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림파괴는 기후위기의 주요 원인이다.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 주관으로 전 세계 39개 언론사, 140여 명의 언론인들과 함께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삼림파괴 문제를 취재했다. 뉴스타파는 지난 수개월간 진행한 국제협업 프로젝트 '삼림파괴 주식회사(Deforestation Inc.)'의 결과물을 세계 각국 언론사와 함께 차례로 보도한다. -편집자 주
지난해 12월, 뉴스타파 취재진은 충청북도 진천군의 한 야산을 찾았다. 산 중턱 넓은 지역이 처참한 속살을 드러냈다. 벌목 작업이 막 끝났는지 베어져 나간 나무가 곳곳에 쌓여 있었다.
▲사진 : 벌목된 나무를 싣고 있는 트럭
잠시 뒤 나무를 운반하기 위해 닦아 놓은 '운재로'를 따라 한 트럭이 벌목 현장에 들어왔다. 이 트럭은 통나무를 가득 싣고 어디론가 출발했다.
▲사진 : 목재 펠릿 공장으로 들어가는 통나무 트럭
취재진은 트럭을 따라갔다. 차 높이의 두 배 이상 나무를 싣고 위태하게 달린 이 트럭은 충북 진천에 있는 목재 펠릿 생산업체 A사의 공장으로 들어갔다. 목재 펠릿은 나무를 파쇄, 건조, 압축해 만든 연료의 일종이다.
▲사진 : 목재 펠릿
지난해 말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 ·International Consortium of Investigative Journalists)의 국제 협업 취재 제안을 받았다. 기후 위기의 요인인 삼림 파괴 문제를 글로벌 차원에서 함께 취재해보자는 요청이었다. 아마존 등의 열대림과 원시림 훼손은 전 지구적 문제가 된 지 오래다.
한국에는 아마존 삼림 파괴 같은 일은 없지만 삼림 벌채는 빈번하게 일어난다. 한편에선 국내 목재 소비량을 맞추기 위해 베트남이나 인도네시아 등에서 목재와 가공품 등을 수입한다. 이는 현지 삼림 파괴와 환경 오염을 유발한다.
기후위기 대응 위한 재생에너지?
충북 진천의 벌거숭이 산지와 트럭의 통나무 운반 장면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기후 위기와 재생에너지에 대한 짧은 설명이 필요하다. 오늘날 기후 위기의 주범으로 온실가스 배출 문제가 꼽혀왔다. 전 세계는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기 위해 석탄 화력발전 등 화석 연료 사용을 줄여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목재 펠릿은 기후 위기 대응과 관련이 깊다. 석탄 화력발전 감축을 위해 석탄을 대체할 에너지 원료로 눈을 돌리는 과정에서 '바이오매스'가 주목받았다. 바이오매스는 포괄적으로는 식물이나 미생물 등 유기물을 활용하는 에너지를 의미한다. 현실에서는 나무를 가공한 목재 펠릿이 이 바이오매스의 주를 이룬다. 발전소에서 석탄 대신, 목재펠릿을 태워 전기를 생산하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목재 펠릿이 바이오매스 연료 가운데 가장 많이 쓰인다.
나무를 에너지원으로 쓴다는 건 나무의 미이용 부산물을 활용한다는 개념에서 시작됐다. 예컨대 나무를 벌채하면 몸통을 제외한 잔가지는 버려진다. 목재 가공 과정에서도 잘라서 버리는 부분이 생긴다. 이렇게 쓸모없는 부분을 그냥 폐기하지 않고 재가공해 에너지 원료로 쓴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이른바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 정책이 이런 개념에서 나왔다. '미이용', 즉 가구나 합판, 종이 생산 등에 사용하지 못하는 나무를 연료로 쓴다는 것이다. 주무 부처인 산림청은 ▲수종갱신·목재수확을 통해 나온 원목에 이용되지 않는 부산물 ▲산지개발과정에서 발생된 산물 중 원목생산에 이용되지 않는 부산물 ▲숲가꾸기를 통해 나온 산물 등을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라고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뉴스타파 취재진은 그 이면에서 전혀 다른 현실을 포착했다.
