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탈여성 미투]"성폭행 음성파일 법정서 공개하겠다"...2차 가해 논란

2020년 12월 24일 16시 44분

북한이탈여성을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현직 정보사령부(이하 정보사) 군인 측이 “성폭행 당시 녹음된 음성파일을 법정에서 공개하겠다”고 재판부에 요구했다. 피해자에게 음성파일 내용을 들려주고 “합의에 의한 성관계였다”는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겠다는 것이다. 이 음성파일은 성폭행 당시 상황을 피해자 동의없이 가해자가 녹음한 것이다. 피해자 측은 “가해자 측이 2차 가해를 예고한 것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을 내놓고 있다.  
23일 국방부 보통군사법원에서는 북한이탈여성 한서은(가명) 씨를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정보사 소속 김 모 상사와 성 모 중령에 대한 세번째 재판 준비기일이 진행됐다. 김 상사는 2018년 5월부터 12차례, 성 중령은 2019년 1월 한 차례 한 씨를 성폭행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두 군인은 모두 “합의된 성관계였다”며 성폭행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뉴스타파는 지난 7월, 북한이탈여성 성폭행 사건 보도(‘나의 참혹한 대한민국’ 북한이탈여성들의 미투)를 통해 한서은 씨가 정보사 소속 김 모 상사와 성 모 중령으로부터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당했다는 의혹을  보도한 바 있다. 군검찰은 뉴스타파 보도 한 달 후인 지난 8월 31일 두 군인을 성폭행 등의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김 모 상사는 상습피감독자간음·준강간 등 모두 8건, 성 모 중령은 피감독자간음·강요 등 2건의 혐의를 받고 있다.
▲ 뉴스타파와 인터뷰 한 북한이탈여성 한서은(가명) 씨. 지난해 10월 한 씨는 정보사령부 소속 군인 2명을 성폭행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음성파일 원본 제출하라”는 군검찰과 법원...가해자 측은 제출 거부
문제의 ‘음성파일’은 2019년 1월 정보사 소속 성 모 중령이 한서은 씨를 성폭행 할 당시 상황을 녹음한 것이다. 녹음은 한 씨의 동의없이 이뤄졌다. 성 중령은 군검찰의 수사단계부터 지속적으로 이 음성파일을 증거로 채택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합의에 의한 성관계”를 입증할 수 있는 핵심적인 증거라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군검찰은 이 음성파일을 증거목록에서 제외했다. 
군검찰이 음성파일을 증거로 채택하지 않은 이유는 4가지다. 첫째, 가해자인 성 모 중령측이 음성파일 원본과 저장매체 제출을 거부한 점. 둘째, 성관계 당시 상황이 기록된 음성파일은 피감독자간음 사건에서 핵심 증거가 될 수 없다는 점. 셋째, 해당 음성파일은 피해자의 동의없이 녹음된 ‘불법 녹취’라는 점. 넷째, 해당 녹음파일이 사설 포렌식 업체를 통해 취득되는 등 조작가능성이 있다는 점이었다. 
실제로 성폭행 피해자인 한 씨는 군검찰 수사때부터 일관되게 “자신이 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며 음성파일의 조작가능성을 제기해 왔다. 군검찰은 수사단계에서 “음성파일 원본 자체가 존재하는지도 의문”이라는 입장을 내기도 했다. 가해자인 성 중령 측은 “군검찰 수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이유로 음성파일 원본과 저장매체 제출을 거부하고 있다. 군검찰의 수사가 편향됐다는 주장이다.
피해자 측 “채택 안 된 증거 공개 요구는 사실상의 2차 가해”
음성파일을 둘러싼 논란은 법정에서도 이어졌다. 세번에 걸쳐 진행된 재판 준비기일 내내 성 중령 측은 지속적으로 “음성파일을 증거로 채택해야 한다”는 주장을 반복했다. 성 중령 측 변호인은 법정에서 “피고인(성 모 중령)에게 유리한 증거를 검찰이 의도적으로 증거목록에서 제외시켰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군검찰은 “조작가능성 판단을 위해 원본파일과 저장매체를 직접 제출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피고인 측이 거부했다”고 맞섰다. 
불법적으로 녹음된 성폭행 음성파일 내용을 피해자에 대한 증인 신문 과정에서 공개하겠다고 가해자 측이 주장하면서, 군검찰 수사 당시 제기된 2차 가해 문제가 반복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난해 군검찰은 피해자인 한 씨에게 직접 해당 녹음파일을 들려주면서 수사를 진행해 피해자를 ‘2차 가해’했다는 비난을 받은 바 있다.  
한서은 (가명) 씨의 변호를 맡고 양태정 변호사는 뉴스타파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피고인 측이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 시 제출하겠다고 하는 녹음파일은 출처를 알 수 없는 파일입니다. 게다가 피해자는 음성파일이 조작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피고인 측은 증거능력이 확인되지 않은 이 음성파일을 다른 곳도 아닌 피해자에 대한 증인신문에서 제출해 공개하겠다는 겁니다. 재판부에 예단을 주기 위한 부적절한 행위라고 판단합니다.

-양태정 변호사(피해자 한서은 씨 변호인)
성 모 중령 변호인 “음성파일 증거로 채택해 달라”
피해자 측 주장에 대해 성 모 중령 측 변호인은 뉴스타파와의 전화통화에서 “음성파일을 피해자에게 직접 들려주겠다는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피해자의 동의 여부를 묻겠다. 녹음된 음성이 본인이 맞는지, 녹음된 내용의 진위는 직접 물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증거 채택을 거부하고 있는 군검찰에 대해서는 “아직 법원에 제출되지도 않은 증거를 두고, 재판에서 그 증거 능력을 다투는 것은 대단히 이례적인 일이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서라도 해당 자료는 증거로 채택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음성파일 원본과 저장매체를 법원에 제출할 의향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는 “현재 검토 중”이라고 답했다. 
문제의 ‘성폭행 음성파일’이 법정에서 증거로 채택될 지, 가해자 측의 요구대로 피해자 증인 신문에서 음성파일 내용이 공개될 지는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재판부는 조만간 이 음성파일의 증거채택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한서은 씨 성폭행 사건 첫 재판은 내년 1월 19일 열린다.