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군 부사관 이예람 중사가 2021년 5월 부대 내 관사에서 사망했다. 상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81일 간 조직 내에서 고립된 끝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성추행 사건 직후 피해 사실을 신고했으나 피해자에 대한 보호 조치, 즉각적인 사건 수사 및 가해자 처벌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피해자 사망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고 나서야 수사는 급물살을 탔다. 국방부 장관 명령으로 공군본부에서 국방부 검찰단으로 사건이 이관돼 가해자 장OO 중사를 포함한 관련자 15명이 기소됐다. 이후 국방부 수사로도 밝혀지지 않은 의혹들에 대한 재수사 필요성이 제기됐고, 국회는 ‘고 이예람 중사 특검법’을 통과시켰다. 특검에는 안미영 변호사가 임명됐다. 특검은 100일간의 수사를 거쳐 8명을 기소했고, 작년 10월 재판이 시작됐다. 뉴스타파는 이 사건 재판 과정을 지상 중계한다. <편집자주>
공군 제20전투비행단(이하 20비) 군검사였던 박 모 씨는 군사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은 후 군검사로서 했어야 할 수사와 피해자 보호 조치를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혐의(직무유기)로 특검에 기소됐다. 특검 공소장에 따르면, 박 씨는 별다른 이유 없이 피해자 조사 일정을 두 달 가량 연기했다. 처음 피해자 조사가 예정됐던 2021년 5월 21일에는 청원휴가를 썼다. 박 씨는 이 중사의 자살 관련 내용을 외부에 유출한 혐의(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허위보고와 무단이탈 혐의도 받는다. 박 씨는 무단이탈 외 모든 혐의를 부인하고 있다.
공군 고 이예람 중사 사망 1주기를 하루 앞둔 2022년 5월 20일,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에서 신옥철 공군참모총장이 고인의 영정에 경례하고 있다. (출처:연합뉴스)
‘영상조사실 사용할 수 없어’ 조사 일정 바꿨다?
■ 2023년 2월 3일 20비 군검사 직무유기 등 4차 공판
20비 소속 군검사였던 박 모 씨는 성추행 사건이 벌어지고 한 달 후인 2021년 4월 7일 20비 군사경찰대대에서 사건을 송치받았다. 4월 20~27일 사이 공군 성고충상담관과 피해자 국선변호인은 군검사인 박 씨에게 “피해자가 조속한 조사를 희망한다”, “신속히 조사해달라”고 요청했다. 하지만 박 씨는 이런 요청을 무시했고, 사건을 송치받고 한 달 보름 뒤인 2021년 5월 21일로 피해자 조사 일정을 잡았다. 5월 17일경엔 피해자 국선변호인에게 연락해 “ 5월 21일 이후에 조사가 가능한 지” 물었다. 조사 일정은 6월 4일로 미뤄졌다. 성추행 피해자인 고 이예람 중사는 처음 조사가 예정됐던 5월 2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날 재판의 쟁점은 ‘피해자 조사 일정이 미뤄진 이유'였다.
재판에 앞서 군검사 박 씨는 변호인 의견서에서 “사건 송치 이후 피해자 조사를 위해 영상 녹화실이 있는 제15특수임무비행단(이하 15비) 조사실을 빌리기로 했으나 조사실 사용이 어려워 피해자 조사 일정을 미룬 것”이라고 주장했다. 박 씨는 “제39전투비행단(이하 39비)이 먼저 2021년 5월 21일 15비 영상조사실 사용을 예약했기 때문에 부득이 피해자 조사를 미룰 수밖에 없었다”고 변명했다. 하지만 특검은 해당 의견서 내용이 군검사 박 씨가 조사 일정 연기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만들어낸 주장이라고 봤다.
이날 재판에는 15비 법무실 소속이었던 군검사 C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박 씨의 주장대로 ‘15비 영상조사실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C씨는 조사실 사용을 두고 박 씨와 연락을 주고 받았던 사람이다. C씨는 국방부 검찰단 조사 때 “2021년 5월 21일 15비 조사실을 사용할 수 있다고 20비에 알려줬다”고 진술한 바 있다. 하지만 이날 C씨는 “시간이 많이 지나 기억이 확실치 않다”며 국방부 조사 때 했던 진술을 번복했다.
