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법관 기피 신청은 불법 기소 자백이다
2024년 11월 22일 11시 02분
국가정보원이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나 SNS 상에서 대국민 여론 조작에 광범위하게 나선 것은 물론 책까지 출간해 젊은 층을 겨냥한 보수화 작업을 펼쳐온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 8월 2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에서 검찰 측 증거 가운데 국정원 직원 교육 자료 하나가 공개됐다. 검찰은 이 자료에 "야당이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대중을 우군화하는 통일전선전술을 하고 있으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좌익 정권 차단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문구가 등장한다고 밝혔다.
이 자료는 검찰이 국정원 압수수색 당시 확보한 것으로 2009년 4월 시중에 출간된 '반대세의 비밀'이란 책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지난 6월 <한겨레21>이 현직 국정원 직원인 이희천 국가정보대학원 교수가 이 책의 저자라고 보도했으며, 최근 검찰도 원세훈 전 원장의 공판에서 "국정원이 실체적 작성자"라며 대국민 여론 조작 활동의 근거로 사용됐다고 밝혔다.
이 책에서 처음 사용된 '반대세'란 용어는 반대한민국 세력의 줄임말이다. 이 책은 2008년 촛불 시위 재발을 막아야 하며, 한국 사회를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수와 진보가 아닌 대한민국 세력과 반 대한민국 세력으로 구분하자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반대세의 비밀>에 나오는 주요 개념과 인식은 국정원의 대선 개입 증거인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 강조 말씀'과 흡사하다.
우선 "보수 진보 분류를 형식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는 지시는 책에 등장하는 반대세의 개념을 의미한다. (▲ 2009년 5월 15일 "보수·진보 분류를 형식적·도식적으로 할 필요가 없으며, 대한민국의 정체성 확립·국정 수행이 제대로 되도록 협조하는 측과 이유없이 이를 흔들려고 하는 측을 잘 판단해야 함.")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의 후보 단일화를 북한의 지령이나 종북으로 규정한 것도 유사하다. (▲ 2010년 4월 16일 "어쨌든 선거에는 단일화해라 하는 게 북한의 지령이라고, 북한 지령대로 움직이는 건 결국은 뭐 종북단체 아니야... ")
<반대세의 비밀>과 '지시 강조 말씀'의 유사성을 고려하면 "두서없는 발언을 직원이 정리한 것일 뿐"이라는 원 전 원장 측 변호인의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국방부 등 유관부처가 배포에 나섰으며, 장병 안보교육 참고 도서로 사용됐다. 또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감상문 대회가 잇따라 열렸고, 일부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대세운동'이란 이름의 사회운동이 조직됐다.
특히 저자인 이희천 씨는 국정원 직원 신분을 숨기고 지난해 육군 주최 종북 강연 155차례 가운데 가장 많은 48차례 강연을 맡는 등 유명 안보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했다.
법조계와 역사학자들은 이 책에 대해 "기득권 세력의 이익에 반하는 사람들을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모는 사악한 성격의 책"이라며 친일과 독재까지 미화하고 있어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뉴스타파는 현직 국정원 직원이 신분을 숨기고 시중에 출간한 이유와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 여부에 대한 입장을 국정원에 물었지만 "재판이 진행중인 사안이라 언론의 취재에 응할 수 없다"는 답만 들었다.
<앵커 멘트>
국정원은 지금까지 인터넷에서 댓글을 달거나, 트위터 글을 올리는 방법으로 대국민 여론 조작을 해온 것으로 포착됐는데요. 이 뿐 아니라 책을 출간하거나 유튜브에 동영상을 올리는 등 더 광범위하고 체계적으로 여론을 조작해온 증거가 드러났습니다.
정유신 기자가 보도합니다.
<정유신 기자>
지난 8월 26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첫 재판,
국정원의 정치 관여와 대선 개입 혐의와 관련해 검찰이 제출한 수백건 증거 가운데 눈에 띄는 자료 하나가 공개됐습니다.
"야당이 이명박 정부에 비판적인 대중을 우군화하는 통일전선전술을 하고 있으며,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좌익 정권 차단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문구가 등장합니다.
사실상 정치와 선거 개입을 지시하는 이 자료는 검찰이 국정원을 압수수색할 때 확보한 것입니다. 이미 알려진 원세훈 전 원장의 지시사항과 별도 증거로, 국정원 직원 교육을 위한 특강 자료로 활용됐습니다.
검찰은 이 자료에서 "원세훈 전 원장의 그릇된 종북 인식을 알 수 있다"며 "국정원 대국민 여론 조작에 사용"됐다고 밝혔습니다.
검찰이 언급한 국정원 직원 교육 자료는 2009년 4월에 시중에 출간된 '반대세의 비밀'이란 책을 토대로 작성된 것입니다. 원세훈 씨가 국정원 수장이 된지 두 달 뒤 출간되어, 보수매체 등 일부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이 책은 누가 쓴 것일까? 책에는 현대사상연구회라는 단체로만 돼 있고, 누가 썼는지 전혀 언급돼 있지 않습니다.
