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2021년 10월 4일부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주관으로 전세계 600여 명의 언론인과 함께 <판도라페이퍼스: 조세도피처로 간 한국인들 2021>프로젝트 결과물을 차례로 보도합니다. 국제협업취재팀은 트라이던트 트러스트, 알코갈, 아시아시티트러스트, 일신회계법인 및 기업컨설팅(홍콩) 등 14개 역외 서비스업체에서 유출된 1190만 건의 문서를 입수해 취재하고 있습니다. -편집자주
태광실업 고 박연차 회장이 생전에 개인 투자와 비자금 조성 등에 이용한 것으로 보이는 역외 페이퍼컴퍼니들이 ‘판도라페이퍼스’ 파일에서 발견됐다. 이 중 한 곳은 박 회장 사후에 아들 박주환 현 태광실업 회장에게 양도됐다. 고 박연차 회장은 지난 10여 년 전 한국 사회를 뒤흔든 이른바 ‘박연차 게이트’의 주인공이다.
‘판도라페이퍼스’ 파일에서 나온 고 박 회장 관련 역외법인은 모두 4곳, JS 글로벌 인베스트먼트(JS (Global) Investment INC·이하 JS 글로벌), JS 아시아 인베스트먼트(JS Asia Investment Co., Ltd·이하 JS 아시아), 아시아 캄보 디벨롭먼트 앤드 인베스트먼트(Asia Cambo Development and Investment Co., Ltd·이하 아시아 캄보), 아시아 퍼시픽 컴퍼니(Asia-Pacific Co., Ltd·이하 APC) 등이다.
이들 법인 관련 문서를 보면 박연차 회장이 2007년부터 10년 넘게 조세도피처인 홍콩과 영국령 버진아일랜드(BVI) 등에 회사를 설립해 자금을 운영한 흔적이 나온다. 이 중 BVI에 설립된 JS 글로벌은 박 회장이 사망한 이후 아들 박주환 회장에게 넘어가 현재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일신회계법인 대표의 이메일 “아버지의 페이퍼컴퍼니를 아들에게 양도한다”
▲ 일신회계법인 내부 이메일 중 박연차 회장 사망 이후 박 회장 소유의 BVI 회사 'JS 글로벌'이 박주환 현 태광실업 회장에게 양도된다는 내용
뉴스타파 취재진은 판도라페이퍼스 파일에서 JS 글로벌의 양도 사실을 보여주는 이메일을 발견했다. 지난해 1월 박연차 회장의 사망 직후 작성됐다. JS 글로벌의 단독 주주인 박연차 회장의 사망 사실을 언급하며 “이 회사의 소유권은 고인의 아들 박주환에게 양도된다”고 밝히는 내용이다. JS 글로벌 설립을 대행하고 관리해준 홍콩의 한국계 회계법인 일신의 대표 김찬수 회계사가 내부 직원들에게 보낸 메일이다.
해당 이메일에는 “고객이 두 회사의 2019년 12월 및 2020년 1월 관련 재무제표(financial statement)를 요청했다”라는 대목도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고객’이란 박주환 회장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여기에 언급된 ‘두 회사’는 바로 ‘JS 글로벌’과 ‘JS 아시아’다.
고 박연차 회장이 만든 이 두 회사 존재는 박연차 게이트 당시 검찰 수사 과정이나 그 이후 국세청 세무조사 과정 등에서도 한 번도 공개되거나 알려진 적이 없다.
박연차의 비밀 역외 법인 ‘JS 글로벌’과 ‘JS 아시아’
이 두 회사는 2007년 박연차 회장이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와 홍콩에 각각 설립했다. JS라는 이름은 고 박 회장의 아호 ‘정산(JeongSan)’에서 제이(J)와 에스(S)를 따온 것으로 추측된다.
