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생에너지를 끄는 나라 VS 그린수소를 만드는 나라

2024년 05월 30일 18시 30분

우리 국민 대다수는 내가 쓰는 전력이 어디서 어떻게 오는지 모른다. 정부와 전력 당국의 노력 덕분에 지난 수십 년간 값 싸고 질 좋은 전력을 아무 걱정 없이 써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알아야 할 때가 왔다. 석탄과 가스로 지탱해 온 전력산업 전반이 송두리째 위협받고 있다. 원인은 기후위기다. 화석 연료가 뱉어 내는 탄소를 줄여야만 지구 도처에서 벌어지는 기후 재난의 심화를 조금이나마 막을 수 있다. 
기후위기가 몰고 온 변화는 자연재난으로 끝나지 않는다. 유럽은 탄소배출을 줄이기 위해 최소 십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대대적인 에너지산업 구조조정을 벌였다. 목표를 초과달성하며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급격히 늘려 가는 중이다. 이제는 자신들이 만든 새 무역 질서를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 강제하고 있다. 미국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은 주요 신재생에너지 설비 공급 물량을 과점하며 세계 시장 주도권을 손에 넣은지 오래다. 기후 자본주의가 도래하고 있다. 
강대국들이 에너지 전환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는 반면 우리는 제자리 걸음이다. 최근 수년간 탈원전이냐, 탈탈원전이냐를 놓고 극한대립을 벌이는 동안 우리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10% 미만으로 OECD 최하위권을 맴돌고 있다. 청정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제품을 팔 수 없게될 우리 대기업은 수 조원을 들여 앞다퉈 해외 공장을 짓고 있다. 
탄소 배출 감축 뿐만 아니라 수출 주도형 국가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화석연료에서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해야 하는 우리는 복합 난제를 마주하고 있다. 한국 자연환경에서 바람이나 햇빛으로 충분한 전력을 얻는 게 가능한지 묻는 회의론부터, 난맥상을 보이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 인허가 과정, ‘에너지 혈관’이라 할 수 있는 전력망의 부족, 이제는 짐이 된 경직된 전력시장 구조까지 어느 것 하나 해결이 쉽지 않다. 
뉴스타파는 에너지전환포럼, 방송기자연합회와 함께 한국 신재생에너지 핵심 대안으로 꼽히는 해상풍력의 세계 최강국, 덴마크를 방문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에너지전환의 진통을 소개하고 그 해결책을 모색하기 위해 덴마크의 상황을 3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3) 재생에너지를 끄는 나라 VS 그린수소를 만드는 나라
홍상기 G태양광발전소 대표 등 제주지역 태양광발전 사업자 12명은 지난 해 6월 8일 전력당국의 출력제한 조치가 부당하다며 광주지방법원에 행정 소송을 제기했다. 출처 : 전국태양광발전협회

법정으로 찾아간 태양광사업자들

홍상기(55) 대표는 원래 제주에서 토목 공사를 했다. 도로포장이 전문 분야였다. 2015년, 그는 업종 전환을 고민했다.
정부에서도, 도에서도 ‘앞으로는 신재생에너지로 가는 게 확실하다’, 그러더라구요. 방송에도 계속 그런 내용이 나왔어요. 농사짓는 것보다 태양광 사업하는 게 (벌이가) 괜찮다는 소문이 돌았죠.

홍상기 대표
국가가 정한 절차를 밟아 발전사업 허가를 받은 그는 2016년 2월 제주시 회천동에 750킬로와트(kw) 태양광발전소 가동을 시작했다. 일반적인 핵발전소나 대형 석탄발전소 용량의 1,0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규모지만, 홍 대표의 태양광 발전소는 대출금으로 마련한 ‘인생 2막’의 터전이었다. 그런데 2022년 4월 그에게 온 문자메시지 한 통으로 ‘사건’이 시작됐다.  
사전에 아무 얘기도 못 들었어요. 어느날 갑자기 한전에서 문자가 왔는데, 제주도 전력이 과잉 생산되니까 저희 태양광발전소 출력을 제한한다는 거예요. 그러고 나서 발전소에 연결된 전력망을 바로 끊어 버렸어요.

홍상기 대표
전력망 연결이 끊어지면, 태양광발전소는 생산한 전력을 보낼 수 없게 된다. 전력을 팔지 못하면 돈을 벌 수 없지만, 대출금 이자는 계속 나간다. 출력제한 통보를 받은 4월은 1년 중에도 태양광 발전소 효율이 가장 좋은 시기이다. 한 번 출력 제한을 받으면 태양광 사업자의 경우 적게는 10~20만 원, 많게는 60~80만 원의 손해가 발생한다. 
한전으로부터 ‘문자’는 수시로 날아왔다. 어떤 날은 카카오톡으로도 왔다. 전력거래소에 따르면, 제주 지역의 홍 대표와 같은 태양광 사업자들이 통보받은 출력 제한 조치는 2021년 1회, 2022년 28회, 2023년 64회로 급증했다. 결국 지난해 6월, 홍 대표를 비롯한 제주지역 태양광발전소 사업자 12명은 전력거래소와 한전, 산업통상자원부를 상대로 출력제한 조치를 취소해 달라는 행정소송을 광주지법에 냈다.