검찰은 "현대사상연구회 부회장으로 알려진 이희천 씨란 인물이 저자"라며, "국정원이 실체적 작성자"라고 밝혔습니다.
이 씨는 국정원 내 교육기관인 국가정보대학원 교수로, 현직 국정원 직원 신분입니다.
[이희천 국정원 국가정보대학원 교수]
(‘반데세의 비밀’ 책에 대해 여쭈어 볼 게 있어서...)
“아...지금 제가 대답하기가...바빠서 대답하기 곤란하거든요...”
(책 쓰신 분 맞나요?)
“...”
국방부는 이 책이 출간되자마자 장병 정신교육 참고도서로 배포했습니다.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독서감상문 대회도 열렸습니다. 국정원뿐 아니라 유관부처 차원에서도 이 책의 내용을 퍼트리려 한 것입니다. 일부 보수단체를 중심으로 '대세운동'이란 이름의 사회운동을 조직하려는 시도도 보입니다. 책의 저자인 이 씨는 국방부와 보수단체 등에서 젊은 층을 상대로 유명 안보 강사로 활발하게 활동했습니다.
특히 총선과 대선이 있었던 지난 해, 이 씨는 육군이 주최한 종북 강연에 가장 자주 등장한 강사였습니다. 155차례 가운데 무려 48번의 강연을 맡았습니다. 강연에서도 국정원 신분을 숨기고 활동했습니다.
[하경준 국정원 대변인]
(국정원이 사실상 저자였다는데...)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재판에서 소명해야 할 사안이고 언론에 입장을 얘기할 사안이 아닙니다.“
이 책에서 처음 사용한 '반대세'란 용어는반대한민국 세력의 줄임말입니다.
이 책은 2008년 광우병 촛불 시위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한국 사회를 자신들에게 불리한 보수와 진보 개념이 아니라, 대한민국 세력과 반대한민국 세력으로 구분하자고 주장합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오로지 보수 대연합에 해당되는 기득권 세력의 이익에 반하는 모든 사람들은 반대세, 대한민국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몰아버릴 수 있는 그런 여지들을 마련해두고 있는 것이죠. 그러한 점에서 상당히 악한, 사악한 성격의 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친일과 독재를 미화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 교학사 역사 교과서와 유사한 대목도 상당수 발견됐습니다.
[김정인 춘천교육대 교수]
"친일청산을 주장하는 것은 좌익의 음모라든지, 아니면 5.16은 북한이 침략 야욕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서 일어났다든지, 이승만이 단정 수립을 주장한 것은 우리나라 공산화를 막기 위해서라든지 그 세 가지 점에 대해서는 내용이 일치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국정원 직원은 원장의 지시나 허가 없이 외부 활동이 불가능합니다. 당시 국정원장인 원세훈 씨가 이 씨의 활동을 지원했거나 관여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검찰의 공소장에 등장하는 '원장님 지시 강조 말씀'과 비교해보니 책에 등장하는 주요 개념과 주장이 유사한 점이 많습니다.
"보수 진보 분류를 형식적으로 할 필요가 없다" 는 지시는 책에 등장하는 반대세의 개념을 의미하고, 총선과 대선에서 야당의 후보 단일화를 북한의 지령이나 종북으로 규정한 것도 흡사합니다.
이 같은 원세훈 원장의 무차별 종북관은 직원들에게 그대로 전파되고 실행됐습니다. 그 결과 국정원의 여론개입 활동은 이미 알려진 인터넷 댓글이나 트위터 뿐만 아니라 유튜브 동영상 배포 등 갖가지 방법을 동원해 광범위하게 펼쳐졌습니다.
최근 공판에서는 국정원 심리전단 소속 팀장이 MB를 낯 뜨겁게 홍보하는 뮤직비디오 패러디 동영상을 유튜브에 직접 올린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반대세의 비밀’이란 책은 국정원의 이 모든 대국민 여론조작 활동의 이론적, 실천적 근거가 돼 왔습니다.
[진선미 민주당 의원]
"이 책이 결국은 그 시작입니다. 2008년 촛불시위에 대한 분석에서부터 시작하고요. 그래서 우리나라가 지나치게 좌경화됐다고 일방적으로 진단을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우경화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딱 구축이 돼있어요."
통제 불능의 괴물이 됐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으면서도 국정원은 여전히 민감한 대북 정보를 쏟아내는 등의 언론플레이를 통해 정치와 여론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개혁 요구를 묵살하고 오히려 국내 수사 권한 강화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습니다.
[장유식 참여연대 행정감시센터 소장]
"정국을, 정치를, 우리 국민들을 국정원이 들었다 놨다 하는 정도의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되고 있고, 국정원이 정치의 중심에 서 있다는 것만으로도 국정원의 개혁 필요성은 충분히 설명 가능할 것 같습니다. "
국정원이 은밀하게 만들고, 퍼뜨리려 했던 이 낯선 제목의 책은 원세훈 전 원장에게는 성서이자 이념 교과서였을지도 모릅니다.
국민의 절반을 적으로 몰 수도 있는 이러한 인식을, 검찰은 신종 매카시즘으로 규정했습니다.
뉴스타파 정유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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