소 유충을 채집한 것처럼 가장함으로써 문화재청으로부터 ‘춘천 추전리 소재 숲에서 채집한 장수하늘소의 사육을 허가한다’는 내용의 국가지정문화재 현상 변경 허가를 받기로 공모했다. 이는 천연기념물 장수하늘소를 좋아하고 관심을 두고 있는 국민들에게도 큰 충격을 준 조작 사건”이라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이 조작해 발표한 사안이 국내 곤충학계에서는 매우 중대한 것인데, 피고인들은 명예욕 등 개인적인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이 같은 일을 벌였다. 범행이 발각되지 않았으면 각종 지원금 등 명목으로 상당한 세금과 인력이 낭비되었을 것”이라고도 했다.
특히 손 모 교수의 경우 장수하늘소 유충 불법 사육에 제자들을 가담시켰다는 점에서 더 높은 죗값을 받았다. 재판부는 “장수하늘소 유충을 사육하면서 교수 신분을 망각하고, 자신의 제자들까지 이에 가담시키거나 묵인하도록 한 점 등을 모두 종합하면, 피고인들에 대해서는 실형을 선고할 수밖에 없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곤충학자 2명이 벌인 ‘장수하늘소 조작극’ 전말
2019년 10월, 문화재청은 강원도 춘천에서 장수하늘소의 유충이 발견됐다는 ‘희소식’을 알렸다. 장수하늘소는 천연기념물 제218호로 지정된 멸종 위기 1급 야생동물이다.
춘천에서 장수하늘소가 마지막으로 발견된 기록은 1937년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경기도 포천시 광릉숲에서만 서식한다고 알려졌다. 무려 82년 만에 다시 춘천에서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학계는 물론 곤충 애호가들 사이에서 엄청난 ‘사건’이었다.
2019년 문화재청이 수십 년 만에 춘천에서 발견됐다고 홍보한 장수하늘소 유충
유충을 발견한 사람은 서울의 한 직업전문학교 소속 손 모 교수와 국립과천과학관의 손 모 연구사 등 곤충학자들이었다. 두 명의 곤충학자는 강원도 춘천의 한 야산에서 장수하늘소의 유충 7마리를 우연히 발견했다고 문화재청에 신고했다.
언론은 장수하늘소 유충 발견 소식을 대서특필했다. 문화재청은 발견된 장수하늘소 유충이 변태를 거쳐 어른 벌레가 되고 산란하는 과정까지 지속적으로 홍보했다. 하지만 이 유충이 실제 자연상태에서 발견된 게 맞는지는 제대로 검증하지 않았다.
장수하늘소를 발견한 공로로 손 교수는 소속 학교에서 상을 받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 표창도 받았다. 손 연구사가 일했던 국립과천과학관에는 ‘장수하늘소 생태복원 연구실’이 신설됐다. 손 연구사는 장수하늘소 사육 책임자가 됐다.
하지만 당시 문화재청이 밝힌 장수하늘소 발견 과정에는 미심쩍은 부분이 많았다. 뉴스타파는 이 발견에 의문을 품고 전문가들과 함께 장수하늘소의 생물학적 특성을 토대로 당시 발견 과정을 하나하나 검증했다.
2020년, 뉴스타파 취재진은 두 곤충학자가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됐다고 주장한 나무를 직접 검증했다.
그 결과 ▲유충은 활엽수 속에서 수년 간 성장하는데, 발견된 장소가 침엽수림 지대였다는 점 ▲유충이 발견된 나무라면 어른벌레인 장수하늘소 성충의 흔적도 있을 텐데, 성충의 탈출공(벌레가 나무를 빠져오면서 생기는 구멍)의 흔적이 없었다는 점 등 조작의 개연성이 발견됐다.
결정적으로 장수하늘소 최초 발견자 중 한 명인 손 모 교수의 제자를 수소문해 실험실에서 수백 마리의 장수하늘소 유충을 몰래 사육하고 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이 같은 증거와 증언을 종합해, 2020년 7월 손 모 교수 등이 자신의 실험실에서 사육했던 장수하늘소 유충을 춘천시 북산면 일대로 가져가 야생에서 발견된 것처럼 꾸몄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국립과천과학관에 설치됐던 ‘장수하늘소 생태복원 연구실’은 문을 닫았다. 문화재청은 두 명의 곤충학자를 수사 의뢰했고, 법원은 뉴스타파 보도 내용을 모두 사실로 인정했다. 이렇게 춘천에서 82년 만에 장수하늘소 유충이 발견됐다는 소식은 ‘조작극’으로 막을 내리게 됐다.
국내 최초로 장수하늘소 인공 증식에 성공한 곤충 전문가인 이대암 영월곤충박물관장은 이번 재판 결과에 대해 “국가 기구 주도로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의 학술적, 문화적 기록을 왜곡하며 국내 학계가 오명을 뒤집어쓰게 될 일을 바로잡았다. 조작을 증명하기 위해 또 다른 조작이 꼬리를 무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수사 의뢰한 문화재청의 관계자는 “판결문을 검토해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겠다. 앞으로 현지 조사를 보다 신중히 해 (천연기념물 발견 신고의) 진위 여부를 가려내는 데 힘을 쏟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