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격자들]헌신의 대가, 소방관의 눈물
2015년 11월 23일 07시 05분
인천광역시 소방본부는 헬기 2대를 보유하고 있다. 한 해 보험료만 10억 원 남짓이다. 2015년 인천시는 국가종합전자조달 사이트인 '나라장터'에서 보험료 입찰을 진행했다. 이 입찰에 응찰한 보험사는 DB손해보험과 메리츠화재, 삼성화재 3곳이다. 3개 보험사의 투찰 가격은 모두 9억 5375만 원으로, 1원 단위까지 같았다. 인천시가 입찰공고를 내며 추산한 기초예산의 93%가 넘는 금액이었다.
인천시는 이 입찰을 유찰하고 보름 뒤 재공고를 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응찰한 보험사는 DB, 메리츠, 삼성 3곳 보험사였다. 보험사들은 보험료를 천만 원 정도 낮췄다. 하지만 역시 3개의 보험사들이 써낸 보험료는 9억4478만6000원으로 동일했다.
인천시는 2번의 유찰 끝에 결국 입찰을 포기하고 메리츠화재와 수의계약을 맺었다. 계약 금액은 재공고 입찰 때 보험사가 투찰한 금액(9억4478만6000원) 그대로였다. 전해년도 보험기간이 이미 만료돼 계약이 급한 상황이었다. 공개입찰은 무의미했다. 인천시는 가격 선택권도, 세금 절감의 기회도 잃은 셈이다.
소방청, 경찰청, 산림청 등이 보유한 국내 관용헬기는 100여 대다. 대당 도입비용이 수백 억 원에 이르기 때문에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보험 가입은 필수다. 매년 관용헬기 보험의 보험료로 지출되는 국가 예산은 100억 원이 넘는다.
뉴스타파는 나라장터에서 최종 낙찰이 이뤄진 헬기 및 항공보험 입찰 기록을 전수조사했다. 2007년부터 2018년 8월 현재까지 총 184건의 보험계약이 나라장터를 통해 이뤄진 것으로 나타났다. 그간 보험사가 낙찰받은 계약금액은 총 1,000억 원에 이르렀다.
이 금액은 나라장터 사이트를 통해 계약이 이뤄진 사례만 추린 것이다. 인천시의 사례 같이 유찰 후 수의계약을 맺은 경우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같은 계약까지 포함하면 실제 보험사가 관용헬기 보험 계약으로 받은 액수는 더 늘어난다. 업계가 추정하는 연간 관용헬기 보험시장 규모는 130억 원 수준이다.
매번 보험사들이 같은 투찰금액을 써내다보니 낙찰률은 90% 아래로 내려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전체 낙찰률의 평균은 94.4%다. 사실상 공개 입찰의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이같은 결과가 나타난 배경에는 손해보험사들의 노골적인 '짬짜미'가 있다. 헬기 보험에 입찰하는 손해보험사는 국내 모두 11개. 연례적인 입찰 공고가 나오면 보험사들은 3개의 컨소시엄으로 이합집산한다. 그리고 각 컨소시엄의 간사를 '뽑기'를 통해 결정한다. 간사사가 되면 실질적인 보험 업무를 담당하며 보험 계약의 가장 큰 지분을 챙긴다. 2015년 인천시 입찰의 경우, 응찰자인 3개 보험사가 각각 컨소시엄의 간사사들이다. 3개의 컨소시엄은 항상 같은 금액을 써서 입찰에 응한다.
컨소시엄에 참여한 보험사들은 뽑기에 떨어져도 손해볼 일이 없다. 해당 컨소시엄이 낙찰을 받으면 간사사는 컨소시엄에 소속된 보험사들에게 지분을 나눠준다. 계약에 기여가 없어도 마찬가지다. 드문 확률로 보험기간에 사고가 발생하면 지분에 따라 보험금을 분담하게 된다.
관용헬기 보험은 일반적으로 소비자들이 이용하는 보험과 보험료 산출 방법이 다르다. 예를 들어 보험 가입이 2천만 건이 넘는 자동차 보험의 경우 통계적으로 사고 발생 위험을 예측하는 것이 가능하다. 보험사는 이 통계를 이용해 직접 적정 보험료를 산출한다.
하지만 국내 100여 대에 불과한 관용헬기는 이 통계 기법을 적용할 수 없다. 때문에 가입자가 요구하는 보험 가입금액에 대해 어느 정도의 보험료를 책정해야 할지 산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보험업계에서는 보험 가입금액 대비 보험료의 비율을 '요율'이라고 부른다.
