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사냥법] ② 원유철 뇌물 비리 '최초 자백' 묻혔다

2021년 09월 24일 10시 10분

횡령 혐의 등으로 4년간 옥살이를 했던 한 중견기업 대표가 감옥에서 쓴 비망록 13권을 들고 뉴스타파를 찾아왔다. 검찰의 회유와 협박, 선택적 수사를 고발하기 위해서다.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134번 검찰에 불려갔던 그는 검찰에서 대체 무엇을 보고 겪었던 것일까. 뉴스타파는 4회에 걸쳐, 없는 사건을 만들고 있는 사건은 덮었으며, 약자에게 강하고 강자에게 약했던 '대한민국 검찰'을 고발한다.  <편집자 주>
검찰의 사냥법 ① "협박, 회유, 표적 수사"... 죄수가 쓴 비망록 13권
검찰의 사냥법 ② 원유철 뇌물 비리 '최초 자백' 묻혔다
지난 7월, 5선의 원유철 전 새누리당 의원이 대법원에서 징역 1년 6월 확정 판결을 받고 수감됐다. 지역구인 평택의 기업인에게 수천만 원대의 금품을 받은 혐의였다.
원유철에게 뇌물을 줬다는 기업인은 박진우(가명) 전 우양HC 대표다. 최근 감옥에서 쓴 13권의 비망록을 들고 뉴스타파를 찾아와 검찰의 잘못된 수사 관행을 고발했던 바로 그 사람이다.  
'원유철 뇌물' 사건은 박진우의 자백에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원유철 판결문에 따르면, 박진우는 2013년경 우양HC에 대한 산업은행 대출을 부탁하면서 원유철 측에 5천만 원을 건넸다. 
원유철 전 국회의원은 지난 7월 21일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고 현재 수감된 상태다. (출처 : KBS)

