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젝트 1.5°C] 멈추지 않는 석탄 발전소 수출

2020년 12월 07일 10시 12분

인도네시아에 석탄화력발전소 2기를 새로 건설해 운영하는 사업이 지난 6월 한국전력공사 이사회에서 결국 승인됐다.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추진하는 '자와 9호기·10호기 사업이다.
이 발전소 사업은 2019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실시한 정부 예비타당성조사에서 적자가 날 거라는 결론이 났다. 하지만 올 들어 수정 사업계획서를 제출해 통과됐다. 새 계획서도 이 발전소가 향후 30년간 가동할 경우 4358만 달러, 우리 돈 472억 원에 이르는 적자를 낼 것으로 예측했다. 그런데도 한전 이사회의 승인에 이어, 지난 11월 12일 수출입은행과 산업은행의 금융지원도 마무리됐다. 
문재인 정부는 그간 기후위기 대응 의지를 꾸준히 보여왔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국회 시정연설에서 205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과 감축량이 0이 되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고, 석탄발전을 재생에너지로 대체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그 일환이다.
하지만 정부의 이런 기조와는 달리 우리 공기업와 국책은행 등은 계속 해외에 석탄발전소 건립, 운영, 투자 사업을 벌여나가고 있다. 

한국이 투자한 신규 석탄발전소 ‘찌레본2호기'도 2022년 준공 일정으로 건설 중

한국탐사저널리즘센터-뉴스타파는 지난 2018년 한전 자회사인 한국중부발전이 마루베니 등 일본 업체와 공동 투자해 인도네시아 찌레본에 건설한 석탄발전소가 국내 발전소에는 필수적으로 들어가야 하는 환경설비를 설치하지 않아 인근 주민들이 피해를 입고 있다는 사실을 일본 독립언론 와세다크로니클, 인도네시아 유력 주간지 템포와 국제협업 취재를 통해 보도했다. (관련 기사 다시보기)
▴뉴스타파는 지난 2018년 찌레본 1호기가 환경설비를 설치하지 않아 현지 주민들이 입은 피해를 보도했다.
이 한·일 합작 컨소시엄은 지난 2015년부터 기존의 1호기보다 규모가 큰 2호기 발전소 건설을 계획했다.
뉴스타파 취재진이 2호기 공사현장을 방문했던 2018년 3월 당시 시작 단계였던 공사는 2년이 지난 지금 공정 85퍼센트까지 진전됐다. 찌레본 2호기는 2022년 준공, 가동될 예정이다.  

전력단가 재계약으로 수익성 하락 가능성 

그러나 매년 수백억 원대 수익을 올린 찌레본 1호기와는 달리 2호기는 수익성이 불투명해질 거라는 전문가들의 우려가 나오고 있다. 지난 2017년 11월 현지 언론에서 2호기 전력구매 단가를 깎는 협상이 진행 중이라는 기사가 나오면서부터다. 
한국 기업이 인도네시아에 수출한 석탄발전소는 보통 가동 첫 해부터 최소 20년간 장기 전력구매계약(Power Purchase Agreement, 이하 PPA)을 현지 전력구매 기관과 맺는다. 인도네시아 현지 전력 구매자는 '인도네시아전력청(PLN)'이다. PLN은 계약 기간에 책임지고 약속한 가격으로 전기를 구매해야 한다.
2015년 작성된 중부발전 이사회 문건에 따르면, PLN은 25년 동안 찌레본 2호기가 생산하는 전기를 킬로와트아워당 6.391센트(미국 달러화 기준)에 사겠다고 한·일 합작 컨소시엄과 계약을 맺었다. 그런데 2년 뒤인 2017년 PLN이 PPA 재협상을 요구했다. 다수의 현지 매체가 PLN 간부의 말을 인용해 찌레본 2호기의 전력 단가가 재계약을 통해 킬로와트아워당 0.8센트 가량 깎여 5.5센트로 변경됐다는 사실을 보도했다. 
▴지난 2017년 11월, 인도네시아 매체들은 PLN 간부 말을 인용해 찌레본 2호기의 전력구매단가 재협상 소식을 보도했다. 
뉴스타파의 질의에 중부발전은 “재협상 요구를 받은 적이 없다”고 답변했지만, 인도네시아 정부 관계자들의 말은 달랐다.
스나이더 시아한 전 인도네시아 재무부 재무전략포트폴리오국 국장은 2018년 3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재협상은) 양자 모두의 이익을 추구한 결과일 것"이라며 재협상 사실을 시인했다. 다만 시아한 전 국장은 “기업 대 기업으로 진행된 협상이며, 업체들이 (재협상을) 하지 않겠다고 하면 정부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며 인도네시아 정부 명령에 따른 협상은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찌레본 2호기의 당초 전력구매계약 관련 경제성 분석표를 보면 주주인 중부발전 몫으로 발생하는 내부수익률(Internal Rate of Return, IRR)은 12.83%다. 그러나 1센트 가까이 줄어든 재계약 전력단가가 적용되면 이 수익률도 떨어지게 된다.
▴찌레본 2호기의 전력구매계약 재계약으로 킬로와트아워당 6.3센트였던 전력단가가 5.5센트로 깎였다. 따라서 이 발전소에 투자한 한국 주주기업이 얻는 수익률도 악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노종화 변호사(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는 “(IRR) 12.83%의 10%니까 1.2%정도 되는 건데, 그것보다는 더 크게 감소할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발전소 운영비용에는 변화가 없는데 매출 자체가 10% 가량 줄어들면 수익률은 매출보다 큰 폭으로 감소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노 변호사는 이와 함께 “가장 큰 맹점은 여기에는 탄소배출이나 환경적 영향 등이 전혀 비용으로 평가되지 않은 점"이라고 지적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전력단가 재협상을 요구한 이유

