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은 고사하고...검찰, ‘공안전담 재판부’ 노골적 주장
2014년 10월 29일 02시 29분
검찰이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소속 변호사에 대해 사실 왜곡까지 해가며 무리한 징계를 추진하고 있어 물의를 빚고 있다. 검찰은 이번 징계 신청에 대해 ‘불순한 의도는 없다’고 설명했지만 사실상 연이은 간첩사건 무죄판결을 이끌어낸 민변 변호사들에 대한 보복성 징계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11월 5일 윤웅걸 서울중앙지검 제2차장검사는 기자브리핑에서 민변 소속 변호사 7명에 대해 대한변호사협회 측에 징계 개시를 신청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업무 수행 중 발견한 변호사의 징계 사유에 대해 대한변협의 협회장에게 징계 개시를 신청할 수 있다.(변호사법 97조의 2)
이전까지는 주로 횡령, 사기 사건 등 법조인으로서의 윤리적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사건에 대해 징계 신청을 해왔지만 이번 조치는 이례적으로 공안사건이나 인권보호를 위한 변론 활동을 펼쳐온 민변 변호사들에 대해 이뤄졌다. 일부 변호사에 대해선 기소없이 징계를 신청한 것도 이례적인 모습이라는 것이 법조계의 반응이다.
검찰은 이날 브리핑에서 민변 소속 장경욱 변호사가 이른바 ‘북한 보위부 공작원’ 이 모 씨 사건을 변론하며 ‘진실을 은폐하거나 거짓진술을 해선 안된다’는 변호사 의무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8월 법정에 제출된 이 씨의 자필 편지가 주요 근거였다. 장 변호사가 이 씨에게 ‘보위부 문제 전부가 거짓이라고 해야 한다’는 말을 했다고 언급된 편지 내용을 토대로, 장 변호사가 피의자에게 허위진술을 하도록 종용했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취재진의 확인 결과, 이 편지는 한 구치소 직원의 회유에 의해 작성된 것이었다.
이 씨는 이 같은 사실을 법정에서 진술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 공판에서 이 씨는 ‘구치소 계장이 면담을 요청해 형기을 줄이기 위해선 변호사에 대해 부정적인 내용을 담은 편지를 국정원에 써야 한다’며 구치소 계장의 회유로 편지를 쓰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 사정에 어두운 이 씨는 이 같은 말을 순순히 따랐고 결국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장 변호사를 모해하는 편지를 작성한 것이다.
이미 사건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검찰 역시 이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을 리 없는 상황. 결국 검찰은 편지의 내용을 사실로 보기 힘들다는 정황을 알고 있으면서도 징계 신청의 근거로 삼은 것이다.
장변호사와 함께 검찰이 징계를 신청한 김인숙 변호사의 경우도 사유가 납득하기 힘들다.
검찰은 김 변호사가 세월호 사건 추모 집회에 참여했다가 경찰에게 상해를 입힌 혐의를 받고 있는 진 모 씨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자백을 원하는 의뢰인의 의지에 반해 진술 거부권 행사를 강요했다고 징계 신청 사유를 설명했다. 변론권을 넘어서 진실을 은폐하려 한 행위라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강요’가 있었다는 검찰의 주장도 사실이 아니었다. 취재진이 만난 사건의 당사자 진 씨는 ‘진술거부권 강요는 0.1퍼센트도 없었다’며 김 변호사의 조언을 참고했을 뿐 진술 거부에 대한 판단은 본인 스스로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진술 거부권은 자신이 원해서 행사한 것이라는 것이다.
헌법과 형사소송법이 보장하고 있는 피의자의 권리인 진술 거부권을 알려준 것을 두고 변호사의 의무 위반으로 본다는 것 자체가 검찰의 초법적인 발상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판사 출신 국회의원인 서기호 정의당 의원은 김 변호사에 대한 검찰의 징계 개시 신청서만으로도 이미 명백한 징계개시 신청권의 남용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신청을 받아 징계 여부를 결정하는 대한변협 측도 의뢰인에게 진술거부권을 알려준 것을 두고 김 변호사에 대해 징계를 신청한 것은 상식 밖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법률 전문가들은 권영국 변호사를 비롯한 나머지 5명의 민변 변호사에 대한 징계 신청 사유 역시 변호사의 권한을 악용한 비윤리적인 범죄행위를 막겠다는 변호사법 내 징계 조항의 취지와 벗어나 있다고 지적한다.
결국 사실 왜곡과 억지 주장에 근거한 이번 징계 신청은 증거조작 사건의 진실을 밝히는 등 검찰의 치부를 들춰온 민변에 대한 치졸한 보복전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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