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시와 차별, 망각...아리셀 참사 유족들은 얼어붙은 길 위에 있다
2024년 11월 19일 11시 38분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북한이탈주민은 3만 3000명(2020년 3월 기준)이 넘는다. 이 중 72.1%가 여성이다. 1998년 12.2% 수준에서 20여 년만에 6배 가량 증가했다.
여성 비율이 증가하면서 예상치 못한 문제도 늘고 있다. 북한이탈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폭력은 그 중 하나다. 2017년 여성가족부가 시행한 연구(‘북한이탈여성 폭력피해 실태 및 지원 방안 연구’)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36%가 남한에 들어온 뒤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뉴스타파는 두 명의 북한이탈여성이 겪은 성폭력 피해 사례를 취재했다. 2013년 탈북한 한서은(34세, 가명) 씨와 2010년 탈북한 배유진(55세, 가명) 씨다. 두 사람은 모두 탈북자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수사·정보기관 관계자에게 수 년에 걸쳐 성폭행을 당했고, 이를 고발했거나 고발을 준비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이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된 이후 겪어야 했던 성폭행 피해, 그리고 피해사실을 고발한 뒤 벌어진 2차 폭력과 반성하지 않는 가해자들의 모습을 통해, 북한이탈여성들이 온 몸으로 받아내야 했던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고발한다.
2013년 1월 탈북한 한서은(34세) 씨는 그 해 10월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6개월 간의 국정원 중앙합동신문센터 조사를 받고서야 얻은 자격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뒤 서은 씨는 영어학원, 회계학원 등을 다니며 공부했고 편의점 점원, 마트 계산원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2016년 6월, 서은 씨는 자신의 신변보호담당관이던 경찰에게서 두 명의 군인을 소개받았다. 성 모 중령과 김 모 상사였다. 신변보호담당관은 이들을 ‘국가 일을 하는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두 명의 군인이 모두 국군 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소속이란 사실은 나중에야 알게 됐다.
탈북하기 전까지 서은 씨는 북한에서 한 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했다. 두 군인이 서은 씨를 찾은 건 이 때문이었다. 이들은 서은 씨에게 북한 관련 정보, 특히 서은 씨가 일했던 북한 연구소와 관련된 정보를 요구했다. 대한민국에 들어온 이후 종종 해오던 일이라, 서은 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이들을 도왔다.
정보사 군인들은 한 달에 2~3번 씩 서은 씨를 찾아와 정보를 받아갔고, 사례비를 지급했다. 서은 씨는 돈을 받을 때마다 영수증에 사인을 해 줬다. 서은 씨와 두 명의 군인은 분명히 ‘공식적인 업무관계’였다. 이들의 관계는 2016년 6월부터 2017년 6월까지 약 1년간 지속됐다.
성 중령과 김 상사는 서은 씨에게 명절선물도 챙겨주고 한국 사회에서 겪는 소소한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적으로도 친밀한 사이가 됐다. 나이가 많았던 성 중령은 서은 씨에게 “아빠처럼 생각하라”고 말할 정도였다. 기댈 곳이 없던 서은 씨는 점점 두 사람을 믿고 의지했다.
시간이 갈수록 정보사 소속 군인 2명은 까다로운 정보를 요구하기 시작했다. “북한에 있는 동생에게 연락해 정보를 수집해 달라”는 등의 요구였다. 서은 씨는 결국 이 두 사람의 도움을 받아 북한에 사는 친동생에게 연락했고, 동생에게 정보를 받아 넘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2018년 1월 경 문제가 생겼다. 동생과 연락이 두절된 것이다. 성 중령은 서은 씨에게 “동생이 북한에서 보위부에 체포된 것 같다”고 알려왔다.
동생의 체포 소식을 들은 뒤부터 서은 씨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자신을 돕다가 잘못된 동생을 위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서은 씨가 기댈 곳이라곤 두 명의 정보사 군인, 성 중령과 김 상사 밖에 없었다. 서은 씨는 “친동생을 구해 달라”고 두 사람에게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하지만 이들은 서은 씨의 요청을 외면했다. 한 달에 2~3번 씩 찾아오고, 거의 매일 전화를 하던 두 사람은 “동생이 북한 보위부에 잡혀간 것 같다”는 소식을 전한 뒤로는 서은 씨의 전화도 잘 받지 않았다.
