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조 6천 억 날린 '하베스트' 수확 덤터기 쓰고 땡처리?
2013년 12월 20일 21시 01분
공기업과 공기업 퇴직자 간에 벌어지는 ‘일감 몰아주기 관행’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병폐 중 하나다. 국정감사 때마다 단골메뉴로 등장하지만,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한국전력공사(한전)와 한전 퇴직자단체인 ‘한국전력전우회(전우회)’의 관계는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다. 전우회는 ‘제이비씨(JBC, 구 전우실업)’라는 자회사를 설립해 지난 수십년 간 한전 용역을 싹쓸이했고, 이를 통해 수백억 원대 재산을 축적했다. 그럼 이 과정에서 덕을 본 사람은 누구였을까. 뉴스타파는 오늘(10월 9일)부터 3일에 걸쳐 ‘악어와 악어새’ 관계와도 같은, 한전과 전우회의 수십년 공생관계를 연속 보도한다. -편집자 |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가 한전 퇴직자 친목단체 ‘전우회’의 자회사인 제이비씨(JBC, 구 전우실업)에 ‘섬지역 발전소 운영 사업’을 23년간이나 몰아준 사실이 뉴스타파 취재결과 확인됐다. 제이비씨는 1996년부터 올해까지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한전 용역을 수의계약으로 받아갔다. 모두 국민들이 내는 준조세 성격의 ‘전력산업기반기금(전력기금)’이 투입되는 사업이었다.
제이비씨는 한전 퇴직자들의 친목단체인 ‘전우회’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회사다. 1987년 한전 발전소 청소용역 회사로 출발했는데, 현재는 600여 명의 직원, 1000억 원대 매출을 올리는 전기회사로 성장했다. 2004년 76억 원에 불과하던 자산은 2018년 784억원으로 10배 이상 늘었다.
제이비씨 성공 요인의 8할은 한전의 공이었다. 매출의 대부분이 한전에서 받은 용역비이기 때문. 금융감독원 기업공시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제이비씨의 전체 매출액 중 한전에서 받은 검침·배전용역 비중은 무려 73%에 달했다. 전체 매출액 8900억 원 가운데 6500억 원이 한전으로부터 받은 용역비였다.
제이비씨는 한전 용역사업을 대부분 수의계약으로 받아갔다.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확인해 보니, 지난 10년간(2010년~2019년) 제이비씨가 받아간 전체 용역비 7000억원 가운데 70%가 수의계약을 통해 받은 것이었다. 반면 제한경쟁으로 받은 건 29%, 일반경쟁입찰로 따낸 용역비는 1%에 불과했다.
제이비씨가 한전에서 받은 용역 중엔 100% 수의계약으로 따낸 사업도 있었다. 바로 ‘도서전력설비위탁운영용역(이하 섬발전소 운영사업)’ 사업이다. 쉽게 말해, 육지에서 전기를 공급하기 어려운 울릉도, 백령도 같은 섬 지역에서 운영하는 자가발전소를 대신 운영해 주는 사업이다.
과거 섬지역의 자가발전소는 대부분 지자체에서 운영했다. 그러다가 규모가 큰 섬발전소부터 한전에서 순차적으로 인수해 운영하는 것으로 법이 바뀌었다. 현재 전국 127개 섬 자가발전소 가운데 62개는 지자체와 섬주민들이, 65개는 한전이 지자체에서 인수한 뒤 다시 제이비씨에 위탁해 운영하고 있다.
제이비씨는 1996년부터 올해까지 단 한 번도 빠짐없이 섬발전소 운영사업을 한전에서 수의계약으로 받았다. 연간 용역비는 500억 원 정도. 지난 10년간 받은 섬발전소 용역비를 합하면 무려 4700억 원에 달한다. 제이비씨가 처음 용역을 받았던 1996년부터 추산하면 전체 용역비 규모는 훨씬 커질 것으로 추정된다.
