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천외한 검찰의 '신종' 제식구 감싸기 기술

2022년 01월 14일 16시 55분

1조 사기범인 IDS 전 회장 김성훈과 다른 브로커죄수들을 수십 차례 검사실로 불러 편의를 제공한 김영일 검사가 뉴스타파 보도 1년 3개월 만에 경징계를 받았다. 검찰은 이와 동시에 기상천외한 수법으로 김영일 검사와 연관된 사건을 기소 중지해, 또 한 번의 제식구 감싸기 ‘신공’을 보여줬다. 
지난 2020년 10월 방송된 <죄수와 검사> 세 번째 시즌에서 김영일 검사를 인터뷰하는 장면

물증있는 부분만 마지못해 징계

법무부는 지난 1월 13일 검사 징계 내역을 관보에 공고했다. 대구지방검찰청 김영일 검사를 견책에 처한다는 내용이었다. 견책은 검사징계법 상 가장 낮은 수위의 징계다. 검사에 대한 징계에는 해임, 면직, 정직, 감봉, 견책이 있는데 그 가운데 견책은 “검사로 하여금 직무에 종사하면서 그가 저지른 잘못을 반성하게 하는 것” (검사 징계법 3조)이다. 즉 아무런 불이익 없이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 스스로 반성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과연 적정한 수위의 징계일까?
관보에 나온 징계 사유는 이렇다.
2018.6.18경부터 2018.7.2경까지 검사실에서, 수용자가 외부인인 지인과 6회에 걸쳐 사적 전화 통화를 할 수 있도록 방치하여 직무를 게을리하고, 위와 같은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도록 하여 품위 손상

법무부가 공고한 김영일 검사의 징계 사유 중
김영일 검사는 뉴스타파가 2020년 10월에 보도한  <죄수와 검사> 세 번째 시즌의 주인공이다. 김영일 검사는 1조 사기범인 IDS 전 회장 김성훈과 다른 브로커 죄수들을 수십 차례 검사실에 출정시켰다. 죄수들은 김영일 검사실에서 자유롭게 외부와 통화하면서 김성훈의 형집행정지 로비를 기획하고 범죄 수익 은닉과 2차 범죄를 모의했다. 
뉴스타파는 당시 보도에서 김영일 검사실에 출정을 나갔던 브로커 죄수 이 씨가 외부에 전화를 걸어 사적으로 통화한 통화 녹취 파일을 물증으로 제시했다. 뉴스타파가 보도한 녹취 파일은 모두 4개다. 통화 날짜는 2018년 6월 18일과 27일, 29일, 7월 2일이다. 다시 법무부의 징계 사유를 읽어보자.
“2018년 6월 18일부터 7월 2일까지”, “6회에 걸쳐 통화”. 즉 김영일 검사실에서 재소자의 외부통화가 이루어졌다고 뉴스타파가 보도한 기간과 정확히 일치한다. 다만 통화 횟수는 뉴스타파가 보도한 것보다 2차례 더 많다.
외부 통화의 당사자인 브로커 죄수 이 모 씨는 2016년에서 2018년 7월 사이 김영일 검사실에 164회 출정을 나갔다. 검찰의 징계 사유가 적절한 것이라면, 164 회의 출정 중에 외부 통화가 단 6차례가 있었다는 뜻이다. 그리고 무려  2년 반 동안 줄기차게 출정을 나갔는데 하필 뉴스타파가 물증을 확보해 보도한 그 시기에만 외부 통화를 했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IDS 김성훈 전 회장은 같은 기간 68번, 또 다른 브로커 죄수 한 모 씨는 2017년 1월부터 3월까지 36번 출정을 나갔다. 이들은 김영일 검사실에서 외부 통화를 하지 않았을까? 검찰은 김영일 검사실의 외부 통화 내역을 모두 조사했을까, 아니면 뉴스타파가 물증이 있다고 보도한 시기의 전화 통화 내역만 확인했을까? 누구라도 답은 알 수 있을 것이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다. 뉴스타파가 확보해 보도한 진술에 의하면 김영일 검사는 IDS 김성훈의 재산 관리인을 불러 김성훈과 면담을 하게 해줬고, 브로커 죄수 한 씨와는 김성훈의 출정 날짜를 조율하기도 했다. 브로커 죄수 이 씨는 다른 죄수로부터 사건을 '사들여' 김영일 검사에게 '상납'하기까지 했다. 재소자를 불러 외부와 통화할 수 있도록 해준 정도와는 차원이 다른 징계 사유가 될 수 있는 사안이다. 
최 모 변호사는 김영일 검사가 브로커 죄수 한 씨의 부탁을 받고 김성훈의 출정 날짜를 조율해주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뉴스타파 2020년 10월 20일 보도)
그러나 검찰의 징계 사유에는 이러한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 오로지 뉴스타파가 이미 보도를 해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즉 ‘빼도 박도 못하는’ 물증이 있는 부분만 징계한 것이다. 지난 13일 김영일 검사와 함께 징계 사실이 공고된  세 검사의 징계 사유와 종류를 보자. 택시 운전사를 폭행한 이 모 검사는 감봉 1개월, 음주운전을 한 김 모 검사는 정직 1개월, 사무실 직원들에게 폭언을 한 이 모 검사는 정직 3개월이었다. 김영일 검사의 비위 혐의가 이들 검사보다 가벼운가? 