2018년 5월 25일. 서은 씨는 저녁 늦게 김 상사와 만나 술을 마셨다. ‘동생을 구해 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 나간 자리였다. 술자리는 2차까지 이어졌다. 그리고 그 날 새벽, 서은 씨는 서울 강남의 한 모텔에서 성폭행을 당했다.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고, 눈을 뜨니 모텔이었다.
김 상사의 성폭행은 이후 13개월 간 11차례나 더 이어졌다. 모두 서은 씨의 집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성폭행은 서은 씨의 몸에 흔적을 남겼다. 두 번의 낙태 수술을 견뎌야 했고, 정신과 치료도 받았다. 김 상사는 서은 씨에게 500만 원의 합의금을 제시하며 공증을 요구했다. 서은 씨는 거절했다.
서은 씨는 성 중령에게도 성폭행을 당했다. 2019년 1월 21일이었다. 역시 동생 문제를 부탁하기 위해, 성 중령에게 북한 정보를 제공해줄 수 있는 또 다른 북한이탈주민을 소개해 주러 나간 자리였다. 김 상사에게 당했던 날처럼, 서은 씨는 이 날도 억지로 술을 먹어야 했다. 성 중령은 집에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쫒아온 뒤, 서은 씨를 성폭행했다.
2019년 10월 16일, 서은 씨는 먼저 군 검찰단에 김 상사를 ‘위력에 의한 간음’ 등의 죄목으로 고소했다. 12월 4일에는 성 중령을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죄로 고소했다. 군 검찰은 곧바로 수사에 착수했다. 하지만 수사과정에서 서은 씨는 예상치 못한 일을 당해야 했다. 2차 폭력이었다.
2020년 4월 28일, 국방부검찰단 별관 3층에서 서은 씨에 대한 고소인 조사가 진행됐다. 그런데 조사를 하던 군 검사는 서은 씨에게 자신의 노트북에 저장돼 있던 음성녹음 2개를 듣도록 했다. 성 중령에게 성폭행을 당할 당시 상황이 녹음된 파일이었다. 음성파일에 대한 사전 설명이나 동의 절차는 없었다. 서은 씨는 충격을 받았다.
“어떤 거라고 알려주지 않고 그냥 녹음을 들으라고 했어요. 성관계가 있었던 당시 녹음된 파일이었어요. 너무 힘들었습니다. 제 정신이 아니었고...다 듣고 나니 검사랑 수사관이 ‘들어와서 할 얘기 있으면 하라’고 했어요. 그때 제 심정은 하루살이 같은, 하루살이 같은 벌레가 돼서 하늘에 떠 있는 것 같았어요. 이제 죽겠구나...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조사를 받고 나서) 상담소 선생님에게 - 전화를 했어요. 전화하는 내내 울었어요. 그때 전화가 안 됐으면 죽었을 것 같아요.”
- 성폭행 피해자 한서은(가명)
아무런 동의 절차없이, 성폭행 피해자에게 폭행 당시 상황을 듣도록 하는 건 누가봐도 비상식이다. 그런데 그런 일이 다른 곳도 아닌 국가 수사기관에서 벌어졌다. 서은 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전수미 변호사는 “피해자를 다시 성폭행 사건 당시로 되돌려놓는 끔찍한 2차 가해”라고 말했다. 현재 서은 씨의 고소사건에 대한 군 검찰 수사는 마무리된 상태로, 기소 여부만 남아 있다.
뉴스타파는 서은 씨 사건에 대한 입장을 듣기 위해 정보사에 연락하고 질의서를 보냈다. 정보사는 두 번에 걸친 서면 답변을 통해 “정보사는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업무를 추진하도록 지시하거나 종용하지 않았다. 현재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이어서 공식적인 입장 표명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을 밝혔다. 피해자에게 사과하는 내용은 단 한 줄도 없었다.
