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①총장부터 조교까지...모두 '한 패'
2018년 04월 05일 22시 28분
아직도 트라우마가 있어요. 항상 사무실 문 잠그고 있는 병이 생겼어요. 문 열고 꼭 누군가 들어올 것 같은 불안증이 있어요. 그 사건 이후로 계속. 그때도 마찬가지고 지금도 이렇게 힘든데, 학교는 정말 아무것도 해준 게 없어요. 저는 여기까지 죽음까지 각오하고 왔거든요.
평택대학교 재단과 학교에서 27년 간 근무해 온 이수정(가명) 씨. 그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아침 일찍 출근하자마자 자신이 일하고 있는 사무실의 문을 잠그는 것이다. 동료 직원들이 오면 문을 열어주고, 나가면 다시 문을 잠근다. 이 귀찮은 행동을 반복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악몽은 입사 5년차 때부터 시작됐다. 고등학교 졸업 이후 이 씨는 평택대 법인사무국에서 일했다. 사무국 사무실에는 조기흥 전 평택대 명예총장의 방이 있었다. 조 전 총장은 평택대의 재단 이사장과 총장, 명예총장까지 36년을 역임한 인물이다. 현재는 평택대 학교법인 피어선기념학원의 등기이사다.
조 전 총장은 총장으로 재임할 당시 한 달에 한두 번 법인사무국이 있는 서울 사무실에 들렀다고 한다. 조 전 총장이 오는 날마다, 이 씨는 성폭력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매월 한 차례 성폭행을 당했고, 그 이후에는 수십 차례의 성추행이 있었다고 증언했다. 성폭력은 20년 동안 진행됐다고 이 씨는 주장한다. 지금도 사무실 문이 열리면 조 전 총장이 들어올 것 같다. 이 씨가 사무실 문을 꼭 잠가 놓는 이유다.
피해 당시 이 씨는 어디에도 말을 할 수 없었다. 상대는 평택대의 절대 권력자로 불리는 인물이었고, 일을 그만둬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이 씨는 어렸고, 집안 형편이 어려웠다. 도와줄 사람도 없었다. 주변은 온통 조 전 총장의 측근들이었다. 성범죄를 목격했던 법인사무국 직원들은 조 전 총장의 가족과 친인척이었다. 조 전 총장의 조카였던 전 법인사무국장에게 사직서도 냈지만 그냥 참으라는 말만 돌아왔다. 사표는 수리되지 않았다. ‘곧 나아지겠지, 나아지겠지’ 하면서 참고 또 참았다.
그 사이 평택대에선 성폭력 피해를 입은 또 다른 여성 교직원이 학교를 떠났다. 가해자는 조 전 총장의 친척인 남성 교직원이었다. 이 씨는 더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라도 나서야 이 학교에서 또 다른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 씨는 더이상 참지 않기로 했다. 끝까지 싸워보기로 결심했다.
(2016년 말) 학교에서 (다른) 성추행 사건이 있었어요. (가해자) 남자 교직원은 정직 3개월 징계를 받았고, 가해자가 징계 이후 복귀하고 나서 (피해) 여직원이 울면서 힘들다는 말을 많이 했어요. 가해자는 다시 학교로 돌아오고, 결국 피해자는 학교를 떠나고… 이건 말이 안되잖아요. 더이상 참지 말고 저라도 제대로 고쳐놔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 씨는 2016년 12월 조 전 총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그리고 다른 여자 교수 2명도 조 전 총장으로부터 성적 괴롭힘을 당했다며 경찰에 사실확인서를 제출했다. 확인서에서 한 교수는 “조 전 총장이 포옹을 한 번 하자고 하더니 꽉 끌어 안아 소리를 지르고 뿌리치고 나왔다”며 “세간에 문제가 드러났음에도 본인이 계속 부인을 하며 오히려 피해자를 무고죄로 고발한다는 얘기를 듣고 사실을 밝히게 됐다”고 썼다. 또 다른 교수는 “조 전 총장이 갑작스레 추행을 시도했으나 응하지 않았다”며 “다시는 대학 내에서 유사 피해가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적었다.
2017년 1월, 이 씨는 학교 성고충심의위원회에도 피해사실을 신고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학교가 이 씨 편을 들어줄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1차 성고충심의위 회의가 열렸다. 심의위원들은 총 7명. 외부 자문변호사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교내인사로 구성돼 있다.
이 씨가 성고충위에 요구해서 받은 이 씨 사건 처리 결과에 따르면, 1차 회의에서 심의위원들은 “법적 절차는 절차대로 추진하고 학교 안에서는 절차대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 이 씨의 경찰 고소와는 별개로 학교에서는 학교 나름의 조사, 징계 절차를 진행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학내 성폭력 처리 절차는 성고충심의위에서 조사를 해서 결과를 학교 기획인사팀에 넘기면, 기획인사팀에서 인사위원회를 열어 가해자에 대한 징계를 심의하는 것이다. 최종 징계는 재단 징계위원회에서 결정한다.