특검: 피고인(군검사 박 씨)의 휴대전화 디지털 포렌식 자료 중 2021년 5월 13일자 카카오톡 메시지를 제시한다. 이 자료에 따르면, 피고인이 증인(15비 군검사 C씨)에게 15비 영상조사실 사용을 부탁한 이후에 (증인이) 동기 군법무관에게 ‘(군검사 박 씨가) 21일에는 성남 비행단 15비에 가서 피해자(고 이예람 중사) 조사한다’고 메시지를 보낸다. 당시 2021년 5월 21일 15비 영상조사실에서의 피해자(고 이예람 중사) 조사 일정이 확정된 것으로 이야기하고 있는데, 증인의 기억과 일치하나?
증인(당시 15비 군검사 C씨) : 그렇긴 한데 ‘확정’이라는 말이 좀 애매하다. 기억으로는 (15비 영상조사실 사용을 위해) 20비에서 연락이 온 것과 39비에서 연락 온 것에 큰 시차가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지금은 기억이 오래됐지만 (국방부 검찰단) 참고인 조사 때는 기억을 떠올려 ‘20비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 같다’고 진술했다. 39비와 20비가 (영상조사실 사용) 일정이 겹치니까 39비 측에 협의를 하라고 얘기했던 것 같다.
군검사 박OO 씨 변호인 : 2021년 5월 14일 경 당시 39비 군검사는 15비 영상조사실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판단해 조사 일정을 5월 21일로 정했던 것 같다. 당시에 39비가 5월 21일 영상조사실을 사용하기로 되어 있었던 것 아닌가?
증인(당시 15비 군검사 C씨) : (15비 법무실 구성원들도) 39비가 5월 21일 조사실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5월 21일) 금요일날 ‘39비가 왜 안 오지’ 하고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특검 측이 제시한 15비 법무실 내선번호 통화내역을 두고, ‘20비와 39비 중 어디가 더 먼저 15비 영상조사실 사용 요청을 했는지’ 공방이 오갔다. 특검은 피고인과 39비 군검사가 이 중사 사망 이후 나눈 문자 메시지를 제시하며 연락이 오고 간 순서를 따졌다. 특검 측은 ‘20비 조사실 사용 요청 및 확정→39비 조사실 사용 요청→20비 법무실이 피해자 조사 일정을 변경하면서 조사실 사용 취소→39비 조사실 사용 가능’ 순서로 연락이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다.
특검 : 순서를 보면 20비가 먼저 15비에 연락을 해서 조사실 사용을 요청했고, 그 뒤에 39비가 15비에 연락을 하니 이미 20비에서 사용하기로 했으니 시간 조정이 필요하다고 답을 했다. 이후 20비가 조사실 사용을 취소했고, 39비가 조사실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이게 시간 순서상 맞는 거 아닌가?
증인(당시 15비 군검사 C씨) : 그게 맞는 것 같기는 하다. 하지만 솔직하게 이 부분은 기억이 잘 안 난다.
고 이예람 중사에 대한 첫 피해자 조사가 예정됐던 2021년 5월 21일, 사건을 맡은 20비 군검사 박 씨가 15비 영상조사실을 사용할 수 있었는지 여부는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조사실이 없어 피해자 조사를 미뤘다는 주장 자체가 말이 안 되고, 이미 2차 가해에 시달리던 피해자(이예람 중사)가 공군 성고충상담관과 피해자 국선변호인을 통해 군검사에게 ‘조속한 조사’를 요청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 조사 일정을 잡는 게 상식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날 재판에서는 "15비 영상조사실을 군검사인 박 씨가 사용할 수 있었는지"만 중요 쟁점으로 다뤄졌다. 재판은 답답하게 진행됐다.
