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①총장부터 조교까지...모두 '한 패'

2018년 04월 05일 22시 28분

한국 사회에서 위계에 의한 성범죄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곳은 어디일까? 여성가족부, 경찰, 검찰 등 여러 기관에서 성범죄 관련 통계를 내고 있지만 가해자의 직업 혹은 직종별 조사는 본격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 5년 동안 언론에 보도된 성범죄 기사를 통해 우리 사회의 개략적인 성범죄 지도를 그려봤다. 언론 기사가 현실을 반영하는 비율을 측정하기 힘들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미디어를 통해 나타난 한국사회의 한 단면을 그려볼 수 있다.

성폭력 기사 5년 치 분석...대학교수 관련 성범죄 보도가 가장 많아

2013년부터 2017년까지 5년 동안 5대 중앙일간지(조선, 중앙, 동아, 한겨레, 경향신문)에서 보도한 기사 중 5개 키워드(성폭력, 강간, 성폭행, 성추행, 성희롱)가 포함된 기사를 검색했다. 국제면에서 보도된 외신 등 관련성이 적은 기사는 제외했다.

그 결과 5년 간 보도된 성범죄 기사는 총 7,462건. 실체를 파악할 수 있는 ‘사건 기사’만 추려보니 595건이었다. 중복된 사건은 1건으로 처리했다. 1주일에 2-3건의 성범죄 사건이 보도되고 있는 셈이다.

전체 595건 중에서 가해자를 구체적인 직종별로 나눌 수 있는 기사는 300건 정도였다. 가장 보도가 많이 된 가해자는 대학교수로 53건이었다. 그 다음으로 초중고 교사가 45건, 군인이 43건, 문화체육예술계 종사자가 42건, 일반공무원 42건, 사기업인 회사에서 직장 상사가 저지른 성범죄가 41건이었다. 이밖에 정치인이 26건, 경찰이 21건, 검사나 판사 변호사 등 법조계 인사가 20건, 의사가 13건이었다.

대학 교수의 성범죄 기사가 많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성폭력상담소 김혜정 부소장은 “사회에 진입하는 하나의 출전권 기능을 하는 대학에서 교수는 학생들의 성적 뿐만 아니라 취업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막강한 권력자이기 때문에 성범죄가 빈번하게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대학에는 총학생회, 성폭력상담센터 등 학내 감시기구가 있어 다른기관에 비해 상대적으로 성범죄가 밖으로 더 많이 알려지는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김 부소장은 그러나 “대학 내 성폭력이 많이 알려지고는 있지만 잘 해결되고 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법조계나 의사 같은 경우는 성범죄가 많지 않아서 보도된 게 적다기 보다는 조직문화가 폐쇄적이라는 뜻”이라고 지적했다.

올 초 미투 운동이 시작된 이후 성범죄가 폭로된 대학만 20곳 정도. 가해자는 학생과 교직원도 있지만 대부분이 교수다. 뉴스타파는 우선 가장 많은 가해자 직업군이 속한 대학 사회의 성범죄의 구조에 대해 살펴봤다.

‘팀’을 이룬 갑질과 성폭력...교수 안마에 재떨이 시중까지

전임교수와 시간강사, 조교까지. 한 학과에서 성폭력 가해자가 5명이나 지목된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명지전문대 사례를 통해 대학사회의 성범죄가 어떻게 오랜 기간 지속되고, 확대되고, 방조되고 있는지 들여다봤다.

명지전문대학 연극영상학과는 1998년 설립됐다. 학과 설립 초창기부터 묵인돼 온 성폭력은 지난 2월 재학생들의 익명 미투 폭로로 세상에 드러났다. 이 같은 폭로는 교육부 실태조사 결과 대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 페이스북 페이지 ‘명지전문대학 대신전해드립니다’에 올라온 연극영상학과 미투 폭로글

3월 19일, 교육부의 명지전문대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연극영상학과 학과장이었던 박모 교수는 학생들에게 자신을 안마하도록 지시하고, 안마를 받으면서 성적 용어를 사용한 것이 확인됐다. 이모 교수는 학과 회식자리에서 늦게 온 여학생을 포옹하거나 토닥였고, 최모 교수는 택시에서 여학생을 끌어안으며 키스를 시도하는 등 성추행을 했다. 안모 시간강사는 성희롱 발언을 했고, 추모 조교는 성희롱 발언과 박 교수의 안마 지시를 학생들에게 전달해 성폭력을 방조했다. 교육부는 가해자들에게 파면 등 중징계를 할 것을 학교에 요구했으며, 이들을 검찰에 고발했다.

