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문건]⑤ 블랙요원 법정 증언 "쌍방울과 북한의 주가 조작, 개연성 충분"

2024년 05월 28일 10시 32분

기사 요약
① 쌍방울 주가 조작 파트너로 지목된 '北 정찰총국 이호남'...또 다른 국정원 문건에도 등장 
② 블랙요원의 법정 증언 "이호남은 뒷돈 받아 상납하는 인물...주가 조작 충분히 개연성 있다"
③ 김성태, 800만 달러 중 100만 달러는 '이호남'에게 상납...블랙요원 증언대로 실현된 정황 
④ 검찰은 '北 정찰총국 이호남' 보고서 만든 또 다른 국정원 요원은 증인으로 안 불렀다 
뉴스타파는 지난 21일, 국정원 대북 담당 요원이 2020년 1월 31일에 작성한 비밀 보고서를 공개했다.(관련 기사 : [국정원 문건]② 쌍방울, 北 정찰총국 이호남과 '주가 조작' 공모 정황) 이 보고서에는 쌍방울이 북한 정찰총국 소속 이호남과 주가 조작을 공모하고 수익금을 나누기로 했다는 구체적인 첩보가 담겨있다. 이 첩보는 '김성태 쌍방울그룹 회장이 북한에 보낸 800만 달러=경기도 및 이재명을 위한 비용'이란 검찰 수사 결과를 뒤집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국정원 문건 작성자 중 한 명인 블랙(특수임무)요원 김모씨가 지난해 법정에서 2020년 1월 31일자 보고서에 대해서도 증언한 사실이 확인됐다. 그는 비록 자신이 이 보고서를 만들진 않았지만 "쌍방울과 이호남의 주가 조작 공모는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면서 "국정원 직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을 보고서에 담을 순 없다"고 말했다. 또 대남 공작 요원인 이호남에 대해 자신이 보고서를 작성한 사실, 이호남의 실체와 위상, 이호남의 대남 공작 과정에 대해서도 자세히 증언했다. 
2018년 10월 23일자 국정원 보고서 1쪽. 이호남을 만나고 돌아온 협조자 안부수 아태협 회장이 보고한 내용을 적었다. 작성자는 지난해 법정 증인으로 출석한 블랙요원 김 씨다. 
2018년 12월 3일자 국정원 보고서 1쪽. 이호남과 김성혜 등을 만나고 돌아온 협조자 안부수 아태협 회장이 보고한 내용을 적었다. 작성자는 지난해 법정 증인으로 출석한 블랙요원 김 씨다.

30년 베테랑 이호남, 쌍방울 김성태 만나고 대남 공작한 정황 

이호남(리호남과 동일인)은 국정원 문건에 수시로 등장한다. 위의 첫 문서는 2018년 10월 23일에 요원 김 씨가 작성했다. 제목은 '北 대남요원 언급 내용'이다. 국정원 협조자인 54(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가 중국 심양에서 이호남을 만나고 돌아와 보고한 것인데 주요 내용은 ▲54는 김영철(통일전선부장)과 이호남의 관계에 대해 "이호남은 김영철에게 직접 지시를 받고 있으며, 평양 귀환 시 직보하며 수시로 만나는 걸로 들었다"고 설명 ▲(이호남이 말하기를) 최근 북한 경제는 폭염에 따른 이례적인 흉작과 계속되는 대북 제재로 인해 이번 겨울을 나기 힘든 상황 ▲김정은 지시로 군 병력을 경제 건설에 투입함 등이다. 마치 안부수에게 '내 얘기를 잘 듣고 국정원에 보고하라'는 듯, 이호남이 거리낌없이 말한 구체적인 발언들이 적혔다. 
요원 김 씨가 2018년 12월 3일에 작성한 보고서 제목은 '협조자의 김성혜 일행 심양 접촉 결과'다. 안부수는 이 당시 출장 때 김성태를 데려가서 이호남을 소개해줬다. 김성태와 이호남, 김성혜의 인연이 시작된 시점이다. 그런데 보고서에는 쌍방울이나 김성태가 등장하지 않는다. 뉴스타파가 앞선 기사에서 보도한 것처럼 요원 김 씨는 이에 대해 법정에서 "안부수가 고의로 김성태와의 동행을 보고하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이로부터 약 한 달여 뒤, 요원 김 씨는 안부수에 대한 협조자 관계를 종결한다. 김성태가 대북 사업을 내세워 쌍방울 계열사(나노스)의 주가를 조작할 가능성을 포착했기 때문이다. 
2023년 7월 4일 국정원 요원 김 씨에 대한 비공개 증인신문 녹취서. 이화영 측 변호인이 질문했다.