군 성폭력 피해자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사건을 수사한 서울 서대문구 안미영 특별검사팀 사무실. (출처 : 연합뉴스)
“군검사가 조사 일정 바꿔달라 연락”... 피해자 국선변호인 진술
■ 2023년 2월 24일 20비 군검사 직무유기 등 5차 공판
2월 10일로 예정됐던 공판이 증인 불출석으로 24일로 연기됐다. 이날 공판에는 사건 당시 39비 법무실 소속이었던 군검사 H씨와 공군본부 인권나래센터 법무관 P씨가 증인으로 출석했다. P씨는 고 이예람 중사의 두 번째 국선변호인이었고, H씨는 15비 영상조사실을 빌리는 과정에서 15비 군검사 C씨와 연락을 주고 받았던 사람이었다. 4차 공판에 이어 ‘2021년 5월 21일 20비 군검사 박 씨가 15비 영상조사실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피해자 조사 일정이 미뤄진 경위가 무엇인지’가 쟁점이 됐다.
피해자 조사 일정 관련해 20비 군검사 박 씨와 연락을 주고 받았던 법무관 P씨를 신문하는 과정에서 ‘군검사 박 씨의 요청으로 피해자 조사 일정이 변경’된 정황이 드러났다. 법무관 P씨는 “군검사 박 씨로부터 조사실 사용 문제 때문에 일정을 변경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없다”고도 말했다. “15비 영상조사실을 사용할 수 없어 부득이 고 이예람 중사에 대한 첫 피해자 조사를 미룰 수 밖에 없었다”는 군검사 박 씨의 주장을 뒤집는 증언이었다.
특검 : 2021년 5월 17일 오전 9시 57분 경 피고인(군검사 박 모 씨)으로부터 '피해자 조사 21일 말고 28일에는 어떠니'라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은 사실이 확인된다.
증인(당시 공군본부 법무관 P씨) : 이 카톡이 먼저 왔고 오전 10시가 좀 넘은 시각에 그 부대에 있는 사무실에 전화가 다시 왔다.
특검 : 증인은 특검에서 조사를 받을 때 “박OO(군검사)이 ‘5월 21일에도 가능하긴 한데 피해자에게 그 다음주인 5월 24일에서 28일 동안에도 조사가 가능한 날이 있는지 물어봐 달라'고 하였습니다. 제가 그래서 ‘바쁜가 보다’ 정도로 이야기를 하면서 물어보겠다고 하고 미루는 이유에 대해서는 꼬치꼬치 안 물어봤습니다”라고 진술했다. 맞는가?
증인(당시 공군본부 법무관 P씨) : 맞다.
특검 : 증인은 “박OO가 웬만하면 다른 날로 바꿔달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는 않았는데 그 다음주로 변경하면 좋겠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날짜를 변경할 필요가 없다면 저에게 그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진술했다. 맞는가?
증인(당시 공군본부 법무관 P씨) : 맞다.
특검 : 증인은 피고인(군검사 박 씨)으로부터 ‘5월 21일에는 15비 영상조사실을 사용하기 어렵다’라는 취지의 이야기를 들어본 사실이 있나?
증인(당시 공군본부 법무관 P씨) : 없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그런 걸 들었으면 기억했을 것 같다.
충남 계룡대 공군본부 (출처 : 연합뉴스)
이예람 중사가 당시 피해자 조사 일정 관련해서 국선변호인과 성고충상담관에게 보냈던 메시지들도 재판에서 공개됐다. ‘검찰 단계로 언제 넘어가는지, 아직 넘어가지 않았다면 빠르게 진전되었으면 한다’, ‘사건 송치 연락을 받았는데… 보통 피해자 조사는 송치 며칠 이후에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사건이 현재진행형인 것이라는 사실 자체로 나날이 정신이 피폐해지는 것을 느끼기에 하루라도 빨리 마무리되었으면 한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고 이예람 중사가 빠른 조사를 원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였다.
특검 측은 이 중사가 피해자 조사 일정이 빨리 진행되기를 원했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라 이러한 의사를 적극적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것으로 판단했다. 피해자 사망의 원인이 강제추행과 2차 가해에서 비롯된 심리적 외상에 있었다는 법심리감정서가 증인신문 과정에서 제시되기도 했다.
