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욱 KBS 기자의 마지막 마술

2014년 02월 07일 20시 25분

지난 5일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된 민경욱 전 KBS 앵커의 취미는 마술이다. 스스로 프로필에 ‘아마추어 마술사’라고 쓸 정도다. 민 대변인은 임명 과정에서 지금까지 누구도 선보이지 못한 신비한 마술을 과시했다.

1. 순간 이동의 마술: 오전엔 KBS기자, 오후엔 청와대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 임명 하루 전인 4일. 민경욱 당시 KBS 문화부장은 KBS 9시 뉴스에 직접 출연해 문화재 복원에 대한 ‘데스크 분석’을 방송한다. 밤에는 다음 날 취재 일정을 작성한다. 그리고 다음날인 5일 아침 8시30분, 당일 KBS 뉴스의 방향과 논조를 결정하는 편집회의에 문화부장으로 참석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11시 20분 평기자의 리포트 기사를 수정하고 승인한다. 2시간 뒤인 1시 30분. 민경욱 KBS 문화부장이 청와대 대변인으로 임명됐다는 발표가 이뤄진다. 그리고 곧바로 민경욱 대변인은 청와대에서 기자들에게 인사를 한다.

▲ 민경욱 대변인은 임명 당일에도 KBS에서 기사를 작성했다.

현직 언론인이 청와대 정무직으로 직행하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오전에는 기자로 일하다가 오후에는 청와대 대변인으로 변신하는 일은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풍경이다. 2월 5일, 민경욱 씨는 KBS 기자였을까, 청와대 대변인이었을까. 반인반수, 반인반신은 들어봤지만 이런 경우는 어떻게 불러야할까. 민경욱 대변인이 KBS 메인뉴스 앵커를 그만둔 지 4달도 되지 않아 KBS 내부 윤리규정도 어겼다는 점을 언급하는 것은 사치에 불과하다.

2. 시간 여행의 마술: 소급 적용 인사

민경욱 씨의 기상천외할 마술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변인으로 임명된 다음날인 2월 6일 KBS에는 인사 발령이 공고된다. 민경욱 씨의 의원면직이 그 내용이다. 그런데 면직 시점은 2월 4일이다. 인사 발령이 소급적용된 것이다. 이른바 ‘소급 인사’가 나온 시점은 공영방송 기자이자 동시에 청와대 대변인으로 활약했던 2월 5일 민경욱 씨의 행적에 대한 뒷말이 무성해지는 때였다. 면직 시점을 소급해 논란을 피해가려는 꼼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또 소급 인사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2월 4일 면직된 사람이 2월 5일 버젓이 기자 행세를 하면서 KBS 뉴스를 결정하는 회의에 참석하고 기사를 작성했다는 말도 안 되는 상황이 만들어진다.

▲ KBS가 공고한 2월 6일 인사 명령에는 민경욱 대변인이 2월 4일자로 면직됐다고 나와있다.

민경욱 대변인은 뉴스타파와의 통화에서 “(청와대 측에서) 보안 요청이 있었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보안 요청은 중요했지만 공영방송 언론인이 지켜야 할 시청자와의 약속, 언론윤리는 안중에도 없었다는 말이다. 민 대변인은 또 KBS 회의에 참석한 이유 등과 관련해서는 “나름 업무에 충실했던 것으로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사표를 낸 시점이 언제냐는 질문에는 “회사(KBS)와 이야기 해달라”고 대답을 피했다.

민경욱 대변인의 예로 폴리널리스트라는 거창한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 KBS 기자 시절의 민 씨를 “이명박에게 완전히 설득당한 사람”이라고 평가한 주한 미 대사관의 비밀문건을 들먹이고 싶지도 않다. KBS 내부 기자들이 “KBS 저널리즘의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은 행위”라고 비판한 내용도 자세히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민경욱 대변인의 2월 5일 하루 동안의 행적은 현재 한국 언론의 수준과 한국 언론인들의 양식이 얼마나 천박하고 비루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살아있는 예시가 될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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