한 달 뒤인 2017년 2월 2차 회의가 열렸다. 1차 때와 분위기가 달라졌다. 2차 회의에서 심의위원들은 “교내 처벌에 관해서는 기소 판결 이후에 다루기로”하고 심의위를 잠정 종료했다. 이 씨는 “1차 회의 때는 피해자의 입장에서 조사를 해줄 것 같은 분위기였는데 2차 때는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성고충심의위 관계자 중 한 명은 오히려 내가 ‘무고죄로 고소당할 수 있다, 명예훼손을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7개월이 흘렀다. 조 전 총장은 자신과 관련된 학교와 재단의 성폭력 조사가 진행되던 도중 사퇴했다. 2017년 9월 명예총장직과 상임이사직을 사퇴한다며 사임서를 이사회에 제출했고, 이사회는 즉각 수리했다. 하지만 재단 등기이사 직위는 유지했다. 신은주 평택대 교수회장은 “조 전 총장이 재단 이사직을 유지하면서 총장직무대리 선임 등 학교 일에 여전히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17년 11월, 검찰은 조 전 총장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추행’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경찰이 송치한 40여 건의 성폭력 피해 중 최근 발생한 성추행 2건에 대해서만 기소했다. 한 달 뒤 성고충심의위는 3차 회의를 열었다. 심의위는 “검찰에 의해 기소가 되었으므로 ‘성추행’으로 판정한다”고 결론내렸다. 뒤늦게나마 이 씨 사건을 성추행으로 판정한 것이다. 하지만 대학 측은 조 전 총장이 명예총장직에서 사퇴했기 때문에 조취를 취할 게 없다며 사안을 종결했다. 대학 측은 심지어 이 결과를 이 씨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이제 재단의 조치만 남았다. 조 전 총장은 여전히 재단 등기이사이기 때문이다. 평택대 재단은 지난해 7월, 학내에서 이 씨 성폭력 사건 등 조 전 총장과 관련된 비판 여론이 커지자 ‘평택대 학내 소요사태에 대한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조사를 벌였다. 이 씨도 두 차례 불러 조사 했다. 이 씨는 악몽같은 피해사실을 또 반복해서 진술해야 했다.
재단 진상조사위는 오히려 성폭력을 저지른 명예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교수회를 방치했다는 이유로 당시 이필재 총장을 해임했다. 그러면서도 조사 결과에 대해 피해자 이 씨에게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이 씨는 “현재 자신의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고 있는 지 아무것도 들은 것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평택대 측은 “성고충심의위에서 조사결과가 나왔을 때는 이미 조기흥 전 총장이 명예총장직에서 사퇴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양측(가해자와 피해자)에 통보하지 않았다”며 “재단의 진상조사위 결과는 법인에서 답변할 일”이라고 말했다. 법인에게 질의했지만 답변이 오지 않았다.
1년 4개월. 이 씨가 대학 측에 성폭력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흐른 시간이다. 이 사이 대학에서는 아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다.
조 전 총장이 잃은 것은 없었다. 조 전 총장은 자신이 총장으로 있던 2016년 2월, 퇴직위로금 규정을 새로 만들어 평택대 역사상 처음으로 퇴직금 외에 퇴직위로금 2억3600만 원을 별도로 챙기기도 했다. 이는 부당한 교비 사용이라고 교육부 감사에서 지적을 받았다. 앞서 2014년에는 사립학교법 위반과 업무상 횡령으로 벌금형을 받기도 했다. 이에 더해 성폭력 사건까지 터졌지만 재단에서는 조 전 총장에게 아무런 잘못도 묻지 않았다.
반면 이 씨는 신고 이후 더욱 힘든 날을 보내고 있다. 학교 측은 피해자 배려 차원에서 이 씨를 한가한 부서로 이동 시켜주고, 조 전 총장 등 이 씨가 요구한 사람들에게 접근금지명령을 내렸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이뤄지지 않았다.
학교에서 접근금지 조치를 해줬다고 하는데 가해자가 직접 저를 찾아왔었어요. (작년) 2월 24일날 조 전 총장이 제가 근무하는 부서에 와서 되레 소리치고 갔어요. 그의 가족들은 수시로 저를 찾아와요. 접근금지명령을 해준 게 아니죠.
근무 여건은 더 나빠졌다. 성폭력 신고 직후 원래 일하던 부서에서 다른 곳으로 부서이동을 했는데, 대학에서 해당 부서의 직원들을 모두 다른 곳으로 발령냈기 때문이다. 이 씨는 해당 부서에서 팀장이자 팀원으로 혼자 일하고 있다. 이 씨는 “다른 부서와 겸직하는 직원 한 명 남기고 모두 다른 곳으로 사람을 빼갔다. 내가 조 전 총장을 신고해서 압박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학교 측은 “부서 인원 배치는 탄력적인 인사 운영을 위한 일반적인 조치였으며 피해자에게 부담을 더할 목적은 아니다”고 밝혔다.
