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일 오전, 대법원 1호 법정. 세월호 승객 304명을 구조하지 못한 해경 지휘부 10명에게 무죄가 최종 선고됐다. 딱 8초 걸린 대법관의 낭독으로 참사 발생 9년 7개월 만에 사법적 판단이 종결됐다. 방청석의 유가족들은 짧은 탄식을 뱉은 뒤 어둡고 무거운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 11월 2일, 대법원 선고 직후 퇴장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
"몰랐다, 알 수 없었다, 예상할 수 없었다"
대법원이 쓴 판결문은 4쪽 짜리였다. 앞선 1심과 2심 법원의 판결에 법리를 잘못 적용하거나 판단을 누락한 잘못이 없다고만 적혀 있었다. 즉, 해경 지휘부에게 승객 구조 실패에 대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구체적 이유는 1심과 2심 판결문에 담겨 있다는 것이었다. 두 판결문을 다시 읽어봤다.
기소된 10명의 지휘부는 해양경찰청과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의 수장들, 그리고 상황실 핵심 간부들이었다. 사고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상태에서 각종 통신수단을 통해 현장 상황을 보고받고 판단해 지시를 내리는 위치에 있던 이들이다.
▲ 헬기 511호가 도착 직후 촬영한 세월호 사고 현장 모습
이들 지휘부는 현장에 가장 빨리 도착한 헬기 511호와 123정이 “해상에 사람이 없고 전부 배 안에 있다”고 보고한 걸 들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선장이 ‘승객들이 언제든 뛰어내릴 수 있도록’ 비상갑판에 대기시켜 놓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승객들에게 “선내 대기하라”는 방송이 계속되고 있다는 사실도 알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인정했다.
지휘부는 “배가 점점 기울어진다”, “곧 침몰할 것 같다”는 123정의 보고를 들었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세월호처럼 큰 배는 자체 부력이 있어 쉽게 침몰하지 않을 거라 판단했다고 주장했다. 하필 123정에는 현장 모습을 촬영해 전송하는 영상송출시스템이 없어 지휘부가 직접 눈으로 확인할 수 없었기에 정확한 현장 상황을 판단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인정했다.
지휘부는 퇴선 명령의 1차적 책임을 가진 선장과 연락을 취하려 노력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선장이 승객을 버리고 도주하리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도 없었으며, 실제 도주한 사실을 파악할 방법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매우 신중해야 하는’ 승객 퇴선 명령을 즉각 내릴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인정했다.
▲ 오전 9시 46분경 팬티바람으로 도주해 123정으로 올라타고 있는 이준석 선장
지휘부는 시간이 지나며 점점 상황이 심각해지고 있음을 인지했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123정에 “직접 배 위로 올라가라”, “배에서 뛰어내리라고 방송해 바다 위에서 구조하라” 등의 지시도 내렸지만, 평소 대형 여객선 인명구조 훈련을 해본 적 없는 100톤급 소형 경비정이었던 탓에 지시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인정했다.
지휘부는 이 과정에서 해경의 핵심 통신수단인 TRS(무선공용통신망)에 잡음과 혼선이 많았고, 보조 통신수단인 코스넷(문자상황보고시스템)이 123정과 헬기에 장착되지 않아 원활한 보고와 지시가 이뤄질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인정했다.
결국, 해경 지휘부는 당시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의 모든 일들을 “몰랐”거나 “알 수 없었”고 “예상할 수도 없었”기 때문에 적절한 판단과 지휘를 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모두 인정했다. 그래서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최종 판단했다.
▲ 대법원이 최종 무죄를 선고한 해경 지휘부 10명 (직책은 세월호 참사 당시 기준)
"조직적으로 무능했다면 개인은 처벌받지 않는다"
이들 해경 지휘부 10명은 지난 2020년 2월 검찰의 세월호 특별수사단에 의해 기소됐다. 혐의는 업무상과실치사상, 즉 업무상 필요한 ‘주의 의무’를 다하지 못해 세월호 승객들을 사망이나 부상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었다. 이때 ‘주의 의무’는 위험을 미리 ‘예상할 의무’와 그 위험을 ‘방지할 의무’로 구성된다. 결국 법원이 해경 지휘부 전원에 최종 무죄를 선고한 것은, 당시 여러 상황과 조건들로 인해 참사를 ‘예상’할 수도 없었고 이에 따라 적절한 ‘방지’ 조치도 취할 수 없었다고 판단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판결문은, 해경 지휘부가 참사를 예상하지도, 방지하지도 못하게 만든 ‘당시의 여러 상황과 조건들’이 바로 ‘해경 전체의 인적·물적 시스템의 무능과 부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세월호가 급격히 기울어진 지 15분쯤 지난 오전 9시 4분경, 세월호 로비 안내데스크에 있던 여객부 승무원 강혜성이 해경 122에 신고전화를 했다. 자신이 승무원임을 밝히며 “지금 선내에서 대기하라고 방송을 계속 하고 있”다고 말했다. 목포서 상황실 문명일 경장은 “예, 예. 계속 그렇게 해주세요”라고 대답했다. 문 경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승객들을 안정시키고 있다고만 생각해 위로 보고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지휘부가 선내의 승객 상황을 알 수 없게 만든 건 다름 아닌 해경 대원의 안일한 인식이었다.
