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재벌의 민낯 ③ 영풍제련소 노동자, 치아 녹아 내린다

2021년 09월 13일 10시 00분

영풍그룹은 재계 30위권의 대기업이다. ‘영풍문고’로 유명하지만 사실 이 회사의 근간은 낙동강 최상류인 경상북도 봉화군에 있는 ‘석포제련소’다. 아연, 황산 등을 생산해 매년 1조 2,000억 원가량을 벌어들인다. 하지만 석포제련소는 설립 때부터 ‘환경파괴 주범’이란 비판을 받아 왔다. 낙동강을 오염시키고 주민들의 삶을 파괴했다는 오명이다. 뉴스타파는 50년간 이어져 온 '영풍 석포제련소'의 환경파괴, 주민건강을 외면하는 지자체의 문제를 4회에 걸쳐 보도한다. <편집자 주>
③ 영풍제련소 노동자, 치아 녹아 내린다
영풍 석포제련소 노동자 중 상당수가 치아 부식 증상을 겪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뉴스타파가 만난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퇴직자들은 “아연 제련 공정에 투입된 노동자들의 치아가 녹아내리듯 없어졌다. 이 중에는 틀니를 착용한 사람도 적지 않다”고 증언했다. 
뉴스타파는 치아 부식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두 명의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퇴직자를 만나 인터뷰했다. 진현철 씨(2011~2017년 근무)와 박용택 씨(2004년~2016년 근무)다. 두 사람은 치아 부식의 원인으로 중금속 찌꺼기가 내뿜는 독한 가스를 지목했다. “황산 가스가 얼굴을 덮칠 때마다 김을 흡입할 수밖에 없었고, 업무를 거부한 적도 있을 정도로 공장 안 공기가 나쁘다”는 것이다. 두 사람은 황산 가스를 내뿜는 용액을 이용해 아연 광석에서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액 공정’에서 일했다. 
 용액에 황산이 들어가서 악취가 많이 납니다. 저와 같은 공정에 투입된 사람 중에 치아 올바른 사람 없을 겁니다. 

박용택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퇴직자)
처음 출근해서 가보니 사람이 1년 사이에 13명이나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냄새가 독해서 출근하자마자 바로 퇴사한 사람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스크 쓰고 있는데도 독해서 일을 못 할 때도 있었습니다. 

진현철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퇴직자)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S사 퇴직자인 진현철(왼쪽), 박용택 씨. 유독물질인 황산에 노출된 작업장에서 일했던 두 사람은 모두 치아부식 증상을 앓았다.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황산으로 인한 치아부식증 의심”

두 사람은 영풍 석포제련소가 협력업체 소속 노동자들에게 지급하는 건강 보호장비가 턱없이 부족했다고도 말했다. "일회용 방진복의 경우 한 달에 세 벌 밖에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진 씨는 “방진복이 부족해서 때때로 영풍 본사 직원에게 얻어 입었다”고 증언했다.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유해 물질에 얼마나 노출되는지를 확인하는 작업환경측정에도 문제가 많았다고 주장했다. 
작업환경측정 검사를 한다고 하면 공장 분위기가 달라집니다. 며칠 전부터 청소하고 악조건의 근무 환경을 갖춘 곳은 아예 노출 안 되게 가립니다. 제대로 측정이 이뤄질 수 없습니다. 

박용택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퇴직자)
공기 중 유해물질 양을 측정하는 기계를 측정 기관에서 저보고 허리에 차고 있으라고 시켰습니다. 근데 노동자들이 측정 기계를 휴게실에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누구도 이 문제를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작업환경측정이 제대로 됐을 리가 있겠습니까?