성폭력은 대학에 존재하는 다양한 갑질 중의 하나였다. 학생들은 안마뿐만 아니라 교수 집 청소 같은 잔심부름도 도맡아했다. 조교가 일종의 행동대장 역할을 했다. 교수의 안마 지시를 전달한 사람도, 집 청소 멤버를 모은사람도 조교였다. 박 교수는 연극영상학과의 왕으로, 혹은 신으로 불렸다. 한 학생은 “교수가 강의실에서 담배 필 때 학생이 종이컵을 들고 따라다니면서 재를 받는 시중까지 들었다”고 증언했다.

조교 혹은 학생회에서 와서 얘기했었어요. ‘너네 며칠 날 교수님 방 청소해야 되니까 몇 명 뽑아서 청소하러 가.’ 청소하러 가면 한쪽에선 학생들이 교수님 안마를 해주고 있고, 한쪽에선 청소를 하고 있어요. 우리가 교수님 노고를 생각해서 진심으로 청소를 해드린 거면 괜찮은데 청소조를 조교가 뽑아서 가는 건 아니잖아요. 비싼 등록금 내고 내 자식이 교수 집 청소하고, 안마했다고 하면 어느 부모님이 좋아하시겠어요.

이상헌/ 명지전문대 2009년 자퇴(07학번)

제가 학교에 있는 동안 남자교수들은 모두 강의실에서 흡연을 했어요. 박 교수가 특히 심했어요. 박 교수 수업 때는 학생들이 재떨이랑, 커피, 물을 딱 쟁반에 준비해 놨어요. 그리고 어떤 친구한테는 손에 종이컵을 들고 교수가 따라다니면서 가는 곳마다 들고 다니면서 재떨이 받치게 한 적도 있어요. 이윤택 사건 보면 그 사람이 왕이었다고 하잖아요. 박 교수는 이윤택의 축소판이라고 할까요?

윤미리(가명) / 명지전문대 졸업생

일부 학생들은 불만을 표시했지만, 이 역시 조교가 막았다. 연극영상학과를 2009년 자퇴한 이상헌 씨는 “강의평가 때 교수에 대한 불만을 적어내면 조교가 와서 ‘누가 이렇게 썼느냐’고 나무랐다”며 “불만이 있어도 조교 차원에서 걸러지거나 전혀 익명성이 보장이 안 됐기 때문에 학생들도 불만을 적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말했다. 이 씨는 “비싼 대학 등록금을 내고 연기를 배우고 싶어 입학했는데 교수 안마를 하고, 청소를 하고, 때로는 교수에게 맞기도 했던 대학 문화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며 “ 더이상 배울 것이 없다고 생각돼 자퇴했다”고 털어놨다.

▲명지전문대학 연극영상학과 학생들이 연극제작실습 수업을 받았던 스튜디오. 연극제작실습 수업을 오래 맡았던 박 모 교수는 학생들에게 ‘왕’으로 불렸다.

이런 학과 분위기 속에서 다른 교수나 조교, 남자 선배의 성희롱과 성추행도 당연한 것이 돼 버렸다. 교수의 눈에 든 조교는 강사가 되고 교수가 됐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다시 성희롱을 하고 성추행을 했다. 성범죄는 대물림이 되고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돼 버렸다.

박 교수님은 본인을 터치를 많이 시켰고, 이 교수는 자기가 많이 터치를 했어요. 술자리 가면 좀 특히 심했어요. 술자리 가면 뭐 옆에 앉으면 허벅지 만지기도 하고 손등을 만지고...