'원유철 뇌물' 최초 제보는 2014년, 수사는 3년 뒤 시작

박진우가 검찰에 '원유철 뇌물'을 처음 자백한 건 2014년 6월경이었다고 한다. 당시 박진우는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상태였고, 거의 매일 검찰에 불려가 '공무원 뇌물 진술'을 강요받고 있었다.('검찰의 사냥법 ①' 참조) 박진우는 최근 뉴스타파와 인터뷰에서 "변호사와 상의한 뒤 '원유철 뇌물' 자백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거물 정치인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검찰에 자백하고, 대신 횡령 혐의에 대한 구형량을 낮추는 등 편의를 제공받을 생각이었다는 것이다. 
박진우는 2014년 당시 '원유철 뇌물'을 자백하면서 검찰에 진술서까지 냈다고 주장했다. "검사가 원유철에게 뇌물을 준 사실을 백지에 적어 달라고 해서 생각나는 대로 써서 줬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진우가 자백한 '원유철 뇌물' 사건은 곧장 수사로 이어지지 않았다. 앞서 언급한 대로, 박진우가 원유철 뇌물을 처음 자백한 시점은 2014년 6월 경이다. 하지만 검찰이 이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한 것은 2017년 말, 원유철을 기소한 시점은 2018년 1월이다. 처음 자백이 나오고 3년 이상 사건이 묻혀 있었던 것이다. 검찰은 박진우의 자백을 듣고서도 왜 곧바로 수사하지 않았던 것일까.  
취재진은 먼저 "2014년에 '원유철 뇌물'을 검찰에 최초 자백했었다"는 박진우의 주장이 사실인지 검증해 보기로 했다. 평택지청에 박진우가 썼다는 진술서 등이 있는지 물어봤지만, 평택지청 측은 "자료가 이미 폐기된 상태"라고 답했다. 결국 다른 자료들에서 흔적을 찾았다. 2014년 박진우의 회삿돈 횡령 사건, 2017년 원유철 뇌물 사건 기록이다. 지난해 9월 박진우가 원유철 2심 재판에 나가 증인신문을 받은 기록 속에서 중요한 단서가 발견됐다.   
박진우(가명)가 지난해 9월 원유철 2심 재판에 나가 증인신문을 받은 기록. 박진우가 '2014년 평택지청에 원유철의 비리 의혹을 진술한 적이 있다'고 적혀 있다.
박진우의 증인신문 기록을 보면, 원유철 측 변호사가 박진우에게 "2014년 검찰에 원유철 측에 돈을 줬다고 말한 적이 있는지"를 묻자 박진우는 "예"라고 답한다. 박진우가 2014년 '원유철 뇌물'을 자백하면서 썼다는 진술서의 존재도 이 기록에 들어 있었다.   
검사 : 평택에서 증인이 피고인 원유철에게 돈을 준 일시, 사유, 장소는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못했지만 그런 취지의 내용을 진술서로 제출했던 것도 기억나지 않나요.
박진우 : 진술서는 하도 여러 번 써서...
검사 : 진술서 중에 권OO(원유철 보좌관), 피고인 원유철한테 돈을 전달했다는 진술서를 쓴 것도 지금 기억나지 않나요.
박진우 : 그것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원유철 2심 재판 증인신문 기록 / 2020.9.10
다만 박진우의 2014년 최초 '원유철 뇌물' 자백은 그렇게 구체적이지는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박진우는 뇌물을 준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특정하지 못했다.
검사 : (2014년 평택지청 조사 당시 뇌물을 준) 일시, 장소를 기억 못 했다고 이야기했는데, 맞나요.
박진우 : 예, 그랬던 것 같습니다.
검사 : 평택에서 진술서를 제출할 때는 왜 일시, 장소 등을 전혀 진술하지 못했나요.
박진우 : 충격에 아마 그랬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갑자기 구속이 되고.
검사 : 평택지청에서 수사받을 때 여의도 근처 식당에서 피고인 원유철, 권ㅇㅇ을 만났고 권ㅇㅇ에게 돈을 준 사실을 명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나요.
박진우 : 예, 돈을 준 것은... 대략 주변하고, 정확한 시기는 몰라도 돈을 준 것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검사 : 그럼 그때 왜 그렇게 진술서를 안 썼나요.
박진우 : 제가 그렇게 얘기를 했었을 건데요.     

원유철 2심 재판 증인신문 기록 / 2020.9.10
여하튼 박진우가 '원유철 뇌물'을 최초 자백한 시점이 2014년이란 점이 공식 문서로도 확인된 셈이다.
그럼 2014년 당시 죄수 박진우의 최초 자백을 듣게 된 평택지청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원유철 2심 재판 증인신문 기록에 따르면, 평택지청은 박진우의 자백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검사가 박진우에게 "'돈을 준 사유, 일시, 장소 등 구체적으로 기재하지 못해서였는지 수사기관에서 별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고 얘기했는데 맞느냐"고 묻자 박진우는 "평택지청에선 몇 번 조사받고 더 이상은 안 받았다"고 답했다. 실제로 검찰은 박진우의 자백을 듣고도 수사에 본격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검사 출신 이민석 변호사는 '진술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뇌물 사건을 수사하지 않는다는 일은 일반적이지 않다'고 설명했다. 이민석 변호사는 "뇌물 사건에서는 뇌물공여자의 자백을 얻는 것 자체가 일단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자기도 처벌받을 걸 각오해야 가능한 진술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단 '누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하면 신빙성이 있다고 보고 수사하는 게 일반적이다"고 말했다.  
수원지방검찰청 평택지청. 박진우는 2014년 평택지청에 '원유철 전 의원에게 뇌물을 줬다'고 자백했다고 주장했다.