특검 : 이 내용을 다 종합해 보면, 이예람 중사는 하루라도 빨리 피해자 조사를 받고 싶어 했지만 유급 휴가와 자가 격리 기간 동안 겪었던 여러 사건들로 사람들의 시선을 불편해했고 심리적으로 매우 위축된 상황이기에 피해자 조사가 지연되는 데 대한 불편한 감정조차도 내비칠 수 없는 심리상태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2021년 5월 17일 조사 일정을 변경할 때 증인은 이 중사가 불편한 감정없이 동의했다고 하지만 실제는 이예람 중사가 조사가 지연됨으로 인해서 괴로운 심리 상태가 더 악화됐을 것으로 보이지 않나?
증인(당시 공군본부 법무관 P씨) : 이런 사실들을 몰랐다. 그런 것을 민감하게 느끼지 못했다. (피해자에게 일정 변경을 물어보면서) ‘21일에도 조사가 가능하니까 만약에 그대로 진행하길 원하시면 피해자 변호사로서 그렇게 전달하겠다’는 말을 하기는 했다. 그런 부분에 별다른 말씀이 없으셔서 그 외의 반응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피고인인 군검사 박 씨가 상부에 보고한 내용이 법무관 P씨의 보고 내용과 다르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고 이예람 중사 사망 이후 ‘사건 처리가 지연된 이유를 보고하라’는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장의 지시에 군검사 박 씨는 자신이 피해자 측에 조사 일정 변경 여부를 문의한 사실은 누락하고 ‘피해자의 요청에 따라 조사 일정을 변경했다’고만 보고했다. 특검은 이 보고가 허위로 작성됐다고 봤다. 박 씨 변호인은 “피고인의 기억에 의해 작성된 보고일 뿐 허위보고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특검 : 증인(법무관 P씨)은 2021년 6월 9일 고등검찰부장 한OO에게 보고한 통화일지 문건에서 “피해자 국선변호사(법무관 P씨)는 20비 보통검찰로부터 일정 조정 요청 및 피해자 의사 확인 연락을 받고 피해자에게 일정 조정 가능 여부를 물었다”고 기재했다. 반면 피고인(군검사 박 씨)이 작성한 사건 처리 지연 소명서에는 이렇게 기재돼 있다. “국선변호인이 피해자에게 연락하여 피해자가 원하는 날을 정하면 전달하겠다고 하였고, 피해자는 2021년 6월 4일 오전 중에 빨리 끝내주셨으면 좋겠다는 의사를 표현하면서 날을 지정하여 20비 보통검찰 조사 일정을 피해자가 원하는 날로 정하였다.” 피고인의 보고 내용과 증인의 보고 내용이 달라 보인다.
증인(당시 공군본부 법무관 P씨) : (군검사 박 씨가 피해자 측에) 일정 조정 요청을 했던 부분이 피고인 작성 보고서에는 없는 것 같다. 그런 부분이 좀 다른 것 같다.
특검 : 2021년 6월 5일 공군본부 보통검찰부에 피고인(군검사 박 씨)이 보낸 보고서를 보면 ‘2021년 5월 21일 그대로 피해자 조사가 진행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하였으나 피해자 요청에 따라 2021년 6월 4일 15비에서 조사를 하기로 결정함’이라고 기재돼 있는 것이 확인된다. 이 내용 역시 증인의 보고 문건과 다르다.
증인(당시 공군본부 법무관 P씨) : 아무래도 6월 4일은 피해자 분이 요청한 게 맞지만 그 앞에 일정 조정 요청을 누가 먼저 이야기했는지가 빠진 것 같다.
이날 공판에서는 고 이예람 중사 국선변호인이었던 증인(법무관 P씨)이 전임자로부터 사건 관련 정보를 제대로 전달받지 못한 채 직무를 수행했다는 점도 밝혀졌다. 재판장은 ‘증인(법무관 P씨)이 사건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피해자가 어떤 조력을 필요로 하는지 파악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고 이예람 중사 아버지 이주완 씨는 “(증인이) 국선변호사 역할을 처음 해봤다고 하면서 잘 몰랐다고 하는 (이 상황이) 개탄스럽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