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됐던 해병대 수사단의 언론 브리핑이 모종의 사유로 돌연 취소되기 하루 전인 7월 30일, 임 전 비서관은 당시 이종섭 장관을 보좌하던 박진희 군사보좌관과 두 차례 통화를 했다. 이후 박 보좌관은 김계환 사령관에게 '수사 내용이 안보실에 보고가 되어야 한다'는 취지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보냈다.
다음날인 31일, 오전 11시 윤석열 대통령이 주재한 안보 분야 수석보좌관 회의 이후 ‘02-800-7070’ 번호가 이종섭 전 장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통화 이후, 같은 날 오후 2시로 예정되어 있던 언론브리핑이 취소되면서 이른바 ‘VIP 격노설’이 파생됐다. 임 전 비서관은 이날 수보회의에 배석했다.
해병대 수사단이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던 사건이 다시 국방부로 회수되는 초유의 사건이 일어난 8월 2일엔 윤석열 대통령과 임 전 비서관이 직접 통화를 하기도 했다. 이날 임 전 비서관이 오후 1시 반쯤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를 받았던 기록이 공개됐고, 이후 그가 유재은 법무관리관에게 전화를 건 기록이 공개됐다. 유 법무관리관은 임 전 비서관이 당시 ‘경북경찰청에서 (유 법무관리관에게) 전화를 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고 국회에 나와 진술한 바 있다. 이후 경찰로 이첩됐던 사건은 국방부로 회수됐다.
임기훈, ‘안보상 이유’로 답변 불가 반복…재판부에 제지 당해
그러나 이날 공판에 나온 임 전 비서관은 “답변할 수 없다”는 말만 수차례 반복했다. 임 전 비서관은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 강의구 비서실 부속실장, 윤석열 대통령 등과 통화한 내역 관련한 변호인단의 신문에 “이미 국회에서 답변한 내용이다”라거나 “대통령과의 통화는 안보 사안이기 때문에 답할 수 없다”는 말로 증언을 거부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국회와 달리 ‘안보 상의 이유’는 증인의 답변 거부 사유가 될 수 없다. 법정에서 증인이 답변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는 형사상 소추 또는 공소 제기를 당하거나 유죄판결을 받을 사실이 드러날 염려가 있는 경우에 국한된다.
임 전 비서관은 박 대령의 변호인단과 재판부가 이 사실을 여러 번 지적했음에도 “안보상의 이유로 답변할 수 없다”는 기존의 태도를 고수했다. 변호인단이 “윤석열 대통령과 8월 2일에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냐”는 등의 질문에 “안보상의 이유로 답변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재판부가 누차 이를 지적하자 나중에는 “형사상 소추의 우려가 있어 답변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박 대령 변호인단이 “검찰단장과 통화를 한 적이 있는지”, “‘02-800-7070’번호로 이종섭 전 장관에게 전화한 사실이 있는지” 등을 묻자 임 전 비서관은 “형사상 소추의 우려가 있어 답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밖에 △7월 31일 오전 11시 수보회의가 언제 끝났는지, △‘이런 식으로 다 (관련자들을) 처벌을 하면 누가 사단장을 하려고 하냐’는 말을 듣거나 전달한 적이 있는지 등의 질문에 모두 그는 “형사상 소추의 우려가 있어 답변할 수 없다”고 답변했다.
‘제복 입은 군인’ 존중?…방청석 분노
이런 임 전 비서관의 태도로 증인 신문 자체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대신 임 전 비서관은 마무리 발언을 통해 “군의 명령체계는 상관으로부터 명령 하달되는 한 명백한 불법성이 없다면 이행되는 것이 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전장에서 전시에 목숨을 걸고 싸워야 하는 것이 군 임무 수행의 특성이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그 위험한 지역에 나가야만 하는 것이 군에 부여되는 소명이자 임무”라고 말했다. 이에 방청석에서는 “전쟁 중에 애가 죽은 거냐”는 야유가 터져나왔다.
임 전 비서관은 계속해서 발언을 이어갔는데, “군의 명령 체계가 준수되어야 하는 것이 이런 군의 기강을 유지하는 데 핵심적 가치”라며 “명령을 받은 사람이 명령권자 적법성을 일일이 평가하고 판단해서 명령의 이행 여부를 결정한다면 전시에 군이 싸워서 이길 수 있는 군으로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북한의 도발을 언급하자 방청석에서는 다시 소란이 빚어졌다.
이어 임 전 비서관은 “군이 본연의 임무에 매진할 수 있도록 격려와, 제복 입은 군인에 대한 존중이 회복되어 있으면 좋겠다”고 말을 계속 이어갔다. 그는 끝으로 “다시 한 번 고인의 명복을 애도한다”고 말했다.
오혜지 대위, 1시간 동안 “기억이 안 나”만 되풀이
이날 오혜지 해병대 법무과장(대위)과 박모 해병대 수사단원도 증인으로 출석했다. 오 대위는 1시간 가량 이어진 신문 내내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답변만 되풀이했다.
오 대위는 지난해 7월 31일과 8월 1일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이 주재한 회의에 당시 휴가였던 장동호 해병대사령부 법무실장 대신 참석한 다음, 회의 내용을 장 실장에게 유선으로 보고한 바 있다. 두 번의 회의에서는 이미 8월 2일로 예정됐던 해병대 수사단 사건 기록 이첩 보류와 관련한 논의가 있었다.
오 대위는 당시 회의에서 “군사법원법이 개정돼 해병대에 관할이 없기 때문에 이첩하는 게 맞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말했다. 재판장이 “피고인(박정훈 대령)의 의견에 동의한 한 것이냐”고 다시 묻자 “바로 이첩하자는 것은 아니었고…”라며 말끝을 흐렸다.
오전 증인으로 나온 박모 해병대 수사단원은 채해병 사망 사건 수사 과정에서 윗선으로부터 ‘사단장을 혐의자에서 빼라’는 외압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이밖에 포항지청 최모 검사가 군검찰을 통해 해병대 수사단의 사건을 포항지청으로 넘기도록 종용했었다는 사실도 증언했다.
임 전 비서관은 이번 재판의 마지막 증인이다. 박 전 대령에 대한 피고인 신문 기일은 내달 21일이다. 피고인 신문을 마치면 변론이 종결된다. 이에 따라 이르면 올해 안에 박 전 대령에 대한 1심 선고가 이뤄질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