전력은 넘쳐도 정전이 난다

전력 과잉 공급 상황이 벌어져서 태양광 발전소 출력을 차단하는 현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낯선 이야기로 들린다. 일반인들에게, 정전이란 전력 공급이 부족했을 때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2011년 9월 15일 우리나라에서 일어난 순환 정전이 대표적인 사례다.
대규모 순환 정전이 발생했던 2011년 9월 15일 오후 경기도 의정부시의 한 마트에서 직원들이 손전등을 들고 진열된 상품을 살펴보고 있다. 출처 : 연합뉴스
정전을 막으려면 발전기를 충분히 늘려 전력 공급량을 늘리기만 하면 되는 걸까. 이는 반쪽짜리 처방에 불과하다. 수요보다 전력 공급이 많아도 정전은 발생한다. 우리 몸의 심장과 혈관에 알맞은 맥박 또는 혈압이 있다면, 전력망에는 적정 주파수, 다시 말해 ‘정격 주파수’라는 개념이 있다. 맥박이나 혈압이 기준치 이하로 떨어지거나 높아지면 생명 유지에 어려움이 생기는 것처럼 전력망 또한 적정 주파수 범위 내에서 운용돼야 한다.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이 일정한 직류와 달리, 발전기에서 생산되는 교류 전기는 플러스극과 마이너스극이 반복적으로 바뀌며 전류 방향이 달라진다. 주파수란 1초당 전류 방향이 바뀌는 횟수를 말한다. 한국은 1초에 전류의 방향이 60번 바뀌는, 60헤르츠(Hz)의 정격 주파수를 사용한다. 미국 등 북미의 정격 주파수는 우리나라와 같은 60헤르츠이고, 중국과 유럽 대다수 국가의 정격 주파수는 50헤르츠이다. 일본의 경우 동부 지역은 50헤르츠를, 서부 지역은 60헤르츠를 사용한다.   
정격 주파수를 설정하는 이유는 주파수 변동이 심할 경우 주요 전자기기의 수명과 효율에 심각한 타격을 입히기 때문이다.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초미세 공정의 경우 일정한 주파수의 전력 공급은 필수적이다. 주파수가 적정 범위를 크게 벗어날수록 발전기나 전자 기기 파손 위험이 커진다. 이 때문에 한국에서는 평상시 전력망의 주파수를 59.8~60.2헤르츠 범위에서 유지하도록 하고 있다. 
문제는 전력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지 않을 때 주파수 변동 폭이 크게 늘어나는 데 있다. 전력의 공급이 수요보다 부족할 경우 주파수는 하락하고, 반대로 공급이 수요를 앞지를 경우 주파수는 상승한다. 전력이 부족하든 넘치든, 주파수가 허용범위를 벗어나면서 발생하는 정전은 순식간에 세상을 ‘원시 시대’로 돌려 놓을 수 있다. 
우리나라에 전력 과잉 공급 문제가 본격적으로 대두된 것은 태양광발전이 늘어나기 시작한 2020년 즈음이다. 기상 상황에 따라 전력 생산 변동성이 큰 태양광발전소가 전력망으로 들어오면서 기존에 전력을 공급하던 원전과 화력 발전소 중심 체제와 충돌하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봄·가을철은 태양광 발전 효율이 가장 높은 시기이지만, 냉난방 설비 가동이 낮아 1년 중 전력 수요가 가장 적은 시기이기도 하다. 봄·가을철 줄어든 수요량에 맞춰 전력이 과잉 공급되지 않으려면 태양광 같은 신재생에너지와 원전, 석탄 발전 등 전통적 발전기 가운데 누군가는 전력 생산을 줄이거나 꺼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무슨 근거로 내 발전기를 끄는 건가”

