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윤석열 철학' 부정하는 통일부장관 후보, 용산은 괜찮나?

2023년 07월 20일 17시 30분

⬤ 김영호 통일부장관 후보, 정부 공식 통일방안 등 '윤석열 철학·정책' 부정
⬤ 김영호 주도 ‘한국자유회의’, “박근혜 탄핵은 친북 좌파세력의 체제전복”
⬤ 김영호, “5·18 북한군 개입설” 주장 트루스포럼과 정치 활동
⬤ 80년대 국보법 위반 전력 김영호, “여러 사람 도움받아 유학갔다”
김영호 통일부 장관 후보(현 성신여대 교수)의 대북관, 통일관, 역사관이 논란이다. 그는 오랫동안 말과 글을 통해 ‘남북대화 무용론’, ‘흡수통일론’, ‘핵무장론’, ‘1948년 건국설’ 등을 주장해 왔다.
학자가 소신을 가지고 말과 글을 내는 건 비난 받을 일이 아니다. 국민 정서에 맞지 않거나, 설령 실정법에 반한다 해도 그렇다. 하지만 공위공직자가 되고, 대북정책 등 외교 문제에 권한을 행사하게 되는 건 다른 문제다.
나아가, 만약 정부와 대통령의 철학·정책을 부정하는 정도에 이른다면 보통 큰 문제가 아니다.
김영호 통일부장관 후보

‘윤석열 철학·정책' 부정하는 통일부장관 후보의 등장

김영호는 통일부장관에 임명된 직후 자신이 운영하던 유튜브 채널 ‘김영호의 세상읽기’를 닫았다. 2018년부터 3억 7000만 원 넘게 벌어준 채널인데도 닫았다. 인사청문회를 앞둔 야당은 후보자 자질 검증에 꼭 필요하다며 이 채널의 복원을 요구한다. 하지만 김영호는 “불필요한 논란이 우려된다”며 버티고 있다. 어떤 불필요한 논란이 예상된다는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유튜브 채널은 닫혔지만, 김영호의 소신과 철학을 확인할 단서는 많다. 말과 글 뿐 아니라 활동의 흔적이 인터넷 공간에 수북이 쌓여 있다. 뉴스타파는 수북이 쌓인 그의 지난 시간을 확인했다. 2017년 2월 김영호가 주도해 만든 ‘한국자유회의’가 대표적인 사례다. ‘한국자유회의’는 “남북한 모두의 ‘전체주의 세력’에 맞서 싸우면서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한 ‘자유민주 세력’을 대표하는 지성인의 모임”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노재봉 전 국무총리,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이영훈 서울대 교수,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 차기환 변호사, 이동복 전 국회의원, 현진권 자유경제원장, 류석춘 연세대교수, 조성환 경기대교수, 김길자 전 경인여대 총장, 김진영 전 육군참모총장 등 보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한국자유회의’는 일단 박근혜 탄핵과 촛불시위를 부정한다. “박근혜 탄핵은 체제탄핵, 북한 정권의 통일전선전략을 추종하며 허구를 앞세운 선전 선동으로 국민의 정치의식을 오도하여 국가적 정통성을 파괴하려는 전체주의적 전복운동”이라 주장한다.
김영호의 스승이자 ‘한국자유회의’ 핵심 멤버인 노재봉 전 총리는 ‘한국자유회의’ 정신을 담았다는 책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2018)에서 이런 주장도 폈다.
(탄핵을 주도한) 전복활동의 핵심부가 평양과 연계된 친좌파로 구성된 것임은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들에게 남파간첩은 간첩이 아니라 투쟁의 동지.

노재봉 전 국무총리
같은 책에는 이런 내용도 들어 있다.
“특별검찰(박근혜 특검)은 사법정의의 엄정한 집행자가 아니라 기회주의적 야당의 사냥꾼이자 여론의 눈치꾼이 되어 마구잡이식 구속에 혈안이 되어 있다.”(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 2018)
‘박근혜 특검’의 수사책임자로, 박근혜 탄핵에 마중물을 댔던 윤석열 대통령이 동의할 수 있는 주장인지 궁금하다.