블랙요원의 법정 증언 "이호남은 뒷돈받아 상납하는 인물...주가조작 개연성 충분"

'대북 송금' 사건에서 남측 핵심 인물이 안부수라면, 북측 핵심 인물은 이호남이다. 이호남은 요원 김 씨의 대북 공작에서도 중요 인물이었다. 2023년 7월 4일, 요원 김 씨의 증인신문 녹취서에 따르면 2018년 7~8월쯤 이호남이 안부수에게 전문의약품을 부탁해서 자신이 직접 약을 구해서 건네줬다고 한다. 
은밀한 대북 정보를 수집해 온 요원 김 씨는 이호남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 아래는 이화영 측 변호인과 김 씨의 질문 답변.  
문 : 전 통일부장관이었던 이종석 씨는 '리호남은 북한의 공작원인데 남한의 기업가들을 만나서 경협사업을 구실로 돈을 많이 뜯어내는 사람이다. 그래서 남한의 공식적인 직책에 있는 사람들은 리호남을 만나는 것을 꺼리고 리호남 스스로도 남한의 공식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만나지 않으려 한다'는 증언을 하였는데, 그말이 맞는가요? 

답 : 약간 미세하게 시각이 엇갈릴 수 있지만, 대체적인 시각은 그렇게 평이 나있습니다.

문 : 주로 기업인들을 만나서 그런 걸 한다는 것이지요?

답 : 예. (중략)

문 : 그러면 김성혜는 공식적인 라인이고 리호남은 비공식적인 라인이라는 것인가요? 

답 : 예, 비공식적이고. 리호남이 워낙 한국에 많이 알려진 인물이니까 말씀을 드리면, 영화 '공작'에서 '리명운'으로 나오는데 굉장히 과장되고 미화가 돼 있죠. 실제로 리호남은 2000년대 후반부터 남한 기업인, 남한의 NGO 대북지원단체에서 뒷돈을 받아서 많이 상납을 했던 쪽으로 발달이 된 인물입니다. 

2023년 7월 4일 국정원 요원 김 씨에 대한 비공개 증인신문. 이화영 측 변호인이 질문했다.
정리하면, 이호남은 북한의 블랙요원으로 주로 남한의 기업을 상대로 공작을 벌여 돈을 뜯은 후에 윗선에 상납하는 일을 해온 인물이란 것이다. 요원 김 씨는 이날 법정에서 또 다른 요원이 작성한 쌍방울의 주가 조작 정황 보고서(2020년 1월 31일자)에 대한 견해도 밝혔다. 아래는 이화영 측 변호인과 김 씨의 질문 답변.
문 : 당시 안부수와 쌍방울 그룹이 북한의 리호남 등과 공모하여 대북사업을 이용해 주가를 조작하고자 하였으며, 이러한 사실을 남한 당국에 숨기기 위해 국정원, 통일부, 경기도를 배제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이는데, 증인은 어떻게 파악했는가요? 

답 : 그거는 제가 모르는 부분이고. '충분히 개연성이 있다'고 생각은 할 수 있겠습니다. 

문 : 국정원 내부 보고서에 리호남과 수익을 일주일에 50억 원씩 상품권으로 보낸다는 얘기가 있었던 걸로 봐서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얘기라고 생각하는 것이지요? 

답 : 국정원 직원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을 쓸 수는 없으니까요. 