전력 과잉 공급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는 대규모 정전(블랙아웃)을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일부 발전기의 출력을 제한하는 행위는 불가피한 조치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같은 불가피성을 인정하게 될 경우, 출력제한 조치를 당한 사업자와 정부 간 쟁점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게 된다. 전력이 과잉 공급될 때 어떤 기준에 따라 어느 발전기를 끌 것인가 하는 문제다. 그러나 출력제한 조치와 관련한 전력 당국의 기준은 외부에 구체적으로 알려진 바가 없다.  
실제로 제주지역 태양광 사업자들은 전력당국의 출력제한 조치가 적절한 사전 예고나 구체적인 기준 제시도 없이 막무가내로 벌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소송을 제기한 태양광 사업자들이 한전 등으로부터 받은 출력제한 통보 메시지를 보면, 출력을 제한하기 2~10분 전에 일방적으로 통보하거나, 심지어 출력제한을 이미 실시한 후에 통보한 경우도 있었다.
한전 제주본부가 지난해 4월 제주지역 태양광 사업자 A씨에게 발송한 문자. 
한전 제주본부가 지난해 4월 제주지역 태양광 사업자 A씨에게 발송한 문자. 한전은 출력 제한을 실시하기 9분 전에 사업자에게 통보하는가 하면(위), 이미 출력 제한 조치를 마치고 나서 뒤늦게 통보(아래) 하기도 했다
어떤 기준으로 출력을 제한할 발전소를 선정했는지, 이에 대한 이견이 있을 경우 어떻게 구제받을 수 있는지에 대한 안내도 없었다. 2012년부터 서귀포시에서 400킬로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를 운영하는 양석헌 대표도 2022년 봄부터 문자나 카카오톡 등을 통해 출력제한 조치를 통보받았다. 양 대표는 “한전에서 전력이 남아돈다고 무슨 법 45조를 운운하면서 출력 제어를 시킨다는 내용이었다”며 “도에서 설치한 주차장이나 건물 태양광도 많은데 무슨 기준으로 우리 발전소를 끄는 건지 납득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한전이 양 대표에게 보낸 ‘문자’에 언급된 법은 전기사업법 45조다. 전력거래소는 전력계통, 즉, 전력망 운영을 위해 필요한 지시를 할 수 있다는 모호한 내용이 있을 뿐, 출력 제한을 할 수 있다는 규정은 법에 존재하지 않는다. 전력거래소 또는 한전이 특정 발전소에 출력제어 지시를 할 수 있다는 권한을 명시한 것은 법이 아닌 산자부가 정한 고시(제2023-65호)이다. 이 고시에는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는 전력거래소와 송·배전사업자(한전)가 출력 제어를 시행하는 경우 이에 따라야 한다’고 돼 있다. 
이처럼 전력당국(한전)의 출력 제한 조치는 전기사업법 등 관련 법이 아닌 산자부 고시를 통해 규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제대로 된 보상 규정도 마련돼 있지 않다. 게다가 출력 제어를 명시한 산자부 고시조차 태양광발전 사업자에 대한 출력 제한 논란이 불거진 후인 지난해 4월 25일에서야 발표됐다. 전력당국이 임의로 출력 제한 조치를 내리다가 논란이 커지자, 뒤늦게 규정을 만든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는 이유다. 

전력이 넘칠 때, 전력 생산하면 돈 내는 나라

태양광발전소나 풍력발전소처럼 날씨에 따라 전력 생산을 종잡을 수 없는 재생에너지가 전력망 안에서 기존 발전소와 충돌하는 건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그러나 한정된 수요에 맞춰 재생에너지 전력을 쓸 것인지, 기존 발전소 전력을 쓸 것인지를 결정하는 기준은 전혀 다를 수도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덴마크 코펜하겐에 도착한 지난달 14일(토요일). 덴마크 전력 도매가격은 ‘0’원 아래로 떨어졌다. 북유럽 국가에서 거래되는 전력 가격 현황을 공개하는 노르드풀(Nordpoolgroup)에 따르면, 덴마크 양대 전력망(DK1, DK2)으로 송전되는 도매 전력의 가격은 이날 오전 10시부터 오후5시까지 7시간 동안 ‘마이너스’ 상태였다. 오후 1시부터 3시까지는 메가와트(Mw)당 도매 전력 가격이 마이너스 8만 8,514원(2023.4.15 원-유로 환율 기준)까지 하락했다.
취재진이 덴마크 코펜하겐을 방문한 지난 4월 14일 덴마크 전력망(DK1, DK2)에서 거래된 도매 전력 요금.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도매 전력 요금이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출처 : 노르드풀
한국에서는 있을 수 없는 ‘0원’ 미만의 도매 전력 가격인데, 덴마크에 있는 발전사업자가 이 시간 동안 전력을 생산해 송전할 경우 돈을 받는 게 아니라 돈을 내야 한다는 의미이다. 재생에너지 사업자나 기존 발전소 사업자 모두 돈을 들여 발전기를 건설하고 운영하며 생산한 전력을 내보내는데 돈을 받는 게 아니라 거꾸로 줘야 하는 것이다. 
이런 낯선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우리나라에서도 점차 늘어 나는 전력 과잉 공급 징후 때문이다. 화창한 날씨에 서서히 봄기운이 무르익던 덴마크의 4월 14일 토요일 낮 시간은 전력 수요가 가장 낮은 시기에 속한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재생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발전기가 가동하게 될 경우 과잉 공급으로 인해 전력망이 불안해진다. 
이때 덴마크가 택한 방식은 한국의 제주도 태양광 발전소처럼 특정 발전소의 출력을 강제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발전기를 가동하는 사업자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워 공급량을 떨어뜨리는 것이다. 노르드풀의 4월 14일 덴마크 전력 거래 가격 그래프를 다시 해석하면,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5시간 동안은 전력의 공급이 수요보다 많기 때문에 이 시간에 발전기를 가동하면 전력망에 부담을 주게 되고, 발전 사업자는 그만큼 돈을 내야 하는 것이다. 반대로 전력 수요가 증가하기 시작하는 오후 5시부터는 원래대로 전력을 팔아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구조가 된다. 
덴마크의 이런 전력 거래 방식이 가지는 큰 장점 중 하나는 전력 거래에 참여하는 모든 발전 사업자가 공개된 수요와 공급 지표에 따라 동등한 조건에서 전력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적절한 사전 예고나 구체적인 기준도 제시하지 않은 채 불시에 특정 발전소의 출력을 차단해 사업자들의 손실과 불안을 키우고 있는 한국의 사정과는 대비된다. 
덴마크에서 ‘마이너스 전력’이 가져다준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만약 전력 공급이 수요보다 많아서 전력이 남아 돌 때에 맞춰, 전력을 대량으로 쓰는 사업자가 있다면 어떻게 될까. 이 사업자는 전력 요금을 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기를 대량으로 쓰고도 돈을 벌 수도 있다.

