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약처는 브로커?...의료기기 한국피해자 '하등민' 취급 여전

2019년 04월 03일 18시 36분

뉴스타파-ICIJ 공동기획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 업체와 의사의 '검은 공생법'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해 11월 26일부터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 ICIJ 주관으로 36개국, 59개 언론기관과 함께 글로벌 의료기기 산업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프로젝트를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해당 보도는 ‘인체이식 의료기기의 비밀' 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와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는 국제협업 보도를 통해 글로벌 의료기기업체 존슨앤드존슨 자회사인 드퓨(DePuy Orthopaedics)가 국내에서 지난 2006년부터 4년 넘게 판매하다 제품 결함으로 리콜을 했던 인공엉덩이관절 제품의 문제점을 집중 보도했다.

당시 보도는 국내 환자들이 제품의 리콜 사실을 몇 년이나 지나 통보받았거나 아예 모르고 있는 경우도 있었고, 정상 제품으로 재수술을 하지 않는 경우에 발생하는 추적 진료비와 여비 또한 제대로 보상받지 못하는 등 국내 피해자들이 미국 등 다른 나라 환자들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보도 이후 피해자, 업체, 식약처 공무원 3자 회동

보도 이후 3개월여가 지났지만, 여전히 이들 피해자들에 대한 업체의 보상 조치와 당국의 의료기기 리콜 정보 관련 제도 개선 조치는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오히려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의료기기안전 담당 공무원이 지난 2월 해당 제품의 수입사인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관계자와 피해자의 비공식 만남을 주선하고 자신도 이 자리에 동석한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 2월 20일, 드퓨 ASR 인공고관절 제품 피해자 정상호 씨는 서울역 내 회의실에서 식약처 의료기기안전평가과 해외 안전성정보 담당 사무관, 한국존슨앤존슨 담당자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향후 보상 계획과 리콜 사실이 국내에서 제대로 알려지지 않은 점을 두고 3시간 가량 논의가 이어졌다.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측은 정 씨가 전세계 차원의 보상 프로그램 대상자가 아니지만, 정 씨의 사정을 감안해 한국 지사에서 별도의 자금을 마련해 보상을 해주겠다고 회유했다. 사실상 공식적 피해자는 아니지만 비공식 보상을 해주겠다는 제안이었고, 이런 자리에 식약처 담당자가 참석한 것이다.

▲결함 인공고관절 제품 수입사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담당자는 피해자 정상호 씨가 미국 드퓨 본사에서 운영하는 공식 보상 프로그램 보상 대상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지만, 한국 지사 차원에서 별도의 보상금을 마련해 보겠다고 회유했다.

정 씨는 문제의 드퓨 인공고관절 제품으로 지난 2008년 최초 이식 수술을 받은 뒤 해당 부위가 훼손돼 해당 제품 리콜이 발표된 시점보다 불과 12일 앞선 지난 2010년 8월 12일 동일한 하자가 있는 제품으로 재수술을 받았다. 여전히 리콜 제품을 이식한 채 살아가기 때문에 그는 최근까지 혈중 중금속 농도가 정상 수준보다 높게 유지되는 등 여러 부작용에 시달리고 있다. 그러나 3자 회동에서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측은 정 씨가 이미 같은 제품으로 두 번 수술을 받았기 때문에 재수술을 받은 것으로 간주돼 공식 보상 프로그램에는 해당되지 않는다는 드퓨 본사의 입장을 전했다.

업체의 이 같은 반응에 정 씨는 앞서 받은 보상이 터무니 없이 적은데다 이미 피해 보상 대상자로 인정해놓고 이제와서 이를 사실상 번복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정 씨는 지난 2013년 드퓨의 보상 프로그램에 등록해 2016년 추적 진료비 등의 보상을 요청했고, 지난해 2월 68만 원을 받은 바 있다.  

▲3자 회동에서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담당자는 정 씨가 드퓨 미국 본사에서 운영하는 공식 보상 프로그램 보상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정 씨는 이미 지난해 2월 해당 보상 프로그램을 통해 68만 원을 받은 바 있다.

식약처 담당자는 지금까지 보상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은 점에 대해 수입사인 존슨앤드존슨에 보상을 강제할 수 있는 권한은 없지만, 앞으로는 정 씨를 비롯한 국내 피해자들이 보상을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식약처가 업체와 의료기기 피해자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식약처는 국내 의료기기 리콜 제도 개선에 대한 의지는 보이지 않았다.

식약처의 미온적인 태도에 정 씨는 “돈이 문제가 아니고 식약처가 잘 판단을, 중심을 잡아야 한다”며 식약처가 규제감독 기관으로서 제 역할을 해달라고 촉구했다..

해외에서는 보상 절차 한창 … 국내 환자들은 여전히 ‘하등민' 취급

3자 회동 이후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관계자는 지난달 15일 정 씨와 다시 만나 “보상 프로그램을 통해 보상 의무를 다 해왔다”는 드퓨 미국 본사의 입장만을 전해왔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식약처가 규제감독당국으로서 이 같이 보상 협의를 하는 비공식 3자 회동을 주선하는 게 적절한지 질의했다. 식약처는 “국내 제도에 맞는 의료기기의 회수와 피해보상 절차를 개발하기 위한 연구를 계획하고 있다”고만 밝히고 ‘중재자' 역할의 적절성 문제엔 명확한 답을 하지 않았다.

한편, 지난 1월 미국에서는 드퓨 인공고관절 제품의 집단 소송사건이 종결됐다. 존슨앤드존슨 미국 본사는 본국에서 부정적인 제품 연구 결과를 공개하지 않음으로서 환자들을 기만하고 제품을 판매했다는 혐의를 벗기 위해 1억 2천만 달러(한화 1천 3백억 원)을 피해자들을 위한 합의금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3월 15일 현재 문제의 드퓨 ASR 인공고관절을 이식받은 321명의 한국인 환자들 중 216명만이 공식 보상 프로그램에 등록한 상태다. 식약처와 한국존슨앤드존슨메디칼 측은 여전히 미등록 상태인 105명의 환자는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고 있다고 해명했다.

취재 : 김지윤, 김성수, 홍우람, 연다혜
촬영 : 김기철, 정형민
편집 : 정지성
CG : 정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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