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렴치한 '공작'...정보사 군인 성폭행 사건

2021년 07월 05일 14시 34분

지난해 7월, 뉴스타파는 북한이탈여성인 한서은(가명) 씨가 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소속 군인 두 명에게 1년 넘게 상습적으로 성폭행 당한 사건을 보도한 바 있다.(https://newstapa.org/article/bzBVH) 가해자인 성 모 중령과 김 모 상사는 정보사에서 북한 정보 취득 업무를 맡던 군인이었다. 보도 직후 군검찰은 두 사람을 피감독자간음 혐의 등으로 재판에 넘겼고, 지난 6월 7일 김 상사에게 징역 10년, 성 중령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정보사 군인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 한서은(가명) 씨.
뉴스타파는 지난 8개월간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 진행된 이 사건 재판의 전 과정을 취재했다. 그 과정에서 정보사가 어떻게 북한이탈주민을 이용해 정보를 수집하는지, 그 과정이 얼마나 부적절하고 위험한지 확인할 수 있었다. 성폭행 사건 취재 당시엔 알 수 없던 내용이 많았다. 취재진이 판단하기에 이 사건은 한 여성에 대한 성폭행 사건이면서, 동시에 북한이탈주민의 사회·경제적 약점을 이용한 인권탄압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언론은 정보사 군인들의 성폭행 사건을 ‘탈북여성 성폭행 사건’으로 불렀다. 피해자를 고려치 않은, 2차 가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었다. 뉴스타파는 이 사건의 성격을 감안해 앞으로는 ‘정보사 군인 성폭행 사건’으로 부르기로 한다.  

법정에 선 성폭행 가해자들

(군 검사) 피고인은 과거 정보사령부에서 공작담당관으로 일한 사실이 있으시죠?
(성 중령) 예
(군 검사) 어느 기간 동안 그런 역할을 수행했나요?
(성 중령) 10년입니다.

- 성 모 중령 피고인 신문 (2021.6.7)
지난 6월 7일, 47세의 성모 중령이 법정에 들어섰다. 그는 정보사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묻는 검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검사) 구체적으로 어떤 업무를 수행했나요?
(성 중령) 현재 공개상이다보니 제 임무에 대해 기밀이 노출될 우려가 있는데, 완화해 말하겠습니다. 저는 대북에 관련한 첩보를 수집합니다. 군이므로 군과 연계된...

- 성 모 중령 피고인 신문 (2021.6.7)
성 중령은 말을 아꼈다. 자신이 맡은 은밀한 임무가 탄로날까 걱정하는 듯 했다. 검사는 김모 상사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졌다.  
(군 검사) 과거 정보사령부에서 근무한 사실 있으시죠?
(김 상사) 네.
(군 검사) 어떤 직책을 수행해 왔습니까?
(김 상사) 공작담당관입니다.
(군 검사) 탈북주민을 대상으로 해서 북한핵무기 등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공작담당관의 주요 업무가 맞습니까?
(김 상사) 대북 첩보수집 맞습니다.

- 김 모 상사 피고인 신문 (2021.6.7)
두 사람의 주 임무는 북한이탈주민을 상대로 북한군 관련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었다. 주로 북한군의 무기와 관련한 첩보 수집이었다. 성 중령은 사업 팀장, 김 상사는 성 중령의 지휘 감독을 받아 행정업무를 지원하고 사업 대상자를 만나 보고서를 작성하는 부하 직원이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사업’ 혹은 ‘공작’이라 표현했다. 이들이 한서은 씨를 찾아내 만난 것도 북한 무기 관련 첩보를 수집하는 ‘공작’을 위해서였다. 
한서은 씨는 북한에서 무기제조 업체에서 일하다 2013년 1월, 27살의 나이에 홀로 탈북했다. 그리고 제3국을 거쳐 같은 해 10월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그리고 4년 뒤인 2016년 6월, 신변보호담당관인 경찰에게 성 중령과 김 상사를 소개받았다. 이들에 의한 성폭행은 2018~ 2019년 사이 수차례에 걸쳐 벌어졌다. 
한서은 씨를 수차례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김 모 상사가 군사법원을 나서고 있다.
한서은 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성모 중령이 군사법원을 나서고 있다. 

