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의 몰락 배후엔?

2013년 06월 13일 10시 30분

<앵커 멘트>
국내 굴지의 대기업들도 가지지 못한 기술력을 갖고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던 중견기업이 있었습니다.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던 이 기업은 지난해 어음 11억 원을 막지 못해서 부도처리 됐습니다.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부도였습니다.

그런데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회사, SSCP의 대표 오정현씨가 무려 4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것이 드러났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었던 것일까요?

송원근 피디가 취재했습니다.

<송원근 피디>
지난해 9월 한 코스닥 상장 기업이 부도를 맞게 됩니다. 전자제품 코팅 소재와 디스플레이용 핵심소재 분야에서 국내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하고 있던 건실한 중견기업 바로 주식회사 SSCP였습니다. 당시 이 회사의 대표이사는 오정현. 미국 코넬대학교 석사출신인 그는 창업주인 아버지 오주언 회장에 이어 지난 2002년 SSCP의 대표이사를 맡으면서 본격적인 회사경영에 나섭니다. 그러나 불과 10년 뒤 SSCP는 어음 11억 원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 됩니다.

당시 갑작스러운 부도로 수많은 소액 투자자들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부도 당시 소액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은 전체 주식에 약 50퍼센트. 시가 총액으로 계산해도 약 250억 원에 이릅니다. 그러나 소액주주들은 피해규모가 이보다 훨씬 더 크다고 말합니다.

[SSCP 소액주주 피해자]
“우리가 지금 주주가 최소한 5천 명 이상이라고 봤을 경우에 그 피해액은 2천 억이 넘는다고 예측을 하고 있죠.”
(그 전부터 투자하셨던 분들이 계시니까요?)
“그럼요. 상장폐기 됐을 때 주가가 1200원 정도 했었는데 1만 원대, 2만원 대 주가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많아요.”

[SSCP 소액주주 피해자]
“처음 주식을 샀을 때의 가격을 보면 4~5억 대의 손실을 보고 있는 거죠, 지금. 집안이 풍비박산이 나고 집까지 경매처분이 들어가는 이러한 상황까지 오니까 너무 억울해요. 억울하고.”

부도 당시 오정현 대표는 법원에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으로 인한 채무 증가와 이로 인한 자금의 악화가 부도 원인이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SSCP의 부도는 업계에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코팅소재와 디스플레이사업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거래 회사들 역시 삼성, LG 등 대기업들이었습니다.

[SSCP 소액주주 피해자]
“(SSCP) 우리나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가지고 있는 회사였습니다. 삼성하고 LC가 (SSCP가) 부도나서 삼성, LG 라인이 다 멈췄었어요. 그래서 삼성이 개입해서 공장을 가동시킨 거예요. 직원들 월급 주면서. 그만큼 국가 기간 산업이었죠.”

워낙 기술력이 좋았고 경영여건 개선 등의 보도가 계속 나왔기 때문에 부도가 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SSCP 소액주주 피해자]
“매스컴에서도 긍정적으로 발표도 많이 했고, 또 나름대로 재무제표 같은 걸 보니 회사가 회사가 좀 탄탄하다고 본 거죠. (그런데) 그게 전부 다 사기당한 거죠. 쉽게 얘기하면..”

그런데 뉴스타파는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가 입수한 조세피난처 자료에서 오정현 대표가 SSCP 경영권을 계승한 후 페이퍼컴퍼니를 무더기로 만든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페이퍼컴퍼니 설립 대행업체인 CTL 내부 자료에 따르면 오 대표가 설립한 페이퍼컴퍼니는 총 4개. 먼저 2005년 7월에 만든 페이퍼컴퍼니엔 등기이사로는 컨퍼닛킥리미티드라는 차명과 함께 한국인으로 추정되는 이 모씨라는 사람을 내세웠습니다. 확인 결과 이 모씨는 오정현 전 대표의 대학후배로 밝혀졌습니다. 자신은 주주에 올렸습니다. 발행주식은 1달러 주식 한 주. 전형적인 유령회사입니다.

