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법관 기피 신청은 불법 기소 자백이다
2024년 11월 22일 11시 02분
국정원의 ‘종북 몰이’ 여론전의 이론적 근거를 제공한 것으로 알려진 <반대세의 비밀>의 저자 이희천 국가정보대학원 교수가 이 책 외에도 야당과 진보 진영을 종북이나 적으로 묘사한 책들을 다수 출간한 것으로 밝혀졌다.
특히 이 책들을 출간한 출판사는 실체가 없는 ‘유령 출판사’인 것으로 드러나 국정원이 출판을 통한 대국민 여론조작을 위해서 위장 출판사까지 운영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다.
국정원 현직 직원 신분인 이 씨는 지난 2009년 4월 <반대세의 비밀>을 시작으로 6.25 전쟁 관련 서적 등 적어도 4권의 책을 ‘인영사’라는 이름의 출판사를 통해 시중에 출간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이 출판사가 낸 책들은 대부분 ‘현대사상연구회’가 저자로 돼 있으나 실제 저자는 국정원 직원인 이희천 씨로 확인됐다.
앞서 검찰도 지난 8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선거법 위반 사건 공판에서 <반대세의 비밀>의 실체적 작성자는 국정원 직원 이 씨며, 이 책은 대국민 여론 조작의 근거로 활용됐다고 밝혔다.
<반대세의 비밀> 이외에 이 씨가 쓴 책들도 야당과 진보 진영을 폭도로 묘사하고, 좌파에 대한 위기감 고취와 더불어 종북 세력 척결 등을 강조하는 반면 이명박 정권은 칭송하는 등 <반대세의 비밀>과 유사한 내용을 담고 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이 출판사의 주소지로 돼 있는 인천 석남동을 찾았지만 소규모 공장들이 입주해 있는 아파트형 공장 건물이었고 주소에 있는 407호는 현재 자재창고로 사용되고 있었다. 이곳의 소유주는 서울에 거주하는 이 모씨였다. 인영사라는 출판사가 사무실도 없는 유령 출판사임이 확인된 것이다.
그런데 국정원 직원 이희천 씨는 지난 5월 이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3천만원 가량을 대출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 씨가 출판사 주소로 사용된 공장 건물 내 자재 창고 소유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때문에 이 출판사는 국정원이 여론조작용 책을 펴내기 위해 설립한 위장 출판사가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된다.
한편 뉴스타파 취재 결과 출판사 대표로 돼 있는 안 모씨는 출판사 업무와 무관하게 서울 영등포의 한 직업소개소에서 영업 일을 하고 있으며, 뉴스타파의 취재가 시작된 직후부터 종적을 감췄다.
<반대세의 비밀> 등의 저자 이희천 씨는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국정원 직원 신분을 숨긴 채 종북 세력의 실체라는 주제로 군부대 등에서 57차례의 안보 강연을 했으며, 강연료만 1400만원 넘게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국방부는 지난 2009년 <반대세의 비밀>이 출간된 직후 수백 권을 구입해 일선 부대에 배포한 사실은 있으나 이 씨가 국정원 현직 직원 신분이란 사실은 최근에야 알았다고 해명했다.
<앵커 멘트>
지난주 국정원 현직 직원이 쓴 '반대세의 비밀'이란 책이 시중에 출간돼 젊은 층을 상대로 한 여론전에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는 내용 전해드렸는데요.
뉴스타파가 추적해보니 이 국정원 직원은 ‘반대세의 비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책도 여러 권 펴낸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게다가 그 책들은 야당과 진보 진영을 종북이나 폭도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 국정원 직원은 해당 출판사와 특수한 관계인 것으로 드러나 국정원이 출판을 통한 여론 조작을 위해 위장 출판사를 설립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정유신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정유신 기자>
‘반대세의 비밀’을 펴낸 출판사 이름은 인영사입니다. 2009년 초 <반대세의 비밀>을 시작으로 근현대사 관련 책을 집중적으로 출간했습니다.
현재 이 출판사가 펴낸 것으로 확인되는 책은 모두 5권. 이중 3권은 현대사상연구회가 지은이로 돼 있습니다.
역사 서적 한 권은 현대사상연구회 부회장 직함을 사용한 국정원 직원 이희천 씨가 유일하게 실명으로 펴낸 것입니다. 나머지 한 권은 북한 상층부의 성문화를 폭로한다는 내용으로 저자는 ‘나본좌’라는 가명을 썼습니다.
확인 결과 이 출판사에서 나온 5권 가운데 4권을 모두 국정원 직원 이 씨가 직접 쓴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양동안 현대사상연구회 회장]
(책 4권 다 이(이희천) 교수님이 쓰신 건가요?)
"난 감수만 했다니까. 쓰는 것은 이 교수가 썼어요.”