'원유철 뇌물' 핵심 증거, 문자메시지 

취재진은 2014년 박진우의 '원유철 뇌물 자백' 당시 이 자백을 입증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존재했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바로 박진우가 2014년 5월 말 구속 직전까지 사용했던 휴대전화다. 뉴스타파는 박진우의 도움을 받아 이 휴대전화에 저장된 문자 내역을 복원했다. 그리고 박진우와 원유철 보좌관 권 모 씨가 나눈 12건의 문자메시지를 확인했다. 대부분 2012년부터 2013년까지 서울 여의도 인근에서 약속을 잡는 내용이었다. 
2013년 경, 박진우(가명)가 원유철의 보좌관 권 모 씨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 청탁과 금품이 오간 서울 여의도 소재 중식당과 커피숍 이름이 등장한다. 
문자 내용에 따르면, 박진우와 권 보좌관은 서울 여의도에 있는 한 중식당과 커피숍에서 만났다. 바로 4년 뒤인 2018년, 원유철이 기소되고 열린 재판에서 '청탁과 금품이 오간 곳으로 확인'됐던 바로 그 장소였다.
피고인(원유철)은 보좌관 권OO의 요청으로 2012년 10월 30일 권OO과 함께 서울 여의도동에 있는 식당에서 박진우(가명)를 만났다. 박진우는 “산업은행에서 대출을 받으려 하는데 여의치가 않으니 잘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라는 취지로 청탁했다

원유철 1심 판결문
그렇다면 박진우 자백을 뒷받침해 줄 결정적 증거인 문자메시지는 그 동안 누구 손에 있었던 것일까. 취재진은 박진우에게 이 부분을 물었다. 박진우는 인터뷰에서 "2014년 평택지청의 수사를 받을 당시, 이 문자메시지를 자신의 변호인인 검사장 출신 성 모 변호사가 갖고 있었다"고 말했다. 성 변호사를 통해 검찰에 문자메시지를 '원유철 뇌물'의 증거로 제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진우가 쓴 비망록에는 이 문자메시지를 성 모 변호사가 보관하고 있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우양HC 전 직원)이 재작년(2014년) 성○○ 고문 변호사가 해놓은 권○○(원유철 보좌관) 핸드폰 내용을 보내왔다.

박진우 비망록 / 2016.5.13

2014년 검찰, 문자메시지의 존재 알았나, 몰랐나

취재진은 문자메시지의 행방을 쫓기 위해 먼저 비망록에 이름이 등장하는, 문제의 문자메시지를 전달한 우양HC 전 직원 이 모 씨에게 연락했다. 이 씨는 전화 인터뷰에서 "2014년 박진우 휴대전화에 들어 있는 문자메시지 내역을 박진우 변호인에게 전달한 것은 맞다"고 말했다. "박진우 변호인이 성 모 변호사가 맞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이 씨는 "그렇다"고 답했다.   
취재진은 검사장 출신의 성 모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2014년 수사 당시 박진우와 원유철 측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역을 검찰에 제출한 적이 있는지' 묻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성 모 변호사는 취재진의 질문에 "아주 민감한 사안이다. (문제메시지를 검찰에 줬는지) 기억나지 않고, 설사 기억이 나더라도 말해줄 수 없다"는 이해하기 힘든 답만 전했다. 박진우를 수사했던 평택지청은 "박진우의 문자메시지를 확보한 적이 있는지"를 묻는 뉴스타파 질문에 아무런 답을 하지 않았다.   
박진우(가명)가 2014년 검찰에 구속되기 직전까지 사용하던 휴대전화. 이 휴대전화 안에는 박진우가 원유철의 보좌관 권 모 씨와 나눈 문자메시지 내역 12건이 들어 있다.

"2014년 검찰은 '원유철 수사 의지' 없었던 것 같다"