뉴스타파는 서은 씨가 고소한 성폭행 가해자 중 한 명인 김 상사도 찾아가 입장을 물었다. 하지만 김 상사 역시 “수사가 진행 중”이라는 이유로 답변을 거부했다. 피해자에게 사과할 의사가 없는지를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는 “언론에 나간 것이 전부 진실이 아니다”라며 오히려 “이상한 거 못 느낍니까? 그대로 믿는 거예요?” 라고 되물었다.
배유진(55) 씨는 2010년 7월 두만강을 건너 탈북했다. 딸 아이의 행복을 위해 벌인, 목숨을 건 도강이었다. 중국 경찰에 붙잡혀 북송 위기에 처하기도 했던 유진 씨는 2011년 태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 왔다.
대한민국 국민이 된 뒤 유진 씨는 성폭력상담사 프로그램을 이수한 뒤 북한이탈여성을 돕는 상담원이 됐다. 그리고 일을 하는 과정에서 서울 서초경찰서(이하 서초서) 보안계 소속 경찰인 김모 경위를 만났다. 2015년 5월 경의 일이었다.
김 모 경위는 탈북자 사회에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북한이탈주민과 관련된 크고 작은 사건들을 잘 처리해 언론에도 이름이 오르내렸다. 김 경위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약 8년간 서초서에서 탈북자 신변보호담당관으로 활동한 최장기 근무자였다.
유진 씨가 김 경위와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한 건 2016년이었다. 김 경위는 유진 씨에게 ‘북한 관련 동향 보고서 작성이 신변보호관의 주요 업무 중 하나’라며 북한 관련 첩보 제공을 부탁했다. 유진 씨는 이미 유명인사였던 김 경위를 신뢰했고, 그를 돕기로 마음먹었다.
김 경위의 요구는 구체적이었다. 유진 씨는 김 경위를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북한 관련 정보를 정리해 넘겼다. 내심 ‘언젠가는 나도 도움을 받을 날이 올 것’이라 생각해 ‘베테랑’ 김 경위를 최선을 다 해 도왔다.
2016년 5월 23일, 김 경위는 살구를 사들고 유진 씨 집에 찾아왔다. 유진 씨가 소속된 단체에서 북한 민속놀이 대회를 준비하던 때였다. 살구는 민속놀이 대회에서 쓸 물건이었다. 그런데 그 날, 김 경위는 유진 씨를 성폭행했다.
김 경위의 성폭행은 이후 19개월 동안 11차례나 더 이어졌다. 성폭행 장소는 모두 유진 씨의 집이었다.
유진 씨는 김 경위가 소속된 서초서 보안계에 먼저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취재진은 유진 씨가 도움을 청했던 서초서 관계자에게 연락해 유진 씨에게 도움을 주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서초서 관계자는 “(김 경위가 유진 씨를) 성폭행 한 사실을 몰랐다”고 말했다. 김 경위가 해당 사건에 대해 함구해 더 알아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서초서 관계자는 “김 경위는 유능한 직원”이고 “너무 의욕적으로 일을 하다보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유진 씨는 서초서 청문감사관실도 찾아가 상담을 청했다. 하지만 역시 도움을 받지 못했다. 서초서 청문감사관실은 유진 씨 피해를 정식 진정으로 접수하지도 않았다. 서초서 청문감사관실은 취재진에게 “감사관실은 수사권한이 없다”, “피해자가 진정서를 접수하지 않아 감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는 입장을 전했다.
지난달 29일, 뉴스타파는 유진 씨를 성폭행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김 경위를 직접 만났다. 김 경위는 “성관계는 있었지만 성폭행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을 ‘대단한 사람’으로 추켜세우던 유진 씨에게 “마음이 혹했다”고 말했다.
“유진 씨는 평소 제게 ‘당신같은 사람은 우리(탈북자)에게 없어서는 안 될 고마운 존재다’라고 말했어요. 나를 띄워주는 거죠. 밥을 같이 먹을 때도 ‘나를 위해 차렸다’고 하고...그러다보니 순간적으로 마음이 혹한 경우도 있었고, 순간적으로 혹했을 겁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관계를 가지고 난 이후에는 ‘왜 자꾸 전화 안 하냐’ 이런식으로 하니까 ‘큰일났다’고 생각했고...”
