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해 쓰러진 50대 공항노동자...우리가 타는 비행기의 이면
2018년 01월 10일 11시 14분
대한항공 여객기 청소를 위해 기내에 들어갔던 용역회사 소속 청소원들이 기내 방역 후 잔류한 것으로 추정되는 농약성분의 살충 소독제 때문에 집단 실신한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 관련 회사는 이 사실을 은폐하고 관련 당국에 산재 발생도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지난해 7월 10일 새벽 2시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 청소노동자 6명이 살충 소독약을 뿌린 뒤 충분히 환기하지 않은 대한항공 여객기 안으로 들어갔다가 청소시작 5분도 안 돼 소독제에 중독돼 실신했다. 당시 청소작업엔 모두 10명이 투입됐다가 출입구 쪽에 있던 4명을 제외한 나머지 6명이 쓰러졌다.
긴급 상황이 발생하자 청소를 도우려고 기내에 함께 들어와 출입구쪽에 있던 차량 운전기사가 사무실에 있던 동료에게 전화해 쓰러진 이들을 함께 부축해 비행기 밖으로 나왔다.
쓰러진 노동자 6명 가운데 A(57) B(50) C(50) 씨 등 3명은 2주 간 치료를 받았고, 나머지 D(57) E(53) F(32) 씨 등 3명은 4일 간 치료 받았다. 이들은 비행기 앞쪽 출입구로 들어가 뒤쪽으로 가면서 승객들이 사용한 담요와 신문 등을 봉투에 수거했다. 이 가운데 1등석과 비즈니스석을 지나 이코노미석까지 들어간 3명은 중독 정도가 심했다.
회사는 사고 6개월이 넘도록 고용노동부에 산재 보고를 하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 4조(산업재해 발생보고)에 따라 사업주는 산업재해로 사망자가 발생하거나 3일 이상의 휴업이 필요한 부상을 입거나 질병에 걸린 사람이 발생하면 한 달 안에 노동부에 보고해야 한다. 최근 청소노동자 노동조합이 노동부에 산재은폐로 고발해 조사가 진행중이다.
이들이 청소하다 쓰러진 비행기는 일반 소독과 달리 ‘기화(氣化) 소독’을 실시했다. 기화소독은 초음파 진동을 이용해 방역약품을 공기보다 가벼운 극 초미립자 상태로 뿌려 구석에 숨은 해충을 박멸한다고 한다. 기화소독은 6주마다 정기적으로 하거나 기내에 벌레가 나왔을 때 실시한다. 기화소독은 대한항공 뿐만 아니라 모든 비행기에서 이뤄진다.
대한항공은 국제민간항공운송협회(IATA)와 WHO 항공기 소독매뉴얼을 근거로 기화소독 매뉴얼을 자체 개발해 운영중이다. 2시간 가량 기화소독한 비행기는 1시간 이상 밀폐시켜 방역효과를 높이고, 다시 1시간 이상 환기시켜야 한다. 환기 1시간 이후에야 작업자 출입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기화소독은 대한항공은 물론 아시아나와 저가항공사, 외항사 등 모든 비행기에서 이뤄지는데 이처럼 비행시간에 쫓겨 충분한 환기없이 청소작업이 진행되는 경우도 잦다고 한다.
대한항공은 한국공항(주)에 비행기 지상조업을 맡겼고, 다시 한국공항은 지상조업 중 비행기 청소를 EK맨파워에 맡겼다. 기화소독은 또다른 회사 ‘그린온’에 맡겨 그린온 직원이 방진복을 입고 기내에 들어와 직접 수행한다. 이런 복잡한 인력구조 때문에 안전 관련 소통이 쉽지 않다.
기화소독 작업 지시는 대한항공과 한국공항을 거쳐 그린온에 전달되고, 기화소독 후 기내청소는 EK맨파워 직원들이 담당한다. EK맨파워 청소노동자들은 대한항공 정비사의 기내출입 승인을 받아야 비행기에 들어간다.