멀쩡한 통나무가 발전소로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의 설명대로라면 목재 펠릿은 원목을 수확할 때 나오는 부산물, 즉 나무의 잔가지 등으로 만들어야 한다. 국내 최대 규모 목재 펠릿 제조사인 A 업체 역시 홈페이지에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를 활용해 '숲을 건강하게' 한다며 자사를 홍보하고 있다.
이 말이 사실일까? 취재진은 지난해 12월 이 업체가 운영하는 충북 진천의 목재 펠릿 공장과 경남 고성의 목재 펠릿 공장을 찾았다. 그리고 멀쩡한 통나무를 가득 실은 트럭이 이들 공장 안으로 진입하는 장면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
공장 내부에는 이렇게 어딘가에서 벌목된 통나무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다. 충북 진천 공장과 경남 고성 공장에서 모두 통나무를 확인했다.
▲사진 : 공장 내부의 통나무
나무의 부산물로 목재 펠릿을 만든다면서 버젓이 공장으로 들여온 통나무들은 뭘까?
취재진은 벌목 작업이 끝난 진천의 한 산지를 찾았다. 이곳은 원목을 '펄프(종이)·제재' 용도로 쓰겠다며 벌채 허가를 받은 산지였다. 그러나 허가 내용과 달리, 이 원목은 목재 펠릿 제조 공장으로 갔다.
목재 펠릿은 나무의 용도 중 가장 저부가가치의 산물이다. 원목 건축재나 가구재처럼 한 번 만들어지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발전소에서 연소되면 더 이상의 쓰임이 없기 때문이다.
기후솔루션 송한새 연구원은 "사실 우리가 귀중한 삼림 자원, 목재 자원을 활용할 때 정 활용을 해야 한다고 하면 주로 가구나 건축용 같은 긴 수명의 고부가가치 상품으로 활용을 하는 게 가장 이치에 맞다"며 "그런데 좋은 나무들을 다 펠릿으로 갈아버려서 발전소에서 태워버린다는 것은 우리 삼림 자원의 엄청난 낭비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특히 목재 펠릿은 재생에너지라는 이름으로 활용되고 있고, 산림청 역시 목재 펠릿을 "재생 가능한, 청정에너지"라고 홍보하는 건 문제다. 산림청의 주장처럼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를 활용하는 게 아니라 멀쩡한 원목을 활용하는 것이라면 이는 재생 가능한, 청정 에너지라고 볼 수 없다.
위 산지에 벌목 허가를 내준 진천군청 관계자도 "원목 자체가 미이용으로 쓰이면 안 된다. 원목 자체는 원목은 다 원목 제재나 용재로 나가야 되는 게 맞고 가지나 잎은 미이용 산물로 가는 게 맞는 것"이라고 말했다.
취재진이 이 산지에서 벌목된 원목이 목재 펠릿 공장으로 들어갔다고 말하자 이 관계자는 "(원목이 펠릿 공장으로 갔다는) 제보가 있었던 거냐"고 반문했다.
A업체는 뉴스타파에 "주로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 목재펠릿을 생산하고, 일부 일반적인 목재펠릿도 생산한다. 원료재(저부가가치 ·저품질)급 원목은 건조용 연료와 일반적인 목재 펠릿 생산에 활용한다"며 "지속가능한 원목을 이용한 목재펠릿 제조는 합법적이고 당연한 제조사의 권리"라고 해명했다.
데이터가 보여주는 현실
목재 펠릿에 원목이 들어가는 이유는 간단하다. 나무의 부산물이나 잔가지만으로는 발전 효율이 높은 고품질의 목재 펠릿을 만들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로 목재 펠릿을 만든다고 해도 에너지 효율상 원목을 함께 써야 하는 구조다.
