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세금 도둑’에게 국회사무처를 맡겼다

2024년 01월 05일 14시 00분

뉴스타파는 지난해 여름부터 7개월 동안 시민단체·독립 및 공영언론과 함께 <검찰 예산 검증 공동취재단> 을 꾸려 검찰 예산을 검증해 보도하고 있다. 혼자가 아닌 여럿이 함께하는 공동취재의 위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협업 프로젝트다. ‘경쟁은 사익을 낳지만, 협업은 공익을 낳는다’는 말을 실감케 했다.
단체 한 곳의 의지만으로 3년이 넘는 소송의 시간을 버텨내기 힘들었을 테고, 난수표처럼 감춰진 6만 장이 넘는 검찰 특수활동비 자료를 끈기 있게 들여다보기 버거웠을 것이다. 탐사 보도의 대상이 방대하고, 규명해야 할 실체 추적이 복잡하게 얽혀 있을수록 ‘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뉴스타파·시민단체 협업 첫 프로젝트 : 국회 ‘세금도둑’ 추적(2017~2022년)

뉴스타파에 있어 ‘협업 프로젝트’의 원조는 ‘국회 세금도둑 추적’이다. 검찰 특수활동비 예산 정보와 마찬가지로 정보공개 청구와 행정 소송으로 받아낸 국회 예산 자료를 바탕으로 2017년부터 2022년까지 6년간 국회의원들의 세금 집행 실태를 전수 조사했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합심해 권력 기관의 예산 감시에 나선 첫 번째 협업 프로젝트였다. 
협업으로 일궈낸 성과는 컸다. 뉴스타파와 시민단체가 6년간 찾아낸 ‘세금도둑’ 국회의원은 80여 명에 이른다. 이들로부터 잘못을 시인받아 국고에 반납하게 한 예산은 2억 원이 넘는다. 자기의 하찮은 잘못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른바 ‘내로남불’의 세태가 퍼져 있는 풍토에서 국회의원들로부터 오남용한 세금의 환수 조치를 끌어낸다는 것은 녹록치 않은 작업이었다. 그만큼 의원들의 예산 반납은 그 금액을 떠나 값진 반응이었다.

국회 ‘세금도둑’ 중 백재현 전 의원, 반납액 3천 만으로 가장 많아 

뉴스타파가 폭로한 국회 ‘세금도둑’ 중 잘못 쓰인 예산을 가장 많이 반납한 의원은 백재현 전 의원(더불어민주당)이다. 그는 무려 3천만 원의 세금을 반납했다. 백 전 의원이 의정활동을 위한 정책연구용역을 수행한다는 핑계로 국회 예산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부정 사용한 수법은 표절과 무단 도용을 넘어선 것이었다.
실체가 없는 유령 연구단체를 만들고, 가짜연구원을 내세워 세금을 타내는 등 그의 세금 오남용 행태는 다른 의원들의 추종을 불허했다. 다른 의원들의 세금 오남용 수법은 ‘족탈불급’ 수준이었다. 
▲ 2019년 2월, 뉴스타파의 백재현 의원(더불어민주당)의 엉터리 정책연구에 대한 보도 

백재현, 유령단체·가짜연구원 동원해 9천만 원대 엉터리 정책연구 수행 

뉴스타파 취재 결과, 백재현 전 의원은 2011년부터 2018년까지 국회의원으로 있으면서 유령 연구단체 4곳에 모두 20건의 정책연구용역을 몰아주고 국회 예산 9,765만 원을 부정 수급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취재로 드러난 유령 연구단체는 ‘한국선진화포럼’, ‘한국경영기술포럼’, ‘한국조세선진화포럼’ 등이다. 공교롭게도 ‘포럼’이란 명칭을 붙였는데, 사업자·법인 등록도 하지 않아 실체를 파악할 수 없는 정체불명의 단체였다. (관련 기사 : '세금도둑' 국회의원 추적② 백재현, 선거운동원이 만든 유령단체에 세금 수천만 원 펑펑)
이들 유령 단체에서 ‘가짜 연구원’ 행세를 하며 백재현 의원실을 통해 국회 예산을 타낸 이들은 3명으로 확인됐다. 이들 ‘가짜 연구원들’이 만든 정책연구 보고서는 하나같이 다른 기관의 자료를 무단으로 베끼고 도용한 엉터리였다. (관련 기사 : '세금도둑' 국회의원 추적 ⑮ 백재현, 유령단체 4곳에 국회예산 1억 몰아줘
당시 뉴스타파 취재진은 ‘가짜 연구원’ 3명 중 2명의 정체를 확인했다. 각각 총선에서 백 전 의원의 선거를 도왔던 운동원, 여러 해 동안 백재현 의원실의 의정보고서 발간을 맡아 온 인쇄업자였다. 백 전 의원과 특수관계에 있던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당시 백재현 의원실은 뉴스타파가 인쇄업자와 백 의원실과의 거래 관계를 밝혀낼 때까지 “인쇄업자는 모르는 사람”이라고 거짓 해명했다.