- 유진 씨 성폭행 가해자 김모 경위
취재가 시작된 뒤인 지난 6월 30일, 서초서는 김 경위를 대기발령 조치하고 업무에서 배제했다. 또 해당 성폭행 사건에 대한 감찰 조사에 착수했다. 서초서는 뉴스타파에 보낸 공식 답변서에서 “북한이탈주민 여성과 대상자의 성관계 등 관련 진술이 확보됨에 따라 대상자가 경찰 공무원으로서 부적절한 처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진 씨가 도움을 요청할 때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태도였다. 다만 서초서는 “김 경위는 피해자인 유진 씨의 신변보호담당자가 아니었으며, 해당 사안은 신변보호 업무 수행 중 발생한 사안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사실상 김 경위 개인의 일탈행위일 뿐 서초서와는 관련이 없다는 발뺌이었다.
서은 씨와 유진 씨는 장기간에 걸쳐 수차례 반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가해자가 상당한 위력을 가진 신분(경찰, 정보사 군인)이란 점 역시 비슷하다. 두 사람이 당한 피해를 단순 성폭력이 아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으로 해석해야 하는 이유다.
서은 씨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 과정에서 여러차례 “자신을 성폭행한 두 명의 정보사 군인들에게 상당한 위협감을 느껴왔다”고 말했다. “북한에 살고 있는 자신의 가족 신상정보까지 알고 있었고 언제든 북에 넘나들 수 있다”고 말해 두려움을 느꼈다는 것이다. 서은 씨 입장에서 보면, 가해자들은 ‘마음만 먹으면 서은 씨를 언제든 북송시킬 수도 있는 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유진 씨도 다르지 않았다. 북한이탈주민 사회에서 만들어진 가해자 김 경위에 대한 높은 평판, 북한 보위부처럼 절대 권력을 지닌 것으로 느껴지는 경찰이란 신분은 유진 씨에겐 그 자체로 큰 두려움이었다. 게다가 북한이탈주민에게 신변보호담당관(경찰)은 남한사회에 정착해 처음 만난 권력자였다. 지속적인 성폭행을 거부하기도, 피해 고발을 결심하기도 어려웠던 이유다.
북한이탈주민 사회의 보수적 성문화, 피해자 여성에게 책임을 지우는 분위기도 성폭행 피해자들이 입을 닫게 만든다. 서은 씨가 첫 성폭행 피해를 당하고 1년이나 지난 뒤에야 고소를 결심한 것도, 유진 씨가 4년째 고소를 주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은 씨의 변호를 맡고 있는 전수미 변호사는 이렇게 말했다.
“(서은 씨 피해의 경우) 북향민들 커뮤니티 안에서 소문이 났어요. ‘누가 이렇게 대한민국 군인에게 일을 당했다’는 식으로... 서은 씨는 이 커뮤니티 안에서 소문이 나면서 힘들어 했죠. ‘피해자가 자기라는 게 밝혀지면 모든 게 끝난다’고 생각한 거예요. 그래서 고소를 포기하려고 했었어요. 한번은 저에게 묻더라고요, ‘그만두고 싶다’고. 자기가 죽어도 이 사건이 진행되냐고...탈북민 남성들은 ‘어떤 여자가 겁탈을 당했다’고 하면 ‘남자가 나쁜 사람이다, 처벌해야 된다’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여성이 품행을 어땠길래’, ‘치마를 입었어? 왜 남자랑 단둘이 있었어? 왜 그런 여지를 준 거야?’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세요. 그것 분위기가 성폭력 피해자들을 위축시키는 거죠.”
- 전수미 변호사, 서은 씨 변호인
북한이탈여성의 성폭력 문제를 오랫동안 상담해왔던 남성아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상담원의 말도 비슷했다.
