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회피 폭로 후폭풍… 국민연금만 괜찮다?

2014년 11월 11일 23시 01분

ICIJ가 뉴스타파를 포함한 전 세계 취재 파트너들과 룩셈부르크를 이용한 다국적 기업들의 조세회피 실태를 폭로한 뒤 후폭풍이 거세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준정부기관인 국민연금이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세워 해외부동산 투자를 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우리 정부는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 6일 ICIJ와 전 세계 26개국 80여명의 언론인들이 룩셈부르크 조세당국과 다국적 기업들을 대리한 세계최대 회계법인 PwC 사이에 비밀리에 체결된 사전 조세 협약들을 공개했다. 28,000 페이지에 이르는 이 비밀 문서들에는 거대 다국적 기업들이 조세피난처를 통해 세금 회피를 하기 위한 복잡한 투자 구조들이 낱낱이 담겨 있다.

이후 뉴욕타임스, BBC, 월스트리트저널 등 세계적 언론사들이 이를 잇따라 인용 보도하면서 파문이 확산됐다.

이미 룩셈부르크에 대한 조세회피 조사를 벌이고 있던 유럽연합은 룩셈부르크 정부에 대한 압박의 강도를 높이며 조사 확대 가능성을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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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정부는 공개된 문서에 담긴 내용들이 합법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며 즉각 해명에 나섰지만 곤혹스러운 입장을 감추지 못했다.

룩셈부르크를 둘러싼 논란의 중심에는 최근 취임한 장 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이 있다. ICIJ가 입수한 비밀 조세 협정 문서들 대부분이 그가 룩셈부르크 총리로 재임하던 시절 체결된 것이기 때문이다.

융커 집행위원장에 대한 세금탈루 방조 의혹과 함께 신뢰성 문제가 제기되면서 사퇴 요구도 거세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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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 보도 이후 유럽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과는 상반되게 우리나라 정부는 국민연금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투자한 사실이 밝혀졌음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입장만을 내놓고 있다.

뉴스타파 보도 다음날인 지난 7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정의당 박원석 의원은 공공기관인 국민연금의 이런 행태가 국제사회의 조세피난처 근절 노력에 동참하는 우리 정부의 모습을 위선적인 것으로 만들지 않겠냐고 질의했다. 이에 대해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국제적으로나 국내법 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답했다.

하지만 우리 정부의 이런 안일한 입장과는 달리 룩셈부르크 조세당국과 뒷거래를 통해 조세 회피를 일삼은 다국적 기업들에 대한 국제적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또한 EU가 조세회피 조사 확대를 결정하면 국민연금도 조사대상에 포함될 수 있는 상황이다.

국민연금과 우리 정부는 절세나 조세회피 목적을 위해 조세피난처를 이용한 것이 아니라고 밝혔지만 국민연금이 부동산을 투자한 해당 국가의 입장은 다르다.

국민연금이 2010년 위탁운용사를 통해 독일 소니센터를 매입할 당시 설계한 투자 구조를 보면 룩셈부르크의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부동산 지주회사의 지분을 94.9%만 취득했다. 그리고 나머지 5.1%의 지분은 네덜란드 회사를 통해 확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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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트리어 세무서 국장인 유르겐 켄테니히는 국민연금의 이 같은 방식은 당시 독일 부동산 거래세를 피하기 위한 전형적인 수법이라고 밝혔다. 부동산을 소유하는 회사 지분을 95% 이상 취득하게 되면 부동산 거래세를 납부해야 하기 때문에 지분을 95% 미만으로 낮춰 쪼개는 방식으로 세금을 회피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의 조세피난처 투자 구조가 조세회피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시각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이를 사전에 알고 있었다며 별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만 되풀이 하고 있다.

이번 ICIJ 프로젝트에 참여한 캐나다 공영방송 CBC도 캐나다 공적연금인 공무원 퇴직연금의 룩셈부르크를 이용한 부동산 투자 행위를 폭로했다. 보도 후 캐나다 정부가 그동안 벌인 조세회피 근절 노력이 위선이었다는 정치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 타임즈는 캐나다 공무원연금과 한국의 국민연금이 ICIJ 폭로에 포함됐다고 보도했다. 그러면서 국제노동조합총연맹 ITUC가 연기금들이 조세피난처 이용 근절을 위해 싸워줄 것을 촉구했다고 전했다.

ITUC는 성명을 내고 연기금들이 조세피난처를 이용해 단기 수익을 높이려는 시도는 경제와 투자환경을 악화시키고, 결국 장기 수익창출을 어렵게 만들어 노동자들의 소득과 노후 보장을 위험에 빠트린다고 경고했다.

이런 국제사회의 움직임과 룩셈부르크를 향한 거센 비판에 대해 우리 정부와 국민연금이 향후 어떻게 대응할 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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