작업시작 5분도 안 돼 6명이나 한꺼번에 쓰러질 정도인데도 청소노동자들은 기화소독에 어떤 약품을 쓰는지, 기화소독 이후 충분히 환기가 됐는지, 혹시 소독약품에 중독됐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하는지 대한항공과 한국공항, 그린온, EK맨파워 어디서도 들은 적이 없다. 당시 기내에서 쓰러졌던 A씨는 “사고 당일 닫힌 출입문을 열고 기내로 들어가 작업을 시작했다”고 했다. ‘기화소독후 1시간 환기’ 매뉴얼이 지켜지지 않은 상태에서 밀폐된 비행기 문을 열고 곧바로 작업한 것이다.
감독자가 있지만 기화소독된 기내 청소작업에 감독자도 같이 들어가 청소했다. 심지어 청소원과 청소장비를 싣고 온 차량 운전기사까지 청소를 돕기 위해 기내에 함께 들어갔다. 만약의 사고에 대비한 인력이 현장에 없었다.
인천공항엔 안전사고에 대비한 공항119가 있지만 청소노동자들은 119 호출하는 교육도 받지 않아 작업자가 다치면 걷거나 자체 차량으로 이송해 왔다. 6명이 쓰러지자 입구쪽에 있던 차량 운전기사가 전화로 급히 사무실의 동료를 불러 함께 300~400m 떨어진 인하대병원 인천공항 출장소까지 부축해 걸어갔다.
이들은 구급차가 없다는 인하대병원 출장소의 말에, 택시를 타고 출장소에서 인하대병원 응급실로 가 치료 받았다. 이렇게 새벽 2시에 쓰러진 노동자들은 2시간이 지나서야 인하대병원 응급실에 도착했다.
공공운수노조 김태일 한국공항비정규직지부장은 “기화소독 관련한 매뉴얼이 있을 건데 대한항공도, 한국공항도, EK맨파워도, 누구도 청소노동자들에겐 알려 주지 않았다”고 했다.
청소노동자들은 실신 후 몸에 두드러기가 나고 눈이 따가워 치료를 받았다. EK맨파워는 사고 뒤 노조의 항의에에도 불구하고 기화소독 관련 어떤 정보도 한국공항이나 대한항공으로부터 통보받지 못해 여전히 같은 방식으로 조업을 지시할 수 밖에 없는 처지라고 했다.
대한항공이나 한국공항이 기화소독의 정보와 적절한 환기조치 등을 하청업체에 알리지 않았거나, EK맨파워가 원청으로부터 받은 정보를 청소노동자들에게 알리지 않아 향후에도 같은 사고가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이날 쓰러진 6명 중 A씨와 B씨는 한달여 전인 지난해 6월 12일 새벽에도 같은 사고를 겪었다. A씨는 “기화소독한 비행기를 야간에 청소하다가 어지럽고 머리가 아파 다음날 병원에 갔는데 일주일 가량 출근도 못하고 구토증세를 보였다”고 했다. B씨는 “출근 못하고 3~4일 지났는데도 전화통화도 제대로 못할 정도로 토할 것 같았다”고 했다.
이들은 허리를 숙인채 기화소독된 기내에서 담요를 급히 수거하는 작업을 반복할 때 담요에 잔류한 약품이 호흡기로 들어간 것같다고 했다. 지난달 21일에도 2명의 노동자가 같은 증세를 호소했다.
실려온 노동자들이 기화소독 후 버려져 있는 약품 용기를 수거해 인하대병원에 보여주자 응급실 의사는 진료기록에 “살충제(델타메트린) 뿌려져 있는 공간에서 20~30분 간 작업 후 이상증상으로 공항의료원 경우하여 내원함”이라고 정확히 약품 성분 이름을 적었다. 응급 협진한 인하대병원 안과 의사도 “화학물질에 의한 (각막) 손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심하게 진행하는 경우 각막 궤양 및 각막 천공으로도 진행할 수 있다.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식품의약품안전평가원에 따르면 ‘델타메트린’은 피레스로이드계 살충제로 주로 벌레를 잡는 농약 성분이다. 독성 정도는 중간 정도지만 급성이나 장기간 노출 시 신경 독성을 일으킨다. 피부와 안구 접촉시 자극성이 있다.