“우선 탈북여성들의 경우 성폭력에 대한 이해도가 상당히 낮아요. 상담소 같은 곳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생각을 많이 못해요. 제가 ‘왜 이걸 신고를 하거나 누구한테 얘기를 하지 못했냐’고 물으면 ‘그런 걸 어떻게 얘기해요?’ 이렇게 말해요. 피해 사실을 드러내는 것을 부끄러워하고 자신의 문제로 인식하는 분위기가 팽배하죠. 성폭력 피해를 ‘폭력’으로 봐야 하는데, 성적인 것으로 보고 부끄러운 일로 치부해버리는 경우가 많아요.” (남성아 천주교성폭력상담소 상담원)
대한민국에 정착해 살고 있는 북한이탈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성폭력에 노출되고 있는지는 연구로도 확인된 바 있다. 2017년 여성가족부가 성정현 협성대 교수(사회복지학과)에게 의뢰해 진행한 ‘북한이탈여성 폭력피해 실태 및 지원방안 연구’가 대표적인 사례다. 성 교수는 158명의 북한이탈여성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를 보고서로 작성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무려 36%(57명)가 넘는 탈북여성이 남한에 들어온 뒤 성폭력 피해, 즉 심한 성추행이나 강간미수, 강간 피해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것이다. 모든 유형의 성폭력 피해사례가 시간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는 점, 탈북여성들이 북한에서보다 남한에서 더 많은 성폭력 피해에 노출됐다는 점 등이 확인됐다.
“탈북과정에서보다는 조금 적었지만, 남한에서의 피해가 북한에서보다는 상당히 높은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2배에서 3배 정도 많았어요. 이 조사결과를 보고 개인적으로나 연구자들이 많이 실망했죠. 정말 부끄러운 일이었습니다.”
- 성정현 협성대 교수
감시와 통제가 일상화된 북한 체제, 언제든 북송될 수 있는 탈북과정에서의 경험들은 북한이탈여성이 갖는 또 다른 특징이다. 이들에게 ‘저항’과 ‘거부’는 곧 죽고사는 문제와 같다. 그래서, 성폭력 피해를 경험한 북한이탈여성의 상당수는 저항보다 투항을 택한다. 북한이탈주민의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연구해 온 류원정 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는 이를 ‘학습된 무기력’으로 규정했다.
“북한이탈주민들은 탈북과 대한민국 입국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거부나 저항을 할 수 없는 상황에 반복 노출됩니다. 그런 과정에서 무기력이 학습되죠. 이런 이유 때문에 남한에서 부당한 폭력이나 위력에 의한 폭력을 당해도 쉽게 거절하거나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하게 됩니다.”
- 류원정 숙명여자대학교 아동복지학과 교수
서은 씨와 유진 씨의 성폭행 피해를 취재하는 과정에서 뉴스타파는 여러 명의 북한이탈주민과 관련 전문가들을 만났다. 그리고 남한사회에서 느끼는 ‘신분 차별’에 대한 생각을 물었다. 이들은 입을 맞춘 듯 ‘2등 시민’, ‘이질적 종족’, ‘불법체류자’, ‘범죄자’ 같은 부정적인 단어를 줄줄이 토해냈다. 북한이탈주민이자 서은 씨의 지인인 김영수(가명) 씨는 “내가 만일 한국에서 태어났고 한국사람이었으면, 이런 사람(신변보호담당관)들을 만날 일이 있었을까요?”라고 되물었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성폭행 사건이 발생한 지 4년 만에 고소를 결심한 유진 씨는 자신과 비슷한 피해를 경험한 북한이탈여성들을 향해 이런 말을 남겼다.
“내가 기치가 되어 앞으로 나설께요. 저 같은 피해를 당한 탈북여성들도 덮고 가려고 했던 것을 다 드러내서 가슴에 맺힌 걸 얼마라도 풀고, 억울함을 해소해서, 다만 얼마라도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요.”
- 성폭행 피해자 배유진(가명)
취재 | 김새봄 |
촬영 | 신영철 정형민 김기철 |
편집 | 박서영 조문찬 |
CG | 정동우 |
디자인 | 이도현 |
웹출판 | 허현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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