진현철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퇴직자)
영풍 석포제련소 노동자들의 치아부식 문제는 2003년에도 MBC 보도를 통해 알려진 바 있다. 당시 인터뷰에 나선 한 석포제련소 노동자는 “전해(TSL) 공정이라는 곳은 냄새가 많이 나서 치아가 다 내려앉아 버릴 정도다. 아비산이라고 불리는 용액은 독극물에 가까울 정도로 위험하다”고 말했다. 2002년 11월 영풍 석포제련소 인근에서 의료봉사를 했던 의대생들도 비슷한 증언을 했었다. 
진료를 받은 노동자와 주민들 중 50세를 넘긴 분들은 거의 모두 치아부식증, 즉 이빨이 녹아내려 이가 없는 병에 이환되어 있었습니다. 이유를 물어보니 ‘공장 내에 유독한 가스가 가득 차 있다’고 합니다. ‘제련소에서 한 20년 일하면서 벌어먹고, 이빨은 다 녹아내리고, 삭신은 다 쑤신다’고 호소했습니다.

경희대 한의대 의료연대 실천단 본과 4년 (2002.11)
뉴스타파는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직원이었던 두 사람의 치아가 녹아내린 이유를 확인하기 위해 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를 찾아갔다. 윤 전문의는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하는 황산에 주목했다. “황산을 취급하는 노동자에게서 흔히 생기는 직업성 치아부식증일 가능성이 크다”는 설명이었다. 
윤 전문의는 뉴스타파가 확보한 진 씨의 특수건강검진 결과를 살펴보던 중 이해하기 힘든 점을 하나 지적하기도 했다. 노동자 건강검진을 맡은 기관에서 진 씨의 치아가 뿌리까지 망가졌다고 확인해 놓고도, 정작 검진 소견에는 ‘정상’이라고 적어 놓았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진 씨의 2016년 6월 특수건강검진표를 보면, 치과 소견에 ‘치관치근경계부까지 파괴’라고 나와 있지만, 검진 소견에는 황산과 관련해 ‘사후관리조치가 필요없을 정도로 건강이 양호하다’고 적혀있다. 
검사 결과를 직업병으로 판단하지 못하고, 정상이거나 개인 질환으로 판단해서 사업장에 이분이 황산으로 인한 직업성 질환이 의심된다는 정보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는 판단이 듭니다.

윤간우 녹색병원 직업환경의학과 전문의
영풍 석포제련소 협력업체 직원 진현철 씨의 2016년 6월 8월 특수건강검진기록. 치과에서는 ‘치관치근경계부까지 파괴’라는 소견을 냈지만, 종합검진 소견에는 ‘건강이 양호하다’고 적혀 있다.

'치아부식 환자는 있는데 기록은 없다'... 수상한 영풍제련소 산재 기록

황산 같은 독성 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가 치아 부식증에 걸리는 비율은 해가 갈수록 늘고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의뢰해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서 2014년 10월 발표한 ‘산취급근로자 구강보건관리 및 증진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1993년에는 산 취급 노동자 100명 중 8명 정도가 직업성 치아부식증을 진단받았지만, 20년이 지나자 그 비율은 두 배로 늘어났다.
치아부식증 유병률이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근거로, 뉴스타파는 치아부식증으로 고통받는 영풍 석포제련소 노동자들이 얼마나 늘었는지 확인했다. 고용노동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해 영풍 석포제련소, 그리고 진 씨와 박 씨가 일했던 협력업체의 최근 산재 현황을 살펴봤다. 예상 밖의 결과가 나왔다. 2017년부터 올해 3월까지 5년간 두 회사에서 발생한 산재 중 치아 관련 건수가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신고된 산재 원인은 대부분 근골격계 질환, 폐질환, 석면 노출 등이었다. 환자는 있는데 기록은 없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발생하는 유해물질로 고통받는 건 이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만이 아니다. 석포제련소 주변에 사는 주민들 몸에서는 다량의 중금속이 검출됐다. 환경부가 동국대에 의뢰해 2016년 12월 발표한 영풍 석포제련소 인근 주민에 대한 건강영향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제련소 인근 주민 몸에서는 일반인들보다 2~3배 가량 많은 양의 카드뮴과 납과 같은 유해 물질이 검출됐다.
조사대상은 봉화군 승부리 대현리 석포리 주민들이었다. 조사 대상자의 소변 속 카드뮴 수치를 조사해본 결과 평균 1.43㎍/g cr.으로 일반 국민 평균인 0.5~0.66㎍/g cr.보다 3배가량 높았다. 혈액 속 납 수치도 4.05㎍/㎗으로 국민 평균인 1.77~1.94㎍/㎗보다 두 배 이상 높았다. 카드뮴 고농도자 6명 중 4명은 제련소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체내 카드뮴이나 납 수치가 영풍 석포제련소와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정황증거도 확인됐다. 석포제련소에서 멀리 사는 주민일수록 체내 중금속 농도가 낮았고, 제련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주민에게서 더 많은 중금속이 확인된 것이다. 동국대 연구진은 “제련소에 가까이 사는 주민들은 호흡기로, 제련소 하류에 사는 주민은 식수 혹은 먹거리로 중금속을 흡수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환경부 의뢰로 동국대가 2015년 11월부터 2016년 12월까지 조사한 ‘영풍 석포제련소 주변지역 주민건강영향조사’ 보고서. 제련소 인근 주민들 몸속에서 일반 국민들보다 몇 배 높은 수준의 카드뮴과 납이 나온 것으로 확인됐다.  