여기서 재보험사가 등장한다. 재보험사는 이같은 개별 보험사의 어려움 보완한다. 여러 보험사들의 보험 계약을 취합, 분석해 해당 분야의 요율을 산출해 낸다. 보험사는 재보험사와 계약을 맺고 재보험사가 제시하는 요율에 따라 가입자에게 제시할 보험료를 정한다. 요율대로 기초액을 정한 뒤, 여기에 재보험사와 보험사 자신의 수수료를 얹는 방식이다. 때문에 보험사가 어떤 요율을 갖고 있는 재보험사와 거래하느냐에 따라 가입자에게 돌아가는 보험료가 정해진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국내에는 전문 재보험사가 코리안리 한 곳 뿐이라는 점이다. 코리안리는 국내 재보험 시장의 70%를 점유할 정도로 독점적인 지위를 갖고 있다. 관용헬기 보험 입찰에 참여하는 모든 손해보험사 역시 코리안리 한곳과 각각 재보험을 계약을 맺었기 때문에 투찰 금액도 1원 단위까지 같게 나타난 것이다. 보험사들이 담합 의혹의 책임을 재보험 시장의 구조 탓으로 돌리고 있는 이유다. 코리안리 측은 국내 실정에 맞는 합리적인 요율을 제시해왔기 때문에 국내외 재보험 시장에서 신뢰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재보험사가 하나라서 보험료가 동일할 수밖에 없다는 보험업계의 해명에는 모순이 있다. 외국에 있는 수많은 재보험사를 고려하면 문제가 달라진다.
2015년 인천시 소방헬기 입찰을 검토했던 윤남하 윈윈손해보험중개사무소 대표(전 한국보험중개사협회 부회장)는 당시 입찰에 참가한 한 보험사에 해외 재보험사의 요율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그가 제시한 요율은 세계 최대의 보험인수조합이자 재보험시장인 영국 로이즈(Lloyd's)에서 입수한 것이었다.
윤 씨에 따르면, 보험사는 그가 소개한 해외 재보험사와의 거래를 통해 당시 9억4천만 원 수준의 보험료를 5억5천만~6억 원 수준까지 낮출 수 있었다. 국제적인 재보험 시장에서 형성된 요율인만큼 공신력 면에서도 문제가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윤 씨의 계산대로라면 현행 관용헬기의 보험료는 국제 시세 대비 약 50% 가량 높은 셈이다.
보험사 입장에서 윤 씨의 제안은 타사에 비해 가격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기회였다. 하지만 보험사는 윤 씨의 제안을 거절했다. 업계의 관행을 깨는 것이 어렵다는 이유였다. 보험료 인하를 종용하는 보험중개사에 대한 보험사들의 불편한 심리도 거절의 배경이라고 윤 씨는 말했다.
그런데, 올해들어 관용헬기 보험료 낙찰률이 극적으로 낮아지고 있다. 소방헬기의 경우, 90% 선의 낙찰률이 30% 대까지 떨어졌다. 입찰에 참여한 한 보험사가 해외 재보험사의 요율을 가지고 응찰하면서 보험료가 대폭 줄었다. 이 보험사의 보험료는 타사 대비 4억 원 이상 적었다. 담합 구조에 균열이 생긴 셈이다.
전문가들은 보험업계가 그동안 '바가지 보험료'를 받아왔다는 사실을 자인한 꼴이라고 말한다. 보험사들이 그간 해외 시장 개척이나 합리적 요율 산출 기법을 개발하기보다는 '떨어지는 감'을 기다리는 데만 신경써 왔다는 것이다.
국내 보험시장의 규모는 선진적입니다. 하지만 그 질에 대해서는 아직 선진적이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넓은 개념에서 보험은 복지입니다. 그만큼 사회적 측면을 간과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신뢰를 바탕으로 장기적인 흐름에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의 이윤 추구만 앞세울 순 없습니다. 소비자를 기만하거나 보험소비자 보호를 위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보험중개사를 배척하는 행위는 반드시 차단돼야 합니다.
해당 보험사 관계자들은 보험사들의 가격 경쟁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라고 말했다. 일부 보험사가 경영적 판단에 의해 낮은 보험료를 책정할 수 있지만, 그만큼 보험금 지급의 부담이나 위험성도 커지게 되기 마련이라는 주장이다.
공정위는 이미 2001년 관용헬기 보험료 담합 건을 조사한 적이 있다. 무혐의 결정이 내려졌다. 그런데 최근 보험가 국공영업부서에 다시 냉기운이 흐르고 있다. 국공영업부서는 국가기관이나 공기업을 대상으로 보험영업을 하는 부서다. 공정위 조사관이 예고없이 부서에 들렀다는 소문이 심심치 않게 돈다. 끝난 줄 알았던 관영헬기 보험료 담합 사건을 '경제계의 검찰' 공정위가 다시 들춰보고 있다는 의미다.
지난해 10월, 공정위는 공용헬기 보험료 담합 건을 다시 전원회의 안건으로 상정했지만 보류 결정이 내려졌다. 담합을 입증할 구체적인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였다. 공정위 일선 사무관들이 1년 이상을 꼬박 준비해 올린 조사보고서였다. 체면을 단단히 구긴 셈이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공정위는 재심의 절차를 거쳐 공용헬기 보험료 담합 건을 올해 다시 한번 전원회의 안건으로 올릴 방침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제는 어떤 식으로든 결론을 지어야할 문제다.
취재 : 오대양
촬영 : 신영철
편집 : 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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