하지만 대한항공과 한국공항, EK맨파워, 그린온 그 어디도 살충제 델타메트린의 독성 정보를 청소노동자들에게 알려 주지 않았다. 산업안전보건법은 화학물질을 다루는 사업주는 해당 화학물질의 물질안전보건자료(MSDS)를 취급 노동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장소에 게시 또는 비치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청소노동자들은 이런 걸 본 적이 없고 관련 예방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대한항공 심문만 홍보팀 차장은 뉴스타파 취재진에게 “기화소독 관련 매뉴얼이 있는데 그동안 현장 작업자에게 그 내용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앞으로 재발방지를 위해 기화소독 관련 정보를 작접자들이 확인가능하도록 안내표지판을 설치하고 관련 교육도 실시하겠다”고 했다.
한진그룹 소유의 인하대병원은 에볼라 바이러스 공포가 퍼진 2014년 ‘기내방역 살충력 안전성 검토보고서’를 냈다. 대한항공 비행기 기화소독을 맡은 방역회사 ‘그린온’은 인하대병원의 이 검토보고서를 인용해 “2014년 4월 9일 항공기 방역후 기내 공기에 잔류하는 살충제 성분분석 결과, 방역 직후에도 농도가 매우 낮게 나타났으며, 특히 환기 20분 이후에는 공기 중 잔류성분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고 또한 시트와 필터에도 살충제 성분이 잔류하지 않는 것으로 평가되었다”고 밝혔다.
기화소독에 사용하는 제품은 ‘롱다운 유제’였다. 충북 청주의 농약제조사 국보싸이언스가 만든 살충제로 델타메트린만으로 만들었다. 국보싸이언스는 인하대병원 검토보고서와 달리 이 살충제가 “해충에 뛰어난 살충효과가 있고 1개월 이상 뛰어난 잔류효과를 보인다”고 홍보했다. 상표 이름 자체가 ‘롱다운(LONG DOWN)’으로 ‘살충효과가 오랫동안 지속된다’는 뜻이다.
수입 농산물을 싣고 온 선박도 병해충 제거를 위해 비행기처럼 밀폐시킨 채 방역한다. 선박 방역과 관련해서도 2000년대 초까지 크고 작은 중독 사고가 잦았다.
1996년 군산항에서 수입원목을 실은 선박을 살충제 메틸블로마이드(methyl bromide)로 방역하다가 밀폐를 제대로 하지 않아 선실에 있던 러시아 선원 4명이 중독돼 숨졌다. 숨진 선원의 혈중 메타브로마이드가 정상(4.1mg/l)보다 4.5~10배로 나와 충격을 줬다.
2000년 5월엔 부산항에서 방역업체 아르바이트생 임 모(20), 박 모(20) 씨도 일한지 3주만에 말을 더듬고 몸에 힘이 빠지고 한 달 뒤엔 어지러워 못 일어서고 잠만 자는 증상으로 동아대병원에 입원해 급성 뇌병증 진단을 받았다. 당시 안전보건공단 산업역학조사센터가 두 청년보다 덜 위험한 작업을 했던 업체 정규직 6명을 조사한 결과 혈중 메틸브로마이드 농도가 평균 21mg/l로 정상치보다 5배나 높았다. 스무살 청년 임 씨는 일한지 한 달만에 쓰러져 석 달 동안 사경을 헤맸다.
이처럼 선박 방역사고가 잇따르자 정부는 2000년 6월 ‘수출입 식물검역 소독처리 규정’을 제정하고 방역 후에도 “안전이 확보될 때까지는 소독장소에 감시원을 배치하고 소독처리 현황판과 출입금지 표시판을 설치하도록” 했다. 또 방역한 선박에서 하역작업을 할 땐 “소독감시원에게 안전여부를 확인받은 뒤에 해야 한다(안전허용농도 이하에서만 작업)”고 규정했다.
강태선 아주대 환경안전공학과 교수는 “선박은 사고 이후 직독식 검지기를 나눠 줘 하역작업자가 공기 중 독성물질 농도를 눈금으로 안전을 확인한 뒤 하역 작업해 사고가 크게 줄었다”고 했다. 감독자까지 청소에 투입하는 비행기와 많이 다르다.
청소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에 비행기 기화소독에 사용하는 화학물질 확인과 비슷한 사고이력 조사, 접촉한 노동자 명단 파악, 특수건강검진 실시 등을 요구했다.
취재: 이정호
촬영: 김남범
영상제작: 박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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