“우리는 전력이 남을 때, 수소를 만듭니다”

덴마크 카쇠 지역에 위치한 유러피언에너지의 그린 수소-e메탄올 생산 공장. 유러피언에너지는 공장 부지 인근에 설치된 대형 태양광발전소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출처 : 덴마크 영상 공동취재단
지난 4월 16일, 취재진은 덴마크 유틀란드 반도 남부 카쇠 지역에서 건설 중인 한 공장터를 찾았다. ‘유러피언 에너지’라는 기업이 막바지 건설 중인 이 공장은 ‘그린 수소’와 e메탄올 생산을 위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산업용 수소는 천연가스를 고온·고압의 수증기와 반응시키는 과정에서 생산된다.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량의 이산화탄소가 지구 온난화를 가중시키기 때문에 ‘그레이 수소'라고 부른다. 반면 ‘그린 수소’는 태양광이나 풍력으로 생산된 청정 전기로 물을 분해하는 과정에서 얻는 수소를 말한다. 유러피언 에너지는 52메가와트 규모의 수전해 설비를 통해 연간 6,000톤의 그린 수소를 생산할 수 있다. 
카쇠 지역에 건설 중인 이 공장의 최종 목표는 e메탄올을 대량 생산하는 데 있다. 재생에너지 전력으로 생산한 그린 수소에, 가축 분뇨 등에서 추출한 이산화탄소를 합성해 e메탄올을 만드는 것이다. 굳이 e메탄올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일반 메탄올과 성분 면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지만, 친환경 전력으로 생산해 탄소 배출을 95% 가까이 줄였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유러피언 에너지가 풍력과 태양광을 이용해 애써 생산한 전력을 수소를 만드는 데 쓰고, 다시 복잡한 과정을 거쳐 e메탄올을 만드는 것은 연간 1억 톤에 달하는 전 세계 메탄올 시장을 e메탄올이 대체해 선점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대량의 벙커C유 등을 연소시켜 동력을 얻는 대형 선박 운용 기업은 유러피언 에너지의 주력 고객이다.
실제로 세계 최대 선박회사로 꼽히는 덴마크의 머스크는 강화된 국제 탄소 배출 규정을 맞추기 위해 다량의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벙커C유 추진 선박 대신 메탄올을 연료로 사용하는 선박을 잇따라 발주하고 있다. 한국의 HD현대는 2021년부터 18척의 메탄올 추진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머스크로부터 수주했으며, 올해 1월 1만6,200TEU급 ‘아네 머스크'호를 처음 머스크에 인도하기도 했다. 지금도 e메탄올 생산량의 절반가량을 머스크에 납품하고 있는 유러피언 에너지는 e메탄올의 수요가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밖에도 유러피언 에너지는 e메탄올이 저탄소 플라스틱의 원료로 이용될 수 있다는 점에 착안해 시장을 확장하고 있다. 장난감 회사로 유명한 ‘레고’와 글로벌 제약회사 노보 노디스크 역시 유러피언 에너지의 e메탄올 고객 중 하나다. 
유러피언에너지가 생산중인 e메탄올 샘플
탄소중립 이행 과정에서 e메틴올의 수요가 있다고 해도 결국은 e메탄올이 일반 메탄올에 비해 얼마나 가격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느냐가 성패의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재 일반 메탄올에 비해 2~3배가량 비싼 e메탄올의 생산 비용을 낮추기 위해서는 수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 소모되는 전력 비용을 줄여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유러피언 에너지가 주목하는 것이 전력 과잉 공급 시점에 확보한 전력을 십분 활용하는 것이다. 에밀 안드레센 유러피언 에너지 부사장은 “전력 사업자들이 전력 수요-공급 균형을 유지할 목적으로 저희에게 전력을 써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며, “(우리가 전력을 사용함으로써) 전력 수요와 공급 균형을 맞추는 데 기여하면 보상을 받는 시스템이 이미 마련돼 있다”고 말했다. 
전력 요금이 비쌀 때는 가동률을 낮췄다가 재생에너지 생산 전력이 늘면서 전력 가격이 갑자기 떨어지는 시점에 맞춰 가동률을 재빨리 높일 수 있는 수소 생산 설비 시스템을 구축했다는 게 유러피언 에너지의 설명이다. 유러피언 에너지는 기존의 풍력발전소 발전 취약 시간대를 보완하기 위해 수소 생산 공장 인근에 북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300메가와트 규모의 태양광 발전소도 운영하고 있다. 덴마크를 포함한 상당수 북유럽 국가는 한국보다도 태양광 발전 효율이 떨어지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뿐만아니라 유러피언 에너지는 EU의 탄소국경세(CBAM) 및 탄소배출권거래제(ETS) 등 기후위기 대응 제도의 도입·강화 흐름이 매출 증가에 큰 영향을 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지금 당장 한국이 덴마크처럼 될 수 없는 이유