그렇다면 당시 오 대표가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2005년 당시 코스닥 시장은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었습니다. 그해 10월 SSCP는 코스닥 시장에 주당 9천 원에 상장됩니다. 상장 3개월 후인 2006년 1월엔 19000원, 2007년에는 35000원까지 올랐습니다. 2년 사이 무려 4배 가까이 오른 것입니다. 2006년 1월 창업주인 오주언 회장은 천억 원 대의 주식을 보유하게 돼 코스닥 주식부자 1위에 이름을 올리기도 합니다. 말 그대로 코스닥 시장에서 대박을 친 겁니다.

상장되기 불과 3개월 전, 오정현 대표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합니다. 상장 직전 이렇게 유령회사를 만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대순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
“페이퍼컴퍼니나 이런 것들이 필요한 시점 자체는 상장하게 되면은 보호예수에 2, 3년이 걸리잖아요. 그러면은 이게 꽉 묶인단 말이에요. 자금 자체가. 그래서 이렇게 자금을 쪼개 놓으면 이런 것은 보호예수에 빠져 나가죠. 이것들은 차명계좌인 거죠, 사실은.”

오정현 전 대표의 페이퍼컴퍼니 설립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SSCP의 주가가 계속 오르며 대박을 치던 2006년 7월 5일 오 전 대표는 두 개의 페이퍼컴퍼니를 만들었습니다. 탈랜트벤처캐피탈과 다랄스커머셜이란 이름입니다.

[이대순 투기자본감시센터 대표]
“사실 페이퍼컴퍼니라는 건 간판조차 없는 거잖아요. 서류상으로만 존재하고, 아무 것도 없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 허울뿐인 회사를 놓고 보면 대표이사 역시 허울이죠. 디렉터(대표이사)나 이런 형태로 이름이 올라가는 경우가 많다, 이거죠.”

코스닥 시장에서의 성장을 바탕으로 SSCP는 경쟁사를 인수하는 등 본격적으로 외형불리기에 나섭니다. 2007년 11월에는 경쟁업체이던 독일의 슈람사를 인수해 업계 세계 1위 자리를 노리기도 합니다.

[오정현 SSCP 대표이사]
“올해 SSCP가 예상하고 있는 부분이 2500억이 넘습니다. 매출, 전체 매출이. 그리고 슈람이 현재 1000억 원 이상을 하고 있기 때문에 내년 정도 되면 저희들이 4000억을 이제 .. 연결기준으로 매출 4000억 원이 넘어갑니다.”

그러나 이후 SSCP는 쇄락의 길에 접어들게 됩니다. 주가는 폭락을 거듭해 35000원에 이르던 주가는 1년 뒤인 2008년 4000원이 됩니다. 또한 무리한 신규 사업 추진 등과 겹쳐 회사경영은 더욱 악화됐습니다.

[SSCP 관계자]
“영업이익이 이자비용을 충당하지 못할 정도로 이자 비용으로 다 빠져나갔어요. 이자 비용하고 당기로 돌아오는 차입금을 막기 위해서 여기서 빌려다 막고 빌려다 막고 이런 식의 악순환이 되니까 그 중간에 있던 주관사라고 하는, 일반적으로 자금 소개시켜주고 연결시켜주고 하는 브로커들, 주관사한테 금융수수료 빠져 나가고. 그 금융비용만 해도 영업이익으로 감당이 안 되는 정도였어요. 그러니까 계속 자금은 마이너스가 되죠.”

