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나 기자 맞아?...20년 기자생활에 이런 경험은 처음

2015년 04월 10일 16시 00분

자신들이 인수한 멕시코 볼레오 구리광산에서 4천억 원이 사라졌다는 의혹을 감추기 위해 광물자원공사가 국회에 가짜 사진을 제출했다는 4월 2일자 뉴스타파 보도.
볼레오광산 운영회사(MMB) 홈페이지에서 찾아낸 2012년 1월 광산 현장 사진이 핵심이었다. 광물공사가 2012년 초의 현장 모습이라며 국회에 제출한 사진이 실제로는 훨씬 이전의 사진이라는 사실도 이 사진과의 비교를 통해 확인할 수 있었다.
보도가 나간 뒤 광물자원공사는 어떠한 공식 해명도 내놓지 않고 있다. 이런 와중에 뉴스타파로 시청자 문의전화가 걸려왔다. 보도에 나온 실제 사진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시청자에게 MMB 홈페이지를 알려드렸는데, 그 과정에서 다시 확인해보니 전에 홈페이지에 있던 사진들이 사라져 있었다.
기존 홈페이지는 화면 좌상단에 ‘Photo Gallery’ 코너가 있었다. 여기에 2012년 1월 이후의 볼레오 현장 사진들이 매달 10여 장씩 게시돼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MMB 홈페이지에서 ‘Photo Gallery’ 코너 자체가 없어진 상태이다.
홈페이지에 게재된 사진과의 비교를 통해 국회에 제출된 사진이 가짜라는 의혹을 제기하자, 해명할 생각은 하지 않고 실제 사진을 차단해 버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들었다. 국민의 혈세 수천억 원을 날려버린 공기업이 반성은커녕 오히려 또다시 진실을 은폐하려 하는 것이 아닐까?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며 문제를 제기했는데, 달을 살펴보기는커녕 그 손가락을 자른다고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MMB 홈페이지에서 사진들이 사라진 이유를 광물자원공사 홍보실에 문의했다. 홍보실 답변은 ‘그걸 MMB에 물어야지, 왜 광물자원공사에 묻느냐?’ 였다. ‘광물자원공사는 최대 주주일 뿐, MMB의 일반 업무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면서 궁금하면 멕시코 MMB사에 직접 물어보라는 퉁명스런 대답이다.
MMB측에 이메일을 보내 사진들이 사라진 이유를 물었다. MMB 홍보담당자는 하루도 안돼 바로 답변을 보내왔다.
MMB측 설명대로라면, 사진들을 없앤 것은 4월 1일이다. 그런데 그 공지는 4월 3일자다.  4월 3일에 공지를 띄우면서 “4월 1일부터 사진 코너를 없앨 예정이다”라고 미래형으로 밝혔다. 시제가 안 맞지만, 단순한 실수로 이해하려 한다.
문제는 사진을 삭제한 시점이다. 뉴스타파 보도가 나간 것은 4월 2일 오전이다. 시차를 고려하면, 멕시코는 4월 1일이다. 다시 말해, 뉴스타파 보도가 나간 직후에 사진들을 없앤 것이다. 게다가 2012년의 사진을 수정하기 위한 것이라고 친절하게 밝히고 있다. 뉴스타파가 근거로 삼았던 바로 그 사진이다.
광물자원공사 홍보실이 거짓말을 한 것이 명백했다. 자신들의 설명대로라면, 광물자원공사는 일절 관여하지 않았는데도, 멕시코에 있는 MMB 직원들이 태평양 건너 한국에서 뉴스타파 보도가 나간 바로 그 시각에, 우연히 자신들의 홈페이지에서 2012년 사진이 잘못됐다는 것을 발견하고 스스로 삭제했다는 말이 된다. 광물공사의 거짓말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였다.
그래서 후속 기사를 준비했다. 의혹은 충분했고, 증거도 다 확보돼 있었다. 아직도 정신 못 차리는 공기업이 아닌가? 후속 기사를 쓰면서 국회의원실에 전화했다. 광물자원공사가 국회를 속인 사안이니 혹시 국회에는 어떤 입장을 밝힌 게 있느냐고 물었더니, 광물공사 담당자가 의원들에게는 해명했다고 한다. 해명의 요지는 “명백한 실수라 창피해서 해명자료도 못 내놓겠다. 홈페이지 관리를 멕시코 사람들에게 맡겼더니 실수가 있었다. 홈페이지 사진들을 교체하겠다”는 것이었다.
거짓말을 일삼아온 광물자원공사의 해명이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담당자의 해명은 일관성이라도 있었다. 진실 여부를 떠나 최소한 홈페이지에서 사진들이 사라진 이유는 설명되기에 기사는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새로 교체될 사진들이 진짜냐 가짜냐는 그때 가서 다시 규명해야겠지만...
여기에서 새로운 의문이 생겨났다. 왜 광물공사 홍보실은 그런 설명을 하지 않았을까? 홍보 기능을 포기한 것인가? 알면서도 숨겼을 가능성과 정말 몰랐을 가능성으로 나눠 생각해 봤다. 홍보실이 알면서도 숨겼다면 정말 광물자원공사는 나쁜 조직이다. 무조건 언론은 피하고 진실은 숨기고 보자는 식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다른 하나의 가능성, 홍보실이 몰랐다면 정말 이 조직은 무능한 조직이다. 광물공사는 그동안 담당자와의 접촉을 철저히 차단한 채 기자들의 모든 문의는 홍보실을 통해서만 하라는 방침이었다. 그러나 정작 홍보실은 아는 것도 없고, 확인해 보려는 성의조차 보이지 않았다. ‘철밥통’이라는 욕을 먹어도 싸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민의 혈세를 날리고도 반성하지 않는 조직. 잘못을 지적받고도 해명이나 개선을 위한 최소한의 노력조차 하지 않는 조직. 적극적으로 해명하기는커녕, 있는 해명조차도 모르거나 숨기려고 하는 조직. 기자 생활 20년이 넘었지만 이런 황당한 조직은 처음 본다.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기자는 그 해명이 맞는지 확인하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당사자들이 하지 않는 해명을 기자가 스스로 취재해서 찾아주는 이런 경험도 내 기자 생활에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