이는 A 업체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산림청에서 공개하는 목재이용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목재 펠릿에는 미이용 산림 바이오매스가 54%가 사용된 반면 원목은 41% 사용됐다. 목재 펠릿 제조에 미이용산림바이오매스 못지 않게 통나무가 쓰이고 있다는 의미다.
▲사진 : 산림청 목재이용실태조사 보고서(2021)에 따르면 목재펠릿에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가 약 54% 사용된 반면 원목은 약 41% 사용됐다.
목재 펠릿이 탄소 더 많이 배출
목재 펠릿에는 문제가 더 있다. 바로 목재 펠릿을 연소할 때 나오는 온실가스다. 이미 많은 국내외 전문가들이 목재 펠릿 등 바이오매스의 탄소 배출 문제를 지적하고 있다.
산림 기후 관련 해외 전문기관인 PFPI((Partnership for Policy Integrity)가 작성한 보고서에 따르면 나무는 천연가스와 역청탄(석탄의 종류)보다 열량 단위당 탄소를 더 많이 배출한다. 국내 기후환경 전문기관인 기후솔루션은 실제 국내 발전소의 바이오매스 온실가스 배출량을 계산했다. 같은 양의 전기를 만들 때, 바이오매스 만으로 에너지를 발전하는 영동 1호기의 탄소배출량이 석탄 발전을 하는 영흥 5,6호기보다 높았다. 목재펠릿을 만드는 전 과정, 즉 벌채부터 가공, 운송, 발전까지를 고려하면 탄소 배출은 더 많아진다.
그런데 이렇게 석탄보다 더 많은 탄소를 내뿜는 목재펠릿을 왜 사용하는 걸까? 국가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지침을 만드는 국제기구 IPCC(Intergovernment Panel on Climate Change)가 국가별 탄소배출량을 산정하는 방법 때문이다.
IPCC는 국가별 탄소배출량 산정의 가이드라인을 제공하는 국제 기구다. 그런데 이 IPCC가 산림 에너지의 탄소를 산정하는 방식은 석탄과는 다르다. 석탄과 달리, 나무는 태울 때가 아니라 벌목할 때 탄소 배출량을 산정한다. 보다 정확하게는 탄소 축적 변화량(Carbon Stock Change)을 산정하는 방식이다.
나무는 탄소를 흡수하고 저장하고 있다. 이런 나무가 벌목이 되면 그만큼의 탄소 축적량(저장량)이 감소한다. 이는 탄소가 배출되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기 때문에 벌목시에 탄소 변화를 책정하고 산정하는 것이다.
대신 발전소에서 에너지로 태울 땐 탄소배출량을 산정하지 않는다. 이미 벌목할 때 한 번 계산했기 때문에 중복 산정을 피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방식에 따라 IPCC의 가이드라인상 바이오매스의 탄소배출량은 '0'이 된다.
하지만 이는 단지 탄소배출량 산정 상의 이유일 뿐이지 목재 펠릿이 탄소 배출을 하지 않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말은 아니다. IPCC의 홈페이지에도 "바이오의 경우 에너지 분야에서 배출량을 계산하지 않는다고 해서 지속가능하다거나, 탄소중립 에너지라고 해석해선 안 된다"고 적혀있다.
또 탄소배출량에는 산정하진 않지만 목재 펠릿을 태울 때 실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서는 적시하고 있다. IPCC의 2006 온실가스 배출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목재펠릿 연소 때 온실가스 배출 계수는 석탄이나 석유보다 높다.
일부 선진국에서는 이 목재 바이오매스의 문제점을 인식하고 개선하고 있다. 유럽연합에서는 지난해 9월 산림 바이오매스에 대한 재생에너지 보조금을 제한하는 재생에너지지침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미국 매사추세츠 주에서는 바이오매스 발전소가 석탄 발전소보다 탄소를 더 많이 내뿜는다는 주정부 용역 결과에 따라, 새로 생기는 바이오매스 발전소에 신재생에너지 보조금 지급을 하지 않는 법안(Act Driving Clean Energy and Offshore Wind)을 지난해 8월 통과시켰다.