덴마크가 한국과 달리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급격히 늘릴 수 있었던 데는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차이점도 작용했다. 에너지 전환 관점에서 큰 차이점은 한국과 덴마크의 전력 시장 구조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덴마크는 다수의 발전 사업자가 생산한 전력을, 다수의 민간 사업자가 사들여 일반 가정이나 기업에 판매할 수 있는 경쟁 체제를 갖추고 있다. 
반면, 한국은 한수원을 비롯한 한전의 발전 자회사들이 생산한 전력을 포함해 거의 모든 전력을 전력망을 관리하는 한전이 독점적으로 구매, 소비자들에게 판매한다. 이런 구조는 과거 60~70년대 개발도상국 시기에 구축됐다. 전력 산업에 투자할 대규모 자본 마련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발전소 건설과 운영은 물론, 전력망 운용, 전력 판매까지 전력 산업 전반을 정부가 한전을 통해 주도할 수밖에 없었던 배경이 있다. 
한국전력공사.
문제는 정부가 전력 요금의 결정부터, 발전소 및 전력망 건설 계획, 발전소 지원 정책까지 거의 모든 분야를 여전히 주도하는 가운데 곳곳에서 ‘누수’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국제 가스 가격이 급등하면서 전력 생산 단가도 치솟았지만 물가 안정과 반대 여론을 의식한 정부는 전력 요금을 제때 올리지 않았다. 그 결과 현재 한전의 누적 부채 규모는 200조 원을 넘어섰다. 전력 당국 관계자들이 ‘콩보다 두부가 싸다'고 말할 만큼 역설적인 전력 가격이 지속되면서 전력을 많이 쓰면 많이 쓸수록 이득을 보는 기형적인 구조가 안착됐다. 전력을 대량으로 소비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전력 사용량을 줄이고 효율을 높이려는 노력이 무의미하게 된다. 전력을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게 되는 한전 역시 막대한 예산을 들여 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한 송전망 건설에 적극 나서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기업이 사업성을 판단해 발전소를 짓는 것이 아니라 정부가 전력수급계획 등을 통해 미래 예상 수요에 맞춰 발전소 건설을 추진하는 방식도 심각한 부작용을 낳고 있다. 2011년 대규모 순환 정전 이후 전력 공급을 빠르게 늘려야 한다고 판단한 정부가 택한 카드는 신규 대형 석탄발전소 건설이었다. 그에 따라 2024년 현재 건설을 마치고 가동을 준비 중인 우리나라 동해안의 삼척블루파워 석탄발전소는 ‘탄소중립 시대’에 마지막까지 가동하는 대형 석탄발전소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조기 폐쇄를 추진한다 해도 이미 투입된 수조 원의 투자비와 국가로부터 약속받은 전력 판매 수익에 대한 합리적 보상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는 쉽지 않다. 
재생에너지 보급 정책 또한 난맥상을 보인다. 대표적인 것이 2012년 1월부터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공급의무화제도(RPS: Renewable Portfolio Standards)이다. RPS제도는 화석연료 중심의 대형 발전소 위주로 운영되는 한국 전력산업에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 위해 도입됐다. 
그러나 대형 발전사가 직접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늘리기보다는 제도 시행에 따른 비용을 한전에 전가하고 여전히 화석 연료 부문 투자에 집중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줬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정부는 최근 RPS 제도를 사실상 폐지하는 방침을 발표했지만, 이를 대체할 구체적인 대안이 제시되지 않아 의구심을 키우고 있다. 