윤미리(가명) / 연극영상학과 졸업생

(조교나 남자 선배들의) 성희롱적인 발언이라든지 이런 게 어떤 사실이 있었냐라고 말하기도 뭐할 정도로 너무 공공연하게 항상 있었어가지고… 일단 교수님부터가 그러신 분이니 (신고나) 말을 할 수가 없었고요.

김선아 (가명) / 연극영상학과 졸업생

총장도 연루...여학생들, 술 따르고 걸그룹 춤추고

뉴스타파 취재결과, 명지전문대 전임 총장인 김광웅 현 서울대 명예교수도 이번 사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행동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의 ‘이상한 술자리’에 대학의 최고 책임자인 총장까지 참석했고, 여학생들은 일종의 “기쁨조” 역할을 했다는 다수 목격자들의 증언이 나왔다.

2013년 12월.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일부 재학생과 졸업생, 조교 등은 은평구 응암동에 있는 한 노래주점에 모였다. 당시 학과장이었던 박 교수가 “총장이 술을 사준다고 했다”며 소집한 자리였다. 학생들은 교수들과 자주 술자리를 가졌지만, 이날은 평소 가보지 않았던 형태의 술집이라서 당황했다.

당시 노래주점에 갔던 졸업생 윤미리(가명)씨는 “일반적인 뒤풀이인 줄 알고 주소를 찍어 준 곳으로 택시 타고 갔는데, 첫 느낌이 아가씨 나오는 술집 같았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노래주점에는 김광웅 당시 명지전문대 총장이 있었다. 박 교수는 여학생들을 돌려가면서 총장 옆자리에 앉혔다. 술을 따르라고 시켰고, 분위기를 띄울 수 있는 춤과 노래를 주문했다.

박 교수가 총장 옆에 앉아서 술을 따르라고 해서 따랐고요. 또 노래하고 춤을 추라고 해서 걸그룹 춤을 췄던 것 같아요. 그런 춤을 추면 분위기가 업되니까요. 사실 교수님들 생일 때 저희가 종종 췄던 춤이기도 하고요. 그때 총장이 말린다거나 거부한 건 없었어요. 총장은 그냥 옆에 앉아서 계속 웃고 있었던 기억이 나요. 계속 웃으면서 술 따라주면 수고했다며 어깨나 허벅지에 약간의 터치도 있었고…

윤미리(가명) /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17년도 졸업생

당시 김 전 총장 옆에 앉아있던 윤 씨는 자신이 ‘기쁨조’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결코 싫다고 말할 수 없었다. 그 자리가 싫다고 말하거나 교수의 지시를 거부하면 불이익을 받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내 몸을 만지는 거고 어쨌든 누구나 다 그 자리는 기쁨조의 자리라는 걸 알고 있었을 테니까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뭐 그냥 시키니까 하자, 싫은 소리 하지 말고 하자란 생각이 제일 컸던 것 같고요. 그때는 조금 무언의 압박감도 들기는 했었어요. 내가 여기서 싫은 티를 내면 나중에 저 교수가 나한테 나쁜 불이익을 주지는 않을까? 교수님이 이뻐하는 애들한테는 혜택이 알게 모르게 있는데, 내가 그걸 못 받지는 않을까?

윤미리(가명) /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17년도 졸업생

그날 술자리는 새벽까지 이어졌다. 윤 씨는 “총장은 옆자리에서 계속 웃고 있었고, 즐기는 듯 했다”고 말했다. 술자리가 견디기 힘들었던 한  여학생은 몰래 술자리를 빠져나가려고 시도했지만 조교가 막았다.

그 자리가 좀 견디기 힘들었던 친구는 빨리 집에 가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있었는데 그때 당시 여자 조교가 화장실 앞에서 그 친구를 집에 못 가게 지키고 있었어요. ‘너네가 지금 가면 어떻게 하냐, 이 자리를 책임져야지 않겠냐’ 이러면서 못가게 했었어요. 그 친구 뿐만 아니라 당시 남자 동기도 대체 우리가 여기서 뭐하는 거냐고, 여자 애들은 왜 저기서 춤을 춰야하냐고 불만이 많았어요. 우리를 그 자리에 데리고 가고, 집에 못 가게 막았던 조교들...그냥 교수님의 충실한 ‘개’였다고 생각해요.