'한서은 보고서'

재판과정에서 군검찰은 성 중령과 김 상사가 공작관으로 활동하며 작성해 온 2급 군사기밀 문서의 일부를 공개했다. 문서 접근 권한이 있는 자만이 열람할 수 있는 이른바 ‘비밀 바인더’였다. 정보사는 북한 관련 첩보를 수집해 중요도에 따라 1급, 2급, 3급으로 나눠 분류한다.
정보사에 따르면, ‘비밀 바인더’는 군사 기밀 문서에 담긴 내용을 발췌, 정리한 일종의 ‘비법노트’다. 그런데 성 중령과 김 상사가 함께 공작활동을 하며 작성해 온 ‘비밀 바인더’ 중에 소위 ‘한서은 보고서'가 있었다. 
성 중령이 피해자 한 씨를 처음 만난 건 2016년 중순이었다. 하지만 이미 2년 전부터 성 중령은 한 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한 씨가 탈북 직후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받은 조사 문건을 확보한 것이 시작이었다. 이 문건에는 한 씨의 가족사항, 북한에서 한 일, 직장 관련 정보들이 들어 있었다. 이후 ‘한서은 보고서’에는 출생지, 주소, 가족사항, 학력, 경력, 탈북경로, 수입원, 재산관계, 심지어 북한에 살고 있는  동생 관련 사항, 성격, 남자친구, 관심사항, 신체특징, 주량까지 더해졌다. 
정보사가 어떻게 수집했는지 알 수 없는 한 씨의 이런 개인 정보는 정보사 군인들이 한 씨를 상대로 공작전술을 짜는 데 중요한 기초자료가 됐다. 한 씨를 어떻게 회유해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일종의 솔루션을 여기서 찾았다. 대한민국에 혼자 떨어진 한 씨의 힘든 처지가 정보사 군인들에게는 그저 '이용가치가 있는 공략포인트'에 불과했던 것이다. 다음은 ‘한서은 보고서’ 중 일부다. 
- ‘한서은 보고서’ 중 일부
한서은 씨에 대한 정보사의 ‘공작’은 총 4단계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됐다. 1단계는 물적지원, 즉 돈으로 유인하는 방식이었다. 2단계는 인간적 관계 조성. 3단계는 불법적-비도덕적 방식, 성폭행이 여기에 속했다. 4단계는 입막음, 사업이 끝난 뒤 한 씨가 정보사 관련 일을 입밖에 꺼내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정보사 군인 두 명, 성 모 중령과 김 모 상사는 한 씨의 경제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별다른 수입이 없는 대학생이라는 점, 매달 정부로부터 받는 기초생활수급비 50만원이 수입의 전부라는 점 등이었다. 그래서일까. 이들은 한 씨를 만날 때마다 돈을 미끼로 활용했다. 첫 만남 때 준 돈은 고작 30만 원. 하지만 생활이 팍팍했던 한 씨에게는 큰 돈이었다. 한 씨는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유가 없었어요. 
정보사 군인들을 만난 이유는 오로지 돈 때문이었어요.”
정보사 공작관들이 한 씨에게 정보 제공 대가로 주는 돈의 규모는 들쭉날쭉했다. 10만 원을 줄 때도 있었고 60만 원을 준 적도 있었다. 활동비 혹은 통신비 명목이었는데, 매번 자기들 마음대로였다. 때로는 학생 신분으로는 사먹기 힘든 음식으로 환심을 사기도 했다. 
정보사 군인들은 때때로 한 씨에게 선물도 줬다. 10만 원짜리 화장품 세트,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이었다. 전공서적이나 소설 전집을 사줬고 지갑을 사라고 현금 60만 원을 준 적도 있었다. 이런 식으로 정보사 군인 두 명이 한 씨에게 건넨 금품은 2년에 걸쳐 총 450만 원 정도였다. 기초생활수급비로 충당되지 않는 생활비를 벌기 위해 시급 8000원짜리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던 한 씨에게는 큰 돈이었다. 그리고 대한민국에 정착한 뒤 처음 받아본 따뜻한 관심이었다. 한 씨는 이렇게 말했다. 
“명절에 저 혼자 있는데, 선물을 챙겨준 거잖아요.
가족 같았고, 그게 마음을 감동시켰어요.” 
하지만 한 씨가 ‘따뜻함’으로 기억하는 일들이 정보사 군인들이 작성한 소위 ‘한서은 보고서’에는 다르게 적혀 있었다. 정보사 군인들에게 한 씨는 그저 푼돈으로 부릴 수 있는 공작원 정도에 불과했다. 정보사 군인들이 어떤 마음으로 돈과 선물을 주는지 알 길이 없던 한 씨는 점점 정보사 소속의 두 군인, 성 모 중령과 김 모 상사에게 심리적으로 의존해 갔다. 
“학교는 다닐만 해?, 친구들은, 지도교수는 어떤 사람이야?”
성 중령은 한 씨에게 사적인 질문을 자주 했다. 한 씨가 SNS 프로필 사진을 바꾸면 어김없이 전화를 걸어 “무슨 일 있어? 어디 좋은 곳 놀러 갔니?” 등을 물을 정도였다. 성 중령은 재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농담도 하고 사적 이야기하면서. 제가 여동생 같다 이야기했습니다.
너 결혼할 때 너 아빠 없으니까 내가 손잡고 들어가겠다, 할 정도로.