“박근혜 탄핵은 친북 좌파세력의 체제전복”

김영호는 윤석열 정부가 계승하고 있는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도 부정한다.
김영호는 책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에서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인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을 “불분명한 정책”이라고 했다. “(통일을) 남북한이 서로 의논해 처리한다는 것은 커다란 문제”,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이) 북한의 선전과 선동을 통한 전복전략이 우리 사회에 통하게 되는 계기를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노태우 정부가 만들고 1994년 김영삼 정부가 확정한 이후 한번도 바뀐 적이 없는 우리 정부의 공식 통일방안이다. 윤석열 정부도 이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한겨레 보도(7월 10일)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가 임명한 권영세 통일부장관도 지난해 8월 열린 ‘2022 한반도 국제평화 포럼’에서 “민족공동체통일방안은 국제사회에 제시하는 우리의 통일 미래비전”이라고 말한 바 있다.
2019년 5월 21일 열린 ‘한·미 자유 우호의 밤(US·ROK Freedom Friendship Night)’ 행사. 김영호 통일부장관 후보가 참여한 '한국자유회의'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았다. (사진:고양일보) 

김영호, “5·18 북한군 개입설” 주장 트루스포럼과 정치 활동

2019년 5월 21일, 서울 용산구 그랜드하얏트서울 호텔에서 ‘한·미 자유 우호의 밤(US·ROK Freedom Friendship Night)’ 행사가 열렸다. ‘한국자유회의’가 주도하고 50여개 보수 시민사회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날 행사에는 젊은 보수를 자처하는 ‘트루스포럼’이 주요 멤버로 참여했다. 이 단체의 대표 김은구 씨가 사회를 맡아 행사를 주도했다. 김영호는 외교정책 관련 강연을 맡았다. 김영호는 “사드 추가 배치, 미국 MD 체제 편입” 등을 주장하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친북 외교"라고 비판했다.
문제는 김영호와 손발을 맞춘 ‘트루스포럼’이 윤석열 정부의 철학과 정책을 부정하는 주장을 하는 단체라는 데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추앙해 마지 않던 5·18민주화운동을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 대표적이다. 트루스포럼은 “5·18 북한군 개입설” 같은 주장을 계속해 왔다.
광주에서 드디어 김일성 사주에 의한 폭동이 일어났다.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면서 전두환 대통령이 등장해 혼란을 극복하는 계기가 됐다.

이종만 고려대 교우 트루스포럼 부회장 (2018.11.10)
이런 주장은 “5월정신은 자유민주주의 헌법 정신 그 자체이고, 우리가 반드시 계승해야 할 소중한 자산”(2023년 5월 18일)이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철학과 큰 차이가 있다. 트루스 포럼은 제주 4·3항쟁 대해서도 윤석열 정부와 다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트루스포럼은 4·3항쟁을 “대한민국 전복을 위한 공산 폭동”이라고 본다.

대통령이 거짓말했나? 인사검증 실패했나?

며칠 전 뉴스타파는 1980년대 전두환 정권 당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감옥에 갔다 온 ‘진보 출판인 김영호’가 출소 직후 미국 유학길에 오른 과정에 대한 기사를 냈다. 뉴스타파가 지적하고자 한 것은 같은 조건이던 다른 출판인들과 김영호의 행적이 달랐기 때문이다. “전두환-노태우 정권에 부역한 스승들이 신원보증을 했다는 말이 있었다” 같은 증언과 증거가 확인돼 쓴 기사였다.
뉴스타파 보도 이후 야당은 김영호에게 관련 질문을 보냈다. “뉴스타파가 지난 7월 12일 보도한 후보자의 유학에 노재봉 전 국무총리가 신원보증을 섰다는 것에 대한 후보의 입장은?” 같은 질문이었다. 김영호는 “당시 미국 유학 준비 과정에서 다양한 분들로부터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다.
정무직인 장관, 특히 통일부장관은 남북이 분단된 우리 현실에서 매우 중요한 자리다. 헌법기관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이다. 대통령의 국정철학을 잘 보좌할 수 있는 사람이 앉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이런저런 정책이나 입장에서 ‘윤석열 철학’에 반하는 주장을 해 온 사람이 장관 후보로 낙점된 건 기이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가능성은 두 가지로 좁혀진다. 첫째, 대통령과 정부가 그 동안 거짓말을 했을 가능성이다. 5·18정신을 계승할 생각이 없고 평화통일을 지향할 생각도 없으면서 계승하고 지향하겠다고 말해 왔을 가능성이다. 둘째, 인사 검증 실패 가능성이다. 김영호의 생각과 주장이 윤석열 정부의 철학에 맞는지를 법무부와 대통령실 인사검증팀에서 면밀히 따져보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어느 쪽일까.
어느 쪽이건 김영호 후보 지명이 인사 실패라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대통령의 국정 철학을 부정하는 장관 후보자가 지명된 것보다 더 큰 ‘인사 실패’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윤석열 대통령 자신, 혹은 인사 검증 책임자인 한동훈 법무부장관에게 있을 수밖에 없다.
김영호 통일부장관 후보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는 내일(21일) 열린다. 
제작진
취재한상진
디자인이도현
출판허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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