섬발전소 운영사업은 어쩔 수 없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기를 생산하는데 들어가는 비용이 전기 판매가보다 더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섬발전소 운영을 맡고 있는 제이비씨는 항상 흑자를 내 왔고 현재도 내고 있다. 섬발전소 운영비의 결손액을 한전이 ‘전력기금’으로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전력기금’은 섬발전소 운영이나 대체에너지 연구개발 등 수익은 나지 않지만, 전력발전에 꼭 필요한 공익사업에 사용하기 위해 준조세 성격으로 걷는 기금이다. 국민들이 내는 전기료의 3.7%가 이 기금으로 적립돼 사용된다.
전력기금으로 결손액을 채워주는 것 외에도, 한전은 제이비씨에 용역비를 주면서 인건비나 경비는 물론 일반관리비(6%), 이윤(7%)까지 보장해 주고 있다. 연간 30~40억 원 규모의 순이익을 무조건 보장해 주는 식이다. 2015년까지는 용역비의 10%를 이윤으로 보장해 순이익 규모가 지금보다 훨씬 컸는데, 수의계약 문제가 제기되면서 7%로 줄어들어 그나마 지금 수준에 이르렀다. 그래서일까. 취재 중 만난 제이비씨 직원들은 하나같이 “섬발전소 운영 사업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고 말했다.
한전이 제이비씨에 매년 수십억 원이 넘는 수익을 보장해 주고 있는 문제는 국회 국정감사 때마다 한전을 괴롭히는 단골메뉴가 돼 왔다. 그리고 그때마다 한전 사장은 아래와 같이 답하며 논란을 피했다.
전우실업 관련된 것은 차츰 저희가 공개경쟁입찰로 전환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제이비씨가 단독 수행하고 있는 도서 전력설비 운영도 민간 발전사가 참여하게 돼서 앞으로 경쟁체제가 도입될 계획입니다.
하지만 바뀌는 것은 없었다. 이후로도 한전은 경쟁입찰 공고를 단 한 번도 내지 않았고, 올해도 제이비씨와 수의계약으로 560억 원의 섬발전소 운영계약으로 체결했다. “다른 경쟁자가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한전은 ‘특정인의 기술이 필요하거나 해당 물품의 생산자가 1인 뿐인 경우 등 경쟁이 성립될 수 없는 경우에는 수의계약이 가능하다’는 국가계약법 시행령 26조1항을 근거로 들었다.
그럼 한전의 주장은 사실일까.
취재 중 만난 전문가들은 한전의 주장을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에너지정책 관련 전문가는 한전의 주장을 아래와 같이 비판했다.
섬지역의 자가발전소는 대부분이 디젤발전기를 가동하는 것인데, 이는 그렇게 특수한 기술이 아니다. 교육을 받으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공개입찰 한 번 해보지 않고 수의계약이 불가피하다고 말하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한전이 처음부터 제이비씨에만 일감을 줘 육성해 놓고 이제와서 ‘여기 외에는 할 업체가 없다’고 말하는 건 모순이다.
우지연 변호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도 “도서전력발전소의 경우에는 제이비씨 뿐만 아니라 지자체에서도 운영하고 있다. 섬지역의 디젤 발전소 운전 기술이 단지 제이비씨에서만 가능한 그런 업무가 아니기 때문에 국가계약법상 경쟁이 성립되기 어려워 수의계약이 허용되는 사례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직접 발전기를 운전, 정비하고 있는 노동자들의 생각도 한전의 주장과 달랐다. 이들 역시 “섬발전소 운영기술은 제이비씨만이 가진 특수한 기술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제이비씨가 도서발전사업을 처음 시작했던 97년도에 이미 다른 회사들이 그 일을 하고 있었어요. 지자체에서도 발전소를 운영하고 있었고요. 발전소 운영 기술이 크게 어려운 기술도 아니에요. 실제로 우리가 인턴제도를 통해서 인턴을 뽑고 나면 1인 사업장에 거의 교육 3일 시키고 바로 투입합니다.