- 성모 중령 피고인 신문 (2021.6.7)
한 씨는 성 중령의 이런 말과 행동을 ‘관심과 배려’라고 생각했다. 한 씨의 말이다. 
“부모 같았고, 가족 같았어요. 이제 내게도 든든한 버팀목이 생겼구나.”
하지만 착각이었다. 성 중령의 목표는 따로 있었다. 성 중령은 자신이 만들어 관리한 소위 ‘한서은 보고서’에 이렇게 기록했다.  
- ‘한서은 보고서’ 중 일부
군검찰은 재판에서 이 부분을 따져 물었다.  
- 김 모 상사 피고인 신문 (2021.6.7)
정보사 군인들은 재판과정에서 공작대상자에 대한 포섭 정도를 4단계로 구분짓는다고 말했다. 1단계는 일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 2단계는 부분포섭으로 일의 일정정도만 이해하고 부분적으로만 협조하는 상태. 3단계는 일도 잘 이해하고 있고 일을 진행하면서 자기 주장도 낼 수 있는 단계. 4단계는 완전포섭이다. 그럼 이들 정보사 소속 군인들에게 한서은 씨는 어느 정도 수준으로 포섭된 상태였을까. 한서은 씨를 10여차례 성폭행 한 혐의로 재판을 받은 김 모 상사는 판사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판사) 이 사건은 4단계 완전포섭 단계라고 생각하시나요?
(김 상사) 일도 상당히 적극적으로 했고...단계는 정확히 모르겠습니다. 관계는 되게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판사) 최소 3단계 이상으로 포섭됐다고 생각한다는 말씀이죠?
(김 상사) 네.

- 김 모 상사 피고인 신문 (2021.6.7)
한 씨가 최소 3단계 이상 포섭됐다고 판단한 정보사는 점점 까다롭고 위험한 정보를 한 씨에게 요구하기 시작했다. 바로 한 씨가 끔찍히 생각하는, 북한에 사는 한 씨의 남동생을 활용하는 것이었다. 남동생은 북한의 한 무기제조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였다. 탈북 전 한 씨가 일했던 곳이었다. 
한 씨의 남동생을 끌어들이는 ‘공작’은 자연스럽게 시작됐다. 정보사 군인들은 어느 날부터 한 씨에게 “남동생에게 연락할 수 있나?”, “집 주소를 알려주면 연락해 주겠다” 같은 제안을 하기 시작했다. 남동생의 안부가 늘 걱정이던 한 씨에게는 거부하기 힘든 제안이었다. 한 씨는 의심없이 응했다.