이 출판사가 펴낸 책은 여러 권이지만 대부분 '반대세의 비밀'과 내용이 비슷합니다. 이희천 씨는 같은 출판사를 통해 2011년 말까지 지속적으로 책을 출간했고, 현대사상연구회가 활동을 접은 뒤에도 안보 전문 강사로 맹활약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진은 국정원 책을 출판한 경위를 듣기 위해 인영사의 주소로 검색되는 서울 신사동의 주소지로 찾아가봤습니다. 출판사 대표로 돼 있는 안 모 씨가 한때 거주한 곳이긴 하지만 출판사는 없었다고 합니다.
[같은 건물 주민]
"내가 4년이나 살았는데 책 들고 이런 거 못 봤는데…다 가정집인데 여기…”
어찌된 영문인지 안 씨에게 직접 확인해 봤습니다.
[안 모 씨 / 출판사 대표]
“제가...지금…(사무실이) 인천에 있습니다. 인천에…
(만나뵈려면 인천으로 찾아가야?)
“네, 조금 멀죠?”
문광부 출판사검색 시스템에서 확인한 결과 실제 인영사는 지난 3월 인천으로 주소지를 옮긴 것으로 돼 있습니다.
과연 인천 주소지엔 출판사가 있을까? 주소지를 찾아가보니 아파트형 공장 건물입니다. 곳곳에 전자 부품이 쌓여있고, 간판도 출판사와 거리가 멉니다. 출판사 주소로 기재된 407호에는 사람이 전혀 없고, 아예 자재 창고로 쓰이고 있습니다.
서울 주소지뿐 아니라 여기서도 출판사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옆 공장 직원]
(여기 인영사라고 출판사 사장님 뵈러 왔는데...)
“출판사는 못 봤는데...”
(여기는 공장이죠? 아파트 공장)
“그렇죠.”
[건물 관리인]
“407호가 지금 거기 창고로 쓰고 있는데...”
국정원 직원이 쓴 책을 집중적으로 펴낸 이 인영사라는 출판사는 사실상 실체가 없는 유령 출판사인 셈입니다. 국정원의 비밀스런 책 만큼이나 이 책을 낸 출판사도 이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었습니다.
뉴스타파 취재 결과, 현직 국정원 직원인 이희천 씨가 이 출판사의 운영에도 깊숙이 관련된 증거를 찾아냈습니다.
인영사의 현 사무실 주소지로 돼 있는 장소의 소유주를 확인해 보니 서울에 사는 이 모 씨로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뜻밖에 여기에 국정원 직원 이희천 씨가 등장합니다. 지난 5월 22일, 농협에서 3천여 만 원을 대출받은 사실이 기재돼 있습니다. 타인 명의의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으려면 소유주의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국정원 직원 이 씨와 부동산 소유주 이씨는 가족 등 밀접한 관계라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식당 주인]
“그래 맞다. 이희천 씨가 누구지? 자꾸 편지가 오더라고요.”
(어디요?)
“여기 위에 (우체통) 있는데로요.”
정작 출판사 대표인 안 씨는 서울 영등포의 한 직업소개소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하지만 지난주 뉴스타파가 국정원 책에 대해 취재한 직후부터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고 있습니다.
[직업소개소 동료]
"안 팀장님 안 나오세요.“
(일을 관두신거에요?)
“네.”
(아예 안 하세요?)
“네.”
(언제 관두신겁니까?)
“며칠 됐어요.”
안 씨는 당시 뉴스타파와의 전화 통화에서 국정원 직원 이씨와 잘 모르는 사이라고 말했습니다.
[안 모 씨/ 출판사 대표]
(이희천 교수님 한번도 본 적 없어요?)
“전화 통화만 몇 번 했어요...”
국정원 직원 이 씨는 이처럼 정체가 불투명한 출판사를 통해 출간한 책을 기반으로 신분을 숨기고 유명 안보 강사로 활동했습니다. 특히 지난해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이 씨는 종북 세력의 실체라는 주제로 군 지휘관과 간부 등을 대상으로 무려 50여 차례나 강연을 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강연료만 1400만원 넘게 받았습니다.
신분을 감춘 국정원 직원에게 적잖은 국민의 세금이 새 나간 것입니다.
[국방부 관계자]
"현대사상연구회 연구원 또는 강사...그렇게만 알고 있죠. 국정원 직원인걸 알게 되면 누가 초빙을 하겠습니까? 아이고...저도 깜짝 놀랐습니다.“
야당은 국정원이 이번 국감에서 선거 개입 댓글 활동을 한 것으로 드러난 국군 사이버사령부에 대해서도 이 씨의 책과 자료를 토대로 교육을 지원했다는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기소된 원세훈 전 원장 공소장에 국정원 책과 관련한 정치 개입 혐의가 빠진 만큼 별도 수사와 공소장 추가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박주민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사무처장]
"만약에 국정원이 이 책을 기획했고, 지원을 했다. 사실상 국정원의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걸 이용해서 국민의 여론, 특히 정치적인 여론에 영향을 미치려고 했던 것이 밝혀진다면 별도의 수사를 통한 공소장의 추가나 변경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뉴스타파 정유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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