‘섬나라’ 한국의 고민과 ‘동북아 슈퍼그리드’

지난 5월 28일 오후 7시(현지 시간) 기준 덴마크와 인근 국가들의 실시간 전력 거래 현황. 해당 시점에 덴마크는 영국과 노르웨이, 스웨덴, 독일 등으로부터 전력을 수입하고, 네덜란드에는 전력을 수출하고 있다.
덴마크와 한국의 또 다른 결정적 차이는 이웃 국가들과 전력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덴마크와 달리 한국은 전력망이 고립된 ‘섬’이라는 점이다. 전력 산업의 기본이 전력 수요와 공급을 안정적으로 일치시키는 데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북유럽과 동북아라는 지정학적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덴마크는 한국에 비해 훨씬 유리한 입지를 점하고 있다. 전력이 부족할 때는 이웃 나라에서 전력을 수입하면 되고, 반대로 전력이 남아돌 때는 전력을 수출하면 되기 때문이다. 전력 수입 또는 수출 과정에서 경제적인 손실이 발생할 수는 있지만, 당장 대규모 정전을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 1993년 EU 주도로 마련된 전력 시장 플랫폼 노르드풀은 덴마크를 포함해 영국,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등 북유럽 국가 간의 전력 거래를 관할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주변에 전력이 부족할 때 수입해 올 수 있는 국가도, 전력이 남아돌 때 보낼 수 있는 국가도 없다. 주변국과 전력망을 연계하려는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국과 북한, 중국과 러시아, 일본 등을 전력망으로 연결하는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은 이명박 정부, 박근혜 정부, 문재인 정부에서까지 줄기차게 거론됐다. 그러나 한반도의 외교·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 ‘비현실적’이라는 냉소를 받으며 소리 소문 없이 폐기됐다. 정책의 효용이나 구체적 이행 계획에 대한 분석보다는 정치적 이해 관계에 따라 어떨 때는 옹호했다가도 입장이 바뀌면 공격하는 경우도 있었다. 
2017년 12월 산업통상자원부가 공고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주요 과제로 제시한 동북아 슈퍼그리드 구상
사회적·정치적 합의에 기초한 정책 일관성 역시 덴마크의 에너지 전환에 큰 동력을 제공했다. 덴마크 녹색성장 민관협력기구 스테이트오브그린(State of Green)의 핀 모르텐센 사무총장은 “덴마크에서는 조세 정책, 공중보건 정책, 그리고 에너지 정책까지 3개 분야에 대해서는 반드시 여야의 합의가 필요하고, 일단 합의가 이뤄지면 최소 5년에서 10년 정도는 유지하게 된다”며 “정권이 바뀌어서 정책을 수정하려고 해도 여야가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여야 할 것 없이 모두가 2050년 탄소 중립을 외치면서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 에너지 정책이 180도로 뒤바뀌는 한국의 정치 상황과 대비된다.
자율경쟁 체제의 전력시장과 지리적 입지의 강점, 정치·사회 문화 역량. 덴마크를 재생에너지 강국으로 발돋움하도록 이끈 핵심 요소들을 살펴보면, 지금 당장에 한국이 실현하기는 어려운 것들이 많다. 재생에너지 도입 과정에서 덴마크가 겪었던 많은 시행 착오와 혁신 사례를 배우더라도, 한국이 스스로 풀어야할 에너지 전환의 복합 난제는 결국 그대로 남아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제주 태양광 소송의 ‘나비 효과’

오는 6월 13일 광주지법에서는 홍상기·양석헌 대표를 포함해 제주도 태양광 사업자 12명이 전력당국을 상대로 낸 출력제한 처분 취소 소송의 네 번째 변론기일이 예정돼 있다. 지난 3월 재판부는 전력당국이 출력제한 처분을 내린 구체적인 근거와 관련 자료를 제출할 것을 요구한 바 있다. 전력거래소가 출력제어 처분을 내리기 전날 수립했던 출력제어 계획, 당일 오전 수립한 출력제어 계획 조정안, 출력제어 처분 당시 모니터링 자료 등을 이번 기일에 공개할지 여부에 관심이 모아진다. 
이 소송에 이목이 쏠리는 이유는 출력제한 등 강제 조치를 취한 전력 당국이 구체적 근거를 공개한 사례가 사실상 전무하기 때문이다. 전력거래소가 어떤 규정과 자료를 근거로 특정 태양광 발전소의 출력을 제한했는지 밝히지 않는다면 재판에서 불리해질 수 있는 반면, 근거를 공개할 경우 타당성 여부를 놓고 치열한 후속 공방이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전력당국이 소송에서 질 경우 중요한 선례로 남아 비슷한 사건의 재판에서 계속 패배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는 막대한 손해배상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출력제한 근거가 공개될 경우 미치는 파급효과 또한 제주지역 태양광 사업자들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태양광 사업자들보다 앞서 출력 제한 조치를 받았던 제주도 풍력 사업자는 물론, 육지에서도 본격화되는 출력제한 조치 당사자들 역시 정부를 상대로 자신들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로 활용할 수 있다. 
기후솔루션의 김건영 변호사는 “어떤 기준과 순서에 따라 전력당국의 출력제한 조치가 이뤄지는지 소송 과정에서 확인할 수 있다면, 예측 가능성을 높일 수 있는 사업자로서는 보다 안정적인 태양광 발전소 운영 토대를 마련할 수 있게 된다”며 “나아가 전력 당국의 출력제한 근거 공개는 재생에너지 보급 확대에 필요한 전력망의 합리적 운영에도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브레이크 없는 원전 VS 날 뛰는 재생에너지