제이비씨에 있는 직원들 중 다수가 과거 지자체 발전소에 근무하다가 제이비씨로 고용 전환이 된 사람들입니다. 제이비씨만이 발전소 기술자들을 고용하고 있어서 수의계약을 줬다는 이야기는 핑계에 불과합니다.
취재진은 ‘왜 한전이 처음부터 제이비씨란 회사에 수의계약으로 용역을 준 것인지’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제이비씨 전직 관계자들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섬발전소를 위탁받았던 출발점부터가 특혜였다”거나 “제이비씨 용역사업 자체가 한전이 전우회 수익을 보장해 주기 위해 시작된 것”이라는 증언을 들을 수 있었다.
섬발전소 운영 사업은 제이비씨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는 사업이었어요. 전우회에 처음 특혜를 줬을 때, 돈 10억만 있으면 다 할 수 있는 사업이었죠. 우리끼리는 초창기에 이런 말을 했어요. '땅 짚고 헤엄치기’라고.
한전 도서전력실에서 섬발전소 운영에 어려움이 있다고 아웃소싱을 하기로 했어요. 그 아웃소싱을 받은 게 섬발전소 운영사업이에요. 전우회 수익 보장 차원도 있고, 아무래도 한전 퇴직자들이 모인 회사니까 우수 인력도 제일 많이 가지고 있기도 했고...
현재 제이비씨의 전체 직원 규모는 600여명이지만, 본사 임원은 모두 한전 퇴직자들로 채워져 있다. 제이비씨의 회장격인 이사회 의장은 한전 영업본부장 출신이고, 대표는 한전 인천본부장을 거쳐 본사 홍보실장을 지냈다. 제이비씨 감사는 전 한전 감사실장, 현 사내이사와 사외이사도 모두 한전의 1~2급 퇴직자 출신이었다. 심지어 사내이사 중에는 제이비씨에 용역을 발주하는 업무를 맡고 있는 한전 도서전력실과 배전처 출신도 있었다. 용역을 주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퇴직 후 용역을 받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한전의 감사실장으로 있던 2011년, 승진 청탁 대가로 뇌물을 받아 구속된 전력이 있는 김 모 씨도 현재 제이비씨 임원을 맡고 있다. 김 씨는 한전을 퇴직하고 나와 자회사인 중부발전 전무를 거쳐 제이비씨로 자리를 옮겨왔다.
뉴스타파 취재결과, 제이비씨에서 제2의 인생을 즐기고 있는 한전 퇴직자들의 평균 연령은 66세였고 대부분 고액의 연봉을 받고 있다. 대표이사의 연봉은 1억 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렇다면, 그동안 제이비씨를 거쳐간 한전 퇴직자는 얼마나 될까? 취재진은 제이비씨의 법인등기부등본을 통해 임원들의 이력을 확인해 봤다. 그 결과 전현직 임원 52명 중 41명이 한전 1~2급 퇴직자 출신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한전 출신 선후배들이 퇴직 후 제이비씨 임원 자리를 주고받아 온 것이다. 사업을 주는 한전과 사업을 받는 제이비씨가 건강한 긴장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익명을 요구한 한전 출신의 제이비씨 전직 임원은 한전과 제이비씨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이렇게 설명했다.
용역을 주는 사람은 후배, 받는 쪽은 선배인데, 후배가 선배 회사와 이제와서 수의계약을 끊을 수 있겠어요? 또 한전 현직자들의 노후 일자리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서로서로 수의계약을 유지하고 싶어하는 거죠. 한전과 제이비씨의 관계는 용역 발주자와 수탁자, 갑을관계가 바뀐 구조라고 보면 됩니다.
그럼 이렇게 한전과 제이비씨가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맺어온 수십년간의 공생관계 속에서 이득을 챙겨온 사람은 누굴까. 10일 공개되는 ‘한전과 퇴피아’ 2부에서는 이 부분이 집중적으로 다뤄질 예정이다.
취재 | 홍여진 신동윤 |
촬영 | 신영철 이상찬 |
편집 | 박서영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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