그런데 사실 검찰이 박진우와 원유철 측이 나눈 문자메시지를 확보했든 안 했든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뇌물 공여자인 박진우가 범행을 자백한 상황에서, 검찰이 자백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한 수사에 나서지 않았다는 것 자체가 문제이기 때문이다.  
먼저 검찰이 박진우-원유철 측 간에 오간 문자메세지를 확보했다고 가정하면, 검찰은 바로 박진우와 문자를 주고받은 원유철 보좌관 권 모 씨를 불러 수사를 진행했어야 했다. 뇌물 공여자가 자백을 했고, 약속을 잡은 문자까지 확보된 상황에서 수사를 안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당시 평택지청은 우양HC의 전 임원 한 사람의 진술만을 갖고도 야당 소속이던 A 전 평택시장의 뇌물 수수 의혹을 수사한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원유철은 물론 보좌관인 권모 씨에 대해서도 강제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검찰이 문자메시지를 보지 않았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검찰이 뇌물 사건 수사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통신기록조차 확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당시 뇌물 공여를 자백한 박진우가 검찰에 구속된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굳이 압수수색이 아니어도 임의제출 방식을 통해 검찰은 박진우의 휴대전화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문자메시지를 확보하지 못했다면, 애초부터 수사 의지가 없었다고 보는 게 합리적인 추론이다.   
뉴스타파의 의뢰를 받아 이 사건을 검토한 검사 출신 김정범 변호사는 검찰의 수사행태를 이렇게 평가했다.   
돈 줬다는 진술이 있고. 그러면 그 진술이 믿을 만한 것인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사를 해야 할 거 아닙니까? 예를 들면 이제 그 당시에 만난 적이 있는지, 통화한 적이 있는지. 그다음에 그 장소가 돈을 줬다고 한 장소가 일치하는지 이런 것들을 한번 쭉 살펴봐야 할 거 아닙니까? 문자를 주고받은 내용 자체를 보지도 않았다. 그거 수사할 의지 자체가 없는 거죠.

김정범 변호사 / 전 검사
역시 검사 출신인 이민석 변호사는 "검찰이 당시 대통령 박근혜의 측근인 친박계 원유철 의원을 봐준 것은 아닌지 의심된다"는 의견을 내놨다.  
본인이 뇌물을 줬다고 말까지 하고. 분명히 문자나 SNS에 기록이 있는데도 포렌식도 안 하고 덮었다는 거는 문제가 심각하죠. 그 당시 야당 정치인에 대해서는 압수수색이나 긴급체포를 하고 그리고 야당 정치인보다 더 압도적인 증거가 있는 여당 거물 정치인에 대해서는 아무리 공여자가 돈을 줬다고 진술을 해도 수사에 착수하지 않았다. 이거는 진짜 엄청난 문제죠.

이민석 변호사 / 전 검사

"2014년 박진우 수사팀, "법과 원칙 따른 수사" 주장

2014년 당시 평택지청이 '원유철 뇌물' 최초 자백을 무시한 이유에 대해 박진우는 이런 주장을 내놓기도 했다.
"2014년 당시 검찰이 여당인 새누리당 소속 정치인과 관련된 의혹은 원하지 않았고, 별 관심도 없었다."
한마디로 검찰이 여당의 눈치를 보며 선택적 수사, 표적수사를 했다는 주장이다.  
뉴스타파는 박진우 주장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2014년 평택지청에서 박진우를 수사했던 김영준 검사와 이명신 전 부장검사에게 연락했다. '원유철 뇌물' 제보를 받고도 왜 수사를 하지 않았던 것인지, 박진우와 원유철 보좌관이 주고받은 문자를 확보했었는지, 집권여당 인사 관련 비리에는 눈감았다는 박진우 주장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등이 궁금했다. 현재 서울중앙지검에 근무 중인 김영준 검사는 "법과 원칙을 준수해 적법절차에 따라 수사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 내놨고, 이명신 전 부장검사는 취재를 거부했다.
박진우의 자백이 묻힌 뒤, 원유철은 승승장구했다. 자백이 있고 1년쯤 뒤인 2015년 7월엔 여당인 새누리당의 원내대표 자리까지 올랐다. 그 사이 박진우는 검찰의 수사 행태에 분노하며 감옥 안에서 속절없는 시간만 보내야 했다. 그 당시 박진우의 심정, 검찰에 대한 분노는 그가 쓴 비망록에 이렇게 기록돼 있다. 
대한민국 검사가 그 따위인가? 절대 가만 있지 않으리라. (비망록 / 2015.8.29)
제작진
취재홍주환
촬영오준식 신영철 최형석
편집김은
CG정동우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