친동생이 위험에 빠졌다

정보사 군인들은 여러차례 아무 조건없이 북한에 있는 남동생과 전화통화를 시켜줬다. 그리고 남동생에게 수차례에 걸쳐 500만 원에 가까운 돈을 보내줬다. 중국 브로커를 통해 돈을 보내는 식이었다. 북한으로의 송금은 2017년 6월 경까지 꾸준히 이뤄졌다.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한 씨는 “북한에선 100달러만 있어도 몇달은 그냥 먹고 살 수 있어요. 여기 돈 몇백만 원이 북에선 큰 돈이죠”라고 말했다. 
정보사 군인들이 이렇게 북한으로 돈을 보내며 한 씨의 남동생에게 요구한 건 “북한 무기공장에서 쓰는 광물을 반출해 달라”는 것이었다. “감자 한 덩이 정도만 보내주면 평생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보상한다”고 제안했다. 하지만 이 일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한 씨의 남동생 입장에서는 목숨을 걸어야 할 지도 모를 위험한 일이었다. 한 씨는 남동생과의 마지막 전화통화에서 “위험하면 하지 마라. 사는 게 우선이야. 조심해”라고 말했다. 
문제가 터진 건 2018년 2월 경이었다. 북한에 있는 남동생과 연락이 두절된 것이다. 시간이 지난 뒤 남동생이 북한 보위부에 잡혀갔다는 얘기가 들려 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었다. 그런데 이때부터 한 씨에게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북한에 있는 남동생의 상황을 확인하려 발을 동동 구르던 한 씨의 연락을 정보사 군인들이 피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보사 군인들은 “사업이 실패했다”며 실망할 뿐 한 씨나 한 씨의 남동생에 대한 미안함이나 책임감은 전혀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한 씨의 머릿속에는 “동생을 살려야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연락을 피하기 바쁜 사람들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한 씨가 매달릴 곳은 정보사 군인 두 사람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한 씨는 이때부터 더 열심히 정보사 군인들의 요구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 만나자면 만났고, 남동생을 대신해 ‘공작’을 진행할 사람을 소개시켜 달라고 하면 그렇게 했다. 한 씨는 “동생 일이 그렇게 되다보니, 그들에게 끌려다닐 수밖에 없었다”라고 말했다. 
2018년 5월의 어느 날, 한서은 씨는 정보사 소속 군인 김 모 상사에게 처음으로 성폭행을 당했다. “남동생을 구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 만난 자리였다. 군검찰이 작성한 공소장에 따르면, 한 씨는 이 날을 시작으로 총 6회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다. 그 중 2회는 업무상 목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벌어졌다.  
김 상사의 성폭행이 계속되던 2019년 1월, 이번엔 성 중령이 한 씨를 성폭행한다. 그 날은 남동생을 대신할 탈북민을 성 중령에게 소개하는 날이었다. 이 날 벌어진 성폭행이 사적인 만남에서 벌어진 일인지, 공적인 만남에서 벌어진 일인지는 재판에서도 쟁점이 됐다. 공적인 만남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그건 단순 성폭행 사건으로 끝날 문제가 아니었다.   
(판사) 사적만남, 공적만남 어떻게 구별합니까?
(성 중령) 공적만남은 보고하고 만나는 거고, 사적만남은 보고하지 않습니다. 그날(성폭행 당시) 은 보고했습니다.
(판사) 성관계 한 것도 공적 만남입니까?
(성 중령) 그 이후는 사적만남입니다.
(판사) 성관계 한 것만 사적 만남입니까?
(성 중령) ··· 커피 한잔 한 것도 사적 만남일 수 있고···그 전엔 없없습니다.

- 성 모 중령 피고인 신문 (2021.6.7)
‘정보사 군인 성폭행 사건’ 재판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 문제 중 하나는 ‘성모 중령이 녹음한 음성파일을 증거로 채택할 것인가’하는 점이었다. 바로 한 씨를 성폭행 할 당시 성 중령이 스스로 녹음한 것이었다. 성 중령측은 재판준비기일 때부터 이 녹음파일을 증거로 채택해 달라고 줄기차게 요구했다. “성폭행이 아닌 합의된 성관계임을 증명해 주는, 강력한 무죄의 증거”라는 주장이었다. 판사는 성 중령에게 ‘성관계 상황을 녹음한 이유’, ‘성관계도 공작의 일환인지’를 물었다.  
(판사) 녹음기를 왜 켰습니까, 처음에?
(성 중령) 상황이 그러다보니까, 실수할 수도 있고 보호대책으로…
(판사) 실수 하신 거 아니에요?
(성 중령) 맞습니다.
(판사) 근데 녹음기를 켜고 성관계를 하셨어요.
(성 중령) 네.
···
(판사) 공작대상자 포섭을 위해 성관계도 합니까?
(성 중령) 안 합니다.
(판사) 업무는 아니었다는 거죠?
(성 중령) 네.

- 성 모 중령 피고인 신문 (2021.6.7)
앞서 소개한 것처럼, 정보사 두 군인은 한서은 씨를 이용해 ‘공작’을 할 목적으로 돈을 쓰고 인간적 관계를 유지했다. 북한에 있는 한 씨의 남동생까지 끌어들였다. 하지만 ‘공작’이 실패하자 아무런 법적, 도덕적 책임도 지지 않은 채 한 씨를 피했고, 공적만남인지 사적만남인지 애매한 자리에서 한 씨를 성폭행하는 범죄까지 저질렀다. 누가 봐도 상식에 반하는, 이해하기 힘든 일의 연속이었다. 
재판을 지켜보며, 취재진은 궁금증이 생겼다. “이렇게까지 비인간적인 방법을 써 가며 북한 정보를 수집해야 하는가”, “국가를 대신해 공적 업무를 수행하는 정보사 군인들이 성폭행 같은 비도덕적이고 불법적인 짓을 해도 되는가”, “대한민국의 국민인 북한이탈주민을 정보사 군인들이 이렇게 이용해도 되는가” 하는 것이다.  
이런 궁금증을 갖게 된 건 취재진만이 아니었다. 판사도 마찬가지였다. 판사는 상식적인, 가장 중요한 질문을 성 모 중령에게 던졌다.  
- 성 모 중령 피고인 신문 (2021.6.7)
한서은 씨는 정보사 김 모 상사에게 10여차례 성폭행을 당한 뒤 두 번이나 임신중절수술을 했다. 두번째 수술은 2019년 7월에 있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게 된 성모 중령은 문제를 해결하기는 커녕, 한 씨에게 ‘합의서’를 요구하는 식으로 사건을 무마하는데만 열을 올렸다. 성 중령 역시 한 씨를 성폭행한 가해자이니 사건이 커지는 걸 원치 않았던 것일까? 성 중령이 한 씨에게 요구한 합의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합의자 한서은은 합의대상(김 상사)와 만나는 동안 불미스러운 모든 일들에 대해 합의금으로 한화 500만원을 받고 원만히 합의하였으며 차후 일체의 문제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약속합니다.