BVI 회사 JS 글로벌은 “PO Box 957”이라는 우편사서함을 주소를 두고 있다. 전형적인 유령회사라는 단서다. JS 글로벌 설립 문서에는 박연차 회장이 100% 지분을 소유한 단독 주주로, 아들인 박주환 현 태광실업 회장이 이사로 등재돼 있다.
▲ 홍콩에 설립된 JS 아시아의 지배 구조 설명 문서
JS 아시아는 홍콩에서 설립됐다. 박 회장이 BVI에 세운 JS 글로벌이 JS 아시아의 주주다. 박연차 회장이 JS 글로벌을 통해 JS 아시아를 지배하는 구조다. JS 아시아는 홍콩 스탠다드 차타드 은행에 법인 계좌를 개설했다. 이 은행에 제출한 회사 관련 문서에는 JS 아시아가 ‘칭다오솅리레이저카빙’이라는 신발 부품 제조업체를 자회사로 두고 있다고 나온다. JS 아시아의 재무제표에는 칭다오솅리가 기타 자산으로 잡혀 있고 2020년 1월 기준 미화 287만 달러의 자산 가치가 있다고 돼 있다.
박연차 회장의 해외법인 활용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들 회사와 관련한 문서를 분석하는 과정에서 ‘채무 대체 계약서’라는 제목의 서류를 발견했다. 2007년 9월 작성된 이 문서는 박 회장 소유의 ‘APC’와 ‘아시아 캄보’라는 두 회사간 채권채무 관계를 JS 글로벌이 대체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APC가 아시아 캄보라는 회사에 빌려준 1650만 달러(약 194억 원)의 채권을 JS 글로벌이 양수한다는 것이다.
APC는 2009년 ‘박연차 게이트’ 당시 박연차 회장의 비자금 저수지로 알려진 바 있는 홍콩법인으로, 해외법인들의 원자재 납품을 ‘중개무역’한 것으로 위장해 거액의 자금을 조성할 수 있었다. 반면 아시아 캄보는 지금까지 알려진 바가 없다. 태광실업 측은 취재진에게 아시아 캄보는 박연차 회장이 개인 부동산투자를 위해 만든 회사라고 알려왔다.
▲ 고 박연차 회장이 소유했던 '아시아 캄보', 'APC', 'JS 글로벌' 사이 채무 관계가 드러나는 '채무 대체 계약서'
JS 글로벌이 APC의 채권을 양수한 이후 채권 총액은 2110만 달러(약 249억 원)로 늘어났다가 2015년에 모두 정리된다. 공교롭게 2015년은 박연차 회장이 부산지방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은 시점이기도 하다.
박연차 회장 사망 당시 작성된 일신회계법인 내부 이메일에는 JS 글로벌이 2014년 캄보디아 관련 대여금 미화 2110만 달러를 수금(“collect”)하는 과정이 언급되며 “전액이 박연차 회장에게 이체되었다”라고 적혀있다.
박주환 현 회장, 페이퍼컴퍼니 “설립에 관여하지 않아...”
뉴스타파는 고 박연차 회장이 소유했던 해외법인들의 설립 목적과 이들 사이의 배당금 지급 및 대여, 상환, 부분 상환 등 복잡한 거래 내역에 대해 태광실업과 박주환 회장에게 질의했다.
태광실업 측은 “(JS 글로벌과 JS 아시아는) 선대 회장의 개인 투자를 위한 회사”였고 “태광실업과는 관계가 없으며, 이에 대해 아는 실무자나 자료가 남아 있지 않다”고 답했다. 아울러 태광실업 측은 박주환 현 회장은 “설립에 관여하지 않았”고, 2015년에 박연차 회장이 부산지방국세청 세무조사를 받으며 “추징금 등 이백 몇십억을 내고 다 정리된 것으로 안다”고 주장했다.
한편 뉴스타파 취재진은 홍콩기업등록청 검색을 통해 JS 글로벌과 한 몸인 JS 아시아가 2021년 현재에도 ‘유효한 상태’임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