거꾸로 가는 한국...산림 바이오매스 확대
하지만 산림청은 바이오매스 이용을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이다. 산림청 홈페이지에 공개된 목재펠릿 통계자료(2018년 12월 기준)에 따르면 산림청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0년간 산림바이오매스 확충사업으로 약 1460억의 예산을 집행했다. 2021년 12월에 작성된 <2050 탄소중립 산림부분 추진 전략>에는 "목재와 산림바이오매스의 이용 활성화", "탄소저장능력이 인정된 소재인 목재 이용 확대가 필요하다"고 적혀있다.
산업부에서 책정하는 '신재생에너지 가중치'는 발전사들이 산림 에너지를 더 이용하도록 이끈다. 정부의 RPS제도(일정규모 이상의 발전사업자에게 총 발전량의 일정 비율 이상을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하여 공급토록 의무화한 제도)에 따라 대형 발전사들은 신재생에너지를 일부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한다.
발전사들은 신재생에너지를 공급했다는 '공급인증서(REC·Renewable Energy Certificate)'를 받아 신재생에너지 의무 발전 이행 사실을 증명한다.
그런데 이 공급인증서는 에너지원마다 각기 다른 가중치를 부여한다. 환경 영향, 발전 단가 등을 고려해 가중치가 책정되는 것이다. 가중치가 높으면 신재생에너지를 더 많이 공급한 것으로 계산된다. 현행 REC 가중치는 목재 펠릿에는 0.5,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에는 최대 2.0이 적용된다. 가중치는 최대 2.5(해상 풍력)까지 부여된다.
신재생에너지를 의무 공급해야 하는 발전사들은 가중치가 높은 에너지원을 더 선호할 수밖에 없다. 한 국내 발전소 관계자는 "국내산 목재 펠릿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다"며 "신재생에너지 의무 공급량을 채워야 하기 때문에 가중치가 높은 에너지를 더 쓰게 된다"고 말했다.
목재 바이오매스에 대한 신재생에너지 가중치가 처음 도입된 2012년 이후, 국내 목재 펠릿 생산량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목재펠릿 생산량은 2009년과 비교하면 2021년 기준 약 77배, 수입되는 양까지 계산하면 약 186배 늘었다. 현재 한국에서는 목재 펠릿이 태양광 다음으로 가장 많이 쓰이는 재생 에너지다.
▲사진 : 벌목된 나무.
재생 에너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지속가능성'이다. 그러나 멀쩡한 나무를 벌목해 목재 펠릿으로 만들고 이를 석탄 대신 태우는 것을 지속가능한 재생에너지라고 부를 수 있을까?
산업부는 목재 펠릿 이용 확대와 산림 훼손 우려에 대한 뉴스타파의 질의에 "산림청에서 관련 기준을 마련해 관리 중에 있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취재진과 통화에서 목재펠릿 제조 과정의 원목 사용에 대해 "(원목 사용을) 막을 수 있는 법적 제재는 없다"고 말했다. 이후 서면 답변을 통해 "앞으로 미이용 산림바이오매스 제도를 보다 투명하고 체계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 법령 정비 등을 적극 추진해나가겠다"고 말했다.
한국은 목재 펠릿의 대부분을 수입산에 의존하고 있다. 한국이 가장 많이 목재 펠릿을 수입해오는 국가는 베트남이다. 한편 바이오매스에는 목재 펠릿 뿐 아니라 '바이오 중유'도 있다. 이는 주로 인도네시아 팜 나무에서 나오는 팜유에 의존한다. 동남아시아 임업계에서는 환경 파괴, 삼림 벌채, 지속가능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이 같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현지 기업에서 목재 펠릿과 팜유 등을 수입하는 한국 기업은 어디일까? [삼림파괴 주식회사②] 편에서 보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