이 씨는 조 전 총장의 측근으로 불리는 사람들의 회유와 협박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조 전 총장의 비서관을 지낸 한 교수가 자신을 사무실로 따로 불러 “계속 하면 너만 다친다, 그냥 덮어둘 수 없느냐”고 협박조로 말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해당 교수는 “외국에 출장갔다가 잠시 학교에 들어왔는데 이 씨에 대한 소문이 돌아서 궁금해서 물어보려고 사무실로 부른 것일 뿐 회유나 협박은 하지 않았다”며 부인했다.
이 씨와 함께 일했던 상사나 동료들은 이 씨에게 “너 때문에 내가 승진을 못한다, 그냥 참으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이 씨는 말했다. 이 씨는 “죄를 진 사람은 처벌을 받는 게 당연한 건데, 같은 약자인 동료 직원들마저도 조 전 총장 편에 서는 것을 보며 큰 상처를 받았다”고 말했다.
평택대 재단과 학교에는 조 전 총장 친인척과 측근들이 상당수 포진돼 있다. 평택 재단 이사회 구성을 살펴보면 9명의 이사진 중 8명이 조 전 총장 본인과 친인척, 지인들이다. 이 씨가 성폭력이 벌어졌다고 말하는 법인사무국 사무실에는 사건 당시 조 전 총장의 친인척들이 근무했다. 지금도 법인사무국에는 가족과 친인척 3명이 직원으로 근무 중이다. 대학에도 조 전 총장의 아들과 딸이 교수로 있고, 6명의 친인척이 일했거나 일하고 있다. 대학에 피해자 이 씨가 기댈 곳은 없었다.
이제 이 씨에게 남은 건 법원의 판결을 기다리는 것 뿐이다. 조 전 총장의 2차 공판은 4월 23일 열린다.
저는 제가 고등학교 졸업하고 여기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때는 나는 모든 여성들이 이렇게 힘들게 직장생활을 하나 생각할 정도로 너무나 순진했던 것 같아요. 학교는 그래도 직원이 거의 300명 가까이 되니까 이런 부분이 제대로 되어 있겠지라고 생각했는데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인 결과인 거예요. 성고충심의위원회는 피해자를 위한 성고충위원회지 가해자를 위한 성고충위원회가 아니잖아요. 제발 제발 제가 부탁하는 것은 (학교가) 피해자 쪽에서 좀 서줬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지난 1월 서지현 검사의 폭로 이후 성폭력 사건이 불거진 대학은 전국에 20곳이 넘는다. 하지만 피해자들이 힘겹게 피해 사실을 폭로해 조사가 진행돼도 가해자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성폭력 피해가 폭로된 대학 서울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동덕여대, 세종대, 성균관대, 성신여대, 덕성여대, 국민대, 한양대, 중앙대, 연세대, 포스텍, 청주대, 부산대, 가천대, 명지전문대, 서울예대, 고려대 등 |
현재 서울대 사회학과 학생들은 성폭력 의혹이 제기된 사회학과 한 모 교수의 징계를 촉구하며 3월 21일부터 무기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학내 인권센터에서 한 교수에 대해 정직 3개월을 권고했지만 8개월 째 징계가 이뤄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지난해 3월 사회학과 대학원생, 학부생, 조교 등을 대상으로 지속적인 폭언과 성추행을 한 혐의로 교내 인권센터에 제소됐다. 인권센터는 3개월 간 조사를 벌여 작년 6월 정직 3개월의 징계 권고를 내렸다. 하지만 교원징계위원회는 9개월 가까이 징계를 내리지 않고 있다. 학교 측은 “한 교수에 대해 교육부가 감사를 벌였는데, 그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아 징계를 연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학생들은 “성범죄를 저지른 교수에 대한 징계로 정직 3개월 자체가 부당하며, 교수들로만 구성된 징계위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백인범 서울대 학생연대 대표는 “성폭력과 같은 인권 사안의 해결은 단지 교수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 피해를 입은 당사자와 당사자 공동체인 학생 사회의 참여가 필요한 문제”라며 “지금처럼 교수들이 일방적으로 징계위를 독점한 상황에서는 한 교수 문제와 같은 것들이 계속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대학 내 성폭력을 해결하기 위해선 성범죄 교원에 대한 징계를 강화하고 학내 신고센터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는지 감시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김혜정 한국성폭력상담소 부소장은 “대학 내 성폭력이 많이 알려지는 것에 비해 해결은 잘 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가 이미 있는 제도들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미국의 고용 교육 기회 평등위원회는 학교 측이 성폭력 피해자의 피해를 방치했을 때 책임을 물어 거액의 징벅절 손해배상을 하라는 결정을 내리고 있다. 한국도 학내 성폭력 신고센터 등이 제대로 일을 해결하고 있는지 감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김 부소장은 “성범죄 교수들이 중징계를 받으면 학교 측을 상대로 소송을 벌이고 실제 교원소청위 등을 통해 복귀하는 경우가 있는데, 앞으로는 교육부가 성범죄 교원의 경우 소청위가 복귀 결정을 내리지 못하도록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취재 : 홍여진
촬영 : 김남범
편집 : 윤석민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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