▲ 해경 123정이 도착 직후 촬영한 세월호 사고 현장 모습
오전 9시 2분경, 사고 현장으로 향하던 123정은 세월호를 세 번 호출했다가 응답이 없자 교신을 포기했다. 현장에 도착하면 구명조끼를 입은 많은 승객들이 구명벌이나 구명정을 타고 물 위에 둥둥 떠있을 것으로만 생각하고 그냥 달렸다. 특별한 상황이 있다면 진도VTS나 목포서 상황실이 세월호와 교신해 자기들에게 알려주려니 믿고 그대로 30여 분을 달렸다. 반대로 목포서 등 각급 상황실은 123정이 출동 중 당연히 세월호와 교신해 배와 승객 상태를 파악하고 알아서 구조 계획을 세울 거라 생각했다.
결국, 현장에 도착한 123정은 바다 위에 떠 있는 승객이 하나도 없자 당황하며 갑판에 나와 있는 일부 승객들부터 눈에 띄는 대로 태우기 시작했다. 손 놓고 있던 해경 지휘부도 뒤늦게야 현장 상황을 알고 우왕좌왕하게 됐다.
오전 9시 45분경, 선장 이준석과 조타실 선원들이 배와 승객을 버리고 도주했다. 해경 지휘부가 예상할 수 없던 일이다. 그런데 그들을 태운 건 다름 아닌 해경 123정이었다. 대원들 일부는 이들이 선원임을 인지했다. 하지만 위로 보고하지 않았다. “복장을 보고 선원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빨리 다른 승객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 뿐이었다”고 말했다. 해경 지휘부가 늦게나마 승객 구조를 위해 선장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날려버린 것 역시 해경 대원들의 어이없는 판단이었다.
현장 보고와 지휘부 지시가 서로 엉키고 끊기며 제대로 소통되지 못한 것도 결국 TRS와 코스넷 등 해경 전체의 통신 시스템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부실했기 때문이었다.
▲ 선내에 진입하지 않고 바깥의 승객들을 일일이 구조바구니에 태우고 있는 항공구조사
출동한 해경 헬기에는 손도끼와 로프 등 선내 진입을 위한 기본적인 장비도 없어 설령 헬기에 탑승했던 항공구조사들에게 선내 진입 명령을 빨리 내렸어도 기대하는 결과를 얻기 힘들었다.
세월호가 뒤집어지는 순간까지도 123정이 끝내 승객 퇴선 방송을 하지 않고 스스로 빠져나온 승객들을 한 명씩 건져 올리고 있었던 것이 대형 여객선 인명 구조 훈련을 해본 적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어이없는 일이다. 대형 여객선은 매일 같이 연안을 떠다니는데 국민의 해상 안전과 생명을 지킨다는 해경이 그에 대비하는 구난구조 시스템을 전혀 갖추지 않고 있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침몰 직전 쏟아져 나오는 승객들을 태우고 있는 123정과 어선들
결국 해경 지휘부 10명이 승객 구조 실패에 대한 ‘법적 책임’을 완전히 벗어날 수 있었던 건, 역설적이게도 해경이라는 국가기관의 인적·물적 시스템 전체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무능과 부실 덩어리였기 때문이었다.
그날의 해경 지휘부는 이미 자기 조직의 수준을 잘 알고 있던 상태였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세월호가 그토록 급박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순간, 아무리 적극적인 판단과 지시를 한들 해경의 조직적 능력으로는 승객들을 모두 구조할 수 없으리라 예상했을지도 모른다. 차라리 아무런 판단과 지시를 하지 않음으로써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 2023년 2월 7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돌아가는 김석균 전 해경청장
그럼에도 규명해낸 구조 실패의 진상, 그리고 안전사회로의 길
결과적으로 304명의 희생에 대해 법적 책임을 진 건 현장지휘관이었던 김경일 123정장이 유일하다. 그는 3년의 형기를 마치고 2017년에 출소했다. 반면 김석균 해경청장 등 지휘부는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라 관리책임에 관한 질책의 대상이라는 게 법원의 최종 판단인 셈이다.
그러나 그 ‘질책’조차 제대로 받은 건 해임된 김수현 전 서해지방해경청장 뿐이다. 김석균 전 해경청장은 징계 없이 퇴임한 뒤 현재 한서대학교 해양경찰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법무법인 대륙아주 고문도 맡고 있다. 최상환 전 해경차장은 민간 구난업체 언딘에 특혜를 준 혐의로 직위해제 됐다가 소송에서 이겨 책임을 면했다. 김문홍 전 목포서장은 감사원이 해임을 요구했지만 강등 처분에 그쳤다. 이춘재 전 해경 경비안전국장은 치안정감인 해양경비안전조정관까지 역임하고 퇴임했다.
▲ 대법원의 해경 지휘부 무죄 확정 판결 직후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세월호 유가족들
하지만 해경 구조세력에 대한 사법처리와 행정적 징계가 극히 미미했다고 해서 지난 9년간 우리 사회의 진상 규명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참사 직후 아예 수사망에서 빠졌던 해경 지휘부 10명을 6년 만에 법정에 세운 건 유가족과 시민사회의 끈질긴 노력 덕분이었다. 비록 지휘부의 법적 책임을 묻지는 못했다 해도 2년 반의 재판 과정을 통해 참사 당시 해경 조직 전체의 구조적 무능과 부실의 실체가 남김없이 확인됐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규명해낸 참사의 진상이고 더 안전한 사회로 가기 위한 마중물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다가오고 있다. 지금의 해경은 그때와 얼마나 달라져 있는지, 이제는 백주대낮에 연안에서 대형 여객선이 쓰러져도 승객의 생명을 지킬 수 있는 조직이 되어 있는지를 면밀히 들여다보고 부족함을 채워낼 것을 요구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