백재현, ‘가짜연구원’ 신분 안 밝힌 채 예산만 반납 처리 

뉴스타파 취재진은 나머지 ‘가짜연구원’ 1명은 끝내 밝혀내지 못했다. 백재현 전 의원도 ‘방어권’ 차원에서 1명의 정체를 공개할 수 없다며 끝까지 버텼다. 백 의원은 자신을 위한 ‘방어권’인지, ‘가짜연구원’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권’인지 분명히 밝히지 않았다. 
이 밖에도 백재현 전 의원은 2017년 1월, 자신의 의원실에 있던 입법보조원 채 모 씨(당시 대학생)에게 정책연구용역을 맡기고 국회 예산 500만 원을 받게 한 뒤, 다시 의원실로 돌려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입법보조원 채 씨는 취재진에게 세금을 떼고 들어온 480만 원 가량의 돈을 전액 현금으로 인출해 백재현 의원실 보좌관한테 전달했다고 털어놨다. 다만 돈을 받은 보좌관이 누군지는 밝히지 않았다. 
▲ 뉴스타파 취재 결과, 백재현 전 의원이 오남용한 예산은 9,765만 원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백 전 의원은 그 중 1/3 수준인 3천만 원만 반납했다.  
취재가 시작된 이후 “자신은 모르는 일”이라며 버티던 백 의원은 결국 백기를 들었다.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면서 “표절과 무단도용이 밝혀진 정책연구와 관련해 (예산) 반납 조치 및 사과 등의 조치를 할 수 있는지 해결 방안을 찾겠다”고 했다.
백 전 의원이 반납한 국회 예산은 3,000만 원이었다. 국회 ‘세금도둑’ 의원 중 반납 금액이 가장 많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로 밝혀진 유령단체 4곳에 몰아준 9,765만 원에 비하면 반납액은 1/3 수준이다.  
▲ 서울영등포경찰서의 불송치 통지서. 백재현 의원 등 4명에 대해 증거불충분으로 혐의 없다고 밝혔다. 
검찰 고발도 이어졌다. 2018년 10월, 세금도둑잡아라 등 3개 시민단체는 백 의원을 국회사무처를 속인 사기 혐의로 서울남부지검에 고발했다. 사건은 검찰에서 서울영등포경찰서로 이첩됐다. 
경찰은 4년 넘게 사건을 끌더니, 지난해 2월 24일 백 전 의원에 대해 증거 불충분으로 혐의 없다며 불송치 결정을 내렸다. 결국 ‘9,000만 원짜리 세금 오남용 사건’은 백 전 의원실의 보좌관만 기소되는 것으로 끝났다.
무딘 경찰의 수사는 비껴갔지만, 싸늘한 여론은 피하지 못했다. 2020년 총선에서 백 전 의원은 불출마를 선언했다. 한 번의 경기도 의원, 두 번의 광명시장과 세 번의 국회의원을 이어오던 그의 공직 이력은 이렇게 끝을 맺는 듯 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백재현, 지난해 12월 장관급인 국회사무총장에 임명 

지난해 12월, 백 전 의원은 불쑥 공직에 복귀했다. 12월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재석의원 284인 중 찬성 260인, 반대 17인, 기권 7인으로 백 전 의원의 국회사무총장 임명안이 가결됐다. 
국회 사무총장은 장관급 정무직 공무원이다. 국회법상 국회 사무총장은 국회의장의 감독을 받아 국회의 사무를 총괄하고 소속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도록 돼 있다. 또한 입법 및 정책개발비 예산을 포함해 국회의원들이 쓰는 예산의 집행을 책임진다.
결국, 유령단체와 가짜연구원을 만드는 수법으로 국회사무처를 속여 9,000만 원이 넘는 입법 및 정책개발비를 빼돌렸던 ‘세금도둑’ 전직 의원이 5년 만에 국회 예산을 총괄하는 자리에 임명된 것이다.  
2018년 백 전 의원을 사기 혐의로 고발했던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국회사무처 예산을 엉터리로 낭비하게 한 사람을 국회사무처의 최고책임자로 임명한다는 것은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백재현 전 의원의 입법 및 정책개발비 문제를 국회의장과 각 정당이 알고도 국회사무총장에 임명한 것인지 등에 대해 국민들에게 해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 김진표 국회의장으로부터 국회사무총장 임명장을 받은 백재현 전 의원 (사진 출처 : 국회사무처)

“나이도 일흔이고 정치도 웬만큼 마무리하려는 사람인데, 그만 망신 좀 주라”

2018년 당시, 백재현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경기도 광명시에서 뉴스타파 기자를 만났지만, 공식 인터뷰는 거절했다. 백 의원은 오남용한 예산을 반납하겠다고 밝혔지만, 유령단체를 왜 만들었는지, 가짜연구원과의 관계는 뭔지 등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그는 기자에게 “나이도 일흔이고 정치도 웬만큼 마무리하려는 단계에 있는 사람인데, 그만 망신 좀 주라”고 말했다. 공직에서 물러날 테니, 더는 보도하지 말아 달라는 우회적인 하소연이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기자에게 “형·동생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정치를 마무리하려는 사람인데, 그만 망신 주라’했던 백재현 전 의원은 이 말을 뱉은 지 5년 만에 장관급 공직자로 다시 여의도에 입성했다. 백재현 전 의원은 국회사무총장 취임사에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국회의 상황은 더욱 심각합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가장 국민 신뢰도가 낮은 기관이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국회라고 합니다. 국회에 대한 국민 신뢰도는 24.1%로 중앙정부의 절반 수준에 불과합니다. (중략) 국회가 갈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정쟁의 장이 아닌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합의점을 찾는 정책의 장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야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고, 새로운 희망을 만들 수 있을 것입니다.

백재현 국회사무총장 취임사 (2023.12.28)
그동안 국회와 국회의원의 신뢰도를 갉아 먹은 건, 다름 아닌 백재현 전 의원을 포함한 수많은 ‘국회 세금 도둑들’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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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