이번 ‘제주 태양광 소송’으로 상징되는 출력제어 논란, 전력망 부족 사태, 경직된 전력 시장 문제 등이 한꺼번에 대두된 배경에는 기후위기의 대안으로 등장한 재생에너지가 있다. 원전이나 화력발전소 같은 전통적 대형 발전기 중심으로 구축된 전력 산업에서는 쉽게 볼 수 없었던 갈등 양상으로,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벌어지는 필연적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나아가 우리나라 전력 생산 구조가 원전 중심이 됐든, 재생에너지 중심이 됐든 여야 할 것 없이 모두가 화석연료 사용 중단이 필요하다는 전제에 동의한다는 사실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 이전 정권에서도 그랬듯이 결국 우리나라에서는 가스, 석탄 발전소를 제외한 원전과 재생에너지 간의 갈등이 에너지전환의 주요 전장이 될 수밖에 없다. 
원전과 재생에너지 간의 갈등이 유독 부각되는 이유는 편향된 정치적 논란으로 비화한 탓도 있지만, 두 발전원이 갖는 근본 성격이 충돌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채 10%도 되지 않는 상황임을 감안하면, 지금의 윤석열 정부가 공언한 수준 정도로만 재생에너지가 확대되더라도 원전과의 갈등은 더욱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게 된다.   
경북 경주시 월성원자력발전소
흔히 경직성 전원이라고 불리는 한국 핵발전소가 가진 문제는 ‘브레이크 없는 대형 트럭’에 비유할 수 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재생에너지가 전력망 내부로 들어오는 순간, 시시각각 변화하는 기상 여건에 따라 전력 공급량이 변하면서 안정적인 주파수 유지가 힘들어진다.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전력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게 되면, 이를 소비해 줄 수요가 갑자기 늘지 않는 이상 나머지 발전원은 전력 공급을 줄여야 한다. 그래야만 전력 과잉 공급->주파수 상승으로 발생하는 대규모 정전을 막을 수 있다. 
문제는 우리나라 원전은 한번 가동을 시작하면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출력을 100%로 유지해야 하는 기술적 한계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값싼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원전의 규모를 지속적으로 늘려왔다. 다수의 대형 원전이 100% 가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태양광이나 풍력발전의 출력이 갑작스럽게 증가할 경우 전력망이 감당할 부담은 더욱 늘어나게 된다. 
일부 원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원전 역시 프랑스의 사례처럼 전력 수급 상황에 맞춰 출력을 낮출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2021년 10월 국회 국정감사장에 출석한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은 한국 원전이 부하추종 운전, 즉 전력수요에 맞춰 원전의 출력을 조절할 수 있는지를 묻는 의원들의 질문에 “부하추종운전은 처음 원전을 설계할 때부터 반영이 되어 있으면 모르겠지만, 그렇기 전에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라며 “저희가 현재 가지고 있는 원전으로는 부하추종을 하기 어렵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나라 원전 운영 기준의 기초를 제공하고 있는 미국 핵규제위원회(NRC)도 상업용 원자력발전기의 부하추종운전을 금지하고 있다. 비교적 최근에 가동을 시작한 일부 최신 원전의 경우 부하추종운전이 설계에 반영이 돼 있다고는 하지만, 출력을 임의로 낮출 경우 핵연료의 손상과 안전설비의 피로도가 증가할 가능성도 덩달아 높아진다. 때문에 한수원은 안전하게 원전의 출력을 조절할 수 있는 기술 개발을 추진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덴마크 카쇠 지역에서 유러피언에너지가 운영중인 태양광발전소. 출처 : 덴마크 영상 공동취재단
변동성이 강한 재생에너지는 정반대의 특성을 갖고 있다. 안정적 전력공급을 통해 전력망 운영에 기여하고 수익도 올렸던 원전 등 전통적 대형 발전기 사업자들에게는 재생에너지가 전력망뿐만 아니라 자신들의 기반마저 위협하는 ‘무법자’로 인식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일정한 전력을 안정적으로 생산하는 원전, 석탄발전, 가스발전과 달리 재생에너지는 기상 상황에 따라 생산하는 전력량이 급변한다. 때문에 재생에너지를 통한 전력 공급이 갑자기 늘어나거나 줄어들 때마다 반대로 여기에 맞춰 급히 전력 공급을 줄이거나 늘려줄 수 있는 발전원이 필수적이다. 이런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보완해 주는 발전원은 출력을 유연하게 제어할 수 있는 가스 발전기가 주로 담당해 왔다. 
그러나 가스 발전 역시 탄소 중립 목표 달성의 관점에서 보면 전력망 퇴출 대상에 포함될 수밖에 없다.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을 감당해 줄 대안으로 배터리 등을 이용한 대규모 에너지 저장장치(ESS)가 거론되지만 막대한 비용이 문제다. 또한 ESS의 화재 안전성 논란도 여전하다. 에너지전환 선진국들을 중심으로 남는 전력으로 수소를 생산하는 등 사용자들의 수요를 조절하는 사업을 활발히 모색하고 있는 것 또한 재생에너지의 변동성에 따른 충격을 줄이려는 노력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기울어진 대세…우리의 선택은

