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론보도] <[백지 입양기록①]10년을 했는데 엉터리?...복지부, 입양 기록 전산화 사업 감사 착수> 관련
2024년 12월 11일 14시 32분
지난 2018년 4월 어느날. CJB 청주방송에서 일하는 이재학 PD(당시 37세)는 기획제작국 일일회의에서 하 모 당시 국장에게 함께 일하는 스태프들의 처우 개선을 건의했다. 당시 이재학 PD는 조연출, 작가들과 팀을 이뤄 ‘아름다운 충북’이라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었다. 이재학 PD는 스태프들의 회당 인건비를 올려달라고 제안했다. 하지만 둘 사이 대화는 언쟁으로 이어졌고 하 국장은 그 자리에서 이 PD에게 ‘그만두라’고 통보했다. 회의에 참석했던 다른 PD들은 옥상에 올라가 이재학 PD에게 “노동청에 부당해고로 신고하라”고 위로했다. 며칠 뒤 하 국장은 이재학 PD에게 다른 프로그램에서도 하차하라고 지시했다.
2004년부터 조연출로 시작해 14년 동안 청주방송에서 일했던 이재학 PD는 하루 아침에 일자리를 잃었다. 그가 10년 넘게 일한 방송사에서 그토록 손쉽게 ‘해고’될 수 있었던 이유는 정규직이 아닌 이른바 ‘프리랜서’ 비정규직 PD였기 때문이다. 이재학 PD는 노동자들의 고충을 상담해주는 단체인 <직장갑질 119>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직장갑질 119>를 통해 변호사와 상담을 하게된 이재학 PD는 2018년 9월 청주방송을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한다. 본인은 청주방송의 노동자로 부당해고임을 인정해달라는 내용이었다. 이재학 PD 사건을 대리한 이용우 변호사는 “다른 방송사에서 어느 프로그램을 별도로 한 적 없고 청주방송에서만 14년 이상을 근무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한 회사에 종속돼 근무한 것”이라며 “그렇게 근무하는 게 정규직이 아니면 뭐가 정규직이냐”고 말했다.
이재학 PD의 동료들은 이재학 PD가 청주방송의 노동자였음을 증명하는 진술서를 작성해줬다. 청주방송에 재직 중인데도 어렵게 진술서를 써준 동료도 있었다. 그런데 얼마 뒤 청주방송 측은 이재학 PD 동료들이 진술을 번복하는 취지로 작성한 사실관계확인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내용을 자세히 확인하지 못 했고 인간적인 관계를 생각해 서명을 해줬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회사 동료가 회사로부터 회유와 압박을 받는다는 소식에 이재학 PD는 몹시 괴로워했다. 특히 법정에 유일한 증인으로 출석한 하 모 국장의 증언은 이재학 PD를 고통스럽게 했다. 하 국장의 진술 요지는 이재학 PD가 본인 스스로 일을 그만둔 것이며, 프로그램의 메인 연출자도 아니었다는 것이었다.
“저희 형이 소송 과정에서 가장 억울해했던 부분 중의 일순위가 그 부분입니다. 본인이 14년 동안 해왔던 모든 것들에 대해서 증거 자료도 있고 동료들도 버젓이 살아있는데도 불구하고 모든 걸 눈앞에서 부정하고 거짓말했다라는 거…”
- 고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 씨
이재학 PD는 ‘프리랜서’ 비정규직이었음에도 정규직이 작성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 보조금 사업 공문도 본인 이름으로 작성했다. 정규직 PD가 담당해야하는 중계차 업무도 진행했다. 더군다나 이재학 PD의 노동자성을 입증해줄 회사의 외부 노무법인 컨설팅 자료도 있었다. 이 자료는 재판 과정에서 이재학 PD측이 법원에 문서 제출 명령을 내려줄 것을 요구해 받아들였지만 청주방송측이 끝내 “자료가 없다”며 제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진상조사 과정에서 청주방송측은 이 컨설팅 자료를 제출했다. 컨설팅 자료에는 이재학 PD가 출퇴근 시간이 고정적인 패턴을 보여 구속성이 높고, 타사 업무가 불가능해 전속성도 높다고 적혀 있었다. 즉 청주방송에 종속된 노동자로 판단될 여지가 높다고 본 것이다.