2023년 7월 4일 국정원 요원 김 씨에 대한 비공개 증인신문. 이화영 측 변호인이 질문했다.
2023년 7월 4일 국정원 요원 김 씨에 대한 비공개 증인신문 녹취서. 이화영 측 변호인이 질문했다. 
앞서 요원 김 씨는 자신이 작성한 2급 비밀 보고서(2019년 2월 1일자)에도 쌍방울의 주가 조작 가능성을 적은 사실이 있다. 변호인이 물어본 2020년 1월 13일자 보고서에 대해서는 자신이 작성한 건 아니므로 "그거는 제가 모르는 부분이고"라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주가 조작이 충분히 개연성 있다"고 답변한 이유는 김 씨가 이호남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검찰은 현재 '대북 사업을 통한 쌍방울의 주가 조작'은 없었다고 주장하지만, 그 당시 현장에서 대북 공작을 벌인 블랙요원 김 씨는 "쌍방울의 주가 부양 움직임과 가능성을 확인해서 2급 비밀 문건을 만들었다"고 증언했다. 

이호남에게 100만 달러 상납한 김성태...블랙요원 증언과 일치하는 수법 

이호남에 대한 평가는 대체로 비슷하다. 20년 넘게 대북 사업에 종사한 한 관계자는 27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이호남은 이 바닥에서 유명한 인물이다. 내가 보기엔 이호남이 쌍방울을 먹잇감으로 찍고 경협을 미끼로 돈을 뜯어낸 사건이다. 그 당시 이호남이 롯데백화점 상품권으로 쌍방울 돈을 세탁하려고 한단 소문이 파다했다"고 말했다. 앞에서 언급했듯 요원 김 씨도 법정에서 "실제로 리호남은 2000년대 후반부터 남한 기업인, 남한의 NGO 대북지원단체에서 뒷돈을 받아서 많이 상납을 했던 쪽으로 발달이 된 인물"이라고 설명했다. 
검찰 수사기록에 따르면, 김성태가 북측에 건넨 800만 달러 중 700만 달러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아태위)로 갔다. 그런데 나머지 100만 달러는 당의 공식 기구가 아닌 이호남에게 전달됐다. 이호남은 자신도 윗선에 상납을 해야 한다며 김성태에게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대북사업 관계자나 블랙요원의 증언과 일치하는 수법이다. 김성태는 이호남에게 준 100만 달러를 포함해 총 300만 달러가 '이재명의 방북 비용'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국정원 문건에서 이재명의 방북은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번 '대북 송금' 사건은 이호남이 예전에 벌였던 다른 공작들과 비슷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민간기업을 타깃으로 찍는다 → 경제협력 사업을 내세운 뒤, 그럴 듯한 사업 합의서를 써주고 사업 비용이란 명목으로 돈을 뜯어 낸다 → 대부분은 중앙당이나 통전부, 정찰총국의 대외 공식 기구에 보내고, 일부는 이호남 자신이 '수수료' 혹은 '상납금' 명목으로 챙기는 과정인데 이는 남측 대북 사업가들이 상당수가 경험한 사실이라고 한다. 
2020년 1월 31일자 국정원 보고서 1쪽. 이 보고서 문건을 작성한 국정원 요원은 검찰 조사나 법정 신문을 받지 않았다. 

검찰 주장 뒤집는 국정원 블랙요원의 증언...또 다른 요원은 왜 안 불렀나 

검찰은 지난해 5월부터 국정원을 두 차례 압수수색 해서 총 45개에 달하는 비밀보고서 문건을 확보했다. 이후 13개의 문건을 직접 작성한 블랙요원 김모씨를 두 차례(2023년 6월 20일/7월 4일)법정에 불러 비공개로 증인 신문했다. 그러나 나머지 33개 문건을 작성한 다른 요원들은 증인으로 부르지 않았다.
뉴스타파가 확보한 요원 김 씨에 대한 증인신문 녹취서를 종합하면, 검찰은 자신들의 수사 방향에 부합하는 부분만을 집중적으로 질문했다. 하지만 요원 김 씨는 검찰이 원하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 베테랑 요원답게 검사의 질문 의도를 간파했고, 유도성 신문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자신이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답했고, 아는 것은 안다고 답했으며, 자신의 의견일 경우엔 의견이라고 토를 달고 답했다. 
그래서일까. 검찰은 쌍방울 주가 조작 정황이 담긴 2020년 1월 31일자 보고서를 작성한 국정원 요원은 법정에 부르지 않았다. '800만 달러'에 대한 자신들의 수사 내용이 뒤집힐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하려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있다. 
제작진
취재봉지욱 최윤원 한상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