설비 용량이나 발전량 면에서 원전이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사정과 달리 재생에너지가 세계적인 흐름으로 굳어진 것은 사실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2023년 세계 신규 발전 설비 투자금 8,200억 달러 가운데 약 80%에 해당하는 6,590억 달러가 재생에너지 설비에 투자됐다. 
국내에서도 굳건해 보였던 원전의 위상이 재생에너지 확대로 인해 흔들리는 조짐이 실제 사례를 통해서 확인된다. 2020년 5월 2일 오후 7시부터 다음날 자정까지 29시간 동안 당시 우리나라 최신형 원전이자, 최대 규모 원전인 신고리 3, 4호기의 출력을 의도적으로 낮추는 출력 감발이 단행됐다. 당시 100% 출력으로 운전하던 신고리 3, 4호기는 출력을 서서히 낮춰 80% 출력으로 13시간가량을 운전하다 다시 서서히 출력을 높여 정상 출력인 100%로 복귀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에 위치한 신고리3, 4호기(새울 1, 2호기).
신고리 3, 4호기의 당시 출력 감발은 연휴를 맞은 봄철 전력 수요가 급감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전력당국이 원전 정상 가동으로 발생할 수 있는 위기를 미연에 방지하고자 내린 특단의 조치였다. 전체 전력 수요가 줄어들수록 대형 원전이 전체 전력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높아질 수밖에 없다. 만에 하나 신고리 3, 4호기 중 1기라도 갑자기 가동을 멈출 경우, 전력망 주파수가 적정 범위 아래로 떨어지면서 연쇄 정전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강제로 출력을 낮춘 것이다. 이날을 시작으로 전력망 운영 기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원전의 출력을 강제로 낮추는 상황은 매년 봄철이나 명절 연휴 기간에 반복되고 있다. 
전력 수요가 줄어들 때마다 대형 원전 가동으로 인한 전력망 불안도 커질 수밖에 없는데, 이전보다 크게 수요가 줄어드는 현상의 원인 중 하나는 소규모 태양광발전기의 보급 확대와 관련이 깊다. 소규모 건물 태양광 등 전력당국의 통제 밖에 있는 태양광 발전기(Behind-the-Meter)의 총규모는 5기가와트 안팎으로 추산되는 데, 이 태양광 발전기들이 봄철에 전력을 대량 생산하게 될 경우, 전력망에서는 전체 수요가 크게 감소하는 효과로 나타난다.  
다시 말해, 다수의 소규모 태양광발전기가 대규모 원전을 전력망 밖으로 조금씩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연간 전력 생산 비중이 5%도 되지 않는 태양광발전기와 풍력발전기가 30% 안팎의 전력을 생산하는 원전과 충돌하면서 벌어지는 상황의 심각성이 이 정도에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윤석열 정부는 재생에너지와 더불어 대형 원전을 동시에 확대하는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전영환 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재생에너지와 원전이 동시에 증가하면, 결국 전력망 내에서 충돌이 늘어나 원전을 정지 시키거나 재생에너지 출력을 제한해야 하는 상황도 같이 늘어난다”며 “정부는 현실성 없는 정책을 고집할 게 아니라 산업 전반에 퍼져 있는 비효율을 제거하고 전력시장 구조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제작진
촬영덴마크 영상 공동취재단
출판허현재
취재지원방송기자연합회 에너지전환포럼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