그렇다면 인도네시아 측이 전력구매계약 재협상을 요구한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 2017년 9월 19일,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에너지 장관에게 "전력 판매량이 예상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되며, 전기요금 인상을 못 할 처지이니 PLN 재정 상황이 악화돼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커질 것으로 예측된다. 사업 조정에 나서야 한다"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지난 2017년 9월, 인도네시아 재무장관은 에너지장관에 공문을 보내 전력 판매량이 예상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되고 전기요금 인상을 못할 처지라며, PLN 사업 조정에 나서야 한다고 경고했다.
이에 따라 인도네시아 에너지장관은 PLN에 공문을 보냈다. 공사를 시작하지 않은 민자 석탄발전소 사업은 아예 취소하고, 찌레본 2호기처럼 이미 공사에 착수한 발전소는 전력구매 단가를 깎도록 재협상하라는 명령이었다. 
이듬해인 2018년 3월, 인니 에너지부와 PLN은 석탄발전소 신규 건설 계획을 미루거나 취소하겠다고 발표했고, 2018년 준공 계획이었던 찌레본 2호기는 준공 시점이 2022년으로 미뤄졌다.
멜리사 브라운 미국 에너지경제재무분석연구소 애널리스트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PLN 재정 악화의 중요한 원인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전력수요 예측을 과대평가"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브라운은 인도네시아 정부가 PLN에 상당액의 보조금을 지원했음에도 PLN이 심각한 영업손실을 보고 있다며, 해결책으로 전력구매계약을 맺은 외자 민자발전소에 고통 분담을 요구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그는 특히 “파이톤이나 찌레본처럼 기존 발전소에 후속 발전소를 지으려는 업체를 상대로 재협상이나 새로운 협상을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탄발전 줄이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띄우는 인도네시아 정부

이미 인도네시아 정부는 10년 전부터 민자 석탄발전소 관련 규제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계약 기간이 끝나도 한국과 일본 기업이 소유권을 유지하는 찌레본 1호기와 달리, 2호기는 25년 운영한 이후에 소유권 자체를 인도네시아 정부에 넘겨야 한다. 또 전염병 등 천재지변으로 발전소를 정상 운영하지 못하면 발전비용을 인도네시아 정부가 보전해줬는데, 이 보전 의무도 없어졌다.
발전소를 건설하고 운영하는 한국 업체로선 수익이 줄어들고, 돈을 빌려주고 보증을 서준 국책은행으로선 채권 회수에 불확실성이 발생하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내 신규 석탄발전소 사업에는 또 다른 악재가 있다. 인니 정부가 석탄발전은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금까지 전체 전력의 60% 가까이를 석탄발전으로 생산했지만, 2020년대 이후에는 석탄발전을 줄이고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 비율을 획기적으로 높이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2018년 인도네시아 중장기 전력수급계획(RUPTL)에 따르면 2025년 기준 석탄발전 비중은 30%, 재생에너지 비중이 23%로 석탄발전 비중이 여전히 우세하다. 그러나 2050년 기준 석탄발전을 25%까지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31%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게다가 올해 들어서는 재생에너지 발전소에 계약 만료 이후에도 소유권을 민자발전사가 갖게 하도록 규제를 풀어줬고,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공동으로 인도네시아 재생에너지 분야에 민간투자를 유치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겠다고 발표했다.

석탄발전 투자 접는 전세계 금융권

글로벌 차원에서도 석탄발전의 입지는 점점 좁아지고 있다. 북유럽 최대 금융그룹인 덴마크 노르디아는 자사가 투자한 업체에 석탄발전 사업 철회를 권고하는 서한을 보냈다. 
에릭 페데르센 노르디아자산운용 책임투자부문장은 재생가능에너지 비용이 갈수록 저렴해지고, 전세계 국가들이 파리협약의 목표 달성에 기여하도록 압박이 거세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석탄 관련) 투자를 계속하다간 상당한 자본을 잃을 테니 그 방면으로 가지 않겠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페데르센은 신규 석탄발전소 투자에 대해서도 “한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가 인도네시아나 베트남에 개발원조 혹은 우대 대출을 해줄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조만간 문을 닫게 될 사업에 투자하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미국 대형 자산운용사 노던트러스트도 재생에너지 발전비용이 점점 저렴해져 2030년이 되면 인도네시아 내 석탄발전소 73%가 재생에너지 발전소보다 운영비용이 더 비싸질 것으로 예측했다. 

저물어가는 석탄발전...그런데도 신규 발전소에 투자하는 한국 정부

찌레본 2호기는 이처럼 불리한 재계약으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되고 재생에너지와도 경쟁해야 할 처지가 됐다. 게다가 찌레본 2호기 시공을 맡은 현대건설 측 관계자는 2017년 인근 주민들의 발전소 건설 반대 시위를 무마시켜 달라며 찌레본 군수에게 5억 원 가량의 뇌물을 건넨 혐의로 인도네시아 부패방지위원회 조사까지 받고 있다.
제작진
촬영정형민, 이상찬, 최형석
편집정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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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이도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