결국 회사측의 압박과 일방적인 주장 속에 진행된 재판은 이재학 PD의 패소로 끝났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다. 청주지방법원 정선오 판사는 올해 1월 22일 이재학 PD를 청주방송의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재학 PD를 해고한 당사자인 하 모 국장의 증언에는 신빙성을 부여하면서도, 진술서를 써준 동료들의 진술에 대해서는 법정에 증인으로 출석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신빙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재학 PD는 본인의 생일이었던 올해 1월 30일 패소 판결문을 전달 받았다. 그리고 닷새 뒤인 2월 4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정선오 판사의 판결은 과거 판례도 무시한 것이었다. 청주방송에서는 2012년 4월 프리랜서 조연출로 일하던 이윤재 씨가 과로로 사망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윤재 씨는 당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에서는 과로사를 인정받았지만 프리랜서라는 이유로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못 받았다. 결국 유족이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에서 청주방송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받았다. 당시 산재 사건을 대리했던 김민 공인노무사는 “근로자성에 대한 판결이 8년 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아무런 조치 없이 비정규직 프리랜서로 사용하다 14년이나 근속하신 분이 근로자로 인정을 못 받고 스스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 참담했다”고 말했다.
이재학 PD가 숨진 후 우여곡절 끝에 지난 2월 27일 진상조사위원회가 꾸려졌다. ‘CJB 청주방송 고 이재학 PD 대책위원회’와 이재학 PD의 유족, 언론노조, 청주방송이 추천한 위원 10명으로 구성됐다. 4자는 진상조사위 결과가 나오면 수용하고 해결방안과 개선방안을 즉시 이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지난 6월 22일 진상조사 결과가 공개됐다.
“이재학 PD는 청주방송의 노동자였으나 프리랜서라는 형식을 가졌기에 노동 조건 개선을 요구했다는 이유로 너무나 쉽게 해고되었고, 소송 과정에서도 위법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 1심 패소로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되었음을 확인하였습니다. 결국 이 죽음의 책임은 청주방송에게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 김혜진 고 이재학 PD 사망 사건 진상조사위원 (국회 기자회견 / 6.22)
그런데 진상조사위가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던 지난 6월 22일 국회 기자회견 자리에 청주방송 측 위원은 참석하지 않았다. 청주방송은 진상조사 마지막 회의에서 진상조사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2월 합의 내용에 따른다면 진상조사 결과를 수용하고 개선방안을 즉시 이행해야 하지만 청주방송은 지지부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행 방안에 대한 4자 합의가 몇 차례 뒤집히기도 했다. 지난 2일에는 4자가 고 이재학 PD 명예회복 방안과 진상조사위 이행요구안 실행 방안에 대해 잠정합의하고 7일 조인식을 하기로 했지만 청주방송의 내부 사정으로 또 연기됐다.
대책위와 유족 측은 그 이유가 이두영 청주방송 이사회 의장에게 있다고 주장한다. 이두영 의장은 지난 3월 이재학 PD 사망 사건에 책임을 지고 청주방송 대표이사 회장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방송국의 임원들은 협상 자리에서 ‘이두영 회장한테 지시받고 왔다’, ‘이두영 회장의 의견이다’라는 입장을 수차례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지난 1일 청주에서 어렵게 이두영 의장을 만날 수 있었다. 이두영 의장은 “이유야 어떻든 간에 당연히 유족에게 사과는 한다”면서도 진상조사 결과를 바로 이행하지 않는 책임은 본인이 아닌 이성덕 대표이사 사장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4자 합의는) 나하고 한 게 아니라 사장하고 했으니 사장이 책임져야 한다”며 “합의될 때까지 비밀로 하라고 했다고 해서 (사장이) 이사회에 보고도 안하고 나한테도 보고를 안 했다”고 말했다. 이두영 의장은 하 모 국장에 대해 “회사를 위해서 용단을 내리라고 했고, 개인돈으로 명퇴금까지 주겠다고 했지만 본인이 거절했다”고 말했다.
이번에 진상조사위가 청주방송의 비정규직 고용실태를 조사한 결과 올해 3월 현재 청주방송에서 근무중인 파견, 도급, 프리랜서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총 42명으로 정규직(78명)의 절반이 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재학 PD의 친구이자 직장 동료였던 A씨는 “이재학 PD가 기획제작국에 있는 조연출, 작가 후배들을 위해 판례를 남기고 싶어 했다”며 “그래야 공장 부품처럼 빼서 버리고 젊은 사람 갖다 끼우고 이런 짓은 안한다는 얘기를 한 적 있다”고 전했다. 이재학 PD의 동생 이대로 씨는 “청주방송이 이 기회에 암적인 것들을 다 도려내고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면 좋겠다”며 “그래야 형도 위에서 조금 웃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14년의 세월 어느덧 30대 후반이 되었는데 언젠가 고생한 거 알아주겠지란 생각으로 달려온 시간이 너무 억울하네요. 저에게는 힘을 주지 못하셔도 제 다음 생에 후배들은 정규직, 비정규직 설움을 못 느꼈으면 (하는) 바람으로 마칩니다.”
- 고 이재학 PD가 2018년 5월 <직장갑질 119>에 보낸 이메일 중에서
취재 | 조현미 |
촬영 | 정형민 신영철 |
편집 | 박서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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