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B 청주방송에서 14년을 일했지만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하루 아침에 해고당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고 이재학 PD의 죽음에 대해 청주방송이 부당한 해고였음을 인정했다. 뉴스타파 보도 2주 만이다.
청주방송과 고 이재학 PD의 유족, 언론노조, ‘CJB 청주방송 故 이재학 PD 대책위원회’ 등 4자는 23일 오전 청주 서원구 청주방송에서 이번 사건을 해결하기 위한 ‘합의서’에 최종 서명했다. 이재학 PD가 목숨을 끊은 지 171일 만이다. 뉴스타파는 지난 8일 청주방송이 진상조사 결과에 따른 이행요구안을 수용하지 않고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청주방송은 고 이재학 PD의 사망에 관해 책임을 통감하고 진상조사위원회의 조사 결과에 대해 4자 대표자의 합의 정신에 따르기로 했다. 구체적인 이행안에는 △공식사과와 책임자 조치 △명예회복과 예우 △비정규직 고용구조와 노동조건 개선 △조직문화 및 시스템 개선 △방송사 비정규직 법‧제도 개선 등 6개 분야 27개 과제가 포함됐다. 이행 과제별로 이행 기한도 명시했다.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고 이재학 PD의 사망 책임에 대해서는 청주방송 이두영 전 대표이사 회장과 이성덕 대표이사가 유족과 조직 구성원, 지역사회에 공식 사과하기로 했다. 사과 내용에는 진상조사 과정에서 확인된 고 이재학 PD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사실, 소송 과정의 위법‧부당행위, 고인의 사망 원인 등에 대한 책임과 재발방지 약속이 담길 예정이다.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이사는 23일 기자회견에서 “청주방송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하고 고인과 유족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드린다”며 머리를 숙였다. 이 대표이사는 “고인의 근로자성을 인정해 명예사원증을 수여하고 유족을 모시고 직원 조회를 통해 공개 사과하겠다”며 “이번 일을 계기로 잘못된 점을 반성하고 과감히 고쳐서 새로운 마음으로 좋은 방송을 만드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책임자들에 대한 조치도 이뤄진다. 진상조사위는 고 이재학 PD의 사망에 대한 책임자와 일터 괴롭힘 가해자 명단과 징계사유, 징계수위를 회사에 별도 통보하기로 했다. 회사는 통보된 내용을 존중해 책임자와 가해자들에 대한 징계 절차를 한달 이내에 진행해야 한다. 특히 진상조사위는 고 이재학 PD를 해고한 당사자이자 재판 과정에서 이재학 PD의 동료들에게 진술을 번복하도록 압박한 하 모 국장에 대해서는 해고를 권고할 것으로 알려졌다.
고 이재학 PD는 2018년 4월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다 해고됐다. 고 이재학 PD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이재학 PD의 유지를 받들어, 청주방송 내의 비정규직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 사항을 마련하는데 힘을 쏟았다. 청주방송은 이번 합의에 따라 노동자성이 인정되는 조연출(AD) 직원 3명을 포함해 9명을 2020년 12월 31일, 2021년 12월 31일, 2022년 12월 31일까지 단계적으로 정규직으로 전환하기로 약속했다. 이들에 대해서는 이달 31일까지 정규직 전환 확약서를 작성하기로 했다.
작가 직군에 대해서는 작가 고용구조 개선 TF를 구성하기로 했다. TF는 부서별 작가 대표와 노조, 회사, 외부 전문가로 구성하는데, 여기서 정규직 전환 방식과 전환 시기, 전환 후 노동조건에 대해 논의하기로 했다. 청주방송에서 일하는 청소와 경비 노동자도 현재 도급계약이 만료되는 시점에 촉탁직으로 전환하고, CG제작과 운전, 행정 등 파견직으로 일하는 노동자 16명의 직접고용에 대해서는 청주방송 노사가 교섭으로 3개월 이내에 합의해 결정하기로 했다. 이처럼 민영방송사에서 전 직군에 걸쳐 다양한 종류의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기 위한 논의를 시작하는 사례는 전례가 없던 일이다. 이행 경과에 따라 다른 민영방송사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을 지 주목된다.
오정훈 언론노조 위원장은 “진상조사결과보고서는 지금까지 나온 어떤 진상조사보고서보다 촘촘하고 세밀하다”며 “청주방송 비정규직 문제뿐만 아니라 언론계 전체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주방송은 2023년 1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이행사항을 유족과 대책위, 노조에 통보해야 한다. 언론노조와 진상조사위는 향후 3년까지 이행점검에 대한 책임을 지고 가야한다.
고 이한빛 PD의 아버지인 이용관 대책위 공동대표(한빛미디어노동인권센터 이사장)는 “이재학 PD와 이한빛 PD가 꿈꾸었던 방송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단초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유족은 이번 협의 과정에서 가장 핵심 쟁점이었던 소송 문제에서 일정 부분을 양보했다. 이재학 PD는 청주방송을 상대로 노동자성과 부당해고임을 인정해달라는 내용의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다가 1심에서 패소했고 현재는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진상조사 결과 등을 통해 이재학 PD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사실이 밝혀졌지만 재판부의 판단을 받는 대신 해당 내용을 고인의 노동자성과 부당해고 사실, 청주방송의 사망 책임에 대한 인정 등의 내용을 담아 조정 절차로 종결하기로 합의했다.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 씨는 “형을 제외하고 모든 것이 정상으로 돌아오고 있다”며 “어렵게 최종 합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더 이상 형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생은 “이제 사측이 처한 상황과 입장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시간은 끝났다”며 “이제부터는 이행뿐이다. 모든 분들이 합의된 약속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관심있게 지켜봐 주시고 이재학 PD를 기억해 달라”고 당부했다.
진상조사 결과 수용을 요구하며 청주방송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던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는 이날 최종 합의가 되면서 농성장을 철거했다. 이성덕 청주방송 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이두영 전 회장이 이수희 충북민언련 사무국장과 조종현 민주노총 충북지역본부장을 상대로 제기한 명예훼손 손해배상 청구 소송도 취하할 것이라고 밝혔다.
취재 | 조현미 |
촬영 | 정형민 |
편집 | 박서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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