결국 자금난을 견디지 못하던 SSCP는 2011년 주력사업이었던 코팅사업부를 다국적기업에 500억 원에 파는 듯 자산매각을 실시합니다. 당시 매각대금은 총 1400억 원 가량이었습니다. 오정현 대표는 이 자금으로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고 말했지만 실제는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부도 이후 법원에서 실시한 회계감사자료에 따르면 당시 매각 대금 1400여억 원 중 약 410억 원 가량은 오정현 전 대표가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회사 회생을 위해 매각한 대금을 개인용도로 사용한 것입니다. 결국 SSCP는 2012년 어음 11억 원을 막지 못하고 부도처리 됩니다. 아직도 매각대금이 어디로 갔는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권오천 피해 소액주주 담당변호사]
“왠만한 대기업도 살릴 돈이거든요. 현금 1400억 원이 있으면 그런데 이런 회사가 1400억 원이 들어왔는데 망가졌다? 그건 빼먹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인 것 같습니다. 저희는 이 돈이 홍콩 법인이나 다른 외국계 페이퍼컴퍼니나 이런 쪽으로 가지 않았을까, 추측만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현재 오정현 대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를 직접 만나 페이퍼컴퍼니를 만든 이유를 묻기 위해 SSCP를 찾았습니다. 오정현 전 대표는 현재 이곳에 접근 금지상태라고 합니다.

[SSCP 관계자]
“회사에 출입금지 당한 상태라서 좀 껄끄럽죠. 아무래도 대하기가. 더군다나 이 회사에서 전 대표이사를 상대로 고소까지 해 놓은 상황이라 오정현 대표는 혼자 부산에 집이 있어요. 따로.”

페이퍼컴퍼니 관련 서류에 기재돼 있는 오정현 대표의 집. 그러나 취재진은 이곳에서도 그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이웃주민]
(집에 안 계시나 봐요?)
“네. 거의 요새 사람이 없어요. 여기 집에 잘 안 오세요. 모두. 아무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쯤이세요?)
“기억이 안 나요. 한참 오래 됐어요.”

취재진은 수소문 끝에 오전 대표의 아버지이자 SSCP의 창업자인 오주언 전 회장을 만나 그의 행적을 알아보려 했습니다. 그러나 각종 소송 등으로 부자 관계는 사실상 끊겼다고 합니다.

한때 코스닥 최고 부자였던 그는 현재 월세 원룸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현재 그가 가진 전부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아들이 만든 페이퍼컴퍼니의 존재에 대해 알고 있었을까.

[오주언 아버지 / SSCP 창업주]
“가짜 회사까지 다 하니까 당시에 한 30개 되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데가 어디 있냐 세상에. 그렇게 이제 종업원들한테도 하소연도 한 번 했다가 내 컴퓨터를 딱 차단을 시켜버리더라고. 부하 직원들 시켜서.”

30년 동안 SSCP를 일궈온 오주언 회장. 탄탄한 회사를 만들어 아들에게 물려주겠다는 바람은 이루어졌지만 이제 그가 한 평생을 받쳐 일했던 회사는 그의 아들에 의해 사라졌습니다. 그는 아들에게 법의 심판이 가해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주언 아버지 / SSCP 창업주]
“미안합니다. 미안하고. 제가 잘 못 키운 죄로 여러분들한테 너무 피해를 줘서 미안합니다. 저도 그 대가를 받아야 돼요. 남의 눈에 눈물 흐르게 하면 되겠어요? 저도 이렇게 사는 거 호강하는 거예요. 솔직히.”

현재 SSCP 오정현 전 대표는 배임과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돼 있습니다. 그러나 조사는 답보상태입니다. 혐의가 부족하다는 이유에서입니다.

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회사가 코스닥이 상장되면서 대박을 치던 무렵 오씨는 몰래 조세피난처에 페이퍼컴퍼니를 잇달아 만든 사실이 이번 ICIJ 자료를 통해 새롭게 드러났습니다. 오씨가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회사자금을 빼돌렸다는 의혹이 제기될 수밖에 없습니다. 건실한 회사가 하루아침에 몰락하고 수많은 소액주주 피해자들이 생긴 배후에는 탈세와 재산은닉의 온상인 이른바 조세피난처란 존재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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