“영풍, 주민 보상 조건으로 언론 접촉 금지 요구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영풍그룹 측은 여전히 책임을 미루고 있다. 2019년 6월, 영풍 석포제련소 소속인 배상윤 본부장은 한 TV토론 프로그램에 출연해 이런 발언을 하기도 했다.  
건강조사에서 밝혀진 것은 중금속 농도랑 사람의 건강이랑 직접 연관이 있다는 것을 밝히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말로 하면 중금속 수치가 높은 사람 중에는 더 건강한 사람도 있다는 겁니다.

배상윤 영풍 석포제련소 본부장 (안동MBC, 2019.6.11)
영풍 석포제련소가 인근 주민들 몸에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정황이 확인됐음에도, 피해 주민들은 대부분 영풍으로부터 적절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 취재중 만난 대다수 석포면 주민들은 “칫솔과 치약과 같은 선물을 명절 때 받는 것 말고는 영풍으로부터 어떤 보상도 받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한 주민은 “영풍 측이 선물을 줄 때도 마을회관에 갖다 놓고 가버리는 등 성의가 없었다”고 말했다.
뉴스타파는 영풍 측으로부터 금전보상을 받았다는 한 석포면 주민도 어렵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신원 노출을 꺼린 이 주민은 영풍이 보상에 대한 대가로 납득하기 어려운 조건을 내밀었다고 주장했다. “언론 등 외부에 피해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래는 이 주민의 말이다. 
영풍 쪽에서 보상해주면서 ‘그만큼 해줬으면 안 되겠느냐, 다른 이유는 달지 마라’라고 말했어요. 우리는 가진 게 없으니까. 가진 게 없는 게 죄이지요. 만약에 언론 보도로 저희에게 피해가 오면 영풍에서 이번에 보상해준 것도 없던 걸로 하겠다고 나올 거예요.

봉화군 석포리 주민 A 씨
앞서 영풍 석포제련소는 제련소 인근 주민이 입은 피해를 모두 보상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2018년 10월, 이강인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는 국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주민들이 입은 피해에 대해 기업이 보상, 배상할 것이냐”는 강효상 당시 자유한국당 의원의 질의에 “하겠습니다”라고 답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2018년 10월 25일 국회 국정감사에 출석한 이강인 영풍 석포제련소 대표이사. 당시 이 대표는 주민 피해에 대한 보상을 약속했었지만, 이 약속은 3년이 다 되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 

영풍 “정식으로 문제제기한 사람 없어 보상 못 했다”

뉴스타파는 영풍그룹에 질의서를 보내 “왜 아직 영풍 석포제련소 인근 주민들에 대한 피해 보상이 이뤄지지 않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영풍그룹은 서면답변을 통해 “보상은 현재 검토 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보냈다. 또 “확인된 주민 피해 사례가 없기 때문에 보상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보상 조건으로 석포면 주민에게 언론과 접촉하지 말라고 요구한 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없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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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이명선
영상오준식 김기철
편집박서영
CG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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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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