- 피해자 한서은 씨가 서명한 '합의서' (2019.7.4)
정보사 군인들이 두렵고, 또 북한에 있는 남동생을 구해야 하는 처지에 있던 한 씨는 이들의 요구를 들어줄 수 밖에 없었다. 이 '합의서' 역시 재판에서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 판사가 묻고 김 모 상사가 답했다.  
(군 검사) 합의서 쓰고 공증 받아오라는 것은 누구의 아이디어였습니까?
(김 상사) 임신중절하고 나서 피해자가 신고한다고 하니까. 팀장이  ‘위에 지휘보고 한다’고 해서, 제가 빌었습니다. 그러니까 팀장이 뭐라도 보호해야 하지 않겠냐, 영수증처럼…

- 김 모 상사 피고인 신문 (2021.6.7)
성폭행 피해자인 한서은 씨가 국방부에 피해사실을 처음 신고(2019년 10월 9일)한 뒤로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 가해자인 정보사 소속 두 군인은 군검찰의 수사를 받아 재판에 넘겨졌고 1심 변론기일도 끝났다. 군검찰은 이들에게 각각 징역 10년(김모 상사)과 징역 7년(성모 중령)을 구형했다. 두 사람에 대한 선고결과는 조만간 나올 예정이다. 

“존경하는 재판부께 드립니다”

‘정보사 군인 성폭행 사건’의 피해자인 한서은 씨는 두 명의 가해자에 대한 군검찰 구형이 나온 뒤, 편지를 한 통 써 뉴스타파에 보내왔다. ‘친애하는 재판부께 드립니다’라는 제목의 글이다. 한 씨는 편지에서 처음 피해사실을 신고한 때부터 거의 4년간 자신이 감당해야 했던 것, 그리고 가해자들에게 차마 묻지 못했던 말을 담았다. 뉴스타파는 한서은 씨의 동의를 받아 이 편지 전문을 공개한다. 
친애하는 재판부께 드립니다.
본 사건의 피해자는 미디어를 통해 한국을 동경하게 되었으며, 새로운 삶과 자유를 꿈꾸며 탈북하게 되었습니다. 피해자가 지난 2년간 가해자들로부터 받은 피해는 무엇으로도 평생 치유될 수 없는 큰 상처입니다. 첫 사건이 있은 후로 평소에 피해가 너무 잦아 이제와서 강간인지 아닌지 구별조차 할 수 없었던 피해자입니다. 
한국사회의 적응 취약성과 권력에 억눌린 한 명의 탈북자,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끄러워 혼자 지독히도 참고 버티다가 나는 늘 혼자라 느끼며 죽음을 선택했던 순간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생사를 걸고 탈북하던 당시를 생각하며 다시 일어섰습니다. 
가해자들은 가혹하고 파렴치한 방법으로 거짓을 주장하며 자신들을 방어하고 있습니다. 사건 피해로 인해 얼룩진 피해자의 지금 모습은 예전의 밝고 명랑했던 모습으로 돌아가기에 너무도 먼 곳에 있습니다.
그러나 본 사건을 계기로 더는 권력으로 인해 고귀한 여성들의 삶이 짓밟히지 않도록 범죄가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재판부께서 처벌 내려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피해자 한서은 씨가 직접 작성한 편지 전문. 한 씨는 군검찰이 두 정보사 군인에게 각각 징역 10년(김 모 상사)과 7년(성 모 중령)을 구형한 직후 뉴스타파에 이 편지를 보내왔다.
제작진
촬영신영철
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