기상천외한 기소중지 사유

뉴스타파가 이미 보도한 것처럼 이 사건은 죄수K의 제보로 시작됐다. 죄수K는 2019년 7월 제보와 동시에 경찰에 자수했다. 경찰은 한 차례 보완수사를 거쳐 서울중앙지검에 사건을 송치했다. 그런데 사건이 하나 더 생겼다. 죄수K의 자수로 수사를 받게 되자, 브로커 죄수 이 씨가 죄수K를 사기 등의 혐의로 고소한 것이다. 이 두 번째 사건은 대구지검 의성지청이 수사를 맡았다. 
그런데 의성지청은 지난해 8월 31일 이 사건을 기소중지했다. 이유는 이렇다. 
변호사 이00은 본건 관련 사건이 서울중앙지검에서 계속 수사 중이므로, 관련 조사를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서 받겠다는 의견을 표명하였다. 이상과 같은 이유로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이에 대한 수사촉탁을 하였다. 수사촉탁 결과 회신시까지 기소를 중지한다.

대구지검 의성지청의 불기소 사유서(21.8.31.) 중
수사촉탁이란, 경찰이나 검찰이 필요한 사무를 다른 지역의 수사관서에 위임하는 일을 말한다. 즉 일부 수사를 위탁하는 것이다. 변호사 이 모 씨는 브로커 죄수 이 씨와 죄수K를 번갈아 접견하며 돈 심부름을 했던 변호사로, 당연히 두 사건 모두에서 핵심 수사 대상이다. 그런데 이 변호사가 서울에서 수사를 받고 싶다고 하니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촉탁을 했고 그 결과가 오기까지는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것이다.
앞서 밝힌대로, 서울중앙지검은 죄수K가 자수한 사건을 경찰에서 넘겨받아 수사 중이었다. 사건 번호는 다르지만 내용상으로 보면 하나의 사건이다. 그렇다면 서울중앙지검은 수사를 해서 의성지청에 결과를 보내주고 의성지청은 그걸 가지고 두 번째 사건의 수사를 재개하면 된다. 그러나 서울중앙지검 역시 약 두달 반 뒤인 11월 19일 기소 중지 처분을 내렸다. 그런데 기소중지 사유가 황당하다.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는 피의자 이00 (기자 주: 브로커 죄수 이 모씨), 피의자 김00 (기자 주: 죄수 K)에 대한 조사가 필요한데, 피의자 이00은 공주교도소에, 피의자 김00은 경북북부제1교도소에 각각 수형중으로…. (중략).... 코로나 19 사태로 인하여 교도소간 이감이 곤란하여, 피의자들 현재지 관할인 공주지청, 의성지청에 피의자들에 대한 수사촉탁을 하였다. 수사촉탁 회신 시까지 피의자들에 대한 기소를 중지한다.

서울중앙지검의  불기소 사유서 (21.11.19)중
즉 피의자가 각각 공주와 의성에 있는데 코로나 때문에 이감이 불가능하니 공주와 의성지청에 수사촉탁을 하고, 그 회신을 받을 때까지는 기소를 중지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의성지청은 서울중앙지검에다 수사촉탁을 한 뒤 이를 빌미로 기소를 중지했다. 그러니까 의성지청과 서울중앙지검은 서로 “저쪽에서 수사를 한 뒤 보내줘야 이쪽에서 수사를 할 수 있다”면서 이를 핑계로 사건을 캐비닛에 넣어버린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이감을 시키지 못해 조사를 할 수 없다는 설명도 황당하다. 죄수K는 코로나 발생 이후에도 이미 출정과 면담 등을 통해 수십 차례 조사를 받았다. 더 결정적으로, 검찰이 기소 중지를 결정한 지 약 열흘 뒤인 11월 30일 죄수K는 서울구치소로 이감이 됐다.  “코로나 때문에 이감이 불가능해 조사를 못한다”더니 불과 열흘 뒤에 이감이 된 것이다. 
이유를 짐작할 수는 있다. 이 두 사건을 제대로 수사하면 검찰이 경징계로 덮고 지나간 김영일 검사의 비위 사실이 눈덩이처럼 커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검찰의 제식구 감싸기 신공, 언제까지 봐야 하나

물론 검찰도 할 말은 있을 것이다. 의성지청이 서울중앙지검에 수사촉탁을 한 사건과 서울중앙지검이 의성지청에 수사촉탁을 한 사건은 서로 사건 번호가 다른, 형식상 다른 사건이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죄수K의 변호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민본은 “비록 사건 번호는 다르지만 실체가 동일한 하나의 사건이다. 사건 번호가 다르다는 것을 빌미로 서울중앙지검과 의성지청이 상호 사건 촉탁하여 기소 중지 처분을 내린 것은, 검사가 연관된 이 사건에 대한 수사 의지가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기소 중지는 검사의 고유 권한이다. 검찰사건사무규칙 120조에는 “검사가…(중략)....수사를 종결할 수 없는 경우에는 그 사유가 해소될 때까지…(중략)... 기소 중지의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이 권한은 이런 식으로 검찰이 묻어버리고 싶은 사건을 묻어버리는 데 쓰라고 준 게 아니다. 검찰은 수사촉탁과 기소 중지 권한을 활용해 사건을 묻어버릴 수 있는 신종 수법을 개발해냈다. ‘적법한’ 권한을 이용해 검찰이 제 식구를 감싼 또 다른 사례다.
제작진
취재 심인보
디자인이도현
웹출판허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