윤미리(가명) / 명지전문대 연극영상학과 17년도 졸업생

사실확인을 위해 김광웅 전 총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전 총장은 “전혀 기억나지 않으며 노래주점에 간 사실이 없다”고 말했다. 복수의 학생들과 조교까지 총장을 위한 술자리였다고 증언했지만 김광웅 전 총장은 노래주점 자체에 가본 일이 없다고 주장했다.

수소문 끝에 2013년도 당시 노래주점 사장을 찾아 물어봤다. 당시 사장은 “학생들과의 술자리는 기억나지 않지만 김 전 총장이 연극영상학과 교수들과 노래주점에 함께 (가끔) 왔던 것은 기억한다”며 “교수들 중에 가장 높은 분이라고 소개 받았다”고 말했다.

김광웅 전 총장, 취재하던 기자에게 “사랑한다 말해보라”성희롱

사실관계를 부인했던 김 전 총장은 얼마 뒤 다시 기자에게 전화를 해 왔다. 자신과 관련된 기사 작성 여부를 묻더니 다른 사람의 성추문 건을 제보하겠다고 말했다. 구체적인 내용을 묻자 김 전 총장은 이상한 제안을 했다. 아래는 김 전 총장과 기자의 대화 내용이다.

000 총장 얘기는 들으셨어요?못 들으셨죠?
(그분은 왜요?)
아이고 참 그거 좀 취재해 보세요.
(성추문인가요 혹시?)
말도 못하죠.
(언론에 알려야 될 게 있으면 제보해 주시면..)
내가 거저는 할 수 없다니까.
(그럼 어떻게?)
그러니까 나한테 농담해도 돼요?
(네네).
사랑한다 그러면 내가 해드릴게.
(네?)
나한테 사랑한다 그러면.
(무슨말씀이세요?)
농담이에요 농담. 나는 여교수며 제자하고는 농담은 좀 해요. 내 제자하고 내가 농담하면 삐 해요 삐. 그런 정도이죠.

김광웅 /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명지전문대 전 총장)

성폭력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를 성희롱을 한 셈이다. 그러면서 김 전 총장은 더 이상 깊게 취재하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이렇게 하면 인간이 사는 이 세상이 완전히 파멸되는 거예요. 사람도 치부가 있잖아요. 치부를 밝히기를 원치 않잖아요. 언론이 밝힐 걸 밝히는 거는... 언론때문에 나라가 지금껏 살았죠. 그런데 그거를 절제를 해야돼요. 그렇지 않아요?

김광웅 / 서울대 행정대학원 명예교수(명지전문대 전 총장)

성폭력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를 아무렇지도 않게 성희롱하는 김 전 총장. 지식인의 대표 격인 대학 총장이 성폭력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안이한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가해 교수들 “성폭력은 인정하지 않지만 학생들에게는 미안해”

앞서 5명의 가해자 중 조교를 제외한 4명은 모두 사과문을 올렸다. 그렇다면 성폭력을 모두 인정하고 있는 것일까. 취재진은 성폭력에 연루된 가해 교수와 강사, 조교에게 모두 사실을 인정하는지 묻기 위해 전화를 걸었다. 아래는 가해자로 지목된 교수, 강사, 조교의 답변이다.

박 교수
연락두절
이 교수
성추행은 인정하지 않지만 받아들이는 학생이 아팠다고 하니 스승으로서 미안하다는 의미에서 사과문을 올린 것이다.
최 교수
할 말이 없다.
안 전 시간강사
사과문은 바뀐 학과장께서 전체적인 책임이 교수들에게 있으니 일단 사과문을 올리자고 해서 올린 것이다. 폭행, 폭언 등이 있었다는 점에 대해선 미안하지만 성희롱은 사실이 아니다.
추 전 조교
성희롱이나 성추행과 자신은 관련이 없다.

취재 : 김경래, 김새봄, 홍여진
촬영 : 김남범
편집 : 윤석민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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